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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하나님의 권세! (삼상 2:1-10)

by 【고동엽】 2022. 2. 4.

하나님의 권세! (삼상 2:1-10)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문제가 그림자처럼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닥쳐올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태도입니다. 배는 언제나 풍랑에 대비해야 하고, 군인은 언제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언제나 문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사람들은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①당황형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몹시 급한 사람입니다. 그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앞뒤를 생각지 않고 마구 행동합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사건을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는데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자들을 앞세워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이때 베드로가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내리쳐 귀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만약 말고가 칼을 맞잡고 대항했더라면 그곳에 같이 있던 열 제자의 목숨이 순식간에 날라 갈 뻔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떨어진 귀를 집으며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붙여 주셨습니다.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성적으로 생각지 못하고 당황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불이 났을 때 귀중품이라고 들고 나온 것이 요강단지요, 어떤 사람은 베게를 아기로 착각하고 안고 나오더랍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면 문제가 다시 보입니다. 어떤 문제라도 서둘지 말고,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회피(도피)형이 있습니다. 문제가 골치 아프고 처리하기가 귀찮으니까 차라리 도망이나 가자는 요나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을 복음화 시키라는 엄청난 도전 앞에 스스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문제를 피한다고 능수는 아닙니다. 문제 속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왜 문제가 있는지 아십니까? 문제는 풀어 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③절망형이 있습니다. 작은 문제라도 나약해 집니다. '이제 나는 끝장이야! 이제 나는 망했어!'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 속에 자기의 신앙만 바로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④연기형(미루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연기라는 말이 꼭 한번 나옵니다. 행24:22절에 바울이 예수를 전하며 다닌다고 고소 당하여 로마 재판장 벨릭스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벨릴스가 아무리 심문해 봐도 바울에게 잘못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무리들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나 바울을 죽이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으니까 재판의 연기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처럼 내일 생각하자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⑤원망형이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생겼다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평안을 느끼며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만을 원망했습니다. 원망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감사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⑥도전형이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형입니다. 문제 앞에서 피하거나, 당황하거나, 연기하지 않고 도전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성경 속에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대군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던 모세 앞에 홍해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뒤에서는 최강 무기로 무장한 애굽의 바로 군대가 쫓아옵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입니다. 낭패와 절망입니다. 그때 모세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고,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또 일이 이렇게 됐으니 가나안 정복을 다음에 미루자고 연기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보내 이스라엘을 이끌게 하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모세는 문제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모세야 네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바다를 갈라라" 이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이때 홍해가 갈리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
여러분! 기도하면 문제가 갈라져 길이 보입니다. /믿/ 우리 모두 모세처럼 문제를 도전의 대상으로 보고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뉴욕에 있는 청소년 선교 단체의 책임자인 '다니엘 데이비스'씨는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부모들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10대 자녀들의 교육문제, 장래 직업문제, 배우자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하버드대에 들어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누구를 본받으라든지, 누구처럼 되라든지, 누구를 존경하라는 얘기는 입밖에 낼 겨를이 없습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하버드대에 들어가는 것이 관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부모들의 관심은 어디라도 좋으니 붙어만 달라고 하는 절박함 속에 삽니다.
저도 오래 전에 그런 부모 중에 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보다, 성공이나 출세보다 그리고 돈이나 명예나 인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주님은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내 자녀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직위를 얻었느냐?'도 중요합니다 만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실감이 갑니까?
우리 한번 우리 가정의 모든 식구들의 영혼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아직도 예수 밖에 있다고 절망하시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모든 식구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귀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오늘 본문은 한나의 신앙고백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이 첩을 얻어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한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를 따르고 누구를 존경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장래가 결정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누구를 존경하느냐에 따라 인생관과 가치관이 결정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이 결정됩니다.
한나의 신앙은 그의 고백으로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믿는다'는 것이 한나의 고백이며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한나의 신앙의 고백을 들으면서 도전을 받는 그런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즐겁다고 고백합니다(1절).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한나는 아들을 주셔서 즐겁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니까 기쁘고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계신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습니까? 부모 없는 고아들의 아픔을 아십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것만으로, 아내가, 형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복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즐거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이유는 마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어도 마음이 즐거워야 소화가 잘되고, 구경을 해도 마음이 편해야 즐겁습니다.
신앙생활도,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도, 부모와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은 심정도 마음에서 울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작년 3월 달에 모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집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결혼해서 새살림을 차려야할 아들에게 집을 사줄 형편이 못된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쳤습니다. 실망한 아들이 목을 매고 자살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 역시 두 시간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슬프고 가슴 아픈 기사를 읽으면서 자식에게 집한 채 사주지 못한 이유 때문에 목숨을 끊어야 했던 아버지의 한 맺은 가난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서 보금자리를 꾸미지 못하는 절망감 때문에 목숨을 끊어야 했던 한 젊은이의 아까운 생명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일 때문에 꼭 부자가 목숨을 끊어야 했던가? 결혼하는데 반드시 APT, 자동차, 호화 혼수와 열쇠 꾸러미가 함께 오가야 하는 것인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세태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키우고 가르치는 것, 돈 벌고 사업하고 성공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한나는 즐거움의 우선 순위를 먼저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아들을 낳게 해주신 것도 즐거웠지만, 하나님 그분이 계시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한나는 몇 가지로 얘기합니다.
①'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1절).
그 당시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면 멸시받고 천대받는 시절입니다. 그 사실에 주눅이 들어 기도조차 큰소리로 못하고 억눌려 살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한 한나에게 하나님이 자식을 주심으로 머리를 들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여기 뿔은 이것 달린 동물이 자신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다닌다는 점에서 힘, 능력, 권위, 자부심, 자랑 등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한나에게 자식을 주어, 기를 피고 살게 해 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해주시고, 가슴을 펴게 하시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사람들이 사는 처지는 천태만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 지은 과거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업의 실패로, 육신의 질병으로, 어떤 환경이나 처지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의 뿔을 높이 들어주신 것처럼,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예수 안에, 은혜 안에,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랑 안에, 권세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머리를 높이 들게 하시고 당당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며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입니까?

②주의 구원 때문에 즐거워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하).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나의 신앙의 높은 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다든지, 몸이 건강하다든지, 자신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든지 하는 일차적인 조건에서 기쁨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여러분! 기쁨 가운데 제일 큰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기뻐했고 감격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기쁨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옷과 잠자리를 주는 것이 기쁨이고, 병든 사람에게 치료해주는 것이 기쁨이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살려주고, 죽을 죄인을 용서해 주는 대 사면의 은혜가 최고의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로 허물로 죽어야 마땅할 존재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다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지 자다가 일어나서도 감사, 감격할 뿐입니다.

③하나님은 반석이기 때문에 즐겁다고 고백합니다(2절).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나이다" 반석은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변치 않는 분이시며, 든든한 분이시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변덕쟁이와 함께 살고 일한다면 그 인생은 고달프고 불행합니다.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은 조석변개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침과 저녁이 다릅니다. 사람은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약속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32.500가지의 축복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시18:2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사26:4절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오늘도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그분께 모든 것 맡기고 살면 절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할/

 

2. 지식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3절).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인간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지식입니다.
㉡앞뒤를 다 아는 지식입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읽어버린 과거도 아시고, 앞으로 되어질 일도 아십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시139:1-4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행동하시는 지식입니다. 한나는 3절 이하에 "행동을 달아보시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아본다, 세어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된 말입니다.
단5:25에 보면 바벨론 벨사살 왕이 문무백관과 유지들을 모아놓고 궁중에서 파티를 엽니다. 술이 취하자 자신의 아버지가 빼앗아 온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 그릇을 가져다가 거기에 술을 부어 마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을 우숩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우숩게 여기는 것이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손이 대 연회장 벽에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왕조를 재어보고,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함량미달이란 뜻입니다. 왕의 그릇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왕은 죽고, 바벨론은 메데 사람 다리오에게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믿음을 달아보시고, 사랑도, 열심도, 기도도, 봉사도, 충성도 달아보십니다.
행여나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달아보셔서 함량 미달이 된다면 이것처럼 큰 비극과 불행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너무 과소 평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믿/

 

3.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고백하고 있습니다(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힘과 상대적인 힘입니다. 절대적인 힘이란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힘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힘이란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그런 힘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절대적인 존재이며 절대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과 삶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장면이 세 번이 나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이 죽어갑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의 집으로 가는데 벌써 죽었으니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종들이 말합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헌화를 하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믿음 있는 사람만 데리고 들어가 죽은 소녀 앞에 기도하시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이 죽어 상여에 실려 무덤을 향하여 갈 때 주님이 슬피 우는 과부의 모습을 불쌍히 보시고 상여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에 명하시기를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시니 죽었던 그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베다니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는 죽어서 장사한지 3일이나 되었습니다. 그 지방은 열대지방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시체가 상합니다. 그런데 3일이나 지났으니 시체가 어떠하겠습니까? 상해도 폭삭 상했습니다.
주님은 3일이나 지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명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의 이 명령 한마디에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사형수 하나 둘쯤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자리는 사람을 높이게도 하고 낮추게도 합니다. 장관으로 세웠다가 짜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대통령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생명이 어디서 왔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힘으로도, 과학으로도 생명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 인조 잔디는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습니다만 그 풀 속에 생명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조주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창조의 능력으로 명하십니다. '달리다굼!' '청년아 일어나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
행여나 우리의 삶의 모습이 지금 무덤 속 같은 절망 속에 있지는 않으십니까?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까? 사업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정의 환경으로, 부부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주님의 권세로 명하십시오. 저주는 떠나가라! 실패와 낙심도 물러가라! 질병도 떠나가라! 주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에는 모든 길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한나는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멸망과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사는 것이고, 구원받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구원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절대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내가 이 땅에 30, 50, 그리고 70, 80년을 사는 것도 그 주권이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싶다고 오래 살고, 죽고 싶다고 빨리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고, 이 나라 정치와 역사가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이 문제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사실 인생 모두가 하나님 앞에 보잘것없는 초라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시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4.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7절).

 

7절 상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사업장을 축복하시면 하루아침에 판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모든 민족 위에 머리가 되는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신앙 안에서 복 받고 재벌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십니다. 잠8:18절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잠8:21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그 재물을 지킬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사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그 재산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합니다. 황충을 제하시고 과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축복해 주시면 사람의 힘으로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 분이 닫고 거두시면 또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느니라"
욥1:21절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오늘 본문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마5: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란 돈이 없어도 양심 바르게 살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신까지 병들고 마음까지 병들면 안됩니다.
오늘 한나의 고백은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풍요로운 마음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떼돈을 벌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산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옹졸하면 그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자족하며 삽니다.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살아갈 때 감사의 조건이 더 열리게 됩니다. /믿/

 

5. 한나는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7절).

 

본절의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높이게도 하시고 낮추게도 하시고'가 아니고,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게도 하십니다'.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미 어떤 이유나 문제 때문에 낮아져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마음만 정하시면 높이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베들레헴 들판에 양치기하던 다윗을 높이 들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웠고,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요셉을 큰 나라 국무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혈기로 가득 찬 어부 베드로를 하나님이 높이 들어 주님의 수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여러분! 우리도 높임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의인, 천국 시민, 복 있는 사람, 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백성'들입니다.
감사하며 삽시다! 충성하며 삽시다! 남은 생애 주를 위해 헌신하며 삽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한나는 '심판도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0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우리 여기에 주목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고 교역자를 대적하고 잘 된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를 대적하던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었고,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함으로 인하여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출10:1-2) 그들을 삼켰습니다.
고라와 르우벤 자손인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에게 도전했다가 땅이 갈라져 그들을 땅이 삼켜 버렸습니다.
출16:40-50절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려고 염병을 보내어 14,700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다가 산산조각이 나지 말고 깨어지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0절 계속 보시면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라고 했습니다. 심판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상은 땅 끝까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그 심판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를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 ▶내 뿔을 높이시는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반석 같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 ▶마지막 세상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성도가 되고, 한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아멘!/ (2003년 10월 2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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