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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라합의 믿음! (수 2:8-21/히 11:31)

by 【고동엽】 2022. 2. 3.

기생 라합의 믿음! (수 2:8-21/히 11:31)

 

♥바다 속에 사는 문어 총각이 신부 감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몸이 날씬한 멸치 아가씨를 만났답니다. 문어 총각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멸치 아가씨는 자기 부모에게 "복스럽게 생긴 문어 총각이 나를 너무 좋아합니다. 결혼을 허락하여 주십시요"
이 말을 들은 멸치 부모는 깜짝 놀라고 펄쩍 뛰면서 벼락치듯이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뼈대가 있는 가문이다. 그런 뼈대 없는 집안에 너를 시집보낼 수 없다" 단호히 거절해 버렸습니다. 이제 문어는 뼈대있는 멸치 아가씨를 포기하고 허리가 굽은 못 난 새우 아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거절당하고 말았답니다.
새우 아가씨의 부모는 "우리 집안은 양반 가문이다. 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런데 수염도 없는 서민의 집과 혼사를 맺을 수 없다"고 거절했답니다.
이렇게 짝 맺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뼈대있는 가문도, 양반 가문도 좋지만 예수 믿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줄 믿습니다.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견고합니다.
요즘 우리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16만 7천 쌍이 이혼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하루 835쌍이 결혼하는 사이 458쌍이 이혼한 셈이라고 합니다. 한국 가정 경영연구소에 의하면 요즘 '30대 여성들의 이혼 증가율이 높아 가는데, 소위 묻지마 이혼율'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배우자의 부정 행위나, 폭력, 경제적 궁핍, 고부간의 갈등과 같은 심각한 사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 가정이 작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을 잘 관리하는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소개▶

 

▶우리 한국역사에도 기생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황진이 같은 유명한 기생이 있는가 하면 임진왜란사를 보면 논개 같은 유명한 기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생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생 라합은 성경 세 곳에서 '이런 여자였다, 이런 여자였다, 이런 여자였다'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①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1:5절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리라"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고, 다윗 왕의 가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됩니다.
②믿음을 가진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히11: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③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여인입니다. 약2:25절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히11장은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의 믿음의 발자취입니다. 그 찬란한 신앙 위인들의 성좌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인물이 한 사람 자리 잡고 있는데,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라합이라는 기생입니다.
히11장에 나오는 신앙 위인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었는데, 라합은 여성이면서 저 뛰어난 신앙 영웅들의 반열에 들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러나 라합이 단지 여성이라고 하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라합은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상관이 없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보통 여성이 아니라 기생이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냥 기생이라고 번역되었으나 70인 역에서는 '매춘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인이 어떻게 저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간의 방랑을 끝내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몇 사람의 정탐군을 여리고성에 보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엄청나게 튼튼하고 완벽한 치안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라서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이며 방어 거점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입니다.
"여리고"라는 이름의 뜻은 "향기의 도시, 달의 고을, 종려나무의 성"이라는 뜻으로 요단 골짜기에 있는 요새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이 지역을 바라보고 여호와의 물댄 동산과 같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 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라 그런지 이곳에는 향락 산업이 발달되어 풍기가 음란하게 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만 하는 첫 성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을 반드시 주시기 위하여 이미 예비해 두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라합이라는 기생입니다. 정탐군들이 여리고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이 준비해 두셨던 그 라합이라는 기생을 만나게 됩니다. 기생보다 민심이나 정치. 군사적 동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곳 저곳, 이런 계층의 사람 저런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을 먹으면 비밀이 없어집니다. 술 먹고 마음껏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15절) 여리고 성을 살펴보기에도 매우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라합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향하여 오는 이스라엘의 소문을 이미 잘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서 잘 압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 줍니다.
이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간첩을 숨겨 주고 안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형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걸고 정탐군들을 숨겨 줍니다.
어떻게 정탐군의 소식을 알게 되었는지 여리고 정보국에서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그 때는 라합이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겨 버린 뒤였습니다. 정보원들이 다그칩니다. '그 사람을 내 놓으라고' 그러나 라합은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정보원들은 즉시 달려갑니다. 라합은 능숙하게 정보원들을 따돌립니다.
라합은 지붕에 올라가서 정탐군들에게 '당신네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사람의 두왕 시혼과 옥을 쓰러뜨린 모든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소. 당신들이 한 것을 소문을 듣고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 모릅니다. 나에게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셨다는 확신이 드오. 그러니 내가 당신들을 잘 보살펴 준 것처럼 당신들도 우리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들 그리고 우리 자매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하고 자기 가족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군들은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자신들을 달아 내리운 줄)을 내리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여 있으십시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제 그 정탐군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자기의 집에 붉은 줄을 달아매게 되었고 여리고 성이 함락 될 때 여리고에는 수많은 가정들이 있었지만 라합의 가정만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라합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족 전체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먼저 예수 믿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라합 같이 우리의 가족 친지 주변을 구원하라는 것이고, 가족, 친지를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할/

 

1. 라합의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들음'에서 났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굳세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기왕에 믿는 것, 열심히 믿어서 '참 훌륭한 믿음을 가졌구나!'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열심히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저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꾸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꾸만 들어야 합니다. 듣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①라합은 들음에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10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여리고에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이 가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다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믿음이 생깁니다.
②라합은 그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바른 경외심입니다.
9절 '간담이 녹았다'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
이런 라합의 고백이 그의 믿음을 말해 줍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여기에서 분명한 신앙의 고백과 확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③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롬1:21-23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불평과 불만만 드러내는 것은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④라합은 여리고성의 멸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알았습니다.
성도는 자기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불원간 멸망할 것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미래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미래를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마는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압니다.
8-9절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의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아노라"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로왔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2. 라합은 참으로 현명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애굽의 노예였던 한 민족이 거기서 기적처럼 탈출하고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넌 것이나,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버티어 내고 시혼과 옥의 군대를 전멸시킨 일련의 사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이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었음을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학문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일개의 기생이었던 여인 라합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인간 역사의 모든 영역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 사실이나, 그의 초자연적 초인간적 능력을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지는 않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인생들입니까? 진정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생이었던 라합은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소문에서 분명 그것은 상천하지에 홀로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던 아주 박학다식한 사람이 도중에 사공에게 '철학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사공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인생의 사분의 일을 잃었군요! 그럼 지리학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공은 역시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석학은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반을 잃었군요!'라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고 두 사람은 강에 빠졌습니다. 사공은 그 석학에게 '선생은 헤엄칠 줄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학자는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공은 그 석학에게 '그럼 당신은 인생의 전부를 잃었군요!' 했다는 풍자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어느 누가 철학을 논하고 우주 과학을 다 논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는 저 기생 라합만도 못한 어리석은 인생이요, 결국 자신의 인생 전부를 다 잃을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①사람에게는 분별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혀는 음식 맛을 분별합니다. 짠맛, 단맛을 분별합니다. 귀는 음을 분별합니다. 좋은 소리, 나쁜 소리를 분별합니다. 눈도 사물을 분별합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보는 분별력입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분별력이 분명하고 좋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10:4-5절에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과 타인의 음성을 분별한다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어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주를 좇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를 좇지 않은 사람들은 주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주의 음성을 듣는 주의 양들입니다. 주의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의 택하신 백성이요. 주의 말씀의 음성을 듣는 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성도는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모유 맛과 우유 맛을 분별합니다. 성도는 말씀의 맛을 분별해서 오직 말씀을 알고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부지런히 살아라. 성공해라'는 식의 하나의 교훈정도가 아닙니다. 내 심령의 변화를 주는 말씀이요. 내 속의 새로운 나를 중생 시키시는 말씀이요. 내 인격을 변화시키시는 말씀이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말씀이요. 내 삶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말씀이요. 내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성도는 말씀의 맛을 분별할 수 있는 은혜가 있어서 세상의 어떤 즐거운 소리보다 말씀을 더 사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라합의 믿음은 행동을 낳았습니다. 즉 행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①라합은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습니다.
살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민족에게는 배신자요, 반역자였지만,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②라합의 관심은 오직 가족구원에 있습니다. 가족의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라합의 관심사는 재물도 지위도 아니고, 단 한가지,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자신의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이 멸망당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12,13절).
그래서 라합은 자신만 구원 얻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의 부모 형제, 나아가서 자기 친족을 다 구원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라합은 가족의 구원을 조건부로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꾼들은 약속을 합니다. 18절“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붉은 줄을 매달면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나는 라합처럼 가족구원에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딤전5: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여러분, 기생 라합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기생입니다. 몸파는 여자였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집안의 한 여자가 기생이 되었다고 해보세요. 지금의 사회에서도 좋지 않은데 고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게 보는 경향이 어느 시대나 같았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외면하고, 조롱하고 멸시하였고, 아예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이 가족이었습니다. 그 동안 잘 찾지 않던 사람들이었고, 다소 원망스러운 관계였지만, 그래도 내가 구원받았으면 우리 가정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해보면 "아직 식구 중에 시어머니가 믿지 않고 있으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구원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남편과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라합과 같이, 노아와 같이 그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합이 먼저 믿었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족까지 구원한 것입니다.
▶라합은 자기의 가족의 구원을 그렇게 갈망한 사람입니다. 13절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를 이제 여호와께 맹세하라"
③라합은 즉시 붉은 줄을 창틀에 매어 달았습니다.
21절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지체하지 않고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성벽에 위치한 이 집의 창틀에 갑자기 붉은 줄이 매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구원을 위해서 정탐군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은밀한 관계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자는 믿음이 있는자입니다.
마24: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6.25 사변 때 한 미군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만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잡히게 되었습니다. 사면이 다 인민군인지라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꼼짝없이 잡히게 되었는데, 그때 헬리콥터 한대가 날아와서 줄을 내려 미군은 그 줄을 잡고 무사히 그 위험지역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라합이 붉은 줄을 내려 그 줄에 의지했을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미군이 헬리콥터 줄을 의지해 붙잡았을 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살기 위해 잡아야 할 줄이 있습니다.
말씀의 줄, 믿음의 줄, 소망의 줄, 이것이 생명 줄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넘보고 있으며 우리가 좀 약해졌다 싶으면 그 부분으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과 믿음과 소망의 줄을 항상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승리하고 ,바로 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줄은 이스라엘과 라합 사이의 구원의 약조였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같은 주경학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리하였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사막을 건너 온 유목민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라합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했고, 그러한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달았던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라합이 매어 달았던 붉은 줄은 단순한 약조의 표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의 피를 예표한 것으로 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구원받은 바 있었습니다. 그 때에 바른 양의 피도 물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행함을 가장 강력하게 역설한 책은 야고보서입니다. 그 야고보서에서 진정한 행함이 있었던 사람의 예로 두 사람을 말하는데, 곧 한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요, 또 한 사람은 바로 기생 라합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을 행함으로 옮겼던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성경은 라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2:21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고, 25절에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성경은 왜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만 말하지 않고 라합도 말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여성도 그처럼 위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격려를 주시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붉은 줄은 약속의 징표입니다.
이 붉은 줄은 기생 라합과 두 정탐꾼 사이의 언약이지만 결국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라합의 모든 가족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타나는 붉은 줄과 유월절에 이스라엘 가정의 문 인방과 문설주에 발랐던 붉은 피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 구속의 피를 상징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붉은 줄은 신앙고백을 표시입니다.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요, 도우시는 하나님이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요,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방 기생 라합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표시로 정탐꾼들이 요구한 붉은 줄을 창문에 달아 메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임을 이렇게 믿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의 구원주임을 믿습니다.'라고 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붉은 줄은 순종의 표시였습니다.
21절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라합이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붉은 줄은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라합은 세 번이나 중요한 창을 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창은 자기 집에 찾아온 정탐꾼들을 다락에 숨겨 놓았다가 그들을 살려 보내기 위해 창을 열고 줄을 달아 도피시켰습니다.
두 번째로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약속하기를 "네 집에 창밖에다 붉은 줄을 달아 놓으라 우리가 여리고를 쳐들어 올 때 너와 네 집에 있는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 붉은 줄의 표식을 위해 라합은 또 창을 열었습니다.
드디어 여리고가 함락되던 그 날에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에 쳐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만 이 붉은 줄이 있는 기생 라합의 집은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문으로서 이 창문은 또 한번 열려지게 됩니다.
계3: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문밖에서 두드리시니 그러므로 문을 여는 자는 그 주님이 안으로 들어와서 더불어 먹고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창문은 방에 있는 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말합니다.
▶우리도 기도의 창을 열어야 합니다. 단6: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데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한 기도를 분석해 보면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거나 경배하거나 예물을 드리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지기로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은 구약신앙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그만큼 계시사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 성전 시온산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어디에서 살든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묵상하는 것이 구약적 예배개념입니다. 다니엘이 비록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었다는 것은 성전중심의 믿음을 말합니다.
㉢"전에 행하던 데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전에 행하던 데로 해야 합니다. 즉 기도는 습관화가 되어야 합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구하십시오 주실 것이며 찾으십시오 찾을 것이며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4. 기생 라합의 믿음과 행함의 결과는 무엇인가?

마침내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날 그녀와 그 집안에 있었던 모든 가족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중에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가지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은 구원받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①민족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여리고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의 땅”이었지 “고국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남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라합 하나 때문에 여리고 민족의 역사가 비극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소망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②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46명중에 라합의 이름이 등장합니다(마1:5). 그 중에 5명이 여자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거룩한 여자가 아니라 창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데 공헌한 5대 여걸 중에 하나입니다.
③가정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여리고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라합 가정만 살았습니다. 한 사람 라합 때문에 가정 전체가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라합 하나 때문에 민족의 역사가 바뀌고, 기독교의 역사가 바뀌고, 가정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주변이 바뀌도록 하여야 합니다.
④라합의 믿음은 바울이 칭찬한 믿음입니다.
히11: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루터는 아볼로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터틀리안은 바나바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설이 제일 유력합니다.
히11장 믿음 장에서 바울은 16명의 믿음의 거성, 신앙의 거목, 일꾼의 거인들이 등장합니다. 누가 인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인정한 16명입니다. 그 중에 15명이 남자입니다. 단 한명 라합만이 여자입니다.
▶여호수아가 칭찬한 믿음입니다. 수2장에서 온통 라합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있는 믿음이라고 라합을 칭찬했습니다. 마태는 메시야 믿음이라고 라합을 칭찬하였습니다. 칭찬 받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여기 이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면 반드시 우산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식사 후에 반드시 이를 닦았으며, 직장의 서랍 속에도 칫솔을 두었습니다. ▶그는 인공조미료가 든 식품은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은 꼭 생수만을 마셨으며 무공해 식품만을 먹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종합 비타민을 먹었습니다. ▶그는 6개월에 한 번씩 꼭 건강 진단을 받습니다.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한 시간 이상 가족들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촉망받는 사원이었습니다. ▶그는 운전할 때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고 절대로 과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최소한 8시간의 수면을 취했습니다. ▶그는 결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꼭 등산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운동을 하고 공원 산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몰랐고, 예수를 믿지 않았으며, 영원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는 참으로 미련한 바보천치 인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전 3세기에 살았던 헬라의 철인 '플라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형은 대개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는 머리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실력만 믿고 모든 일을 명명백백하게 처리합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두 번째의 사람은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슴은 곧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자세입니다.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쳐온다고 하여도 이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는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배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신만을 알고 자신의 배만을 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의 사람은 다리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생이 어떤 형태로 살았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 없으면 죽은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최고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살길입니다. (2004년 5월 1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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