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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형통한 사람! (시 1:1-6)

by 【고동엽】 2022. 2. 3.

복 있는 사람! 형통한 사람! (시 1:1-6)

 

본문은 '복 있는 자가 누구인가? 복 있는 자가 형통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숟가락에도, 베게에도, 이불에도, 장롱에도 복자를 써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는다고 하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합니다.
'당신 하는 짓을 보니 복 받기는 틀렸어!' 이런 소리하면 칼부림 납니다. 그러나 '당신 하는 짓을 보니 꼭 복 받겠다'고하면 입이 벌어집니다. ●주님은 마10:12절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고, 벧전3: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하여 '복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복 있을 사람'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 즉 복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옆에 사람에게 인사합시다! '우리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할/
사람들은 마음으로, 생각으로, 입으로 자꾸만 화를 자초합니다. '나는 걸렀어', '나는 망했다', '나는 틀러먹었어'
또 누가 상대방에게 칭찬해주고, 축복을 하면, '아니라고' 부정을 하려고 합니다. 겸손한 것은 좋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복 받았어'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렇다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왜요? 사람의 생각과 말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말이 사람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누가 여러분들을 향해 '당신은 참 복 받았네요!'하고 말하거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생각으로 '우리는 망한 존재'라고, '너 까짓 것이 무엇을 한다고 그래' 하며 우리를 정말 못된 존재로, 불행한 존재로 여기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고 살게 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아니 실제 여러분들은 진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북한, 중국, 몽골,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모퉁이 돌' 선교회가 바로 그 단체입니다. 그런데 그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오는 '카타콤'이라는 소식지가 있습니다. 그 소식지에 보니 이런 내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은 나아졋는지 모르지만 전에는 북한에서는 '닭 잡고 잔치하는 것'이 처녀 총각들의 꿈이라고 합니다.
통닭 한 마리를 놓고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면 군당 책임비서(군수)가 축하를 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 그 닭다리를 먹을 수 있을까 해서랍니다.
우리는 통닭 한 마리 사 먹는 것 그것 별 것 아닙니다. 잔치 때가 아니라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또 북한의 식량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들어서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쌀 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의약품이라고 합니다.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가장 절실한 부분을 손꼽으라면 먹는 문제와 함께 세탁 문제라고 합니다. 주민들은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옷을 빨 수 있는 적절한 세제가 없어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진짜 복 받은 사람인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①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기에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으니 그 자체가 복 덩어리인 것입니다.
②예수 안에 들어오셨기에 큰복을 받은 셈입니다. 즉 내 힘으로, 능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죄의 문제! 죄 삯을 인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 복보다 더 큰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은 지금껏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로 더 풍성한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 본문 1절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1.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여기 '악인'이란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혹은 '소란을 피운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악을 계획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의인과는 달리 이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 민첩하고 행동이 빠르고 간사하여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혼란을 가져오는 익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더 세밀하게 말하면 '악인'이란 '악한 일을 만드는 자, 하나님 믿지 않는 자. 불 경건한 자, 의도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자, 범죄자,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 곧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아주 꾀를 잘 부립니다. 하와가 왜 넘어졌습니까? 바로 이 꾀에 넘어진 것입니다. 아주 그럴듯하게, 공감이 가게, 이해가 가게, 말이 그럴 듯 합니다.
여기 '꾀'란 '충고하다, 상담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음모, 기도, 계획, 속임수, 유혹'을 의미하는 말인데 악한 목적으로 사람을 유인해 내는 말이나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여서 죄에 빠지게 하는 말입니다. 여기 '좇지 아니하며'에서 '좇는다'는 것은 '따라간다, 가담하다, 걸어간다'라는 뜻인데, 윤리적인 면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청종'이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결국 이 말은 악인과 의논을 같이 하거나, 그의 말을 듣거나, 그와 같이 걷지 아니함을 뜻합니다.
잠4:14-15절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날지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꾀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냥 다 넘어집니다. ▶넘어가지 않으려면,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번연히 잘못인줄 알면서도 안다고, 친하다고 그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냥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히12:1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삼촌의 은혜도 망각하고, 동산처럼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그만 택하고 말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욕심에 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디발 부인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2. '죄인에 길에 서지 아니하며'

이 말은 바로 '죄인의 편에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입니다. 죄인이란 하나님께 반역한 자요, 불법한 자요, 과녁을 맞추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맞추어 살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죄인의 길'이란 악인의 악한 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죄인의 길이란 타락한 모습을 규정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느냐는 정말 너무도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의 편에 선 사람들이 있고, 또 다윗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울의 편에 선 사람들은 거의가 죽었으며, 점점 약해져만 갔고, 다윗 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살고 점점 강하여 갔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 편에 선 사람이 있고, 고라 편에 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라 편에 선 사람들은 몽땅 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겠습니까? 하나님 편에 아니면 마귀 편에, 의인의 편에 아니면 죄인의 편에, 주님 편에 아니면, 세상 편에 서겠습니까? 줄을 잘 서야 합니다.
●그럼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이 바로 죄입니다. 특히 불순종, 불법, 불의, 불신, 알고도 행치 않는 것,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 언행 일치되지 않는 것 등입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란 '업신여기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서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말씀을 이탈하므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에서 '앉는다'는 말은 아주 절망적인 죄악의 생활습관이 완고함으로 굳어져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할 경우에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도 마5: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구약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청년으로서 날마다 다가오는 정욕의 시험을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며 '아니요'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할/

 

●이제 복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2절).

 

1.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듣기를, 실천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요, 늘 하루종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묵상'이란 '묵묵할 묵, 생각할 상'자로 사전적인 의미로는 ①연구적인 태도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고, ②말을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라틴어 '메디켈루스'라는 말로서 '약'이란 말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약이 몸 안에 들어와 온 몸에 퍼져 약효를 내듯이 묵상이란 어떤 생각이나 사실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축복된 삶을 살도록 말씀(성경)속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땅만 합니다. 인구는 본토에 600만, 타국에 1000만명, 합하면 16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귀한 상인 노벨상의 24%가 유대인들이 받을 만큼 세계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경제의 실권은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고 있을 만큼 부요합니다.
어떻게 이 조그만한 나라, 작은 인구에서 세계 뛰어난 민족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철저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28: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면 지금도 복 받은 사람으로 살지만 더 큰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세계에는 약 240여 개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240여 개국 중에 가장 잘 사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해가 갈수록 더 부강해지는 나라가 되어 갑니다. 왜 미국이 이렇게 잘 사는 나라, 복 받은 나라가 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제일 주의, 하나님의 중심주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이 이 나라를 건국할 때에 그들은 제일먼저 교회를 지어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그리고 학교를 지어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지금도 그들에게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을 할 때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경외하는 심정으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제일 주의 신앙으로 살았으니 하나님이 보란듯이 축복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부러워만 하지말고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갈 때에 이런 복을 받아 누릴 줄 믿습니다. 우리나와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우리나라가 훨씬 더 잘삽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여서 복위에 복을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 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의 반대는 불통입니다. 즉 막혀서 할 수도,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통은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일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형통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통해야 할 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을 영통이라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안 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 즉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통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①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 서로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②전기도 마이너스 풀라스가 통할 때에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되어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무리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됩니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잘 나가는 것을 '형통하다'라고 합니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 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다.
신통, 혹은 영통해야 합니다. 신통은 곧 영통입니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수도물도 저수지, 전기는 발전소가 있듯이,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습니다. 이 근원과 연결될 때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 즉 생명의 뿌리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 것들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고 했고,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 때에 모습을 보십시요!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됩니다(요14:6). 통하기만 하면 죄 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하면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심했다가 기도하면 엄청난 능력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집니다.

 

3, 신통하면 형통합니다.

본문에서 형통의 모습을 3절에서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심기워 져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요삼1:2절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형통하고 영육간에 강건"하다고 했으며, 주님은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영통하면 무엇이 형통하는가?
▶인통합니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습니다. 행, 불행의 모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 됩니다.
▶물통합니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하고 다스립니다. 영통하면 형통합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영권, 인권, 물권'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무엇이 형통하다고 합니까?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행사가 무엇입니까? 그 행사는 모든 사건, 모든 일인데,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생각해 보면,
①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우리 사람만이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각양 좋은 것들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하면, 생명이 내게로, 복이 내게로, 각양 좋은 것들이 내게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것을 성경은 '주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찬송시인은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사망이 나를 두루고, 환경이 나를 엄몰해도 그것에 치우치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왜? 롬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다 가진들 마음에 이런 기쁨, 평강, 즐거움, 감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왜 이 세상에 불행이 찾아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아니라 마귀와 관계되어 있으면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라는 존재의 목적은? 요10: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결국 그 사이에 마귀가 끼어 들어 우리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②물질적인 형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면 물질적인 형통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나라 치고 못 사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세계 지도를 놓고 잘 사는 나라에 동그라미를 그려보면 99%이 이상이 기독교 국가가 우세한 국가입니다.
반대로 못사는 나라를 동그라미로 그려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거리가 먼, 기독교를 탄압하는 나라들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고 역사가 바뀝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복음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그 당시 복음을 받아들인 로마는 복음을 인하여 강국이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도 기독교 탄압이 심해지자 나중에는 이 복음이 영국으로 전해집니다. 복음이 영국의 해적 떼를 어부로 바꾸어 놓았고, 해적선을 어선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무기를 삽이나 연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영국에는 유래 없는 부가 찾아왔고 급기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의 주목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행하여졌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인디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미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로부터 400년이 안되어 미국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어서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과 형통하면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또 여기서 물질적인 형통이라 함은? 물론 물질이 늘어남의 복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물질의 형통이 아닙니다.
내가 물질에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물질 때문에 연약해 지거나 시험 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통할 때에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물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물질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물질로 바로 쓸 수 있는 이런 지혜자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 있는 사람에게는 물질에도 형통함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육체적인 건강 면에서도 형통합니다.
병든 자가 치료함을 받습니다. 연약한 자가 더 건강함을 입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바로, 제대로 믿으면 육체가 아플 시간이 없습니다. 육체가 아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하는 백성들을 분명하게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만병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봅니까?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근심, 걱정, 불안, 초조 하는 이런 마음이 육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짐을 그 분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맡겨야 행복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러분!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를 바로 믿으십시오. 예수만 바로 믿으면 정말 복 받고 삽니다.
내게 있는 염려 걱정 근심을 믿음으로, 기도로 주님께 아뢰시고, 믿고 맡기시면 건강할 줄 믿습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4. 형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지리적 배경이 되고 있는 팔레스틴 지역은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나무를 들에 심으면 무성히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언제든지 수분을 공급받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성림 교회'는 여러분의 시냇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림 교회라는 시냇가에 심기우진 나무들입니다. 누가 심어 놓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성림교회라는 시냇가에 심어 논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림교회는 여러분들에게 언제나 수분을 공급하는 시냇가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

②그런데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인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냇가에 심기워졌다고 해도 그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수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입니다.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나무는 이내 말라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앉아 예배드리는 성림교회가 여러분들을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입사귀를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신 시냇가인줄 알고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손님으로 왔다 갔다 하지말고,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내 교회로, 내 시냇가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왔다가 갔다가 해도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나무는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도 없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어지간해서 쓰러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며 쓰러지기 쉽습니다. 쓰러진 나무에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뿌리를 내려 자리만 잘 지키고 있으면 때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부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로서 뿌리를 잘 내려서 모든 일에 형통함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③뿌리를 깊이 내리려면 예배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의 삶의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뿌리가 내려지지 않습니다. 그냥 낮 예배 한번 드리고 왔다 갔다 해서는 물이 오르다가 말아 버리는 경우가 됩니다.
여러분! 예배에 힘씁시다. 기도에 힘씁시다. 전도에 힘씁시다. 봉사에 힘씁시다. 그리하여 깊이 내려워진 뿌리들이 되어서 수분을 공급받고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여 시절을 좇아 과실을 주렁주렁 맺게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5. 잠깐 악인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4-6)

마3:12절에 보면, 마지막 때가 되면, 반드시 알곡과 쭉정이는 나누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눌까요? 오늘 본문은 말하기를 바로 '바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바람은 어떤 바람을 말합니까? 환난, 곤고, 시험의 바람이요, 미혹과 유혹의 바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쭉정이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바람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 어떤 시험을 받고 있습니까? 그게 그리 힘이 듭니까?! 어렵습니까?! 죽을 지경입니까?
성경을 보세요!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알곡은 어떤 시험에도 반드시 이깁니다. 어떻게, 바로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날아가고, 발람이 날라 갔으며, 그리고 가룻 유다도 날아갔습니다.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5)
남자가 여탕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역시 남탕에도.. 이렇게 세상 목욕탕에도 남탕과 여탕이 있어 서로 못 들어가거든 하물며 죄인이 어찌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있겠습니까...
죄인은 죄인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도 결코 죄인의 자리에 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6절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 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도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학위를 취득하고, 무슨 자격증에 혈안이 되고, 자기를 홍보(P.R)하며, 물건을 하나 구입해도 유명 브렌드를 선호하고, 학교를 들어가도 그냥 일류학교, 직장도, 글도 권위 있는 글을 읽고 ...
이렇게 세상도 인정을 받는 게 행복하다 하여 모두들 야단들인데 하물며,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누구를 인정하신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까? "대저 의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는 바로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탄에게까지도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행13:22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우리들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을 받아야 복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가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의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심판에 들어가고 맙니다. 우리 모두 의인의 길로 힘차게 달려갑시다! (2004년 4월 25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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