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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 공을 드립시다! (마 25:14-30)

by 【고동엽】 2022. 2. 2.

신앙생활에 공을 드립시다! (마 25:14-30)

 

오래 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청소년 영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청소년들에게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였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언제나 반에서 1등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매번 1등을 하다 보니까 어머니는 그 1등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더 다그칩니다. 어쩌다 2등이라도 할 때는 난리가 납니다. 외부와는 일체 연락을 못하게 하고,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와도 바꾸어 주지 않고, 오히려 전화한다고 야단을 치고, 학교에서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시간을 재고 앉아 있다가는 벼락을 치고, 집에서는 꼼짝을 못하고 앉아서 공부만 하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완전한 기계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만족을 위해서 매일같이 이 아이는 공부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학생이 견디다 못해서 유서를 써 놓고 자살을 합니다. 그때 써 놓은 유서의 내용 중에 한 구절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입니다.
아이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던 그 어머니는 환상에서 깨어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신앙생활은 성적순입니다. 본문이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마25장은 비유 세 가지가 나오는데, 열 처녀 비유, 본문의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비유이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성도는 천국에, 불신자는 지옥 불에 던짐을 받는다는 비유요,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천국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청지기의 충성 개념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요, 신앙에 공을 들였다는 증거입니다.

잠22:29절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근실"이라는 말은 "공을 들인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되 공을 들여서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 우리도 인생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사람들이 너무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대충 대충 살아갑니다. 심한 경우 <막가파>로 갑니다. 막가는 인생이 막가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공을 들여 살기보다는 너무나 요행을 좋아합니다. 수고하며 땀을 흘리고 그 수고로 맺은 열매를 따서 먹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아주 희박합니다.
복권이 성행하고 잘 팔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권력 앞에 돈을 싸들고 쫓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권력 뒤에 검은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신문에 한국전력이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까치들은 전신주 꼭대기에 집을 짓는데 철사나 쇠붙이가 30%나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쇠붙이들이 바람만 불면 움직여서 자꾸만 정전 사고를 일으키는데 전체 정전 사고 가운데 까치집 때문에 발생되는 사고가 15%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전신주에 까치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전신주 위에 뱀과 매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속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치들이 집을 지으면 사람들이 전신주에 올라가서 손수 뜯어내고 또 지으면 뜯어내고 그렇게 54변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포기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 못하는 한갓 날짐승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습니까?
●중국 사람들은 아이가 갓 태어나면 먼저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오향이라 해서 다섯 가지의 맛을 알게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초를 한 방울 혀에 묻혀 줍니다. 초가 얼마나 십니까? 그러면 아이는 얼굴을 찡그릴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소금을 혀로 핥게 합니다. 세 번째로는 씀바귀 대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을 혀에 묻혀서 맛을 보게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어댑니다. 그때 가시로 혀끝을 살짝 찌르면 아이는 더욱 사정없이 울어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탕을 혀끝으로 핥게 해줍니다. 쓴맛, 신맛, 짠맛, 아픈 맛 다 보인 후에 비로소 단맛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맵고 짜고 쓰고 아픈 맛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단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음식을 통해서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신앙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사실 신앙이란 하루아침에 급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기적같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소나기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일확천금 사상이 담뿍 들어 있는 말입니다. 신앙이야말로 천천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단단하게 자라고 내실이 있습니다.
"기적같이"라는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수고 없이 이루어 달라"는 말입니다. 내 수고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축복을 달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신앙은 연륜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어느 날 단번에 만들어지고 익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혜의 이슬비가 그 영혼과 심령 속에 촉촉하게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공들인 인생에서 성숙한 인생이 만들어지듯 공들인 신앙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꽃이 피고 잘 익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은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않고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권사님으로 임직을 받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세입니다.

 

3. 우리는 지금 하는 일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로 알고 일하라'고 했다. 그 말은 '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사업가는 그 사업에 공을 드리고, 직장인은 그 직장 일에, 주부는 가정 살림에 공을 드리고,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면 모두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인생을 공들이고, 신앙 생활을 공들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공들인 사람이 나옵니다. 두/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배경: 어떤 주인이 먼 나라에 장기 출장을 가면서 자기 집 종들에게 장사하라고 자본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생각 없이 준 것이 아니고 종들의 지혜와 능력을 면밀히 살펴서 각기 가진 재능대로 다섯/두/한 달란트씩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왜 달란트를 주었을까요? 그 달란트를 활용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라고 준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섯/두/받았던 종들은 그것으로 열심히 장사를 해서 곱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나마도 작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출장을 마차고 다시 돌아와 맡겼던 돈을 결산하는데 그 결산 보고서를 보면, 다섯/두/갑절의 이윤을 남겼으므로, 그 주인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을 그대로 꺼내다가 주었더니, 주인이 대노하면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합니다.
그리고는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면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대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속에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킴이요, 먼 나라에 갔다고 하는 것은 부활 승천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가시면서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나라와 의를 위해서 직분을 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말씀입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단 중에 하나를 든다면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즉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본문29절에 보면,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고 했습니다.
있는 자는 받아 더욱 풍족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점점 더 받아서 풍족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만고불변의 진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신앙의 행복은 성적순임에 틀림이 없지요!

 

1. 달란트란 무엇인가?

달란트란 영어로는 만능 재주꾼이란 의미로, 요즘 tv에 나오는 배우들을 탤런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달란트는 그 당시의 금화. 즉 화폐의 단위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나오는 달란트를 신령한 의미에서 네 가지를 말해 줍니다.
①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90세, 100세까지 아주 긴 시간을 주셨습니다. 어던 사람은 70세의 시간을,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30세, 40세, 아니 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달란트를 준 사람도 있습니다.
②재능의 달란트: 사람들은 재능이 각각 다 다릅니다.
③은사의 달란트: 이 은사도 사람마다 다 다룹니다.
④기회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출세할 수 있는 기회 등, 이런 기회 저런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돈도 하나님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신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2.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14절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종들의 것을 종들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종들에게 맡겨 주었다는 것이다.
종은 권한도 없습니다. 자기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오직 주인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이 맡겨 주어서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가진 것 같고, 소유한 것 같지만 종들처럼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상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자식을, 물질을, 재능을, 직분을, 환경을, 시간을, 건강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3. 어떻게 맡겨 주셨는가? 달란트 분배의 원칙은?
15절<각각 그 재능대로> 맡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은 해도해도 너무 하신다고요!"
왜냐고 그랬더니 왜 예수 믿지 않는 정주영이는 돈을 많이 맡겨 주시고 예수 잘 믿는 나는 돈을 주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돈을 주어도 예수 안 믿는 그런 사람보다 예수 믿는 나에게 더 주어야 하시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각 그 재능대로" 맡겼습니다.

3.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는가? 주신 목적이 27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이윤을 남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즉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공들여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직분을 주신 것은 그것 가지고 생색이나 내고, 권위나 세우라고 직분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맡겨 준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달란트를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까?
그 물질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에 의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재능을 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노래 잘하는 재능을, 피아노를 잘 치는 재능을, 솜씨 좋은 재능을 말입니다. 자기를 과시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뽐내며 으시대라고 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주신 것입니다.
오늘 임직하는 우리 권사님들은 목사님을 도와 하나님의 교회를 잘 받드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알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권사는 '화목케 하는 직책'입니다. 고후5:18절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마5:24절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대인관계에 대한 교훈입니다. 여러분! 이웃과의 관계를 잘 가지는 것이 곧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기초가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시고, 주위 종과 화목하시고, 성도들과 화목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마음이 넓어야 봉사도 하고 충성도 할 수 있습니다.
고후6:13절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사람의 마음은 묘한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로 좁지만, 마음이 넓어지면 온 우주라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됩니다.
신앙 생활은 마음 공부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옛말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란 지, 정, 의를 움직이는 근원을 마음이라 합니다. 마음을 성경에서는 중심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중심 즉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하늘 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평할 때 '마음이 좁다, 응졸하다, 째째하다'는 말을 잘 씁니다.
오늘 우리 권사님들은, 아니 우리 모두는 마음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넓은 마음이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넓은 마음이 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넓은 마음이란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이고, 치우치지 않은 마음입니다. 치우치거나 편견을 가지면 남을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넓은 마음이란 섬기는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목회도 섬김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고, 지도자들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에 본을 우리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넓은 마음이란 큰 믿음의 마음입니다. 시119:32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
▶넓은 마음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왕상3: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등극한 솔로몬은 임금으로 즉위하자마자 첫 번째 한 일은 매일 기브온 산장에 올라가서 일천번재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또 한가지 더 주신 것이 있는데 바로 '넓은 마음입니다.
왕상4:29-30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4. 그런데 맡은 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에 보면 두 가지의 현상이 나타난다.
㉮남긴 사람(20-23)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 맡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남겼나이다'.
남겼다는 것입니다. 장사는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남겨야 합니다.
㉯본전-손해(24-25)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냥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본전치기 한 것 같은데 본전치기는 없습니다. 본전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입니다. 27절의 주님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것으로 이자를 놓았더라도 수익을 얻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5. 달란트 관리 원칙을 봅시다!
먼저 충성을 다해서 다섯/둘을 남긴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16절<바로 가서>, 17절<그와 같이 하여>
●이것저것 망서릴 필요 없이 달란트를 받자마자 즉시 장사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망서려서는 아니 됩니다. 우물쭈물해서도 아니 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면 여러분이 손해입니다.
왜?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즉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다섯/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바로 가서 즉시 순종하여 갑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18절에 보면,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훗날에 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굉장한 달란트를 주인 마음에 들게 사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곳에 써야 하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9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회계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심판 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6. 결산의 때가(19-30) 분명히 있습니다.
내게 맡겨 준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때가 분명히 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라는 달란트를 맡은 사람에게도, ●한달 이라고 하는 달란트를 맡은 사람에게도, ●일년이라는 달란트를 맡은 사람에게도, ●일생이라는 달란트에 대해서도, ●직분과 가정과, 직장과, 물질과, 건강과 재능과, 모든 맡은 하나님의 소유에 대해서 반드시 결산을 해야 할 때가 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때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럴려면? ①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 기회가 지나면 다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엡5: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②주인의 원하심대로 살아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인이 원하는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 마7:21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잘 한 사람에게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공들인 자의 신앙의 결실을 봅시다.
1. 더 남겼나이다(22).
이 종은 주인 앞에 당당하게 서서 "더 남겼다"고 자신 있게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력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인생을 공들여 산 사람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차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습니까? 우리들도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2. 잘하였도다(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삶에 맛을 느끼게 되고, 세상이 재미가 있습니다. 생활에 자신감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행복은 철저하게 성적순입니다.

 

3. 나의 즐거움에 참예하라!(23)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이것은 상급입니다. 이 말은 "내가 너를 시험해 보니까 합격이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만족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격하면 그 인생은 대박 터집니다.
여러분!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적은 것이라고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됩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 신을 신기는 일꾼이 못 하나를 잘못 박음으로 인하여 전쟁터에 나아간 그 말이 그만 꺼꾸러졌고, 말이 꺼꾸러짐으로 인하여 그 말을 탔던 대장이 말에서 떨어졌고, 말에서 떨어짐으로 인하야 그 대장이 적에게 죽었고, 대장이 죽음으로 인하여 그 전쟁에 폐하였고, 그 전쟁에 폐함으로 그 나라가 말했다는 이야깁니다.
작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23절이 그 말씀 아닙니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할렐루야!/
군수로 충성했더니 도지사가 되게 했습니다. 과장에서 충성햇더니 국장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로 충성했더니, 집사/권사/ 장로로 세워 주셨습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세상에 모든 직분은 세상에서 끝나 버리지만,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성적이 아주 좋지 않은 게으른 종을 보십시다.
1. 두려워하여!(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이 말은 "일하지 않고 놀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실적이 없고, 실력이 없으면 언제나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실력이 없는 학생은 입시 때가 되면 마음이 두려워집니다. 그렇지만 실력이 있는 학생은 오히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신앙 안에서 행복은 철저하게 성적순입니다. 신앙의 실력이 있는 사람은 언제 보아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파에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이단 사설들이 그렇게 난무해도 조금도 요동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언제 보아도 늠름하고 의젓하고 중심이 확고하고 신앙 관이 분명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그것이 모두 신앙의 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악하고 게으른 종아!(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것이 실력이 없는 종에게 내린 성적표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사람이 이렇게 문책을 당하고, 평가를 받고 나면 비참해집니다. 사람이 가장 비참할 때가 바로 이같이 실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입니다.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너무 과소 평가했습니다. 한 달란트가 너무 적다고, 시시하다고 과소 평가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여러분 가운데 적게 주었다고 과소 평가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각각 그 재능대로, 그릇대로, 믿음대로> 주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왜 나에게 큰 능력을 안 주시고, 큰 직분을 안 주시고, 큰 축복을 안주시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대로, 공들인 대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세대가 자랄 때 어떤 부모가 삼 형제를 두고 살았습니다.
추석 명절이 되어 자식들에게 고무신을 사주었는데, 큰아들은 15문 짜리, 둘째 아들은 12문 짜리, 셋째 아들은 8문 짜리를 사다가 주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이 자기 고무신을 보더니 <아빠 나뻐! 형들 것은 큰 것 사주고 나만 적은 것 사주었어!> 억지를 부립니다.
잘못된 억지지요! 큰아들은 15문이고, 둘째 아들은 12문이고, 셋째 아들은 8문짜리가 맡기 때문에 그 어버지가 오직 잘 알아서 사온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얼마나 사람이 비참해지는 순간입니까? 그런데 이 같은 비참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 그의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것은 철저한 박탈입니다. 책망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격 박탈"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까지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철저한 심판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실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아마 신앙 생활에서처럼 내신 성적을 중요시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네가 네 믿음을 보겠노라!>고 하십니다.
신앙의 원리는 더해지는 원리입니다. 십자가는 보테기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능력이 붙고, 봉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축복이 붙고, 전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러나 실력 없는 신앙인은 빼앗아가 버립니다. 마이너스 인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 너무나 교만하고 억만이면 하나님은 나눌셈을 하십니다.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러나 바로 살고 공들여 살면 하나님은 곱셈의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믿습니까?/
공들여 살지 않은 그 사람은 빼앗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4. 내어 좇으라!(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것은 완전히 버림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지옥으로 떨어져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또 현세에는 저주인 실패를 의미합니다. 그곳에서(지옥에서/저주의 자리에서/실패의 자리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 때 내가 신앙 생활을 잘 할 껄, 충성할 껄, 봉사할 껄, 기도할 껄, 감사생활을 잘 할 껄' 껄껄걸 후회하는 곳이 지옥이랍니다.
이것이 신앙의 실력이 없는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결과입니다.
여러분! 오늘 달란트의 비유의 핵심은 다섯/두 달람트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강조점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우리보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주신 비유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즉 명색이 그리스챤이라고 하지만 쭉쟁이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모두 영적인 실력을 기르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대충대충은 절대 안됩니다.
우리 모두 인생에 공들이고, 신앙 생활에 공들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절대 공들여서 잘했다 칭찬 받고 인정받고 주인의 잔치 상에 참예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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