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6)
우리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고되게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천국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 때 주기철 목사가 온 갓 고문을 다 당하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기를 한하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일본경찰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죽으려고 하느냐?' 그때 목사님이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나에게는 그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순간 숙연해지더라고 합니다.
그 나라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신앙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하기를 '그 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은 참 유명한 책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알아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천국에 이르는 길'(天路歷程)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파멸의 도시'를 떠나서 외롭게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가는 동안 숫한 장애물을 만납니다. 가다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문'을 힘겹게 통과하기도 합니다, '허영의 시장' 거리를 지나 '고난의 산'을 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의 어두운 강'을 건너서 마지막 종착지인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이 '천로역정'이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 그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피땀 흘리고 관심 두고 살아간 사람들이 가는 나라요, 그 나라에 뜻을 두고 오직 한길만 걸어간 그리스도인들만 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아무나 갈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눅10: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을 훈련하시고 그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은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를 할 때 주님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탑승객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출32:33절에서 '주의 기록하신 책'이라고 했고, 사4:3절에서는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이라고 했고, 단7:10절을 보면 '심판을 베푸는 책들이 펴 놓였더라'고 했습니다.
신약의 경우 눅10:20절을 보면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했고, 계3:5절을 보면 '생명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20:15절을 보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 지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계20:12절을 보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하여 부르심에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제목소개!▶
현대인에게 가장 큰 욕망은 뭐니뭐니 해도 '출세욕, 성공 욕'입니다. 이 성공이 오늘 현대인들의 우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은 성공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고 목숨을 걸고 온 정성과 뜻을 바칩니다.
사람은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더 뛰어야 합니다. 실패한 인생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성공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해도 믿음만 잘 지키면 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젊은 관원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관원은 재력가였고 지위도 상당했습니다. 그 당시 관원이었으면 오늘의 국회의원 신분입니다. 그는 또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다 그는 젊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의 모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당당하게 예수께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에 '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한 가지 네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 그 말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관원은 고민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 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을 경주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달리기의 특징 중 하나는 쉬지 말고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 점을 신앙 인들에게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신앙은 경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중단하면 안 됩니다. 앞을 향해서 끝까지 달려가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군사와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광이 있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풍족함으로 인해 방탕함과 타락에 빠졌으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전도하다가 바로 이 빌립보 지역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자주장수 루디아의 집에 거하며 점치는 소녀로부터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또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을 전도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적은 수로 시작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 빌립보 교회가 잘 성장하고 부흥하다가 그만 교회 안에 교인들간에 분열이 생기고 이단 사설이 들어오자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이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의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나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달려가는 경주 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쉬지 말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뛰어야 하는가?
1. 예수만 바라보고 좇아가라!(12)
사도바울은 신앙이 완벽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출신성분을 보면 그의 신앙환경이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었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바리새파 가문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경건 훈련을 받았습니다. 엄격한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께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았습니다. 3층 천에 올라가 하늘의 신비한 경험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손수건만 만져도 사람들의 병이 낫는 신적인 권위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독사에 물려도 말짱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곁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아주 완벽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는 '나는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지금도 여전히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내 신앙은 미완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쉬지 않고 힘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만 가운데서 가장 큰 교만은 영적 교만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달려나가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천국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좇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앞으로 전진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신앙도 열심과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눅9:23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난과 역경, 어려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1-2절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 바라보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고, 예수님의 가치관이 우리의 가치관이 되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고, 예수님의 행하신 삶이 우리의 삶이 되도록 예수님을 우리의 본을 삼고 따라가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 '워너메이커'는 '최후의 승리는 출발점의 비약이 아니다. 결승점에 이르기까지의 결실과 노력이다'고 말했습니다. 출발은 어떠하다 할지라도, 결승점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결승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웅변가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웅변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보조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환경에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발전, 성장시키는 최선의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래 전에 현대의 정주영회장에게 성공비결을 물어보았더니 '빈대의 교훈'을 얘기했다고 합니다. 인천 부둣가에서 노동자로 일할 때에 합숙소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빈대가 어찌나 많은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빈대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밥상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빈대들이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와 피를 빨았습니다. 그때 정 회장은 무엇을 하든지 저 빈대같이 끈질기게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아름답게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믿/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여기 '그것은' 소명입니다. 예수께로부터 부름 받은 그 부름의 목적입니다. 기업인은 기업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일 그것이 국가에 공헌하는 일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고 소명을 이루는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 인은 '주님이 나를 불러주신 소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께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예수께로부터 붙잡힘 때문에 이방 땅으로, 임금들 앞으로, 박해자들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갔습니다. 가서 자신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를 전했고 가르쳤고 설명했고 간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그 부름의 일을 위해서 오늘도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소명의 인생입니다. /아멘!/할/
2.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13)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우선 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전향적(前向的)인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고하는 유형이 보통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 지향적인 사고'입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난날을 잊지 못합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경력과 추억에 얽매여 지금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과거의 원통했던 일과 패배를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 묶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지향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미래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그날그날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갑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배고픔을 참지 않습니다. 마치 에서 같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에 얽매여 살면서 소중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입니다.
또 '미래 지향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초점을 미래에 두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주어질 결실을 보고 오늘 수고롭지만 과일나무를 심습니다. 미래의 꿈과 소망을 위해서 오늘 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미래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기에 아주 적합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 말은 지난날의 모든 화려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는 말이고,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향적인 안목을 가지라고 권고합니다.
'잊어버린다'는 말의 원어는 '에팔란다 노메노스'인데, 이 말은 '과거의 기억이 앞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과거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보다 귀한 것을 위하여서는 사소한 것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내일에 더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자구만 지난날의 추억에 얽매여 머뭇거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다 시비하다 언제 천국 갑니까?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만난 후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당시 대석학자 가브리엘 문화에서 학문의 최고 과정을 마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잊어 버렸습니다. ▶과거의 귀족으로 떵떵거리며 살던 일, 율법주의자요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 자존심이 만만했던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의 슬프던 기억도, 쓰라렸던 아픔도 모두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어제의 공로, 어제의 봉사, 어제의 헌신, 희생 등을 잊지 못할 때 불만타령을 하며 오히려 교회의 방해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어제 일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옛날 당나라에 송청이라고 하는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을 조제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에게 와서 약을 사먹고 병을 고친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송청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연말 하면 외상장부가 수십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약값을 독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외상 장부를 불태워 버렸고 두 번 다시 약값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대범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송청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40년 동안 약장사를 하면서 수백 권의 외상장부를 태웠습니다. 그러나 크게 손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약값을 떼어먹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약값보다 훨씬 많은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그런 마음씨를 가졌기에 더 효험 있는 약을 조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막연히 살기 보다 분명히 사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어제 일을 잊어버립니다.
창19: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B.C. 2000년경 소돔과 고모라성이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성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절대로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 있는 생활에 미련이 남아서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뒤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사43:18-19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역사에 관심을 갖고, 믿음과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눅9:62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천국 가는 사람,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은 발명가로서 아주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과거는 모두 잊어버렸다. 오로지 미래만을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발명가들도 자기의 수많은 실패를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서 씨름하고 또 씨름합니다. 미래만 바라보는 삶을 삽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불황경제학'에서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로,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 즉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앞을 보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험정신, 즉 벤처정신을 가지라. 겁먹지 말고 담대히 나가라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의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노력과 정성과 땀흘려서 아끼지 말고 최대의 노력을 하라. 그러면 당신도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는다'는 말은 '카테이레 세나이'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사냥개가 짐승을 물고 죽을 때까지 놓지 않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버틴다는 의미입니다.
나무 가지를 놓으면 죽습니다. 죽자살자 붙잡고 매달려야 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고 죽어도 매달려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이신 김용기 장로님께서도 어느 청년에게 돈버는 방법도 돈을 그처럼 붙잡아야 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어렵고 험한 세상, 앞이 안보이고 캄캄할수록 믿는 자는 예수 생명 줄 놓으면 파멸입니다. 예수 생명 줄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라!(14)
이 말은 '부르심의 상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상은 오늘 지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힘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상은 때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올림픽을 위해서 구슬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선수들은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그것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 때문입니다. 경기에서 승리한 후 상이 주어지는 그 순간 지금까지 수고했던 모든 고생과 수고가 한꺼번에 보상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강조합니다. "나는 아직도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이 말은 '지금도 나는 만족하지 않고 줄기차게 뛰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뛰어가십시오. 그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적 생활을 도우시고 축복 해 주실 것입니다.
예전에 청와대 경호실장이였던 차지철씨는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는 모든 것을 다 잡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만 빼 놓고 국무총리도 장관도 모든 사람을 자기 부하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의 그 허황한 세도 때문에 10,26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박대통령과 함께 김재규의 총탄에 갔습니다. 잡은 줄 생각하고 교만을 떠는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바울사도는 고전10:12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라"고 하셨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잡은 줄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네 인생 길을 가면서 우리 손에 잡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 빌려쓰고 있으며 돌려 드려야 할 것뿐입니다. 하다 못 해 우리의 육신마저도 본래의 위치에 돌려 드려야 합니다.
'좇아간다'는 헬라어도 '디오크'입니다. 이 말은 '결승점을 앞에 둔 선수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가슴에 닿을 테이프만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목표물만 향하여 좇아가려면 그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나는 공을 찰 때 공만 보았고 공을 차지 않을 때는 공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항상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한대로 자연히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머슨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행동이다'고 했습니다.
▶세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선수는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든지 달리다가 호수에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100리나 되는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좀 쉬고 싶은데 계속 운동을 시키는 코치를 죽이고 싶은 때도 있었답니다.
그때 코치가 경상도 분인데 빙그레 웃으면서 '영조야 니 힘드나? 너는 안 보이는지 모르지만 나는 보인데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네가 일등으로 들어오는 모습과 니가 월계관을 머리에 쓰는 모습이 보인데이' 그럴 때마다 황영조는 입술을 깨물었답니다. 아픔과 힘든 고통과 쓰라림을 잊었고 그래서 일등 월계관을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푯대' 즉 목표(goal)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상줄 때 상주시고, 벌줄 때 벌주십니다.
부르심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 경기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월계관을 씌워서 승리를 나타내고 노동자의 일년 품값을 상금으로 수여했다고 합니다. 또 어느 식당에서든 무료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극장에서도 VIP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 번만 일등 하면 이처럼 여러 가지 특혜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가고, 상을 받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은 대로, 어떠한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물질의 축복도 주시고, 건강의 축복도 주시고, 아들딸, 자손이 잘 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며, 저 천국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줄 믿습니다.
고전9: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딤후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세상 끝날 때, 죽을 때, 그 때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나는 믿는다"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상 받을 것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상을 주십니다. 푯대를 정해놓고 달려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므로 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12:1,4).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해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으며(신5:32-33), 동방 박사도 별을 푯대 삼아 좇아가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마2:1-2,9). 바울은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상을 얻기 위해서 달렸다고 말했습니다(고전9:23-24).
여러분, 여러분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무슨 상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영국의 역사학자 '칼라일'은 목표를 한 곳에만 두어야지 여러 가지 목표에다 정력을 분산시키면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놓고 계속해서 달려가고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뉴욕의 한 의사가 천 여명의 환자들을 대하면서 병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한 결과, 그들에게는 주된 목표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건들건들 사는 사람들은 병에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관리도 잘 해서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통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암에서 고침 받기 위해서는 암보다 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암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치료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질 때, 암을 정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간절히 구하면 암이라도 고침 받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조건부 상속제'라는 제도가 생겨서 백만장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무조건 유산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목표가 있고 바람직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유산을 주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유산을 안 준다는 것입니다.
신28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누구에게나 다 주시는 축복이 아니라 '조건부 축복'입니다.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세계에서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시고, 성읍에서, 들에서, 들어가며 나가며 축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것마다 형통하며, 자손 대에 번창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야 합니다.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선을 다해야 상을 받습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에서는 올림픽과 같은 이스무스 경기가 매 3년마다 개최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종목은 '경마, 마차 경주, 권투, 레슬링, 음악, 시' 경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대 올림픽의 광경을 회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고대 올림픽 경기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비교하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올림픽 경기와 마라톤을 통해서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딤전4:8)고도 했고,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2:5)이라고도 했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히12:1)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육상 경기와 같습니다. 일단 신호가 울리면 결승점까지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하지만 상 얻는 사람은 한 사람 뿐입니다. 물론 이 말은 구원받을 자가 하나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올림픽 경기자가 상을 얻기 위해 전력 질주하듯이 신앙생활도 그와 같이 하라는 권면입니다. ▶몇 가지로 생각해 보자!
①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라! 고전9: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무슨 말인가? '모든 사람은 다 달음질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 얻는 사람, 월계관을 쓰는 사람은 한사람이다. 너희도 상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바울의 교훈입니다.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고 운동선수도 누가 최선을 다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됩니다. 전반도, 후반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게임 종료 1분전까지도, 아니 게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맡았던, 최선을 다 하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삶도, 봉사하는 삶도, 기도하는 삶도, 전도하는 삶도 최선을 다 할 때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아멘!/
②자기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고전9: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주는 월계관은 나무 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썩게 됩니다. 월드컵을 금으로 만든 것이니까 시들거나 썩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쳐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사는 우리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썩을 면류관을 위해 사는 사람들보다는 생각이나 태도나 사는 것이 달라야 됩니다. /믿/
특히 우리는 25절의 '절제하다'는 말씀과 고전9:27절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운동도, 음악도, 미술도, 학문도, 신앙도,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승자가 되고, 성공 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복종시키고, 통제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9:27절에서 '내가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나를 쳐 복종시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③방향 설정을 바로 해야 합니다. 고전9:26절 "내가 다름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모두가 공을 넣어야 하는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배구나 테니스는 상대편 코트 안에 공을 넣어야 하고, 축구는 골대 안에 공을 차 넣어야 합니다. 탁구 역시 상대편 테이블에 공을 쳐 넣어야 합니다.
만일 축구 선수가 자기네 골대에 공을 차 넣는다든지, 농구 선수가 자기네 바구니에 공을 던져 넣으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목표와 향방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기 '향방 없는 것'은 '목표가 없는', '불분명한'이란 뜻인데 목표가 없이 불안정하게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경주는 목표가 없는 경주는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모든 고난을 감수하며 달음질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상급을 얻기 위하여 성도들은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상 주심을 확신하는 성도는 달음질하다가 멈출 수 없습니다. 세상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목표가 있기에 자기 인생을 걸고, 모든 정열을 다 쏟아 놓습니다.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향해,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히12:2절이 대답해 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면 개인도 죽고, 가정도 죽고, 역사도 죽고, 나라도 죽고, 민족도 죽고 맙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
▶그렇다면 이 상급은 어떻게 받아집니까? 마16: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전3:8절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래서 직분자들은 그 직분을 바로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9:17절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대접하고 베푸는 자의 상급이 큽니다. 마10:41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하늘나라에 상급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⑴자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⑵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⑶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⑷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⑸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4. 행하는 자, 실천하는 자가 되라!(15-16)
믿음을 가진 대로, 생각한대로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62:12절 말씀에 다윗 왕도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복 받을 행동을 한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한 사람은 충성한 대로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한 사람은 순종한 대로 인정을 받습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역사 하여 주십니다. 마7: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의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하나님께서 천국도, 구원도, 축복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약2:20절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다시 말해서 '바보 같은 사람아,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헛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또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종자 씨가 있어도 땅에 파묻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습니다. 선반에 놓고 바라만 본다면 아무 것도 추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깨닫고, 알고, 믿는 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순종해야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물질을 바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인생은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①예수만 좇아가라!(12) ②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13) ③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라!(14) ④행하는 자, 실천하는 자가 되라!(15-16)
딤후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할/ (2008년 9월 21일 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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