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성도들을 배려하는 연보생활
이광호 목사
[교회는 연보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결코 신앙의 기준이 되거나 자랑거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숙한 성도는 공개적으로 고액의 연보를 할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형제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연보액수를 기준으로 성도의 신앙을 가늠하려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돈이 많은 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다. 부자가 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축복이라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부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 가운데 부자가 있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고액의 연보를 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성실하게 일함으로 인해 부자가 된 성도가 있다면 돈이 아니라 그 성실함이 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부정한 세상에 살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다(마19:24). 따라서 부유한 교인들이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축복을 누리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양 잘못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의 형편은 실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병약한 이들도 있으며 교육정도가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식생활을 염려해야하는 가난한 성도들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겉으로 드러난 형편들이 저들의 신앙을 가늠하지 못한다. 즉 건강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충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의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라 저들이 삶 속에 내재된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도들은 자신이 처한 형편 가운데서 이웃을 존중하게 되며 항상 자기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형제들을 염두에 두게 된다. 즉 자신의 여유로운 형편으로 인해 자랑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외적인 형편으로 인해 신앙이 어린 형제들이 세상적인 것들을 부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연보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많은 액수의 연보를 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인이 고액의 연보를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동안 가난한 이웃들 가운데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먹을 양식이 충분하지 못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들은 교회에 연보를 하면서도 항상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따라서 교회는 연보하는 성도들의 이름은 물론 개인적인 연보 액수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유한 성도들은 물론 가난한 성도들도 그로인한 불편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연보에 대해서는 부자들이 먼저 조심해야 한다. 저들로부터 나오는 돈이 마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듯한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세워진 직분들과 모든 성도들에 의해 지상의 교회가 온전히 세워져 가게 될 것이며 가난한 성도들 역시 부유한 성도들과 전혀 차별 없이 교회를 위한 일반적인 모든 사역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교회를 위해 더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난한 성도들의 자유로운 신앙 활동을 저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일 부(富)에 관한 세속적인 논리가 도입된다면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되어 타락한 종교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숙한 성도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기억하는 가운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다양한 형편으로 인해 고통에 처한 이웃을 옆에 두고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다며 즐겁게 고액의 연보를 한다면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려운 형편에 처한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이광호 목사
[교회는 연보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결코 신앙의 기준이 되거나 자랑거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숙한 성도는 공개적으로 고액의 연보를 할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형제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연보액수를 기준으로 성도의 신앙을 가늠하려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돈이 많은 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다. 부자가 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축복이라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부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 가운데 부자가 있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고액의 연보를 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성실하게 일함으로 인해 부자가 된 성도가 있다면 돈이 아니라 그 성실함이 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부정한 세상에 살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다(마19:24). 따라서 부유한 교인들이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축복을 누리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양 잘못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의 형편은 실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병약한 이들도 있으며 교육정도가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식생활을 염려해야하는 가난한 성도들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겉으로 드러난 형편들이 저들의 신앙을 가늠하지 못한다. 즉 건강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충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의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라 저들이 삶 속에 내재된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도들은 자신이 처한 형편 가운데서 이웃을 존중하게 되며 항상 자기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형제들을 염두에 두게 된다. 즉 자신의 여유로운 형편으로 인해 자랑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외적인 형편으로 인해 신앙이 어린 형제들이 세상적인 것들을 부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연보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많은 액수의 연보를 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인이 고액의 연보를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동안 가난한 이웃들 가운데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먹을 양식이 충분하지 못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들은 교회에 연보를 하면서도 항상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따라서 교회는 연보하는 성도들의 이름은 물론 개인적인 연보 액수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유한 성도들은 물론 가난한 성도들도 그로인한 불편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연보에 대해서는 부자들이 먼저 조심해야 한다. 저들로부터 나오는 돈이 마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듯한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세워진 직분들과 모든 성도들에 의해 지상의 교회가 온전히 세워져 가게 될 것이며 가난한 성도들 역시 부유한 성도들과 전혀 차별 없이 교회를 위한 일반적인 모든 사역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교회를 위해 더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난한 성도들의 자유로운 신앙 활동을 저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일 부(富)에 관한 세속적인 논리가 도입된다면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되어 타락한 종교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숙한 성도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기억하는 가운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다양한 형편으로 인해 고통에 처한 이웃을 옆에 두고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다며 즐겁게 고액의 연보를 한다면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려운 형편에 처한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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