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주일성수
이광호 목사
[참된 주일성수는 외형적 경건과는 무관하다: 주일날 교회당에 출석하여 하루 종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사실과 주일성수를 한 것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주일성수 여부는 말씀에 의거해 올바르게 예배에 참여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아무리 정장차림을 하고 종일토록 교회의 어떤 일에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예배참여가 올바르지 않다면 주일성수를 한 것이 아니다]
매 주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안식 후 첫 날인 주일은 성도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은 성도들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은혜의 날이다. 우리에게 그 날이 허락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며, 성도들은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그 주일을 특별히 구별하여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일을 성실하게 지킨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리를 추구하거나 인생의 즐거움을 위한 휴가를 누릴 때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한다. 이는 성도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마땅히 실천해야할 의무에 해당된다.
교회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그 날이 다른 날과 다른 특별한 성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의 율법적 개념에서 주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말해준다. 주일이 다른 날과 구별되는 것은 교회가 그 날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언약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에는 주일성수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는 그 날을 지키는 것이 구약의 율법에 얽매인 것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한 주간 가운데 특정한 하루만 아니라 한 주일 전체가 주님의 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나아가 오늘날의 주일은 성경의 교훈과 무관하며 로마제국의 태양신 사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신약시대 교회는 구약의 율법에 근거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 즉 십계명에 기록된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 후 첫날인 하루만 아니라 날마다 주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저들의 말과는 달리 한 주일 전체를 자기를 위한 날로 삼을 수밖에 없다. 또한 로마제국의 태양신을 섬기던 날이 기독교의 주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주일은 줄곧 참된 교회들 가운데 신실하게 지켜져 왔다.
따라서 우리는 주일의 언약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더불어 그 날을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율법적 의무준수가 아니라 언약적 은혜개념에서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올바른 주일성수는 외형적 경건의 모양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일날 예배당에 가서 종일토록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을 하고 열심히 종교적 봉사를 한다고 해서 주일을 지킨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주일성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계시된 말씀에 따른 올바른 예배 참여이다. 즉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공 예배 온전히 참여하지 않는다면 주일성수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주일날 바깥에서 음식을 사먹는 것이라든지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문제는 주일성수의 본질적인 내용과 무관하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바는 올바른 주일성수를 위해서는 공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의 역할이 절대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성심성의를 다해 종교적인 봉사를 한다고 해도 올바른 말씀선포와 참된 성찬의 의미를 멀리한다면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목사직분을 맡은 당사자라 할지라도 말씀선포와 성례를 통해 올바른 예배를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은 것이 된다.
나아가 그런 자들은 다른 성도들의 참된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의 잘못된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듯 했지만 실상은 그 날을 더럽혔던 사실을 기억한다. 오늘날 우리도 주일에 대한 형식을 강조하면서 실상은 주일을 더럽히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성숙한 성도라면 올바른 주일성수가 열성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참된 공 예배의 참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혼탁한 분위기에 처해 신음하는 한국교회가 참된 공 예배를 회복함으로써 온전한 주일성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지상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소중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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