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성령이 임하시다! (행 2:1-13)
2개월 특별기도 기간 중에 부흥을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개월 동안 기도하는 중에 강력하게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다! 고백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부흥을 개인적으로든지 또 교회 전체든지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심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눈을 열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고 주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자신의 더럽고 때묻은 심령이 새로워지며 침체된 마음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도 그대로 살 힘이 없어서 마음에 갈등만 심했는데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심령의 갈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가 많았는데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게 되지 않고 미움이 가득하고 원수진 것이 많았는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눈이 열려지고 사랑이 되고 용서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묶여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의 영이 임하면서 내가 영적으로 온전하게 되어져서 악한 영의 저주와 같은 삶에서 놓임을 받습니다
비전과 환상을 바라보게 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도의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면서 이 부흥이 임하였습니다.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 부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모든 족속에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집안에 가득했고
둘째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보였고
셋째 모든 제자들이 세계 각국 나라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그 현상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이 임하지 않으면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로잡으시지 않았다면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닌 일이 그들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다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만, 우리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나에게도 그렇고 저 사람에게도 그렇고.“ 하나님은 이와 같은 고백과 간증이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졌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초대 교회가 급속히 부흥하였습니다.
아직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 강림의 역사가 계속되느냐 아니면 이제는 중단되었느냐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결론은 성령 충만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감리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요한웨슬레 목사님이 강력한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리교인들은 성령님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일본 교회와 중국 교회와 비교하면 한국 교회는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강력한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을 통하여 부흥이 일어났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1970년 2월 3일 미국 애즈베리 대학에서 약 천 여명의 학생들이 예배하다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예배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도 계속 학생들은 기도를 그치지 않고 185시간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2천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전 미국 각처에 다니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각 매스컴에서 이를 계속 보도했고 130개 대학과 신학교가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의 역사는 사도행전과 사도행전 2장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어떤 교회나 성도들 가운데에도 동일하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13절에 보면 그때 당시에도 성령이 임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롱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새 술에 취했다, 저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구나, 다 술 취한 사람들이구나, 광신자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어도 조용히 교양있게 믿고 싶지, 그렇게 광신적으로 요란하게 믿는 것은 내 취향도 아니고 내 스타일도 아니다.” 여러분, 이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성령이 충만함은 광신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광신적으로 빠지는 길이 아닙니다. 제대로 예수 믿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인들에게 제일 먼저 무엇을 물어 보았습니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2) 묻고 싶은 것이 많았을텐데 다른 것 묻지 않고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성령 체험 없이는 올바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웨슬리 목사님도 평생 동안 신앙 생활을 하고 남보다 열심히 경건 생활을 했지만,그래서 목사가 되고 선교사까지 되었지만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 어느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 했다가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구원의 확신 조차 없었습니다. 성령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1739년 1월 1일 새벽 3시 페터 레인(Fetter Lane)에서 성령의 권능을 체험하고 전도와 설교에 큰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리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은혜받기 전의 요한웨슬리같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긴 했지만 마지 못해 나온 사람, 구원의 확신이나 감격이 없는 사람, 예수 믿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신앙 생활이 따분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리고 내 성질 하나 극복이 안되고 내가 정말 예수 믿고 변화 받았다는 간증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도도 안되고.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07년 한국 교회에 성령이 임하기 전, 한국 교회는 영적으로 황폐하였습니다. 하디영 선교사님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한국 교회를 순회하고 돌아온 날은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도 신자들은 주일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았고 성적으로 방종했습니다. 또한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디선교사는 이들에게 성찬을 금했고 심한 경우에는 교회에서 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집회소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당굿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교인들끼리 다툼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달라졌습니다. 서로 사이가 나빴던 선교사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인들끼리 서로를 미워한 것을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교인들 중에 며느리를 미워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돈을 빌어가서 갚아주지 않고 있던 사람이 당장 돈을 마련하여 빌린 돈을 돌려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로만 되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왜 나는 삶이 변화되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는 말들이 많지만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알긴 알아도 그렇게 살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그런 스타일이 좋고 싫고.”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즉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기적이라는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온갖 악한 영의 역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흥회에 가서 느끼는 것이지만 호텔에서 하는 기도와 교회에 와서 하는 기도가 다릅니다. 똑같은 시간에 기도를 해도 기도의 깊이가 다릅니다. 영적으로 묶여 있는지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성령이 임하면서 영안이 열리게 될 때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받았던 상처에 묶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악한 영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악한 영에서 놓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한 영을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슥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 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내 마음을 찢어라>라는 책에서 조용기 목사님과 만나 대화한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조 목사님! 저는 우리 평신도 사역자들이 가끔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그들의 가슴 속에 은혜의 불길, 성령의 불길을 다시 지피기 위해서 마치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후후' 불어대는 농부와 같습니다. 그들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몸부림을 치는데 조목사님께서는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으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때 조목사님은 "아, 옥목사님! 그렇습니까? 나는 정반대입니다. 우리 순복음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어떻게나 뜨거운지. 내가 할 일은 날마다 물통에 물을 잔뜩 담아 가지고 가서 끼얹는 것입니다. 너무 뜨거워지지 말라고요."
옥목사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속으로 깊이 깨닫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헤어지기 전 두 목사님은 사무실 바닥에 무릎을 끓고 앉아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옥목사님은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엄청나고 놀라운 복을 다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함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세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먼저 성령받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 ‘성령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성령 충만함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행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선물 받는 것이 어렵습니까? 선물 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으면 됩니다. 선물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는 것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 꼭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
성령 받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귀가 우리가 성령 받도록 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려고 그렇게 심어준 것입니다.
둘째, 나같은 사람은 성령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성령 받을 사람이 못돼.’ ‘내게는 성령이 임하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때는 다릅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욜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셋째는 ‘성령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성령을 사모한지 벌써 몇 년이데 나는 아직 성령 체험을 아직 못했다.’ 이런 성도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성령을 주지 않으시고 왜 열흘 뒤에 성령을 주셨을까?
오순절 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50일 후에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날, 율법 받은 것을 기념하는 지키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그 오순절에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언된 일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구약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신약 시대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돌판에 문자로 새겨 주셨지만, 신약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시는 뜻으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오순절 날까지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구하면 즉시 주십니다. 지금 성령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임하여 계십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되자 교인들이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하는 즉시 성령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물 세례도 안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 충만하기를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는데도 성령 충만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준비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곧 우리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충만이란 비워진 곳에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성령 충만함을 받을 자가 되려면 우리 마음이 비어 있어야 됩니다.
지금 우리 마음은 꽉 차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염려, 근심, 계획, 소원, 감정으로 내 마음이 꽉 차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내게 충만하게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다 차있는데. 비워진 곳에 임한 하나님의 영에 대한 기사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빈 그릇에 은혜를 채워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빈 그물만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고 순종할 때 배를 물고기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침 그 집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비어 있었는데 그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 때, 선지자 학교 학생 한 사람이 죽어 그 부인인 과부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엘리야가 빈 그릇을 모으라고 하여 모아진 빈 그릇마다 기름이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어져 있을 때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정말 성령 충만함을 받기 원한다면 여러분 심령이 비어져 있어야 합니다.
가끔 판사나 검사 집을 터는 도둑들이 있습니다. 정말 간 큰 도둑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물론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 심정은 이해를 합니다. 다 가지고 살아도 쉽지 않은데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비지 않습니까?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빈 창고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하늘 창고를 열고 하늘의 복을 쏟아 부어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곳이 없다면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결혼식을 주례할 때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신부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입장하다가 사위의 손에 딸의 맡기는 순간입니다. 어떻게 딸의 손을 놓을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기른 딸인데.’ 그러나 아버지가 딸의 손을 놓아야 딸이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딸의 손을 놓지 못하면 어떻게 딸이 행복한 결혼식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것은 우리 마음이 우리 자아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것을 놓아야 비로서 성령께서 내 인생을 사로 잡으십니다. 정말 성령충만함을 갈망한다면 내 안에 얼마나 빈 그릇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토미 테니가 [간절한 매달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과거 하나님은 경비행기가 착륙한 것처럼 이 땅에 성령의 능력으로 임하였지만 지금은 보잉 747 점보 여객기처럼 우리 머리 위를 순회 중이시다. 하나님은 교회 안 뿐 아니라 교회 밖에 까지 강력한 충격을 줄 정도로 놀라운 임재의 장소를 찾고 계시다! 어떤 곳에 그런 일이 임할 것인가? 우리가 준비한 빈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름을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는지는 문제 삼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 만큼의 빈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주목하신다.
우리가 얼마 만큼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주목하고 계신 것은 빈 그릇이 얼마 만큼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의 차원이 달라지니까. 여러분, 기왕 빈 그릇을 준비하실 것이면 큰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 만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큰 빈 그릇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이 가장 큰 빈 그릇입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신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 120문도, 그들은 완전히 비워져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성령이 임하셔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망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나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여러분, 이 목마름은 어떻게 옵니까? 내가 정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제가 기도에 대해 눈이 뜨인 것은 1984년 6월 다리 부상으로 군목 임관을 하지 못하고. 수원 아버님 집으로 귀향 조치된 때였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일할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나이도 어리고 다리도 온전치 못하며 군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저를 받아 주는 교회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를 불러 주는 교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너무나 처량하게 울었습니다. 그 때 오기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목산데, 이제부터 절대 사람에게 내가 일할 교회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거야. 나는 하나님께만 기도할 거야. 그리고 다음 날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기도할 내용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제가 일할 교회를 주십시오. 그 기도를 열 번이나 반복해도. 10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며칠 몇 달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진정으로 기도다운 기도 한 번 해 보지 못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내 생각, 염려, 계획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여지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기도도 없는 것입니다. 통성 기도도 해 보면 사회자가 그만하자고 신호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사그러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은혜 역사가 약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 할 말이 적은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제 생각, 제 계획, 두려움, 염려를 품고 있음을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 비로서 성경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이 비워지니 말씀이 들어오고 기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3개월 기도 훈련을 받았고 제 아내와 함께 [합심기도]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웠던 기간이었습니다. 그 해 11월, 참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인도하셔서 광림교회 부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7살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하나님의 인도를 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이 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때 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준비합시다!
성도 여러분, 2개월 동안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2개월 동안 여러분이 철저히 하나님 앞에 빈 그릇이 준비되는 기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여러분을 충만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미 이끄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자신과 삶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민족 가운데 새 부흥이 필요합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한국 땅에 다시 강하게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심령 안에 주의 영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제가 주님의 십자가만 붙잡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음을 믿습니다. 고백합니다. 주님 인도하소서. 제 삶을 주관하소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들 위에 임하여 주시고 복 주옵소서. 성령님 기름 부어주시고 충만하게 해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말씀을 읽었으니 그 말씀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게 해주옵소서. 성령의 놀라운 기름 부음이 지금 이 땅에 필요합니다. 우리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필요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역사해 주옵소서. 충만하게 해주옵소서. 주님 기름 부어주옵소서. 능력으로 같이 해 주옵소서. 나의 주여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주의 거룩한 손을 얹어주시고 복주시고 주님 기름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들어주시기 원합니다. 역사해 주시기 원합니다. 오늘도 눈을 뜨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목마릅니다. 말씀이 우리를 더 갈망하게 합니다. 주님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 우리를 충만하게 인도해 주소서. 놀랍게 기름 부어주시고 복주옵소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임하심을 믿습니다. 충만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영광 존귀 감사를 주님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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