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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복음 5:10-18(주일 2부예배설교)

by 【고동엽】 2022. 1. 30.

4개의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만이 독특하게 독생자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118, 316절에 쓰이고 있는데 모노게노스 히오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겁니다. 모노가 독특하다는 뜻이고 게노스는 창세기할 때 제네시스 또는 자동차 제네시스와 똑같은 말입니다. 독특하게 generated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독특하게 창조된 아들, 독생자가 되는 거죠. 독생이 한 단어고, 자가 다른 단어입니다. 독생, 자가 되는 거죠. 이런 단어가 요한복음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말을 쓸 때는 순종의 화신이란 뜻입니다. 요한복음은 순종의 화신으로서의 아들의 의미를 뛰어넘어 아예 존재론적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자라는 뜻으로 쓰이니까 우리는 굉장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육신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2 성자하나님이란 말인가? 우리도 이해할 수 없지만 옛날 유대인 최초로 이 말을 들었던 사람은 충격을 받고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충격을 받으면 지성이 많이 약해집니다. 하나님과 자기를 동등 됨으로 삼으시니라,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부르니까 그 당시 전통종교는 감당이 안 됐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 부르거나 삼촌이라 부르면 놀라서 나자빠집니다. 하나님과의 독특한 친인척 관계설정은 항상 논란이 됩니다. 이단교주들일수록 하나님과 혈통적 혈족의 관련성이 매우 깊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 문서나 고대 어떤 종교문서에도 자기가 하나님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너무나 독특한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정신이 탈구가 되거나 광적인 상태에 빠졌으면 이런 말을 해도 되는데, 이런 말을 한 그분이 산상수훈을 한 분이고, 이런 말을 한 그분이 너무 마음씨가 좋기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지만 함부로 잘못됐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이런 이상한 논란을 일으키는 이 분이 산상수훈 같은 너무나 멋진 말, 모든 종교인들이 숭고해마지 않는 인류 최고의 가르침 산상수훈을 말한 분이고, 그분이 갑자기 새벽 4시에 바다도 걸으시니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헷갈립니다.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산상수훈까지는 믿겠는데 바다에 머리 풀고 나타나고, 문 안 열고 나타나시는 건 이런 건 힘듭니다. 그다음 갑자기 생선도 드시고,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시고,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물든 우리로서는 이런 예수님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긴 너무 힘듭니다. 이걸 송두리째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성이 매우 빈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 특징은 복잡한 걸 생각하기 싫어하고 믿어버리려고 하는 습성이 매우 많습니다. 그 믿어버리려는 성향이 많으면 일단 목사님이 잘못돼도 그걸 분별하려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세습이 일어나도 믿어버리려고 하고, 목사님을 돈을 횡령하고 잘못 써도 믿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믿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우중이 되고 싶고, 매우 잘못된 종교, 야만의 종교를 발생시키는 토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거침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다니니까 고대 현대의 어떤 종교에서도 이렇게 독특하게 하나님과 자기를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 사례가 없는, 유례가 없는 독특한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우 헷갈리기도 하고 매우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분의 정신이 잘못돼서 그랬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 이 심각한 주장 외에는 나머지는 다 정상입니다. 물론 가끔 우리가 놀라는 일은 있습니다. 문을 안 열고 들어오는 것, 그런 건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에서 지금은 다 해결했습니다. 문을 안 열고 들어오는 건 첨단 물리학자가 다 해결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3차원에 살지만 문을 안 열고 들어오는 건 4차원 5차원 가면 그대로 된다고 합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창조의 비밀>이란 책과 <과학으로 만난 하나님>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보니 초끈이론 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9차원까지 이 우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 물리학자의 이야기는 9차원이 입증되면 기적을 설명하는 건 너무 쉬워진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김충선 교수라는 분이 일산두레교회 교인이었는데 이 분이 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가는 걸 입자물리학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한 번 누구든지 바다위로 걸어가면 물에 안 빠질 확률이 있다고 합니다. 빈틈이 있대요. 법칙의 빈틈, 예수님이 그 법칙의 빈틈을 걸어 다닌 거라고 합니다. 즉 불확정성의 원리, 닫힌 체계가 아니라 완전히 확률사건이기 때문에 물에 안 빠질 확률을 타기만 하면 우리도 가능한데,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를 안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빠지는 것이고 예수님은 안 빠지는 것인데, 창조질서의 법칙이 불확정적이고 확률이기 때문에 확률의 한 틈새에 들어가면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김충선 교수 이야기로는 모든 기적들은 입자물리학자 양자역학을 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우습게 쉬운 거라는 겁니다. 안 믿는 게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나 입자물리학도 모르고 초끈이론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냥 이걸 믿으려면 철야기도를 해야 하고, 머리 지성이 약해지도록 기도하거나 해야 하는데, 어쨌거나 예수님이 정신적 광적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예수님의 그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한 말은 하나님이 친 아버지라고 했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상태가 매우 진지하고 정신적 탈구상태에 빠진 상태가 아니고 그 분은 그 말을 쓸 때마다 무한히 자기를 낮추는 맥락에서만 썼기 때문에 이걸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누구의 아들, 유력자의 아들, 힘센 분의 아들이란 말을 할 때 그 아들은 권력을 의미하고 특권을 의미합니다만,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극한 순종을 의미했기 때문에 자기를 self serving, 자기에게 유익을 끼치는 맥락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 말을 좀 놀랄 수는 있지만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을 때의 말은 내가 아버지의 특권을 몰래 사용하겠다는 맥락에서 한 말이 아니라 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맥락에서 썼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래서 독생자라는 말은 극한 순종으로 자기를 낮추기 위하여 한 말입니다. 독생자는 왜 이렇게 됐습니까? 기계적 순종입니까? 기계적 순종 아닙니다. 118절에 보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너무 중요한 말입니다. 아포클립트스 타이, 인데요. 하나님을 나타냈다는 말이 118절에 나오는데요. 이 세상의 모든 고등종교나 모든 철학에서 하나님을 정확하게 100% 오류 없이 나타낸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도 예수님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과 기독교를 같이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기독교가 담지 못한 대양과 같은 엄청나게 크고 풍성한 분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한 흔적을 가지고 그걸 절대적으로 종교권력집단으로 만든 겁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도 잘못 됐고 불교도 잘못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다원주의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지금 현재 힘이 있는 종교들의 일종의 협의체의 담합행위입니다. 저는 그래서 종교다원주의를 당연히 반대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일단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찬성하느냐면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 때문에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구원 받았다 하더라도 놀래서는 안 된다, 그게 제 입장입니다. 교회 안 다닌 사람이 천국에 와 있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건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다만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을 100% 정확하게 오류 없이 나타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타내신 그 하나님 아버지가 있는 곳에 구원이 있을 가능성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저는 불교나 이슬람에 그런 게 없다고 믿습니다. 저는 한기총에도 그런 게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향교회가 하나님을 오류 없이 100% 나나낼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다만 하나님께 독생자급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퍼즐 조각처럼 모여서 그 독생자급 순종을 일삼는 교우들이 모여서 개별적 순종을 적분시키면 예수 그리스도 같은 순종이 결과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도 1 성도 2 성도 3을 시그마 M에서 무한대까지 가면 예수님 같은 분이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한 분이 온전히 하셨던 순종을 우리 성도들은 미분시켜서 일상적으로 개별적으로 순종하고 있는데, 그 순종을 합해보면 결국은 그런 순종을 하는 교우들이 합한 교회는 예수님 느낌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공동체도 하나님을 나타내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타낼 확률이 두 사람이 나타낼 확률이 2분의 1로 떨어집니다. 8사람이 예수님을 나타낼 확률은 8분의 1로 떨어집니다. 10만 명이 예수님대로 살 확률은 10만분의 1이 되기 때문에 교인수가 많을수록 수준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헌금을 왕창하기 쉽겠습니까? 부부가 헌금을 왕창하기 쉽겠습니까? 한 사람이 싱글로 있을 때는 첫 월급 받아서 바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에게는 첫 월급이 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사법 연수원 41기 한 형제가 첫 월급 전부 다 가져왔습니다. 목적헌금으로 목사님이 알아서 쓰시라고,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에 목적헌금을 드리렵니다. 사법연수원 41기 형제는 수련회 계속 쫓아다니면서 저를 스토킹 했던 형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물었습니다. 부인이랑 반드시 의논은 했나? 제가 기도할 때 부인은 안 오고 혼자 왔길래 부인 뜻을 한 번 물어보자고 했더니 그건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름 쓴 걸 보니 자기 부인이름도 있어요. 변호사 첫 월급전액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이런 마음입니다. 돈을 바친 게 아니라 이렇게 과감하게 희생을 결단하는 순종의 마음 미분들이 합해지면 하나님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은데,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말은 자기 비움을 말하고 자기희생을 말하고 자기 낮춤을 의미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이란 말을 내는 순간 자기 낮춤을 생각해야 하고 자기 비움을 생각해야 하니까 하나님은 권력으로 특권으로 말 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희생으로 말할 수 있고 낮춤으로 말할 수 있고 사랑의 비움으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란 언어를 쓴 사람이 특권화 돼 있고 귀족화 돼 있고 권력화 돼 있으면 그건 벌써 하나님을 안 나타낸 겁니다. 하나님을 miss representation 한 겁니다. 잘못 나타낸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과 친화되려는 가족적 친연관계를 주장하는 그 사람이 특권을 말하지 않고 희생을 말한다면 가족적 친연관계를 주장하는 그 말에 진실성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런 가족적 친연관계가 말하는 것, 우리 아버지가 친아버지라고 말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 삼촌이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오촌당숙이라고 말하는 것도 힘들고, 하나님이 내 친아버지라는 말은 굉장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한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은 모든 거짓을 진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관한 견해를 진압하십니다. 유대인들은 38년 동안 누워 있던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과 자비로 치료되는 그 감격에 동참할 힘이 없었습니다. ? 안식일이 무너지는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즉 그들은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안식일 자체를 경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해석할 생각을 하지 않고 성경을 경배하면서, 성경을 idealization 합니다. 우상숭배 합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그 뜻을 깨우쳐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방법으로 해석하는 그 목적을 갖고 성경을 읽지 않고, 내용을 모르지만 성경을 밟으면 아이 장딴지를 때리면서 성경을 함부로 만지면 꿀밤을 주고 하는데, 성경 함부로 만져도 됩니다. 다만 바로 해석하고 깨우쳐서 나의 혈과 육을 자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지, 성경책을 막 쌓아놓고,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성경책 위에 다른 책 있으면 반드시 거꾸로 해서 성경을 제일 위에 놓습니다. 바로 제 옆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사무실에 있어요. 항상 성경이 위에 있어요. 왜 그러냐 했더니 하나님이 제일 높으신 분이랍니다. 그게 성경을 높이는 게 아니라, 안식일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신 목적 자체를 물어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승리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이 혼돈세력에게 책망과 전투를 통하여 이 혼돈의 바닷물결을 물리치시고 더 이상 땅을 범람하지 말라고 소리쳐서 뭍과 땅과 생명의 동산을 만들어내신 날이 안식일입니다. 6일 동안의 창조를 마치시고 하나님은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 이제 안정된 거주 공간, 피조물의 하모니가 완벽하게 완성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쉽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긴장을 이완하십니다. 하나님은 쉴 필요가 있는 피조물의 연약성에 갇혀 있진 않았지만 긴장을 하셔서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긴장하시고 쉬셨다는 말을 하면 금방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긴장하실 수 있냐? 그럼 하나님은 슬퍼하실 수 없어야 합니다. 슬픔 자체가 긴장입니다. 오열 아픔, 전부 다 에너지가 격동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픈 사람을 봐도 항상 부처처럼 웃기만 하고 있으면 그건 제가 볼 때 스토아의 하나님, 스토아의 신은 무념무상 아파테이아입니다. 아파테이아는 아 파토스, 파토스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파토스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플 때는 오열하시고 대학생이 나쁜 아이를 때릴 때 하나님 마음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손을 뻗어 파라오가 히브리 노예들을 때릴 때 그 파라오의 채찍을 빼앗아 파라오를 때리시는 분, 격렬한 긴장을 하시는 분, 이 격렬한 악과 싸우기 위해, 혼돈세력을 무찌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거룩한 긴장을 하셨다가 이제 완전히 혼돈세력을 제압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압의 승리를 구가하시기 위하여 안식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24, 출애굽기 2011절입니다. 하나님이 혼돈세력에게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쉬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두 번째로 이집트 노예백성이었던 히브리백성이 하나님이 노예를 해방했던 그 감격에 의지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부리는 노예 가축도 쉼을 주라고 하는 것이 또한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은 노예가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지주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노예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에 부담을 지지 않습니다. 지주만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받습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안식일 계명을 보면 반드시 그 계명을 듣는 사람이 지주입니다. 종과 노예를 소유한 자입니다. ‘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즉 농장노동에 동참한 모든 구성원들이 쉬라고 안식일을 주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주셨다는 말은 광범위한 휴가권을 허락하는 겁니다. 안식일을 그런 뜻으로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그게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멋진 구약적 해석을 하지 않고, 39개의 금지목록을 정했습니다. 39개의 금지목록은 미쉬나 사바트라는 문서에 있습니다. 39개의 금지목록 중 첫 번째는 씨를 뿌리지 말라, 두 번째는 쟁기질을 하지 마라, 세 번째는 추수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가면 불을 피우지 마라, 반죽하지 마라, 그다음 제일 마지막에 물건을 들고 사적공간에서 공적공간으로 남 보는데서 물건 들고 다니지 마라, No transportation in the public domain,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자기 물건을 들고 집에서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하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워 있던 베데스다 연못 사적공간에서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데서 transportation 했습니다. 물건 옮겼습니다. 이 사람들이 볼 때는 하루 더 있어야 합니다. 38년 만에 뛰고 난리치는 감격이 물결치는 이 때에 하루 더 누워 있어, 38년 참았는데 왜 못 참아, 하루 더 누워 있으라면서 그의 감격 그의 기쁨에 전혀 공감을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들아 안식일은 일을 도무지 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안식일은 저등 사역을 그치고 고등사역, 인간의 생명 목숨을 고갈시키는 혹독한 이윤창출노동을 그치고 하나님 안에서 쉬는 노동, 하나님께 말씀 듣고 거룩한 긴장을 이완하는 운동, 그 사역을 하는 것이다, 저등 사역을 그치고 고등사역을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에 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일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일 하는 날이라는 겁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이게 바로 예수님의 특기입니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가 일하니 나도 일한다, 안식일은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계속하는 겁니다. 혼돈의 물결 속에 감추어져 있던 땅을 건져 올려서 생명이 가득 차도록 하는, 창조사역을 하던 그 일을 계속하는 겁니다. 우리 예수님은 돈을 벌기 위한, 이윤을 더 창출하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건 안식일에 멈춰야 합니다. 안식일은 이미 공부 잘 한 사람이 더 공부 잘하기 위하여 예배 안 드리고 도서관 가는 것,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를 이미 많이 못하는 사람, 8학기 내내 한 번도 장학금 받지 못하고 엄마 아빠의 등골을 휘게 만들던 그 패역한 아들이 그 못하는 공부를 보충하기 위하여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여기 가향에서 예배드리고 남산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 이것 안식일 어기는 것 아닙니다. 인간 존엄의 회복입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내일 시험이 있는데 계속 불안에 떨면서,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 하면서 드디어 시험을 쳐서 재난을 당하고, 엄마 아빠 장학금 타내고, 이 악순환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초과 이윤을 구하기 위한, 즉 내 이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노동 시키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했지, 내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가향에서 A라는 형제가 가향의 자매가 이사를 하는데 목금토 3일 내내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일을 했습니다. 시험은 월요일입니다. 3일째 노동하다가 마침내 몸져누웠습니다. 그런데 가향교회에서 주일1부 예배 드렸더니 몸이 회복됐습니다. 이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는데, 안식일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쁜 뜻입니다. 고등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만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공부도 안 하고 주일성수 때문에 시간만 계속 보고, 12시 딱 치자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밤을 새고 드디어 머리가 black out 되고 시험을 망쳤다, 그건 절대로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고 자기 존엄의 파괴도 일어납니다. 안식일은 저등 사역, 즉 초과이윤을 얻기 위하여 자기 몸과 자기 노예의 몸과 자기 가축의 몸을 혹사시키는 대농장주지주들의 초과이윤욕구를 억제한 것입니다. 자기 존엄을 파괴하는 자가 구덩이에 빠졌어요.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빠져 있는 상태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이서방 양이 저 하수구에 빠졌습니다. 엄청 무겁습니다. 무거운 소나 양을 구덩이에서 건져내는 것, 그게 안식일에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은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 전부 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겁니다. 곤경에 처한 자기 성적을 돌보는 것, 제가 볼 때 공부 못하는 사람이 안식일에 공부하는 걸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공부도 못한 아이가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드디어 월요일에 재난학점 받아서 드디어 할 일도 없고,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의 master가 아닙니다. 자유인의 아버지시고 아들의 아버지시고 무한한 자유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 계명자체의 신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존엄을 훼손하도록 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만 나타내신 하나님만 참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한기총이나 한국교회가 대표하는 하나님을 믿지 마십시오. 절대로 예수님과 하나님만 봐야 합니다. 이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만 우리가 헌금해야 합니다. 그분에게만 우리가 경배해야 합니다. 그분에게만 우리가 찬양해야 합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수백 년에 걸쳐서 잘못된 종교전통을 전복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아버지 품속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는 독생성자급 성인, 독생성자급 목회자, 독생성자급 성도가 잘못된 종교전통에 속박돼 있는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일반원칙으로 말하면 그런 말이에요.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하고 하나님과 독생성자급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잘못된 종교로부터 잘못된 안식일 속박계명으로부터 영혼을 구해낼 수 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 아버지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이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쳐내는 일은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38년 된 병자를 찾아내셔서 고쳐내십니다, 이 일을 내가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니까 나도 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은 38년 된 병자를 보시면 마음이 아파 사무쳐서 지나갈 수 없고 지금 당장 고쳐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입니다, 내가 이 자비로운 아버지 품속에 살다 왔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마음을 압니다, 나는 지금 그를 고쳐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를 고칩니다. 여러분, 안식일은 자비가 용솟음치는 날입니다. 38년 된 죄로 인하여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이웃을 일으켜서 은혜의 직립보행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날입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한 치도 걸을 수 없고, 1cm의 순종의 발길음도 떼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뚜벅뚜벅, 자유를 향해서, 존엄을 향해서, 인간해방을 향해서 뚜벅뚜벅 운명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안식일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이 안식일에 해야 하는 일이고, 안식일에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안식일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10, 밧모섬에 유배당했던 사도요한의 말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그랬더니 하늘에는 큰 보좌가 설치되었고 그 안에는 어린 양이 앉아 있었다, 주의 날, 악과 죄와 사망을 이기는 날, 안식일은 악과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38년 동안의 속박을 끊어내고 직립 보행하는 날, 뛰는 날, 달리는 날, 승리의 날입니다. 주의 날은 승리의 날입니다. 여러분이 주의 날 승리의 날을 특별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성령의 감동된 사람에게 들리는 음성, 성령에 감동된 사람에게 들리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성령에 감동된 사람에게 보이는 하늘에 있는 보좌 어린 양 예수가 이 세계를 다스리고 계시고 교회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을 수 있는 안목이 열리는 날, 이것이 안식일 주의 날에 기대되는 것들이죠. 우리 가향교회가 많은 activism 행동주의를 드러낼 때입니다. 촛불집회 가는 것 어렵지 않고, 데모하는 것 어렵지 않고 심지어 감옥에 가서 몇 년 있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 보지 않을 때 아버지 독생자의 그 자태처럼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오랫동안 교제하는 것, 아버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의 교제 말씀의 교제 순종의 교제 은밀하게 누적되는 순종의 교제 찬미의 교제, 아버지 하나님 자체에게 몰두하는 것이 오늘 날 우리에게 많이 모자랍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 세대에게 걱정하는 바는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일에 갈증이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일에 갈증이 없고, 너무 수평적인 교제가 많고, 너무 세상에 일볼 것들이 많아요. 인터넷에 쏟는 시간도 많고 귀에 뭔가 하나님 말도 안 들리고, 너무 많은 일에 분산되니까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 거한다는 이 말뜻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관심이 분산되고, 매우 험악한 시대에 산단 말이에요. 아버지 하나님 품안에 있다는 말은 몇 시간 며칠씩 기도원에 가서 나오지 않는 거예요. 말씀을 암송하여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거예요. 기도 굴에 가서 나오지 않는 거예요. 깊은 영적몰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몰두가 모자라요. 여러분 스스로 서로 알기 위해서 엄청 애쓰는 것에 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 자체에 대한 몰두, 독생성자가 사셨던 아버지 하나님 품속 같은 고도의 영적교제, 이 차원이 많이 소홀해요. 여러분 세대가 이 차원을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부르는 복음성가를 가만히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 몰두하는 걸 도와주는 찬양이 아니에요. 방금 전 불렀던 나의 만족과 유익과 그건 찬양도 아닙니다. 가사가 벌써 너무 쓰레기 같은 가사인데, 하나님 아버지께 몰두하도록 도와주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사로잡히고 자복시키는 찬양,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양,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경배하고 자복시키는 찬양을 해야만 독생성자급 순종이 가능하고, 독생성자급 삶이 가능합니다. 독생성자급 순종이 가능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독생성자급 순종공동체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는 공동체가 됩니다. 정통교회가 됩니다. 제가 여러분 세대에게 느끼는 가장 큰 약점, 저하고 비교해보면 제가 여러분보단 2,30년 인생선배인데, 하나님 아버지 자체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빈곤하고, 너무나 여러분 사람에게 분산돼 있고 몰두해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에게 몰두해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댓글 다느라 정신이 없고 영적으로 깊은 사람은 그런 짓 안 합니다. 하나님만 몰두해도 모자란 시간에 그런 일로 시간을 다 보내요? 한 번 책을 잡으면 6시간 7시간 기도하면 5시간 6시간, 그렇게 가는 것, 그게 2030대때 해야 할 마땅한 현상이에요. 그에 비해서 여러분이 실제로 그게 약하지 않나,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 세대 모두가 불리한 세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 많이 하시고요. 아버지 품속에 있다, 결론 맺습니다. 순종의 논리를 배우고 순종의 감격을 배우고 삶속에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쁨을 배우는 그 학교가 바로 아버지 품속 학교입니다. 아버지 품속 학교에 들어오셔서 학생이 되시고 매일 매일 들어오세요. 이사야 504-6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이게 바로 아버지 품속학교에 다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들리는 음성을 들을 때 위험이 초래하고 손해가 초래해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아버지 품속에서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부르는 독생자의 무한한 자기낮춤, 자기 비움입니다. 이런 신앙의 신비가 여러분 모두에게 신비에 대한 목마름 추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볼 때 어디가 답답하느냐면 하나님을 다 안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갈증이 모자라고 목마름이 모자라요. 너무 자족하는 것 같아요. 갈증과 목마름, 여러분 때에 필요한 고도한 갈증, 심오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허기들이 여러분에게 좀 모자라요. 이건 가향에서 느끼는 제 인상입니다. 분산되고 있는 모든 시대, 가향에서 제가 느끼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은 큰 인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고만고만한 사람이 모여 있는, 독생성자급 순종을 바쳐서 낡은 종교를 부수고 인간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용감무쌍한 독생성자급 인물들, 학자들, 사상가가 여기서 나와야 하는데 너무 고만고만하게 하향평준화 돼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 하나님 안에서 불타는 서슬 시퍼런 20대 청춘의 영적투지, 심한한 전진들, 이것이 좀 우리에게 모자라지 않나,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저는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양진일 목사에게도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공동체로 모이다보면 그게 약해져요. 공동체로 모이면 하나님을 단독자처럼 찾는 심오한 신비가 많이 약해져요. 그래서 공동체 생활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면서 또한 아토스 산에 있는 수도사들처럼 꼭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광명의 조명이 올 때까지 끝까지 나올 수 없는 영적인 전진들이 사순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 1독하면 됩니다. 사순절에 성경1독하면 잡다한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그래서 성경 1독하기 위해서 수도원이라 치고 인터넷도 켜지 마세요. 무슨 소식이 그렇게 전하고 싶습니까? 소식도 전하지 말고 감추세요. 뭘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찌개 먹은 소감까지 다 올릴 필요가 있습니까, 솔직히? 나는 여러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게 자기 노출을 많이 하고, 또 사진 찍어 올리고, 꽃 찍은 거 올리고, 사무실 찍은 것 올리고, 치마 입은 거 바지 입은 거, 엄청난 병적 자기도취, 자기노출 그건 성경의 영성과 너무 달라요. 성경은 자기은닉이 훨씬 많아요. 하나님 알고 나면 그런 짓 못해요.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예요. 사순절에 성경1독하고 나면, 영어 성경1독 한글성경1독 그렇게 하고 나면 자기 방에서 나올 시간이 없어요. 그 정도 말이 적어지고 기도가 많아져요. 이번 사순절에 성경1독 하십시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향이 순결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지만 의에 주리는 형제자매들이 모였지만 하나님 자체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참 드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끼리 모여서 사랑을 나누고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져 사는 것도 좋지만, 저 악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인간을 속박해 38년째 침상에 묶어 놓는 참혹한 현실은 여전히 있습니다. 주님, 우리교회에도 독생성자급 청년이 나타나게 도와주시고 하나님을 향해 목이 말라 10시간 20시간씩 기도의 굴에서 나올 수 없는 비범한 인재들도 가득 차게 도와주시고, 인간을 해방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하나님의 그 일을 모방하여 사람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는 신령한 목자의 마음을 가진 종들이 이제 나오게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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