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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기도! (잠 30:7-9)

by 【고동엽】 2022. 1. 27.

솔로몬의 기도! (잠 30:7-9)

 

사람의 본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먹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상에 대한 욕망이 있고 과시하고 싶은 욕망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 같은 욕망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게는 또 다른 욕망, 즉 성공하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이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노력하고 인내하고 수고하고 때로는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입시생들을 보면 때로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꼭 저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은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좋은 직장에 갈 수가 있고 그래야만 그 인생이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갈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은 여기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경쟁해야 하고 한시도 마음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남자들의 가슴 속에는 온통 이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성공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화려해지고 싶은 욕망과 또 꿈과 야망을 이루어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가슴이 그렇게 넓고 배가 두툼한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야심 만만한 맹렬 여성들도 많습니다. 남자들처럼 야무지게 일에 도전하고 나선 여성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비행사가 되어 보겠다고 나선 여성도 있고, 기관사가 되어 보겠다고 나선 여성도 있고, 군인이 되어 보겠다고 사관학교에 가는 여성도 있고, 정치가가 되어 보겠다고 그 살벌한 정치 무대에 나선 여성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모두 이 같은 역사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초라하게 실패하는 인생도 있습니다.

 

1. 그런 면에서 성경에 나와 있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우상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적으로 보면 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의 대표이자 모델입니다. 그는 보통 성공한 정도가 아니고 입체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우선 솔로몬은 정치가로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40년간을 권좌에 앉아서 천하를 통일하고 군림하면서 부강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말이 40년이지 이것이 얼마나 장구한 권세의 시간입니까? 그리고 그는 아주 화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이 화려합니다. 당대나 오늘이나 솔로몬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 임금들은 모두 선물을 싸 들고 와서 솔로몬의 얼굴 한번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시바여왕은 자그마치 2천㎞나 되는 길을 마차를 타고 와서 솔로몬의 왕국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갔습니다.
거기다 솔로몬은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그 유명한 재판으로 더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슬초에서부터 천체에 이르는 것을 논할 만큼 다박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로몬하면 맨 먼저 생각되는 것이 지혜의 사람이라고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영화도 찬란했습니다. 솔로몬이 누린 영화는 극에 달했습니다. 전무후무한 영화입니다. 진시황의 영화가 얼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영화에 비견할 수 없는 것은 솔로몬의 영화는 하늘이 내린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을 모두 다 누려 본 사람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 모두 누려 보았습니다. 아마 솔로몬은 세상에 태어나서 원 없이 영화를 누린 사람일 것입니다. 참 만족하게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와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보려고 꿈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이고 꿈이고 이상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저마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과연 그런 생활에 얼마나 행복해 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합니다. 그는 과연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그런 인생을 만족하게 여기고 살았는가? 그리고 그런 생활에 만족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뜻을 부여할 만큼 그는 만족해 했는가? 그런 삶을 살아본 그는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한 문제입니다.

 

2.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읽은 성경의 본문 말씀을 자세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표제로는 "아굴의 잠언"이라고 표기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굴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로몬을 의인화해서 아굴이라고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혹 이 본문의 저자가 솔로몬이 아니라 해도 그 사람은 솔로몬에 버금가는 영화를 누려 본 사람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부를 논하고 가난을 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부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시고"입니다. 이 짧은 고백은 인생을 다 살아본 사람이 주는 교훈입니다. 이를테면 부함도 가난함도 절실하게 체험해 본 사람이 내리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는 "너무 부하게도 마옵시고"입니다. 너무 부하게 살아본 사람이 말하기를 "너무 부하게 살아보니까 좋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삶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한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 실감 있게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누려 본 사람이 고백하기를 "사람이 살되 너무 부한 삶은 좋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40년 동안 부의 극치를 누려 본 사람입니다. 성경"(왕상10: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했습니다. 왕궁의 모든 쇠붙이는 금과 은이었습니다. 돌처럼 흔하게 썼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은 들의 뽕나무처럼 흔하게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왕궁이 그렇게 호사스러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솔로몬이 영화를 누리는데 그 영화가 극에 달합니다. 열왕기상 11:3을 보면 솔로몬의 왕비가 자그마치 7천 명입니다. 거기다 비빈(후궁)이 300명입니다. 그 밖의 궁녀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여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솔로몬이라는 사람은 능력 있는 남자입니다. 그 많은 여인들을 곁에 두고 거느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이씨 조선의 역사가 모두 519년인데 그 동안 27명의 임금들이 바뀝니다. 이 27명의 임금들의 평균 수명은 2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집권 기간만 해도 40년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처음에 솔로몬이 얼마나 참신했습니까? 그 신앙이 얼마나 깨끗했습니까? 그는 왕이 되자마자 맨 먼저 1천 번제를 드린 사람입니다. 이 말은 하루에 한 번씩 번제를 드렸다면 3년 동안 번제드리는 일에 매달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드렸다 해도 일년 동안 꼬박 이 일에 매달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이 그만 감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도 주셨고 권세와 영화까지 함께 주셨습니다. 처음에 솔로몬은 이렇게 참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건전한 정신을 가진 왕이었고 지극히 경건했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그 순수함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와 권세 속에 길들여지면서 그는 세속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았던 솔로몬이 마침내 말을 사 모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국방은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이기에 말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어느 날부터인가 애굽으로부터 준마(駿馬)를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마다하셨던 마병대를 조직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을 의지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의지한다고 했지만 내심으로는 군마를 더 의지하게 됩니다.
또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7천 명의 왕비와 300명의 후궁을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밤낮 없이 연락하고 즐겼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솔로몬은 육신이 피곤해졌습니다. 육신 속에서 기운이 다 빠지고 마침내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또한 정신과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일개 자연인이 아니고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참 무서운 일입니다.
여자를 좋아하니 국내 여자만 좋아했겠습니까? 마침내는 이방 여인들까지 마구 불러모았습니다. 당시 이웃 나라 임금들은 모두 솔로몬과 인연을 맺고자 했고 동맹을 맺으려고 자국의 여인들을 공출해서 솔로몬에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아리따운 여인들은 모두 솔로몬 왕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솔로몬에게 갈 때는 그냥 갔겠습니까? 저마다 자기 나라의 우상들을 하나씩 들고 갔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바알 신을 가지고 갔습니다. 시돈 여인은 아스다롯 신을 가지고 갔습니다. 암몬 여인은 밀고 신을 가지고 갔습니다. 모압 여인은 그모스 신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런 신들은 모두 음란 신입니다. 性의 신입니다. 쾌락의 신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나라는 갑자기 우상 천지로 변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갑자기 음란 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들이 우상을 가지고 와서 그냥 다소곳이 앉아만 있었겠습니까? 저마다 우상 신당을 지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 같았으면 솔로몬은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고 난리를 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몸에서 기가 다 빠져 버려서 힘도 분별력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여인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전체가 우상 천지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어기고 말을 많이 두고 그 말을 의지한 것도 이해하고 참으셨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어서 마침내 혼돈에 빠지고 분별력이 상실한 것도 이해하셨습니다. 또 금과 은을 많이 두어서 마음을 빼앗기고 현혹된 생활을 한 것까지도 이해하고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을 둔 것만큼은 참지를 않으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 나라를 둘로 갈라 놓지 않으셨습니까?

 

3. 영화는 참 좋은 것입니다. 부귀도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지혜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만이 이런 것들이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등을 돌리고 나니까 그 모든 영화와 부귀와 지혜들은 그만 끝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아니다 하시니까 그 모든 것들은 그만 빛이 변하고 그 뜻이 퇴색하여 버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쇠하고 변하고 모두를 빼앗기고 나서 만신창이가 된 후에 한 고백이 뭐냐 하면 "너무 부하게도 마시고"입니다. 이 고백은 참으로 뼈저린 고백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되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현자는 고백하기를 "사람이 너무 부하면 좋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너무 부하게 되면 외화내빈하게 됩니다. 겉은 화려해 보이는데 속은 경건성이 상실되고 정신이 메말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주기를 "너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라고 했습니다. 부와 가난은 극과 극이라는 면에서 똑같은 것입니다. 극단이 주는 피해는 똑같이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부가 사람으로 하여금 허황됨을 준다면 가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꿈을 잃게 만듭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의기가 꺾입니다. 좋은 생각이 있고 좋은 꿈이 있어도 그 꿈이 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 꿈이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가난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비굴해지고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너무 가난하게 되면 하나님께 욕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사람이 실패해서 초라하게 되면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도 저렇게 초라하냐 하고 비웃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너무 가난하면 빛이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상실합니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싶어도 "너같이 되고 싶지 않아서 못 믿겠다"하고 말하는 것 같아 자신 있게 전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도 어떤 때는 욕이 됩니다.
또 사람이 너무 부하면 세상에 재미가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사람은 뭔가 이루려고 하는 기대와 희망이 있어서 그 목표를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아주 부한 사람에게는 그런 기다림이 없습니다. 부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당장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 어디에 재미가 있겠습니까? 무슨 꿈을 이루는 행복감이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가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세상이 재미가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뭔가 이루어 보려고 해도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망막하기만 합니다. 어디 기댈 만한 곳이 없습니다. 가능성이 전무합니다. 거기 어디에 희망이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자포자기하고 때로는 도적질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이 "허탄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말씀이 솔모몬이 준 교훈이라면, 솔로몬은 자신의 과거의 그렇게도 화려했던 삶을 후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삶을 성공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성공도 아니고 추구할 일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허황된 것에 뜻을 두고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현인의 충고요 교훈입니다.
사람은 적당한 삶의 규모가 좋습니다. 넘침도 바람직한 것이 못 됩니다. 상당한 인내와 절제의 철학이 없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타락할 수 있고 허황됨에 놀아나기 쉽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무서게 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환경에 따라 사람은 만들어지고 조성되고 지어지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남의 여건과 환경을 동경하고 탐내는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허황된 일입니다.

 

4. 그래서 결론으로 말하면 현재 우리의 삶이 가장 좋은 삶이고 그 삶 속에 진실이 있고 그런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축복하시는 삶이라면 그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삶이 가장 큰 축복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매일 향상하는 삶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 그것이 신앙인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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