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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해답! (사 31:1-3)

by 【고동엽】 2022. 1. 26.

궁극적인 해답! (사 31:1-3)


요즘 의문의 죽음에 대하여 말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군에 가서 어느 날 의문사 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김훈 중위가 판문점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살이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누군가에 의해서 타살되었다고 생각하고 수사를 다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사를 제일 먼저 했던 곳이 미국의 수사관들이라고 합니다. 이제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제 수사를 한다고 하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남북의 문제가 걸려있는지, 그 어떤 것이 개입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국회가 이를 문제삼고, 그 부모가 문제를 삼고, 많은 의문으로 사망한 가족이나 사회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의사도 타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만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최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미국은 우리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이런 때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고, 배경이 되어 주고, 우방으로서 든든함을 유지해 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그 나라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이 같은 오늘의 환경을 바라보면서 본문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최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막강한 무기로 무장되었을 뿐 아니라, 잘 훈련된 군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해결책이 달리 없었던 때입니다. 그때는 오직 길이 있다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일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신정 정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모두 베옷을 입고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당시는 그것만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애굽을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당시 앗수르와 쌍벽을 이루는 강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수많은 말과 마병과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던 힘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왜 갔느냐 하면 1절 말씀대로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벙겨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 지도자들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뜻을 전달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미국만 의지하고 그냥 기다리고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 먼저 이때는 국력을 집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이런 때는 기도 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때는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장로님이 아닙니다. 불교를 의식하지 말고 4천만 인구 가운데 천 3백만 기독교인들에게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라, 지금은 위기다. 국방은 군인들이 맡고 있고, 외교는 정부가 하고 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이때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인 것 같다. 그러니 이 땅의 천 3백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얼마나 구심점이 강해지겠습니까? 얼마나 힘이 한곳으로 집결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하필 이때에 장로를 대통령으로 세웠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우연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제 대통령은 불교 눈치 그만 보고 신앙인으로서 당당하게 나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 대통령 할 것입니까? 대통령 임기는 단임인데 무슨 눈치를 그렇게 보고 예배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연설할 때 무엇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한 번도 찾지를 못하고 그러는 것입니까?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잘 대처해 나가기만 한다면 이것이 전화 위복의 기회가 되고, 나아가서 국력이 집결될 수도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2. 또 백성은 위기 때는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전혀 무감각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무감각합니다. "설마 저들이 전쟁을 일으키겠는가"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연휴 때를 보십시오. 명절 이상으로 여행객들이 길을 메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기 있는 나라 형편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사실입니다. 전혀 위험에 처한 나라 같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것은 우리 백성들이 지혜롭고 의연해서가 결코 아니고 무감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위기 때는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사람이 몸에 이상이 생겼으면 크든 작든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이 시점에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하여야 할 것은 북한 공산당의 생리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성을 가진 집단이 아닙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그런 집단이 아니라는 데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만큼 상대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민입니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이 분명한 위기 의식을 가지고 이때를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쟁도 그치고, 사회 불안 조장도 그치고, 모두 조용히 할 일에 전념하면서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력이고 위기를 극복해 내는 지혜입니다.

 

3. 또 저는 여기서 한 가지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 남복 문제만 해도 우리들의 노력보다도, 이 문제는 하나님이 주실 선물인 것같이 생각됩니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일이 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또 나라가 해결할 일이 있고, 나라도 해결 못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엔이 해결할 일이 있고, 유엔일지라도 해결 못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이상의 문제는 사람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정신과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회담도 해야 하고, 교류도 해야 하고, 통일을 위해서 노력도 해야 하고, 문제를 풀려고 최선의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사가 모두 수단으로, 흥정으로, 외교로만 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8.15해방이 외교로 해결됐습니까? 유엔이 해결을 했습니까? 8.15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눈물을 보시고 이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남북 통일 문제도 어느 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보다 깊은 데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핵 문제나 통일의 문제는 너무 급히 해결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어떤 수단에 너무 집착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국가요, 백성들이라면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의 섭리를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섭리를 오늘도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 가서 우리 민족에세 때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 모든 것은 부드럽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문제를 푸실려고 한다면 역사의 매듭을 억지로 풀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역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일을 인간이 다 할 수 있다고 하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하나님은 필요치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크든 작든간에 문제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은 이 같은 섭리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 심리학 교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목사 아들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다음에 크면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하도 이사를 자주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해서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상담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치료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 칼을 들고 달려드는 흉악한 사람에게 시달리다 못해서 와서 치료를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귀신들린 사람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와서 치료를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밤마다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괴롭히는 꿈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려서 찾아와 치료를 받았ㅅ브니다.
그런데 이 상담 교수가 매일 그런 사람들만 상대해서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하다 보니까 자기도 잠을 자려고 하면 칼든 사람이 나타나고 피 흘리는 사람이 나타나서 괴롭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또 다른 심리학 교수에게 가서 상담함으로써 고침을 받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학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신국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책 속에서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거대한 로마 제국만큼은 영원할 줄 알았다. 나는 로마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느 날 로마 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로마가 망하다니" 그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자닛ㄴ도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합니다. 그는 그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때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낙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깊은 신앙을 갖게 된 후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로마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 그 배후에 영원한 로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있는 자기 배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영원한 자기가 있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때 본 그 영원한 모라와 자기 배후에 있는 또 다른 자기를 확인한 후에 그는 신국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려도 하늘의 해와 달은 변치 않듯이 영원한 로마와 자아는 변치 않을 것이다. 고로 하나님이 로마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로마가 하나님을 위햇 있듯이, 하나님이 안르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있도다." 참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위협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거대한 힘을 지닌 막강한 앗수르의 외형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후에 버티고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모습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자들은 생각도 없이 그만 애굽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사실은 애굽으로 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갔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만 믿고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만 있어도 되는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 위기를 주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도 무분별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정신 차리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좀 벌었다고 터무이없이 방종하고, 탈선하고, 사치하고, 무분별하게 살아가는 이 백성들을 바로잡으시려고, 그래서 정신 차리게 하시려고 이 위기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백성들이 언제 그렇게 잘살았다고 그렇게 방종하고, 퇴폐적으로 살고, 음란스럽게 살고, 그렇게 쉽게 죽이고, 불사르고 그럽니까?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다면 이렇게 방종으로 치닫고 있는 이 백성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느 농부가 닭을 키웠습니다. 여러 닭 중에서 가장 말썽을 피우는 닭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것은 묵은 닭이었습니다. 이 묵은 닭은 알도 낳지 못하면서 다른 닭들을 귀찮게 하고, 주둥이로 쪼고, 모이를 흩어 놓기만 하고 말썽만 피웁니다.
그래서 이 농부가 보다 못해서 닭장에서 가두어 놓고는 금식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첫날은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다음날도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러더니 3일째 되는 날은 조용해지더랍니다. 그래서 이 농부가 불쌍해서 이제는 깨달았겠지 하고 내놓으니까 그 다음날부터 알을 낳더랍니다.

저는 이 땅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또 이것은 우리 모두의 바랍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백성들이 하도 무감각하게 살고, 사치나 하고, 도덕도 없이, 윤리도 없이 살아가니까 이 위기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정신을 다시 차려서 살고, 다시 부지런히 일하고, 땀흘리고, 알을 낳는 생활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시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이 기회에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정신도 깨어 나고, 윤리도 깨어나고, 삶의 방법도 달리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은 장래 있는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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