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궁극적인 해답
축복의 생활! (창 13:14-18)
이제 새해가 되었습니다. 밝고 신선하고 새로운 첫날 아침입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 며칠간은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서 "복"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새해는 그만큼 축복을 기원하는 출발의 시간입니다.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을 불문하고 복받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어떤 복이든 복은 다 좋은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 복은 모두 신령한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찾아오는 복도 쫓아 버립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화합이 깨지고 조화가 무너지고 불화가 조성됩니다. 참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복을 받으려고 별짓을 다해도 복이 멀리 달아나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고 별 수단을 다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복이 좀처럼 그에게 가까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 보아도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남들보다 더 수고하고 노력도 더 많이 하는데 복이 와 주지를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이 쫓아와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초에 어려운 구역을 맡겨 주었는데 연말쯤 가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서 두 배로 만들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것이 복입니다. 사람이 모여든다는 것은 복입니다.
목회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모여 있는 성도들도 흩어 놓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불화를 조성하고 파벌을 만들고 문제를 일으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흩어지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모아 놓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별로 애를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일이 아주 잘됩니다. 분위기와 환경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를테면 이것도 복입니다. 복은 이렇게 따라와 주어야 합니다. 붙잡으로고 쫓아 다녀서는 안 됩니다. 복은 이렇게 알아서 와 주어야지 애를 쓴다고 잡히는 것이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가는 곳마다 복이 쫓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그 사람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이 주어졌습니다. 형통함이 주어졌습니다. 앞길이 순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사람입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복이 함께했습니다. 형통함이 따라다녔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면 그 비결이 몇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는 곳마다 제단 쌓는 생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옮겨 가는 곳마다 가서는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생활의 특징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옵니다.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서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항상 예배 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이 예배 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만복의 근원입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이 예배 생활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원천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셨던 비결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자꾸만 간단화하고 편안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도 자꾸만 쉽고 편하게 하려는 풍조가 아주 강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쫓아오는 복을 내쫓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신앙 생활은 편안해지려고 하면 금방 쇠퇴해 버립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그러면 그 신앙은 생명력이 없어져 버리고, 얼마가지 못해서 그 신앙 생활은 중단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축복의 생활을 좀 먹게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부터라도 예배 생활에 열심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축복이 따라다닌 것은 그가 예배 생활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원천입니다.
두 번째는 "평화주의"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평화주의자입니다.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서 투자를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희생도 감수했던 사람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카 롯과의 분쟁 해결 사례입니다.
조카 롯이 재산 문제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재산이 적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브라함이 재산이 많아지니까 조카와 갈등이 생겼습니다. 재산은 좋은 것인데 또 한편으로는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재산 때문에 가정이 불화한 것을 알고는 재물에 관심이 많은 조카 롯에게 자심이 가지고 있는 재산 중에서 좋은 것을 모두 다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불모지의 땅을 갖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결단입니다. 그리고 조카 롯을 내보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없앱니다. 얼마나 용단 있는 행동입니까? 이것은 그가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땅에는 재산 때문에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평화는 누군가가 이렇게 희생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손해를 감수해야 비로소 평화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 순간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얼마 후에 보면 반드시 하늘이 주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집에서 내보내고 배신감과 허무감에서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을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보상해 주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평화를 위해서 손해를 많이 보게 된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면서 장차 그에게 이와 같은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후를 보십시오. 롯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빈몸으로 탈출해 나옵니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서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롯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허허벌판, 언뜻 보면 쓸모없는 황무지인 것 같았던 그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이 나중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복지가 됩니다. 이것이 억지로 되는 일입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뜻이 좋아야 합니다. 화합을 만들고, 평화를 만들고, 가능을 향하여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주변에서 이 같은 복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가화만사성이라고 했습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교화만사성입니다. 나라도 국화만사성입니다. 거기에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 보십시오. 화합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손해도 회생도 감수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늘의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 복을 받고 살아가야 그것이 진정한 축복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순종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복이 쫓아다닌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표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이 되면 절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예"만 있었꼬 "아니오"는 없었습니다. 떠나라 하면 그는 말 없이 떠났습니다. 아들을 바치라 하면 말 없이 바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는 물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오직 "예"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축복이 따라다니게 된 이유입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뜻이라면 한번 절대 순종해 보십시오. 기도하는 중에 마음속에서 "좀더 수고하라"는 생각이 떠오르거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좀더 기도하라"는 생각이 떠 오르거든 그것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한번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고 묻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미루지 말고, 한번 그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운 순종의 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생활 태도 때문에 누구와도 비교도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네 번째는 "손대접"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이 따라다닌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손대접하는 일을 기쁘게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점에 있어서는 남다른 달란트가 있는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강권해서 데려다가 대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강권해서 집으로 데려다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나그네가 천사였습니다. 이 정도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뭔가 살아가는 방법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복 없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위험을 무릅쓰고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는데, 복 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 한 번 대접한 것이 그만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유대인의 격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부지중에 손대접하면 그것이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여려분, 이제 많이 베풀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나누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 한 사람에게도 좋은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인연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일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복이 쫓아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찾아서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복이 아브라함을 쫓아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성공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대접했는데 결국은 천사를 대접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복이 저절로 들어왔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남다른 생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예배 생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생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어떤 조건이든지 간에 절대 순종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언제나 복이 따라다녔습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에게도 이 같은 축복의 생활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려면 예배 생활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생활 중에서 이것을 우선 순위 제 일순위에 놓고 실행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늘로부터 주시는 축복을 힙입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넘치는 은혜 속에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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