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의 신앙! (창 14:21-24)
아브라함은 신앙인으로서 아주 완벽하리만큼 좋은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 요소인 환상과 결단력과 긍정하는 신앙의 자질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거기다 청백한 사람입니다. 아주 깨끗한 사람입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순전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엇보다도 신앙이 깨끗했습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멈추는 곳마다, 옮겨 가는 곳마다, 그곳에서 정성껏 돌단을 쌓아 놓고는 가족과 종들을 모두 모아 놓고 하나님께 정성껏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고, 지시를 받았고, 갈 기을 인도받았습니다. 얼마나 참신한 신앙입니까?
신앙 생활의 가장 기초는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 아무리 살아가는 일이 바빠도 이 문제는 모든 문제들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 다 잘해도 이 문제에 소홀하면 안 도비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문제는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 있었다면 이렇게 제단 쌓는 일에 열중했던 일입닏. 이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점점 바빠지고, 분주해지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까 이 문제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꼭 바빠서만이 아닙닏. 성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모든 문제보다도 가장 우선이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아주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내용도 깨끗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전쟁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십일조를 정확하게 떼어서 정중하게 제사장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진지한 모습입니까?
신앙 생활은 무엇보다도 내용이 중요합니다. 열심도, 좋고, 신비도 좋고, 연조도 좋고, 이론도 잘 알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에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와중에서도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한을 그토록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 생활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믿음의 힘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처음에는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 용기 있게 한 번만 시작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아주 쉬워집니다. 시작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다음에 또 문제가 있습니다. 액수가 적을 때는 그런대로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액수가 많아지게 되면 잘하던 사람도 고민이 생깁니다. 아까운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수입이 많아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떼내는 액수만 많아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떳떳하지는 않지만 액수를 반으로 줄입니다.
아마 지금 이런 고민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도 신앙의 한계선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이 아브라함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치루고 돌아오는 길인데도 그 와중에서도 제사장을 만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십일조를 정중하게 떼어서 바칩니다. 이것이 아브라하의 신앙의 내용입니다. 얼마나 신선한 모습입니까? 그러니까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남달리 복을 받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 가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깨끗했습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롯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3형제였는데 셋째 동생인 하란이 죽자 제수는 개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자식 롯을 아브라함이 키웁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썽입니다. 자꾸만 종들과 싸웁니다. 재산 때문에 불평이 많습니다. 이러다가는 가정의 평화가 깨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생각하다가 롯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줘서 내보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가정 평화를 위해서 재물을 모두 포기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무엇보다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천만금이 생겨도 가정에 평화가 없으면 그곳은 지옥입니다. 천만금이 있으면 무얼 합니까? 거기에 금송아지가 있으면 무얼 합니까? 여러분, 평화 없는 가정을 보십시오. 그곳은 지옥입니다.
사람들이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것을 보면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언젠가 크게 후회할 때가 옵니다.
가정 평화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소홀히 합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동안 내내 후회스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불화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가 막히는 일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도가 막힌다면 그것은 끝장입니다. 그런 집에 천만금이 있으면 무엇을 하고, 금송아지가 있으면 무엇을 하고, 상아 침대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는 가정 평화를 위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유감 없이 버릴 수 용기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평화의 소중함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깨끗한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평화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 이익에 급급한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평화는 손해를 보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평화가 안 되는 이유가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남북 통일이 안 되는 이유도 서로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법정 투쟁이 자꾸만 일어나는 것도 서로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많은데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훌륭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가정 평화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 물질에 대해서도 깨끗했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이면을 보면 아브라하이 재물에 대해서 깨끗했던 것이 큰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시날 평지라는 곳에 사는 다섯 개의 부족이연합을 해서 소돔성을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이 연합군이 쳐들어와서는 사람들을 끌어 가고, 재산을 모두 뺏어 가고, 짐승떼를 모두 끌어 갔습니다. 그때 소돔성에 살고 있던 롯도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자기가 기른 사병 318명을 이끌고 뒤쫓아 갑니다.
아브라함은 평화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의분의 사람이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뒤쫓아 가서 연합군과 싸워서 인질을 모두 되찾고, 뺏긴 재산을 모두 회수하고, 조카 롯도 찾아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아브라함이 침입자들을 추격해서 잃어버렸던 재산을 모두 되찾아가지고 용기 있게 개선을 해서 돌아올 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극진하게 맞아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도 못한 일을 해냈고, 또 잃어버린 백성이며, 재산이며, 모두를 되찾아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만 내게 돌려 주고, 되찾은 짐승이며, 재물은 모두 당신이 가지라." 그것은 엄청난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타향살이 신세에 그것이 얼마나 큰 횡재입니까? 얼마나 많은 내물입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23절에서 말한데로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부자 만드어 주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 실 하나도, 신발짝 하나도 갖지 않겠다."하고 단호하게 거절해 버립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사장 멜기세덱이 말하기를 "당신같이 청렴한 사람은 내가 처음 본다."하고 감탄을 합니다. 이것은 굉장한 선언입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이 그 지방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누가 와서 시비를 하거나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어느 부족의 추장은 와서 우리 함께 친구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재물에 깨끗하고 삶이 청백하면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떳떳합닏.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물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자꾸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십시오. 5공, 6공을 거쳐 오는 동안 물질에 대해서 청백했고, 정치 신조가 깨끗했던 사람들, 얼마나 자신 만만하게 활보를 하고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용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의분도 있습니다.
사람이 삶이 청백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정함이 있거나 신조없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이 같은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어느 시대르 불문하고 청백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것 때문에 성공을 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 성공하려고는 하는데 도중에 실패를 하는 사람이 많고, 또 성공을 했다 하는 사람도 보면 그 성공이 오래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무너져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런 실패의 원인을 연구해 보았더니 거기에 세 가지의 원인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원인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빨리 성공을 하려고 하고, 너무 빨리 출세를 하려고 하는 데서 실패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약고, 꾀와 재주와 수단 방법을 너무 가리지 않고 뛰다 보니까 좀 일찍 성공하는가 싶었는데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거기에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작은 일을 너무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큰 것만 중시하고, 사소하고, 작은 일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것이 화근이 되어서 결국 실패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좋은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큰 것만 바라보고 사소한 것을 무시하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재품이 세계 시장에서 자꾸만 문제가 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점입니다. 뒷손질이 깔끔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상품으로서 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조각가가 헬리콥터를 타고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주변을 돌면서 여신상 머리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머릿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소홀히 하기 쉽고, 아무도 보지 않는 부분인데도 그렇게 깔끔하게 빗질을 해 놓은 것을 보고는 감탄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여신상을 보낸 프랑스를 비롯해서 오늘의 서구인들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살아가는 것은 단지 땅이 넓고, 힘만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에도 용의 주도하니까 그것이 저력이 되어서 지금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강단에 꽃꽂이를 해 놓은 것을 볼 때마다 이 꽃을 꽂아 놓는 분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 봐도 꽃꽂이 앞부분은 참 잘 손질을 해 놓는데 어느 교회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이 꽃꽂이 뒤퉁수를 보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꽃을 꽂는 분들은 앞에 앉아 있는 청중들을 위주로 해서 꽂기 때문에 뒷면은 모두 무시를 해서 시퍼런 오아시스 하고 나뭇잎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강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불품없는 뒤통수만 보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뒤편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이니까 앞부분만 꾸며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극히 한국적인, 체면 문화의 소산입니다. 이런 의식이라면 그 높은 하늘 위에서나 내려다보면 보일 여신상 머리칼을 곱게 빗겨 놓았겠습니까? 이것이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우리 민족의 큰 약점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일등은 못하고 언제나 이등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과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사람들을 사정없이 망가트려 놓는 주범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보십시오. 물질에 대한 과욕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어 놓습니까? 이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너무 빨리 돈을 벌려고 하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다 보니까 무리를 하게 되고, 과욕을 하게 되어서 그것이 그만 올무가 되어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닏.
오늘 이 시대에 성공을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이 과욕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성공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꾸만 실패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실수하게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은 청백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엇보다도 물질에 대해서만큼은 깨끗한 정신과 신앙과 중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당시 거부였습니다(창13:2).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다고 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거부가 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물질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순수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얼마나 참신한 신앙입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 물질에 대해서 정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에 성공할 수 있고,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이고, 또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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