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보다 명예를! (잠 22:1-6)
요즘 우리는 마음이 참 허탈합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내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 속에서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참 어림도 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너무 외형 중심 생활에 치중하느라고 내실이 빈약하고 허약하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는 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값을 지불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성실 때문입니다. 온 나라가 불성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모두 불성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성실했습니다. 눈가림과 적당주의와 편법과 뇌물들로 이 땅이 심하게 얼룩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돈에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서도 장사를 계속하게 할 정도로 돈에 혈안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쌓아 놓은 성을 가리켜서 모래성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는 온갖 허구와 욕망과 치욕으로 가듣 차 있습니다. 그 속에 진실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쌓아 올린 그 모래성이 오래가겠습니까? 무너져 내릴 때는 혼자만 죽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토인비가 쓴 시련의 문명이라는 책을 보면 말미에 가서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종말의 때가 되어서 인간이 멸종된 뒤에 이 땅은 곤충들이 지배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때 곤충들이 멸망한 인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들이 분연히 노력은 하였으나 모두 헛되고, 소리만 ㅗ질게 부르짖었건만 그것도 헛수고였다." 아마 그 예언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하라." 그리고 말씀하기를 "이것들을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괜히 허황되고 허구한 것에 지나치게 뜻을 두고 살지 말고 좀더 인간답고 진실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상을 살되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살고, 또 정신을 앞세우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내실 있게 살아가는 민족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삶의 모습과 세상을 대충 살아가는 우리 민족과 한번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우리 민족이 지금 얼마나 엉성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이 유태인은 지금 이스라엘에 400만이 살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500만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 1,300만입니다. 이 모두를 합해 봐야 2천 만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한 인구의 절반밖에 안되는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이 히브리 민족에게는 무서운 저력이 있습니다. 칼 막스, 뉴턴, 아인슈타인, 심리학자 프로이드, 금세기 최고의 지휘자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이 모두 이 유태인입니다.
그리고 노벨 수상자 300명 가운데 31%인 93명이 유태인입니다. 이 민족은 2천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러면서도 유태인의 전통과 주체성을 오늘날까지 전혀 흐트러짐 없이 유지해 가면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얼마나 신비스러운 민족입니까? 그렇다면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교육입니다.
유태인의 교육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육에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뿌리"를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어려서부터 가르치기를 "유태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긍지를 갖고 뿌리를 소중히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전통과 관습을 고집스럽게 전수시킵니다. 그 일환으로 타국에 이민을 가서도 아이들에게 끈질기게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과거의 것은 모두 몹쓸 것으로 여겨서 개혁 대상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모두 부수고 바꿔서 원점으로 되돌리는데, 유태인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오점은 오점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 같은 사람은 마냥 영웅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끔찍한 영웅으로 봅니다. 그것은 그의 실술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를 미화시켜서 흠이 없는 영웅으로 내 보일텐데 그들은 있는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도 회개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오늘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다정 다감하냐는 것입니다. 벌써 그들의 역사 속에는 솔직성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공하라"는 교육입니다. 이 유태인의 교육 속에는 성공하라는 교육이 그렇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되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의 개념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화려한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위를 이루는 그런 성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나 인생을 성공스럽게 살아가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내실 있는 인생을 말하고 성실한 인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허황된 생각이나 불성실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교육이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 교육입니다.
마지막으로 "원칙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관습을 오래도록 지키는 습성이 있습니다. 전통을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면서 원칙을 아주 강조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금전교육을 철저하게 강조합니다. "사랑 이외에는 공짜가 없다."고 세 살 때분터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교육입니까? 거기 어디에 대충이 있을 수 있고, 뇌물이 있고, 적당히 눈감아 주는 의식이 자리를 잡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회가 극히 합리적이고, 절차를 소중히 여기고, 과정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아주 부족합니다. 우리는 절차를 따지지 않습니다. 과정을 무시합니다. 그러니까 저런 사고가 연일 터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누가 사업을 해서 돈만 많이 벌면 그것을 성공으로 금방 인정해 줍니다. 누구 하나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정당하게 벌었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과정이나 절차는 모두 무시되고 나중에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성공 여부를 따지게 되니까 사람들이 모두 성공 지향적으로 살아갑니다. 거기 어디에도 원칙이 중시되고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은 없습니다.
집을 지어도 순서나 과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철근이 얼마나 들어가고 자재를 어떤 것을 썼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다 지어 놓은 후에 밖에다 그럴 듯하게 칠을 해놓으면 허가가 나옵니다. 또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돈을 주면 됩니다.
그렇게 부실하게 지어 놓은 집을 분양받아 들어가 사는 사람은 또 들어가자마자 벽을 허물고 창틀을 떼내고 마음대로 내부를 넓혀서 살아갑니다. 집의 안전이나 구조적인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매사가 그래 왔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런 사도들이 자꾸만 터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사회에서 그런 생활 방식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무너지고 말아야 할 건물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집을 지어서 돈만 벌면 된다는 그 생각들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부실한 인생관입니까?
그러니 유태인들이 어려서부터 원칙에 충실하라고 가르치는 그 교육이 얼마나 빈틈 없는 교육이고 두고 두고 영향을 미치는 교육입니까? 그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후에 빈틈 없는 국력으로 나타나고, 국방력으로 나타나고, 국민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 유태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강하게 만든 교육 내용입니다.
2. 종교입니다.
오늘 유태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구축해서 살고 있는 것은 교육에 이어 종교 때문입니다. 유태인의 정신은 종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린아이들이 지각이 생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태인의 전통을 기록해 놓은 책이고, 또 하나는 성경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유태인의 전통을 읽어 줌으로써 유태인으로서의 정신을 갖게 하고, 성경을 읽어 줌으로써 세상 창조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적인 세계관을 심어 주고, 인간의 타락 과정을 읽어 줌으로써 인간의 가치관을 심어 주고, 위인들의 모습을 읽어 줌으로써 판단력과 지각력을 갖게 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로 하여금 종교성에 깊이 들어가도록 키우는 것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안식일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교육을 시킵니다. 토요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 종일을 집에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타거나 여행을 하거나 놀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이래로 오늘날까지도 오랜 세울 동안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태인들이 오늘 같은 시대에도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도록 교육을 하는 목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유태교의 교리를 따르고 지키는 그 자체로서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즐거움을 얻으며 유태인의 동일성을 그것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도 유월절만 되면 아이들에게 "마르"라는 음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아주 매운 고추 같은 것인데 그것을 아이들이 먹을 때는 매워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데도 먹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그때의 그 아픔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런 민족을 대항해서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 민족이 얼마나 강한 민족입니까?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그냥 적당히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사회에는 이런 정신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어야 그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세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마음에 어떤 상(像)을 가지고 그 상을 그 시대에 이 땅에서 구현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히 방향을 제시해 주면서 선도해 주어야 그것이 나라의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지도자들을 가리켜서 예수님부터 그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연예인들을 스타라고 하지만 원래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을 가리켜서 스타라고 했습니다. 스타라는 말은 높이 떠 있는 별을 뜻합니다. 별은 높이 떠 있어야 그것이 별입니다. 별이 땅에 있어 보십시오. 그것은 별이 아닙니다.
별의 사명은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높이 떠서 방향만 제시해 주는 것이 별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사막에서 나침반이 없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높이 떠 있는 빛나는 별들을 보고서 방향을 찾아서 여행을 하고 그랬습니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이 스타가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 하나만 터져도 온 나라가 우왕 자왕하고 속수 무책으로 탄식들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유태인들의 그 교육과 종교적인 목적이 얼마나 강합니까? 그러니까 그 민족이 400만 인구를 가지고 우리나라 강원도 땅보다도 적은 면적을 지니고 살면서도 세계 속에서 그렇게 강한 나라를 일구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의 힘 때문이고 종교적인 힘 때문입니다.
3. 생존의 절박성입니다.
아마도 유태인들의 그 강함의 원인은 이 생존의 절박성에 더 큰 뜻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유태인들이 왜 그렇게 강하냐 하면 그것은 생존의 절박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태인 400만 명이 2억이나 되는 회교도들에게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으니 그 나라가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거기 어디에 대충이 있을 수 있고 방종이 있을 수 있고 적당주의가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삶이 진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광의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계를 유랑하던 히브리인들 중 와이즈만을 비롯해서 몇몇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잃어버린 고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야음을 틈타서 고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팔레스타인에 들어가려고 하면 적국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어깨에는 큰 짐보따리들이 지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불 보따리가 아니고 먹을 것이 아닙니다. 그 자루 속에는 어린아이들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적국을 통과하는 동안 혹시 소리를 내거나 울지나 않을까 해서 입에 반창고를 붙여서 봉해 놓았습니다.
이들이 한참 야음을 틈타서 적국을 통과하여 가다가 짐을 내려놓고 쉬는 동안 이렇게 말합니다. "가다가 우리들이 죽을지라도 너희들만은 팔레스타인에 들어가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너희들은 미래의 소망이고 나라의 주인들이다." 얼마나 멋있는 정신입니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적당주의로 대충 살아가겠습니까? 얼마나 진지하게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는 왜 이렇게 엉성하게 살고 거품 인생을 살고 내실은 텅텅 비어 있으면서도 거드름을 피우며 살고 있는지 참 창피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라도 모두 새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제는 삶의 자세들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 철학들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새롭게 되새겨야 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지니라. 그리고 이것들을 마땅히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는 이 말씀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더 이상 추해지지 않고 되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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