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대로! (약 4:1-3)
야고보서를 보면 시련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내용들로 짜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행함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 생활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야고보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 생존시에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아주 불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가족들이 함께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 생존시에는 믿지를 못했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억지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사도 외에 그곳에 이 야고보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포도주 잔을 들고 야고보에게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내 피니라"하고 주시니까 그만 잔을 걷어차고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 동생 야고보는 형인 예수님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 형님은 그 뛰어난 능력과 지혜와 언변 가지고 왜 왕이 되어 출세하지 못하고 죽으려고만 하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허송 세월만 하더니 이제 와서는 자꾸만 죽겠다는 말만 하고, 오늘은 해괴 망칙하게도 포도주 잔을 가지고 와서는 "이것은 내 피니 마시라"하는가? 이런 생각에 얼마나 하가 났던지 그만 이 야고보가 형님이 주는 포도주 잔을 걷어차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부활하신 후에 야고보에게 타나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네가 나를 믿느냐, 믿는다면 이것을 받아 마시라"고 또 잔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이 야고보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께서 어찌하여 개만도 못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나이까"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야고보가 전도자가 되었고, 마침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어 30년 동안 봉직하다가 마침내 야고보서를 쓴 후에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일대기입니다.
이 야고보가 30년 동안 목회하다가 이 야고보서를 쓰게 되었을 때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야고보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년에 야고보의 무릎은 낙타 무릎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실천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보면 실천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심지어는 실천이 없는 믿음은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신조이고 철학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그곳에서도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기도의 길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너 말하면 "너희가 살다가 실패를 하였다하면 그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우리에게 주는 기도에 대한 철학입니다.
사람들이 성공을 해보려고 별짓을 다합니다. 시기도 해봅니다. 다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살인까지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해서는 사람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야고보는 그렇게 해서 성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성공할 수 있습니까? 2절을 보면 그것은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살다가 실패를 하게 되면 환경 탓을 하고, 자본 탓을 하고, 재수가 없어서 실패했다고 하는데,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고, 도중에도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진단하는 실패의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기는 했는데 언제 했는가 하면 실패가 거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 했습니다. 그때 가서 부랴부랴 새벽 기도도 하고, 철야 기도도 하고, 금식 기도도 했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기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도는 성공했을 때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사람이 실패를 하고 넘어졌을 때는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 넘어지고 실패를 했으니 더 실패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성공했을 때는 반드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차례가 넘어지고 실패할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공했을 때 하는 기도가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습니까? 일이 잘 될 때는 안합니다. 성공할 때는 모두 내 능력으로 된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기도를 하게 됩니까? 일이 꼬이고, 잘 풀리지 않고, 실패의 조짐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때 가서야 부랴부랴 철야를 한다 금식을 한다 야답입니다.
새벽 기도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늦게까지 엎드려 있는 사람, 지금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평소 새벽에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 나와서 심각하게 흐느끼고 있을 때는 지금 뭔가 뒤틀려 가고 있구나 하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죽을 지경이 되니까 새벽에 나와서 앉아 있지, 만사 태평이면 그렇게 나와 앉아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끔 그렇게 죽을 지경으로 몰아놓기도 하시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머리로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식사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하루 세끼 5시간 마다 한 번씩 고루고루 먹어야 합니다. 하루에 열흘 먹을 것 한꺼번에 먹어서 저장할 수도 없고, 열흘씩 굶었다가 한꺼번에 먹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 밥 먹듯이 해야 균형 잡힌 신앙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새벽 기도를 참 잘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시간만 잘 선용하면 탈 없이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안하면 편히 잠만 자면 어느 날 죽을 지경이 되고 맙니다. 그때 가서 한꺼번에 철야를 한다, 금식을 한다 하는데 한꺼번에 그렇게 먹어서 배가 불러지는 것입니까?
여러분,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살아오시는 동난 어느 시기가 가장 우울했던 때입니까? 어느 시기가 가장 손해를 많이 본 때입니까? 그리고 어느 때가 가장 괴로웠던 때입니까? 알고 보면 틀림없이 기도 생활에 등한했던 때일 것입니다. 깊이 생각을 해 보면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많은 세월 동안 목회를 하면서 얻은 경험에서 우리에게 충고를 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기도로써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구했는데도 얻지 못함은 잘못 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절을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기도 내용을 보면 선하지 못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실언을 많이 할 때도 있습니다. 서원이라는 것을 너무 함부로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결국에 가서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 기도가 되어 버리고,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도 응답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평소에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되면 진짜 위기를 맞았을 때는 소리 쳐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고서는 쓰지 않거나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고서는 약속을 자꾸 어기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신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원래 사람이 신용을 잃으면 마지막에 가서 참말을 할 때에도 사람들이 믿어 주지를 않는 법입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어떤 부잣집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거짓말을 너무나 잘했습니다. 매일같이 어머니를 감쪽같이 속여서 돈을 타 갑니다. 학비를 타 갈 때는 꼭 더 붙여서 타 갑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수법을 써 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냥 달라고 해도 줄텐데 꼭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고 타 갑니다.
이 아들이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편지하기를 지금 큰 일을 저질렀는데 돈이 필요하니 빨리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기를 "이 녀석이 군에 가서까지도 그 버릇 못 고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고생 좀 해보라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이었습니다. 평소에 너무 신용을 잃었기 때문에 진짜였을 때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시달리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목을 매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서커스단이 들어가서 낮에 선전을 하기 위해서 배우들이 얼굴에 분장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닙니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고는 연극을 참 잘하겠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배우들이 그 얼굴을 가지고 동네에 들어가서는 "불이 났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안달을 하는 배우들을 보고는 연극 참 잘한다고 박수를 칩니다.
박수를 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일는지 모르지만 박수를 받는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을 인간의 "허와 실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어떤 분은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기도가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했으면 됐지, 아니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면 됐지 "간절히 간절히"가 뭡니까? "좋아해"하면 됐지, 거기에 왜 "진짜 진짜 좋아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통계에 의하면 여성들이 평균 1개월에 한 번씩 남편에게 "당신 나를 사랑하느냐, 나 죽으면 장가 갈거냐"하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말에 남편들은 한결같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은 그 말을 들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다가 "진짜"라는 말을 하나 더 붙여서 진짜 진짜 사랑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할 것입니까?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구했는데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에게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는 말씀입니다. 사람 앞에서도 진실해야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해서 대듭니다. 원망을 합니다. 불평을 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말 가운데는 "하나님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고 큰 실수를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를 할 때는 무슨 기도를 하든지 끝에 결론에 가서는 이 한마디를 꼭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거."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지금 내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사업을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얼마나 품위 있고 합당한 기도입니까? 지금부터 한 해를 이런 기도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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