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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표적 눅2:34

by 【고동엽】 202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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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율법에 따라서 결례를 행하기 위해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 때 시므온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마리아 품에 안겨있는 아기 예수를 보고

이렇게 예언하며 찬송합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2:34

 

시므온은 예수님을 가리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그의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온 예루살렘이 떠나갈 듯이

“저자를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유대인들의 비방 속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문제는 왜 유대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비방하고 죽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방 받는 표적’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세메이온 안티레고메논’입니다.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sign of contradiction’이 됩니다.

 

‘contradiction'이라는 단어에는 ‘비방, 반대’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비방의 표적’은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contradiction'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모순'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바로 ‘모순의 표적‘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왜 모순의 표적입니까?

 

▲우리는 자고로 처절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상대를 마구 짓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네가 정말 높아지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남을 섬기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손을 움켜쥐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 손을 펴서 나누어 주라.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차고 넘치리라”고 하십니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리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악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가 정말 영원히 살고 싶으냐? 그러면 먼저 죽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실 메시아는

제왕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갈릴리 출신의 빈민에

불과했습니다. 그 예수님은 마치 실패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나를 믿고 나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순의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모순의 표적으로 보였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서 욕망의 노예 된 인간들이

모순 속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모순에 빠져 있을 때,

오히려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순으로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눈 한 개 달린 나라에 가면,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모순임)

 

그러나 2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인간을 섬겼던 예수 그리스도는

종이기는 커녕 만왕의 왕으로 섬김을 받고 계십니다.

 

당신의 목숨을 미련 없이 버리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주,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당신은 손을 펴서 당신을 위하여 땅 한 평도 소유하지 않으셨던 주님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성자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 치고 하나도 모순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분이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모순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밭 위에 꽃병들이 거꾸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엎어진 꽃병들은, 꽃과 자기 땅이 생겼다는 기쁨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기 소유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 그 꽃병 속의 꽃은

시들고 죽어 갑니다.

그뿐 아니라 죽은 꽃은 대지의 습기와 지열 때문에 마침내 썩어 가기 시작합니다.

꽃병 속은 악취로 진동합니다.

그럼에도 그 꽃병은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이라며

그 썩은 것을 가슴으로 품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 옆에 또다른 꽃병을 바로 세워 놓았습니다.

엎어져 있는 꽃병들의 입장에서는 바로 세워져 있는 꽃병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세워진 꽃병들은

모순에 빠진 꽃병들로부터 역으로 모순의 표적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진리의 모습을 보여 주는 제대로 된 꽃병이 있어야,

모순에 빠진 꽃병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에 빠져 있는 인간들에게 참 진리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거꾸로 모순의 표적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욕망의 법칙, 인간의 허욕의 법칙만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진리를 위한 모순의 표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나라를 송두리째 주셨습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모순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곳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모순되는 가치로 살 때만, 그 나라를 상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진짜로 모순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모순의 표적이 되든지, 아니면

진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모순된 삶’이라고 판정을 받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모순의 표적이 될 지언정,

하나님 앞에서 모순의 표적(진리에 대한 모순)으로 판정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망의 법칙에 익숙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순의 표적이 되어,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모순의 표적이라 비방 받는 한이 있더라도

진리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2천년 교회사를 되돌아보십시오.

참 진리에 대한 모순에 빠졌던 인간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했던 자들은

이 세상에서 모순의 표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더 이상 욕망의 사자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은 모순의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모순의 표적에 의해서

이 세상의 모순은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재철 / 회복의 신앙 - 무엇을 믿을 것인가 中

 

<출처 : http://cafe.daum.net/yh8815 >믿음의 좋은 글> #4811, 무엇을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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