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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2:17-29 /제목: 이면적 유대인=율법준행자

by 【고동엽】 2022. 1. 15.
본문: 로마서 2:17-29
제목: 이면적 유대인=율법준행자


하나님에게는 언약백성을 우뚝 세워서 세계만민을 향도하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의 성숙과 성장을 책임져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선물로 주고 자녀를 선물로 주고, 군사적, 경제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그러면 쌍방속박적인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민족이 지고 있는 의무는 무엇이었을까요? 시편 105편 44절부터 4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이유는 그 가나안 땅에서 율법을 준행하고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라고 땅을 주신 것입니다. 근데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특징은 뭘까요? 억강부약,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부축하는 것입니다. 절장보단,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을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환난을 당한 사람을 지지해주고 견인 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평등은 존재하겠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라고 하나님이 모세오경을 허락하신 거죠. 그니까 모세오경의 율법은 평등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조건이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불평등한 사이에 평화가 존재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평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평등한 존재 사이에는 갈등과 경쟁이 극심합니다. 하나님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경계를 나눴습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큰 동물과 작은 동물 경계를 나눴습니다. 예를 들어서 코끼리가 아무리 덩치가 커도 임팔라를 달려서 쫓아올 수가 없는 거죠. 불평등하지만 평화가 가능한 세상을 하나님은 만들었습니다. 그니까 모세오경은 예를 들어서 사유재산을 철폐하라 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평등해야 된다 라는 모택동이라든지, 스탈린 같은 사람이 말한 그런 평등주의를 강제한 것도 아닙니다. 모세오경을 잘 보면은 하나님은 개인의 능력차, 지성의 차이, 부지런함과 근면의 차이, 이런 걸 다 보고 불평등할 것, 약간 평등이 위태로워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 평등이 위태로워지는 것, 평화가 붕괴될 만큼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7년에 한 번씩 또는 50년에 한 번씩 가난한 사람들을 재활복구 시키는 그런 멋진 이상사회를 꿈꾸도록 하셨죠. 근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그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포도원에서 하나님께 바쳐야 될 소작료가 있는데 그 소작료가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사야 5장 5절 6절 7절에서 말하죠. “내가 내 포도원에 기대했던 것은 공평과 정의이다.” 그 공평과 정의가 바로 무엇입니까?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부축하는 그런 멋진 세상이죠. 이런 행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상호 의를 유지하여 언약관계를 지탱시키는 쌍방 기대되는 의무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의무를 다 해야 되고, 하나님도 의무를 다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요하게 언약율법을 행하라고 그랬는데 문제는 바벨론 포로 때 나타나는 예언자 에스겔에게는 단 한 가지만 줬습니다. 우상숭배로부터만 이스라엘 백성이 보호되길 바랬습니다. 희년을 선포하라고, 이렇게 공평과 정의를 행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약속의 땅을 떠나서 이방 땅에서 난민처럼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모세오경 율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세오경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언약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행해야 할 언약적인 의무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2장 13절 보겠습니다. 2장 13절을 보면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을 행하는 자만이 의롭습니다.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런 구원론은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율법 외에 한 다른 의가 나타났다고 그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믿으면은 율법을 다 행하는 거랑 똑같다고 우리 목사님이 그랬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고 대부분이 틀렸습니다. 자,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합니다. 그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은 무능력 상태에 있던 사람을 마음만 먹으면 율법을 준행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믿게 되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비로소 율법을 준행할 능력을 갖게 된 것이 구원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노력, 율법을 행하여서 뭔가 의로워지려고 하는 이런 노력이 더이상 필요 없는 세계에 들어갔다 라고 말입니다. 목사님들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완전히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그니까 정통의 교단 탈을 쓰고 있지만 많은 교회가 이단 교회처럼 되는 이유는 예수를 믿고 나면은 율법의 요구를 더이상 질 필요가 없다 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니까 유대교인들과 이슬람 교인들이 이런 기독교 교인들을 보고 실족해 버립니다. 완전히 뒤로 나자빠집니다. 특히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이해하니까 예수님을 영구적으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야고보서와 마태복음을 잘 읽어야 됩니다. 야고보서와 마태복음을 읽지 않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일부 구절만을 인용하면은 큰일 납니다. 그래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반드시 야고보서와 마태복음과 같이 읽어야 예수님의 원래 의도가 드러납니다. 마태복음과 야고보서는 정통 율법을 준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정통 구약성경의 논리를 그대로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은 율법을 준행할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율법의 의를 성취했던 예수님처럼 닮아간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은 의로워진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은, 예수님께 신실한 사람이 되면, 예수님께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면은 예수님처럼 율법을 준행할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의 뜻인데 바울의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복음입니다. 그니까 갈라디아서하고 로마서는 이방인들이 주요 독자니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한테 이렇게 들었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진짜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돼.” “할례를 받는다는 말뜻이 뭐냐?” “모세오경에 나오는 613가지의 율법을 다 지키겠다는 약속으로 들어오는 거야, 따라서 할례를 받으면은 613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야.” 할례에 대해서 이렇게 의미를 많이 부여하니까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기만 하면은 완전히 구원받은 사람처럼 그렇게 착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할례가 율법을 다 준행할 의무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할례를 반대했습니다. 다만, 목매어 죽은 것과 피채 음식을 먹는 것과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영적, 종교적 행위로 간음행위를 일삼는 것 이 네 가지를 절대로 하면 안 된다, 613가지의 율법 조항을 네 가지로 딱 줄여서 이방인들에게 가르칩니다. 첫째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 우상 숭배랑 관련된 어떤 영적, 종교적 간음 행위도 하지 말라, 그다음에 피채 음식을 먹지 마라, 그다음에 목매어 죽은 것을 먹지 마라.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 때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키는 어떤 죄악된 행동도 하면 안 된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613가지의 계명을 네 개까지로 줄여서 가르치고 예수님은 모세오경에서 나오는 613가지의 율법을 두 가지로 줄였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강령이니라”이렇게 말함으로써 두 가지만 강조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을 너무 강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를 주라 믿으면은 할례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율법을 지키는 능력이 많아지기 때문에 할례 받는 그 일 대신에 예수를 주라 고백하여 성령을 받으면은, 성령을 받으면은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성령을 받으면은 마음에 할례가 일어나니까 마음에 할례가 일어난 사람들은 율법을 준행할 능력이 생기니까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라고 강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 우리는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의 반열로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우리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반열로 예수를 믿는데 우리에게는 이렇게 전해졌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너희 집이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됐거든요. 즉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됩니다. 의로운 자가 되는 이유는 뭐죠? 나는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의롭다 했기 때문에 그냥 의로운 자가 된 건가요?. 그거 아닙니다. 진짜 율법을 준행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의로운 자가 됩니다. 우리 이수원 형제님 로마서 2장 13절 읽어주시고요, 그 다음에 하수진 자매님 로마서 8장 1절부터 4절 좀 읽어주십시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이, 이거 부인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부인하면 안 됩니다. 이 원칙은 한 번도 부서진 원칙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었다고 내가 내일 살인하거나 온갖 범죄에 동참하게 되면 예수 믿었다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믿었다 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뭘까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행할 능력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의무의 세계에서 면제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야~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합니다. 죄와 사망은 더 이상 우리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가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수 믿으면 율법을 행할 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돼어 더 멋진 사람, 사회적으로도 더 의로운 사람,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만드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는 교회 오래 다닐수록 참 사람이 찌그러진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 너무 너무 슬픕니다. 하나님을 진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교회 바깥에 있습니다. 교회 바깥에,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특히 목사님들은 하나님을 진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게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 성직자들은 하나님을 안 무서워합니다. 그게 제일 무서워요. 왜? 이면적 유대인이 뭘까요? 이면적 유대인은 마음에 할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방인 중에서 주 예수를 고백하면은 성령을 받아서 끝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 능력을 받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구원론입니다. 물론 이렇게 율법을 행할 찬스도 없이 죽는 사람에게도 구원이 임합니다. 태어나지 않은, 꽃이 피지도 못하고 죽은 어린아이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은 모든 구원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구원인데 대부분 정상적인 사람들은 언약관계에 들어가서 언약의 요구를 행함으로 의로운 자가 되어서 쌍방속박적인 백성이 되어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을 받고 예수를 주라 고백하게 만든 그런 내적 충동이 부여된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예수 믿도록 부름받고 선택받은 사람이 훨씬 더 책임이 크다 이런 뜻입니다. 훨씬 더 책임이 큽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진짜 특권도 받았지만 더 큰 책임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율법의 요구를 행할 능력을 주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성령 받음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우리는 원래 할례 받은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면적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한국교회가 예수를 믿고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서 율법을 준행함으로 끝내 의로운 자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시고 예수 이름으로 율법을 행할 능력 갖춘 백성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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