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2:1-11
제목: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자기의에 빠진 유대인들
한국교회가 한국 교우들에게 잘 못 가르쳐준 구원론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율법대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믿음대로 구원받는다.” 율법을 지킨 결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주임을 믿는 사람이 구원받는다, 이렇게 보통 가르치죠. 이것이 왜 잘못된 가르침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때 믿음대로 구원받는다 라는 말은 뭐냐하면은 믿음이라는 게 믿음직스러움으로 구원 받는다 라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믿음직스러움으로 구원받는다 라는 말은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행위가 믿음직스러움이거든요. 믿음직스러움. 지금 한국교회처럼 가르치면은 예수님을 아무리 잘 믿어도 객관적으로 멋지고 의로운 사람이 나올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만 하면은 율법을 다 지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 그러니까 박옥수 기쁜소식 복음 선교회, 유병언의 구원파, 지금 한국교회 대부분이 가르치는 이 구원론은 세 가지가 일치가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우리를 구원하셨으면은 하나님도 구원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예정론. 그러니까 예정론도 그 자체로는 틀린 게 아닙니다. 근데 이렇게 도덕적 개차반들에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예정론의 이름으로 구원을 영구적으로 인을 쳐서 주면은 그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로마서 2장 13절 한 번 보세요. 오 집사님 2장 13절 한 번 읽어주십시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예,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똑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대로 행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고 이 사람이 영생을 상속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교회는 뭐라고 공격하냐면 행위구원론, 율법주의 구원론, 공로주의 구원론, 이렇게 한국교회는 이걸 전부 다 비난합니다. 행위구원론이라고 비난하고, 율법주의 구원론이라고 비난하고 공로주의라고 비난합니다. 제가 볼 때 거의 이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율법의 요구를 능히 준행할 수 있는 능력을 탄생시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것이지,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받는다, 그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하나님 나라에 특수한 공동체에 들어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기 때문에 인류가 수백억 인류가 태어났죠? 지금까지 그 수백억 인류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구원 받은 백성은 무언가를 시범 보이는 특별 신성구역에 들어가는 백성이 구원을 받은 거거든요. 이것은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이 아니면은 불가능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박옥수 같은 구원파 신학의 구원이 아니라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7절을 보세요.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똑같은 본문이 한 번 더 나오지요? 10절입니다.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렇게 이 원리가 보편적인 구원론입니다. 그럼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는 말은 뭐예요? 예,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는 말은 율법의 요구를 행할 능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은 거라사 광인 같은 사라은 아무 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구원받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구원은 아무 행위도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전적 선물일 수 있는데 우리가 우리처럼 구원을 잘 못 오해하면은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시지 않으면은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들, 도덕적 슬럼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도한 자신감에, 우월감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오늘 본분은 자신은 율법대로 살고 의롭다고 판단하는 도덕적 엘리트들, 윤리적 엘리트들을 비판합니다. 1장 24절부터 32절은 누가 보더라도 도덕적 슬럼지대, 도덕적 윤리적으로 파산한 자들입니다. 부끄러운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이고요, 더러운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이고요,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둠을 당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최후심판 전에 누가 심판합니까? 국가가 대개 심판합니다. 1장 24절부터 32절에 나오는 이 죄인들은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 시민행정 사법기관이 심판을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살인, 불의, 추악, 탐욕, 분쟁, 사기, 악독 이것은 최후심판까지 안 가도 됩니다. 이 사람들을 심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인류의 최상층부에 있는 도덕적 엘리트들, 그 최상층부에 있는 도덕적 엘리트들은 1장 24절부터 32절에 나오는 이런 열등, 도덕적인 저 열등자들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낍니다. 판단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는 최상부에 있는 사람들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결국은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2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1장 24절부터 32절에 나오는 행위를 하면서도 발각되지 않거나 들추어냄을 당하지 않았거나 아직까지 탄로되지 않은 사람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특징은 뭡니까? 회개할 기회가 더 없는 거죠. 왜? 세리와 창녀들은 1장 24절부터 32절 부류에 속한 죄인들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양심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죄를 지어서 자각 증상이 있는 환자입니다. 아프다고,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내 인생도 내가 싫어, 나는 내 인생을 저주하고 있어 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리와 창녀입니다. 그런데 2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이 도덕적 엘리트들은 자각 증상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 마음과 고집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과 고집은 그러니까 이렇게 남을 판단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절대로 회개할 내적 동력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요. 참 무섭습니다. 1장 24절부터 32절에 나오는 죄인들을 우리는 어제 그렇게 불렀죠. 신적 내어버려둠, 신적유기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라 그랬죠. 1장 18, 20, 23절은 뭡니까? 하늘로부터는 하나님의 진노를 뜨겁게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뜨겁게 경험하는 죄인들, 하나님의 진노를 차갑게 경험하는 신적유기를 당한 죄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일괄적으로 받기 위하여 죄를 계속 쌓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각 증상이 없이 임박한 진노의 날에도 죄를 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죄인들은 최악입니다. 근데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이 신분을 불문하고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선물로 하시고, 율법을 행하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약속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극소수의 인류를 데리고 지금 지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 시진핑 같은 사람이 세계를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익을 탐하고, 이권을 탐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도장을 찍고, 싸인을 하고 이런 권세를 누리면서 세계를 통치합니다. 이 세계가 살만한 세상이 되게 만드는 사람들은 눈물 나게도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고 불멸의 가치를 구하고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구하면서 각 나라와 각 사람에게 숨어서 몰래 지구를 떠받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힘을 당하면서도 지구를 지고 있는 아틀라스 같은 그런 사람이 바로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돼서 세계를 지금 살만한 세상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신문에 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혐오할만한 악인들이 많지만은 이렇게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들은 신문에 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요소요소에 숨겨놓았기 때문에 신문에 절대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세계를 하나님과 더불어 통치하고 세계를 지탱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도덕적 슬럼지역에 빠진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앞장서지도 말고 부끄러운 욕심대로, 더러운 욕심대로 내어 버려둠을 당한 채로 살지도 말고, 하나님의 진노를 하늘로부터 초래하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우상숭배의 열정에도 불타지 말고, 오늘 하루도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이런 인생의 반열에 들기를 바라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가장 빨리 아는 방법은 내 옆에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가를 잘 보면 됩니다. 제가 좋은 목사라는 것을 아는 길은 저를 좋아하는 교인들이 좋아야 제가 좋은 목사입니다. 저를 좋아하는 목사가, 저를 좋아하는 교인들이 개차반이면 저를 좋아하는 교인들이 엉망진창이면 저는 저주받은 것입니다. 전 좋은 목사가 확실하게 아닙니다. 그런데 김회권이라는 사람을 좋은 목사라고 믿는 사람들의 삶을 보니까 너무너무 무교병같이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불멸의 성도들이 내 주변에 많다, 그들이 나를 목사로 인정한다, 그러면 저도 구원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엉망진창인 교인들에게 칭찬받고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목사에게 아주 사랑을 받는다면 여러분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조명합니다. 서로를 비춥니다. 우리가 서로를 조명하고 비추면서 우리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인가를 자세히 주목해봐야 합니다. 놀랍게도 제가 안심하는 이유는 저를 사랑하는 교우들이 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입니다. 진짜 저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를 지금 좋아해주고 있기 때문에 저는 안심을 합니다. 이게 참 역설입니다. 목사가 자기 신앙을 점검하는 길은 자기 주변에, 목사 주변에 모인 교인들 얼굴을 볼 수밖에 없거든요. 이길 밖에 없습니다. 진짜…….저도 정선희 교우랑 같이 살면서 정선희가 구원받았으면 김회권도 구원받았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여러분도 잘 보세요. 여러분 주변을 잘 보세요. 저는 우리 교우들을 보면서 ‘내가 구원받았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왜? 저를 한결같이 좋아하고 따라주고 저를 믿어주는 모든 교우들은 제가 생각할 때는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교우들입니다. 지금 보니까 대부분이…….그래서 제가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뭐죠? 당을 지어 불멸의 가치보다는 필멸의 가치, 썩어 없어질 가치를 구하는 그런 그룹도 많은데 우리 교회는 참 놀랍게도 존재감이 정말 없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는 교회인데 우리 교회에 누가 숨어있냐 하면은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성도들이 가향교회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나를 진짜 좋아하는 교우들이, 나를 믿어주는 교회들이, 교우들이, 확실하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진짜 저분은 신자라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는 안심을 하거든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강남의 복부인이거나 저 부동산 아파트로 목사님에게 좋은 차를 사주는 이런 불량 교인들이라면은 제가 참 끝났겠죠.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잘 살펴보세요. 여러분 잘 살펴보면은 여러분이 구원받은 증거는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세요. 그런 사람들의 회중에 여러분이 들어와 있는 거거든요. 알겠죠? 자, 우리 오늘 하루 남을 비난하는데 앞장서지 말고, 도덕적 슬럼지대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우월감을 가지고 살지 말고, 참고 선을 행하며 존귀와 영광과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성도, 불멸의 면류관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 좋은 교우들 옆에 같은 교회 다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가향교회 교우들은 세상에서 엄청난 재부를 이룬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과 지구를 떠받치는 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실한 남은 자들입니다. 주님 제가 그런 교우들과 목회하게 하시고, 그런 교우들에게 사랑을 받게 하시고, 인정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시옵시고 이 무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는 이 슬픈 우울한 지구의 하루를 끝내 명랑 쾌활함으로 이겨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시고, 지구의 하늘을 뒤덮은 코로나를 하나님과 더불어 물리치고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중보의 교우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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