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중간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짧게 복습해보겠습니다.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말과 일어난 사건이 어떤 배경과 맥락 가운데서 일어났는가 그것을 정확히 알아야 그 말의 의미와 사건의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보실 때 이스라엘은 700년 이상 5대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최초로 정복했던 제국은 아시리아입니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지배했습니까? 분산정책, 그리고 민족간 결혼 장려 정책입니다. 그래서 혼혈이 태어나게 하였고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했던 혼혈 세력을 사마리아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등장한 제국이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엘리트들을 뽑아서 제국의 중앙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구심이 될 만한 사람들을 제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제국의 변방이 약화됩니다. 이 변방을 공격해서 바벨론을 무찌른 나라가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는 어떤 정책을 펴죠? 제국의 변방을 강화시킵니다. 그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가장 중요한 변방이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은 어디와 맞닿아 있습니까? 이집트와 맞닿아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이었던 고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엄청난 특혜를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성전도 건축하게 만들고 야훼 하나님도 마음껏 섬길 수 있도록 허용해 줍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제국에 대해서 뭐만 충실하게 감당하면 됩니까? 세금 잘 내고 조공 잘 바치고 그 다음에 제국에 저항만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이 바로 페르시아의 식민 정책이었습니다. 이 페르시아 제국을 주전 331년에 헬라의 알렉산더가 정복합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알렉산더가 33살의 젋은 나이에 죽게 되고 거대한 헬라 제국이 4개로 나뉘게 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나라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프톨레미 왕조,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셀루커스 왕조입니다. 제일 먼저 이스라엘 다스린 것은 프톨레미 왕조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헬라 제국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이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히브리어를 모르게 됩니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랍비들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낭독해주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전혀 모르는 후세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 그들이 알 수 있는 헬라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이것을 뭐라고 했죠? 70인경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198년부터 셀루커스 왕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어떤 변화가 생긴 거냐면 셀루커스 왕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모든 제국들의 가장 중요한 통치 전략은 간접 통치였습니다. 간접 통치의 핵심은 뭐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왕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 왕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구심입니다. 왕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구심은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대신 누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습니까?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마음껏 야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유대인들의 할례 문화라든가 안식일 문화 등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겁니다. 그런데 셀루커스 왕조, 특별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때부터 간접 통치를 직접 통치로 바꿉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박살내려 한 겁니다. 야훼 하나님만을 믿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이제는 헬라의 신들을 숭배하게 만든 겁니다. 대표적으로 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라는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돼지 고기를 제물로 바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게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또 하나의 헬라 도시로 만드려고 한 겁니다. 이때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저항 운동의 대표적인 것이 마카베 항쟁입니다. 마카베라고 하는 것은 망치라는 뜻인데 원래는 유다라는 사람의 별명입니다. 망치처럼 시리아 군인들을 박살을 잘 낸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유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망치라고 하는 별명을 붙여준 겁니다. 그 유다의 아버지가 누구냐면 맛다디아라는 사람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라는 왕은 이스라엘을 헬라와 시키려고 하면서 마을마다 시리아의 군인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제우스 신에게 예배를 드리게 만들었습니다. 돼지로 제물을 바치고 그리고 그 돼지를 강제로 먹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시리아의 제사장과 군인들이 모데인 지방에 왔을 때, 그 모데인 지방의 제사장이 맛다디아였습니다. 그래서 모데인 지방에 시리아의 관리들이 와서 모든 모데인 사람들을 불러서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바치게 만들고 그 제물로 사용된 돼지를 강제로 먹게 만드려고 한 겁니다. 이때 맛다디아가 칼을 뽑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하는 자는 나와 함께 하라 하면서 이 셀루커스 왕조에 대해서 저항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저항운동을 했던 그룹을 우리는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하시딤이라고 하는 것은 경건한 자들이라는 뜻인데 이 하시딤이 나중에 에세네파와 바리새파로 나뉘게 됩니다. 이처럼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셀루커스 왕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는데, 그 맛다디아의 세 번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이 유다가 가장 용맹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전쟁 중에 죽게 됩니다. 그 유다를 계승했던 사람이 요나단이라는 아들이었고 요나단을 계승했던 아들이 시몬이라는 아들입니다. 이 시몬 때가 주전 142년인데 셀루커스 왕조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이 독립 정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냐면 하스몬 왕조라 합니다. 여기 ‘하’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 정관사이고, 시몬 때 시작된 왕조라 해서 그 시몬 즉 하스몬 왕조라 부르는 겁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이 4대 제국의 통치를 수백 년 동안 받아온 이스라엘이 드디어 주전 142년에 독립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왕조를 하스몬 왕조라고 부릅니다. 주전 142년에 시작되어서 주전 63년에 로마에게 멸망 당하기 전까지 약 80년 동안 존속했던 이스라엘 자치 정부를 우리는 하스몬 왕조라 합니다. 마카베 항쟁 때 가장 열심히 동참했던 사람들이 바로 하시딤이라고 했잖아요. 경건한 자들, 하시딤이라 했는데 이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에 대해 기대가 엄청 높았습니다. 정말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는 멋진 통치를 하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하스몬의 왕들이 왕임과 동시에 대제사장직을 겸직을 하게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다 독점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보세요. 율법에 근거해보면 누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까?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의 후손들이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카베, 즉 맛다디아의 집안은 아론의 후손이 아닙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스몬 왕조가 정치 권력으로서의 왕 뿐만 아니라 종교권력으로서의 대제사장직까지도 독점하는 것을 보면서 하시딤이 실망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스몬 왕조를 믿었는데 이 하스몬 왕조가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는 것을 보면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보면서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에 대해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시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하나의 그룹은 에세네파입니다. 대부분이 제사장과 그 가족으로서 변방으로 이주하여 자신들만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바리새파입니다. 레위인들이 아닌 평신도로서 이들은 이스라엘 곳곳에 흩어져서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을 철저하게 순종하는 그런 운동을 펼칩니다. 정리하자면, 마카베 항쟁을 가장 열심히 도왔던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가 등장한 이후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가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에세네파이고 또 하나가 비레위인들, 쉽게 오늘날의 용어로 얘기하자면 평신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파 운동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하스몬 왕조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힐카누스 1세라는 사람이 하스몬 왕조의 왕이었을 때 이 사람이 이두매라는 지방을 정복한 다음에 이두매라는 지방에 살고 있는 에돔 사람들을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듭니다. 원래 에돔이라고 하는 곳은 요단 동편에 있는 이방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라비아 사람들이 에돔을 공격했을 때 남유다 땅으로 피신 온 에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피신 온 에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거기를 이두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남유다는 이 에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두매를 허용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힐카누스 왕때 그 이두매 지역에 살고 있는 에돔 사람들을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할례를 받게 만들고 야훼 하나님을 믿게 만든 겁니다. 그 이두매 사람의 후손 가운데 하나가 누구냐면 헤롯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로마는 헤룻 집안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도록 허용해 줍니다. 놀라운 역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에돔 사람들을 이스라엘이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었는데 불과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서 강제로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던 에돔의 후손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지원을 받아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마치 우리로 얘기하자면 대한민국과 일본처럼, 이스라엘과 에돔은 원래 사이고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돔 사람 헤롯 집안의 통치를 받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헤롯 집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통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라는 대왕이 성전을 엄청나게 증축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마카베 항쟁 이후에 하스몬 왕조가 세워지게 되었고 하스몬 왕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를 시행하지 않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시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하나가 에세네파이고 하나가 바리새파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63년에 로마가 하스몬 왕조를 정복합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겁니다. 주전 63년 폼페이우스 장군때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그 지역 출신 사람을 하나 뽑아서 그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때 안토니우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헤롯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자로 선택됩니다. 이때부터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백년에 걸쳐서 다스리게 됩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은 원래 에돔사람입니다. 그런데 힐카누스 1세때 강제로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겁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이 로마 황제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정치 권력을 획득합니다. 거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헤롯 대왕입니다. 이 헤롯 대왕이라는 사람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보시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람이 바로 헤롯 대왕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탄생 이전을 BC라고 말하고 탄생 이후를 AD라고 말하죠. 그래서 이 BC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이전이라 하고 AD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해’ 이런 의미입니다. 이 BC와 AD를 기점으로 우리가 세계 역사를 이해를 많이 하는데 그 BC와 AD를 나누는 중간에 뭐가 있는 겁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BC와 AD 사이 예수님의 탄생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거죠? 0년 또는 1년에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언제로 보냐면 주전 4년 이전으로 봅니다. 왜 주전 4년 이전으로 보냐면 헤룻 대왕이 죽었을 때가 주전 4년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람이 누구냐면 헤롯 대왕입니다. 헤롯이라는 대왕이 주전 4년에 죽었고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아무리 늦어도 주전 4년보다 늦을 수는 없습니다. 주전 4년 이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연대 계산을 잘못하게 된 걸까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를 나눌 때가 언제냐면 주후 5세기입니다. 로마의 수도원장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를 나누었는데 이 사람이 중간에 몇 년을 빼먹은 겁니다. 중간에 몇 년을 놓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BC와 AD 정중앙에 예수님의 탄생이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헤롯 대왕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탄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을 주전 4년 이전으로 보고,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는 주전 4년경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봅니다. 그리고 30세 정도에 공생애를 하셨으니까 주전 4년에 탄생하셨다고 본다면 AD 26년 또는 27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년 공생애를 했다고 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은 AD 30년경의 사건이 됩니다. 이것이 보통 예수님의 일생과 관련해서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연도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198년부터 셀루커스 왕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어떤 변화가 생긴 거냐면 셀루커스 왕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모든 제국들의 가장 중요한 통치 전략은 간접 통치였습니다. 간접 통치의 핵심은 뭐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왕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 왕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구심입니다. 왕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구심은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대신 누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습니까?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마음껏 야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유대인들의 할례 문화라든가 안식일 문화 등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겁니다. 그런데 셀루커스 왕조, 특별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때부터 간접 통치를 직접 통치로 바꿉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박살내려 한 겁니다. 야훼 하나님만을 믿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이제는 헬라의 신들을 숭배하게 만든 겁니다. 대표적으로 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라는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돼지 고기를 제물로 바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게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또 하나의 헬라 도시로 만드려고 한 겁니다. 이때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저항 운동의 대표적인 것이 마카베 항쟁입니다. 마카베라고 하는 것은 망치라는 뜻인데 원래는 유다라는 사람의 별명입니다. 망치처럼 시리아 군인들을 박살을 잘 낸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유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망치라고 하는 별명을 붙여준 겁니다. 그 유다의 아버지가 누구냐면 맛다디아라는 사람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라는 왕은 이스라엘을 헬라와 시키려고 하면서 마을마다 시리아의 군인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제우스 신에게 예배를 드리게 만들었습니다. 돼지로 제물을 바치고 그리고 그 돼지를 강제로 먹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시리아의 제사장과 군인들이 모데인 지방에 왔을 때, 그 모데인 지방의 제사장이 맛다디아였습니다. 그래서 모데인 지방에 시리아의 관리들이 와서 모든 모데인 사람들을 불러서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바치게 만들고 그 제물로 사용된 돼지를 강제로 먹게 만드려고 한 겁니다. 이때 맛다디아가 칼을 뽑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하는 자는 나와 함께 하라 하면서 이 셀루커스 왕조에 대해서 저항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저항운동을 했던 그룹을 우리는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하시딤이라고 하는 것은 경건한 자들이라는 뜻인데 이 하시딤이 나중에 에세네파와 바리새파로 나뉘게 됩니다. 이처럼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셀루커스 왕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는데, 그 맛다디아의 세 번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이 유다가 가장 용맹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전쟁 중에 죽게 됩니다. 그 유다를 계승했던 사람이 요나단이라는 아들이었고 요나단을 계승했던 아들이 시몬이라는 아들입니다. 이 시몬 때가 주전 142년인데 셀루커스 왕조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이 독립 정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냐면 하스몬 왕조라 합니다. 여기 ‘하’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 정관사이고, 시몬 때 시작된 왕조라 해서 그 시몬 즉 하스몬 왕조라 부르는 겁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이 4대 제국의 통치를 수백 년 동안 받아온 이스라엘이 드디어 주전 142년에 독립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왕조를 하스몬 왕조라고 부릅니다. 주전 142년에 시작되어서 주전 63년에 로마에게 멸망 당하기 전까지 약 80년 동안 존속했던 이스라엘 자치 정부를 우리는 하스몬 왕조라 합니다. 마카베 항쟁 때 가장 열심히 동참했던 사람들이 바로 하시딤이라고 했잖아요. 경건한 자들, 하시딤이라 했는데 이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에 대해 기대가 엄청 높았습니다. 정말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는 멋진 통치를 하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하스몬의 왕들이 왕임과 동시에 대제사장직을 겸직을 하게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다 독점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보세요. 율법에 근거해보면 누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까?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의 후손들이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카베, 즉 맛다디아의 집안은 아론의 후손이 아닙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스몬 왕조가 정치 권력으로서의 왕 뿐만 아니라 종교권력으로서의 대제사장직까지도 독점하는 것을 보면서 하시딤이 실망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스몬 왕조를 믿었는데 이 하스몬 왕조가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는 것을 보면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보면서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에 대해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시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하나의 그룹은 에세네파입니다. 대부분이 제사장과 그 가족으로서 변방으로 이주하여 자신들만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바리새파입니다. 레위인들이 아닌 평신도로서 이들은 이스라엘 곳곳에 흩어져서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을 철저하게 순종하는 그런 운동을 펼칩니다. 정리하자면, 마카베 항쟁을 가장 열심히 도왔던 하시딤이 하스몬 왕조가 등장한 이후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가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에세네파이고 또 하나가 비레위인들, 쉽게 오늘날의 용어로 얘기하자면 평신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파 운동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하스몬 왕조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힐카누스 1세라는 사람이 하스몬 왕조의 왕이었을 때 이 사람이 이두매라는 지방을 정복한 다음에 이두매라는 지방에 살고 있는 에돔 사람들을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듭니다. 원래 에돔이라고 하는 곳은 요단 동편에 있는 이방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라비아 사람들이 에돔을 공격했을 때 남유다 땅으로 피신 온 에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피신 온 에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거기를 이두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남유다는 이 에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두매를 허용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힐카누스 왕때 그 이두매 지역에 살고 있는 에돔 사람들을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할례를 받게 만들고 야훼 하나님을 믿게 만든 겁니다. 그 이두매 사람의 후손 가운데 하나가 누구냐면 헤롯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로마는 헤룻 집안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도록 허용해 줍니다. 놀라운 역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에돔 사람들을 이스라엘이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었는데 불과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서 강제로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던 에돔의 후손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지원을 받아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마치 우리로 얘기하자면 대한민국과 일본처럼, 이스라엘과 에돔은 원래 사이고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돔 사람 헤롯 집안의 통치를 받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헤롯 집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통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라는 대왕이 성전을 엄청나게 증축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마카베 항쟁 이후에 하스몬 왕조가 세워지게 되었고 하스몬 왕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를 시행하지 않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시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하나가 에세네파이고 하나가 바리새파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63년에 로마가 하스몬 왕조를 정복합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겁니다. 주전 63년 폼페이우스 장군때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그 지역 출신 사람을 하나 뽑아서 그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때 안토니우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헤롯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자로 선택됩니다. 이때부터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백년에 걸쳐서 다스리게 됩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은 원래 에돔사람입니다. 그런데 힐카누스 1세때 강제로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겁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이 로마 황제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정치 권력을 획득합니다. 거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헤롯 대왕입니다. 이 헤롯 대왕이라는 사람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보시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람이 바로 헤롯 대왕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탄생 이전을 BC라고 말하고 탄생 이후를 AD라고 말하죠. 그래서 이 BC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이전이라 하고 AD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해’ 이런 의미입니다. 이 BC와 AD를 기점으로 우리가 세계 역사를 이해를 많이 하는데 그 BC와 AD를 나누는 중간에 뭐가 있는 겁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BC와 AD 사이 예수님의 탄생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거죠? 0년 또는 1년에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언제로 보냐면 주전 4년 이전으로 봅니다. 왜 주전 4년 이전으로 보냐면 헤룻 대왕이 죽었을 때가 주전 4년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람이 누구냐면 헤롯 대왕입니다. 헤롯이라는 대왕이 주전 4년에 죽었고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아무리 늦어도 주전 4년보다 늦을 수는 없습니다. 주전 4년 이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연대 계산을 잘못하게 된 걸까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를 나눌 때가 언제냐면 주후 5세기입니다. 로마의 수도원장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를 나누었는데 이 사람이 중간에 몇 년을 빼먹은 겁니다. 중간에 몇 년을 놓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BC와 AD 정중앙에 예수님의 탄생이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헤롯 대왕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탄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을 주전 4년 이전으로 보고,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는 주전 4년경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봅니다. 그리고 30세 정도에 공생애를 하셨으니까 주전 4년에 탄생하셨다고 본다면 AD 26년 또는 27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년 공생애를 했다고 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은 AD 30년경의 사건이 됩니다. 이것이 보통 예수님의 일생과 관련해서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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