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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더하기! <인내>

by 【고동엽】 2022. 1. 5.

제4 더하기! <인내>

 

 

오늘 본문의 중요한 요절은 이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신의 성품은 7가지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덕입니다. 믿음에 가장 먼저 더하여야 할 것은 덕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덕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더 하여야 할 신의 성품은 지식입니다. 지식 다음에 더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제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인내를 더 하여야 참된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의 네 번째 성품은 인내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고 베드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믿음에는 인내가 더 하여져야 참된 믿음이 됩니다. 인내는 원어로 휴포모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휴포모네라는 인내를 크리소스돔은 <미덕의 여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미덕중에 가장 큰 미덕은 인내입니다. 인내보다 더 큰 미덕은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석가는 "참음은 계(戒)를 가지거나 고행하는 것보다 낫고 참음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유력대인(有力大人)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세 번 참으면 살인을 면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에 참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찰스 알렌 목사님은 지능지수인 IQ가 높은 사람이 승리하지 않고 인내지수인 PQ가 높은 사람이 승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한 것은 인내지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습니다. 항복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인내야 말로 인내의 극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 고통을 끝까지 참으셨던 그리스도의 인내가 온전한 인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예수님은 최악의 고통을 디딤돌로 삼으시고 영광의 건너편으로 넘으셨습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인내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됩니다. 누구처럼 참으면 가장 모범적인 인내가 될까요?

야고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참은 사람의 대표자를 욥이라고 당당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인내가 더 하여진 욥의 인내를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야고보는 욥의 인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정함을 면하리라>(약5;7-12)

야고보는 먼저 농부의 인내를 보라고 인내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농부는 씨를 심고 조금도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릴 것을 믿고 있습니다. 농부는 씨를 땅속에 심고 추수할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우리는 영적 농부입니다. 무엇이나 심고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을 기다리는 영적인 농부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야고보는 선지자의 인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5;10)

성경의 나타난 선지자들의 두 가지 특징을 야고보는 들고 있습니다. 1. 고난. 2. 오래 참음.

고난 받으면서 오래 참을 수 있다면 이는 선지자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의 조건입니다. 스코트랜드의 종교 개혁자 죤 낙스(1513-1572)는 메리 여왕과 대결하였던 순교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메리여왕을 통렬히 비난하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물론 이 책은 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왕정 파에 의하여 체포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죤 낙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가?> 지휘관이 무섭게 쏘아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죤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입이 그것을 말하였습니다.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 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선지자는 고난을 참고 이긴 이들입니다. 야고보는 농부의 인내, 그리고 선지자의 인내를 말하면서 인내의 모델 인물로 욥으로 들고 있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11)

욥은 고난의 대명사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제일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환난과 역경을 당하게 됩니다. 7가지 시험이 갑자기 찾아 왔습니다.

①물질을 다 빼앗기는 물질의 시험

②자녀 10명이 다 죽는 자녀의 시험

③동네사람들이 비웃는 동네 사람의 시험

④하인이 말을 안 듣는 하인의 시험

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는 병의 시험

⑥친구들이 괴롭히는 친구의 시험

⑦마지막 남은 아내는 욥을 위로 하기는 커녕 긁어주는 아내의 시험 등 7가지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동방에서 최고의 의인이 동방에서 최고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는 절규하였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8-10)

그리고 나서 그는 말씀으로 연단을 받게 되었음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욥은 귀의 믿음이 눈의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귀로 들리던 말씀이 연단을 통하여 체험하는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난을 참고 이긴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을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그런 고난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욥의 인내가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의 인내의 근거는 무엇이었을 가요? 욥은 무엇을 믿고 그토록 아픔을 다 참을 수 있었을 가요?

 

1.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욥이 인내하는 사람의 대표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금 어려워도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실 것이 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警責)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욥5;17-20)

욥은 눈부신 태양이 비칠 내일을 기대하였습니다. 소망을 잃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최 수동 목사가 작사한 곡입니다.

그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서 노무자로 일할 때 두 다리가 잘려 나갔습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깨어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병원에 누워 이 곡을 작사하였습니다. <불속에라도 들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살 수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급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였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전진이 아니라 방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움직인 길을 보면 전진만이 아닙니다. 후퇴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뒤러 갈 때도 있었습니다. 정반대로 움직인 적이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간다면서 애급 쪽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가던 길을 도로 뒤로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항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뒤로 가는 것입니까?> 모세도 하나님께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 우리를 애급 쪽으로 가게 하십니까? 우리가 구름기둥이 가는 방향을 잘못 본 것은 아닙니까?>

모세는 무조건 구름기둥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길 저런 길을 통하여 가게 하시는 것은 자기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시려는 의도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욥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어떤 것도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잠수함이 사고로 파괴되어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구조대가 달려갑니다. 그리고 무전으로 연락하였습니다. "아직도 산소가 있느냐?" "있다" "그러면 참아라. 우리가 내려간다" 구조할 때까지 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산소가 있다는 것은 소망이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하나님이 구조하러 내려오고 계시다는 것은 소망입니다. 욥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인내의 근거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겨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공연히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명한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인내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더 확실하게 말씀드리렵니다. 욥은 고난 중에 이렇게 기도하며 인내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8-10)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데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믿었습니다.

자식이 10명 다 죽는 데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재산을 다 잃어버리는 데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악창으로 온 몸에서 고름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을 수밖에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뜻을 알고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길을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분만이 내 길을 다 알고 계신 유일한 분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금같이 나올 때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결론은 정금같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횃불 데이빗 리빙스턴은 본래 중국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중국 선교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가는 길이 막혀서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안 되는 것을 통하여 다른 것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탐험가와 의료 선교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도 남 태평양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태평양으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최초의 인도 선교사가 되었고 인도어로 성경도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안 되는 것 속에도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꿈이 있었습니다. 오직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개구리 잡아 책상에 핀으로 꽂아 놓고 해부하여 내장을 살펴보기를 즐겼습니다. 생물시간이 제일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방학이면 생물 반에 들어서 생물 선생님과 함께 곤충 채집하러 이 산 저 산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울 의대에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목사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 때 의과대학에서 떨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욥은 안 되는 것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인내할 수가 있었습니다.

 

3. 기도라는 무기를 믿었습니다.

욥은 다음과 같은 특징 있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1)저축 기도를 하였습니다. 욥은 늘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건강할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잿더미에 앉아서도 기도하였습니다. 부자일 때만 자녀들과 기도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다 빼앗긴 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평안할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악화되었을 때에도 기도하였습니다. 욥은 전천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는 저축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욥은 기도의 저축을 하여 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기도하면 된다는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평소 돈이 있을 때 저축하여 두면 돈이 없을 때 찾아 쓰면 간단합니다. 저축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저축도 있습니다. 영적인 저축도 있습니다. 지난 번 우리 지방 목사님 46명이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평소에는 다 체력이 같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을 올라갔다 내려 왔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던 목사님들과 안 하던 목사님들이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나는 평소 운동을 하였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갔다 와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할 것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목사님들은 다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기도 저축을 하여 둔 기도 자들은 문제가 생겨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늘 하던 대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욥은 늘 기도하였던 기도 자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곤경에 처하였어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욥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근거였습니다.

(2)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욥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본문입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42;10)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마냥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이를 위하여 중보 기도할 때는 좋습니다. 기분 좋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중보기도하거나 미운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때는 정말 괴로운 것입니다.

롯은 동거동락하던 아브라함과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돔과 고모라로 이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쓰라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의 가정을 구원시켜 주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자기를 배반하고 떠난 롯을 위하여 그래도 기도한다는 것-이것이 중보기도의 위대성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 가요?

뉴욕에서 감리사로 일하시고 계시는 장 철우 목사님이 이런 글을 내게 써주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다음과 같은 8가지 조건을 지닌 자입니다.

1. 불평 없이 고생할 수 있는 사람

2. 해명 없이 오해받을 수 있는 사람

3. 보상 없이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4. 울분 없이 무시당할 수 있는 사람

5. 명령하지 않으면서 물을 수 있는 사람

6. 오해받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7. 주님의 인도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

8. 주님의 보상만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

그렇습니다. 오해받으면서 해명하지 않고 불편하면서도 기도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욥은 중보기도를 통하여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욥이 기도한 친구들이란 어떤 이들입니다. 욥이 병들자 모욕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욥8;11)

죄짓지 않고 그렇게 고통을 받겠느냐면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원수 같은 친구들을 위하여 욥은 중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욥을 축복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미워하고도 자기가 미워하는 이를 위하여 중보 기도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맛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이를 위하여 현장에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선풍적 바람이 불고 있는 영적 운동은 입니다. 창시자 목사님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을 마약중독자 흑인이 강간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데리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미워하였습니다. 원수로 여기고 언젠가는 복수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십자가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기 딸을 강간하고 억지로 같이 살고 있는 흑인을 찾아가서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복음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 있습니다. 지금 미워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를 사랑하는 기도를 하여 볼 용기가 있습니까? 당장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영이 안개가 갑자기 산을 자욱하게 덮는 것처럼 여러분을 감싸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이것이 진실로 복음이다" 이렇게 속삭이게 될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하게 되면 자신에게 보람이 됩니다.

욥에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였을 때 가장 복을 받은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재에서 나를 가르쳐 주신 박 내철 목사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박 목사님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위를 열어보니 너무나 많이 퍼져서 수술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냥 닫았습니다. 그는 눈치로 자기 병을 알았습니다. 박 목사님은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 병원에 누워 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사명이다"

박 목사님은 중보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몸이 나았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사셨습니다. 병원에서 조사하여 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70이 넘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욥의 기도는 저축기도였고 중보기도였습니다. 이것이 욥을 그토록 참고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인내를 더 하여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인내의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욥이 그런 고통 속에서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3. 기도라는 무기를 믿었습니다.

결론적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참고 이긴 자에게는 드디어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이상합니다. 헌금을 많이 한 자들에게 주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기도 많이 한 자들에게도 면류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도 많이 한 이들에게 자랑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인내한 자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은 참고 이기는 자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얼마 전 철원 성소 기도원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 곳에 한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가니까 할머니, 어머니, 딸이 모두 과부입니다. 그리고 어린 딸이 있습니다. 4대 여자만 앉아 있습니다.

내역을 물었습니다. 14대째 딸 하나만 낳고 남편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입니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데 그 가정을 마귀가 용수철같이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것이 이 가문을 묶고 있는 저주의 흐름임을 알았습니다. 매일 그 가정과 함께 3시간을 기도하였습니다. 용수철같이 매고 있는 저주가 끊어진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루에 3시간씩 그런 환상을 보일 때까지로 정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피눈물 나는 기도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어느 날 기도하는 데 뚝하면 끊어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참고 끝까지 하는 자에게는 승리가 있습니다. 믿음에 더 하여야 할 네 번째 요소는 인내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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