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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제3 더하기! <절제>

by 【고동엽】 2022. 1. 5.

제3 더하기! <절제>

 

 

오늘 본문의 중요한 요절은 이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신의 성품은 7가지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덕입니다. 믿음에 가장 먼저 더하여야 할 것은 덕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덕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더 하여야 할 신의 성품은 지식입니다. 지식 다음에 더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제입니다. 절제는 헬라어로 ‘엥크레이아’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엥크레이아’라는 말은 자기 조절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절제입니다. 베드로의 귀를 자른 말고의 귀를 고쳐 주시는 것은 최고의 절제입니다. 자기 조절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조절할 줄 알고 자기를 절제할 줄 아는 이를 좋아 하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절제를 더 하여야 아름다운 믿음이 됩니다. 믿음이 좋지만 절제하지 못 하면 문제가 됩니다. 모세도 믿음이 누구 못지않게 충만하였으나 혈기가 있었습니다. 절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자기 조절을 못 하는 이는 믿음이 있더라도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10년 동안 정성껏 쌓아 놓은 교회를 한번 혈기로 다 흐트러뜨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으기는 힘들어도 흩으리 기란 순식간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내가 홧김에 가출하였습니다. 며칠 만 기다리면 다시 들어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의 화를 참지 못 하여 자식 둘을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묶어 빠뜨려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다 구조대에 구조되었습니다.

자기 조절이 없습니다. 위기관리 능력이 없습니다. 화를 처리할 줄 모릅니다. 감정의 폭발을 제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믿음이 빛을 발하지 못 합니다.무엇이든지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조금 모자라도 조금 남아도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절제하여야 할까요?

 

(1)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절제하지 못 하면 마귀가 틈타게 된다고 바울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7;5)

부부가 기도하려고 떨어져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믿음이 너무나 좋아 기도에 열심이다 보니까 부부가 오래 떨어져 살다보면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절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 하면 시험이 듭니다.

무엇이든지 넘치거나 모자라면 문제가 됩니다.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과음(過飮)이 문제였습니다. 하와는 과식(過食)이 문제였습니다. 아간은 과욕(科慾)이 문제였습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안 됩니다. 절제하여야 합니다.

어느 교회 부흥회에 갔을 때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필요한 금액은 3억 원이었습니다. 100만 원 정도씩 헌금할 분 300 명만 작정하면 된다는 생각을 목사님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일어나더니 <내가 3 억 원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작정할 필요도 없이 끝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재산도 없고 능력도 없는 여자였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그 여자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도 몰라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어요.> 그 여자는 3 억 원은 커녕 3천만 원도 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어서 그 교회를 떠나 버렸습니다. 물론 교회 건축도 방해를 받았습니다. 온통 시험거리였습니다.

절제가 없으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에게 허영심이 많은 제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사치를 좋아 하고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이였습니다. 제논이 제자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는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그 만한 돈이 있어서 쓰는 데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말입니까?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는 데 왜 간섭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제논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소금이 많다고 요리하는 사람이 음식에 소금을 마구 집어넣어도 되느냐? 무슨 일에든지 절제가 있어야 하느니라.>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절제하여야 합니다.

 

(2)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승리하려면 절제하여야 합니다. 절제 없이 승리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3-25)

하나님의 성품은 절제입니다. 하나님은 절제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영국의 청교도 조셉 얼라인의 일화입니다. 조셉 얼라인이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교목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학위 공부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몹시 쫓기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가르쳐야 하고 밤에는 배워야 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는 많은 친구들과 경건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슨 모임이든지 가면 중요한 일만 하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차라리 무례하다는 말을 듣는 편을 택하겠다. 나를 무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겠지만 내가 시간을 낭비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사용을 절제하였습니다. 인생의 승리를 위하여는 절제하여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세 제자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같이 마지막으로라도 기도하여야 하는 데 기도하지 못 하고 잤습니다. 잠을 절제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칼을 휘두르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모세의 평생소원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미드라쉬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천사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가시려는 계획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원을 그려놓고 그 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515번을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모세의 기도소리가 상달되자 하늘에서는 비상에 걸렸습니다. 하나님 귀에 모세의 기도가 들리지 않도록 문을 잠그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그렇게 간절하게 그리고 그렇게 끈기 있게 기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사들에게 모세를 데려오라고 했더니 천사들은 그렇게 기도하는 모세를 데려올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모세와 타협을 하셨습니다. “네 장례에 내가 꼭 참석할 터이니 너는 내게 오기를 두려워 말아라.”

모세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받고 기도를 포기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한 것은 절제하지 못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 광야로 나왔습니다. 40년간 살면서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신 적이 두 번입니다. 한번은 르비딤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번은 가데스 바아네에서 있었습니다.

르비딤 사건과 가데스 바아네 반석 사건 사이에는 38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오자 르비딤에 도착하였을 때 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속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17;5-6)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 마셨습니다. 그 후 가데스 바아네에 도착하였을 때 또 물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우성이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20;7-8)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 38년 전에 르비딤의 경험을 살려서 반석을 지팡이로 쳤습니다.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우니라>(민20;11)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경험을 따랐습니다. 신본주의 말씀이 아니라 인본주의 경험이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절제하지 못 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 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 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일생 소원이었습니다. 그런 들어가지 못 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반석을 쳤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경험을 따랐습니다. 절제의 부족은 일생 고생하고 마지막 종지부를 찍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인생의 승리를 위하여 절제하여야 합니다.

 

(3)완벽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존경받는 인격, 완성된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절제하여야 합니다. 솔로몬은 오랜 인생 경험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1-32)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6-27)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절제하지 못 하면 완벽한 믿음이 아닙니다. 기네북은 재미있는 책입니다. 별 신기록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이제까지 결혼하여 가장 오래 산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의 렘루시 비카시 나리먼 경과 그 부인입니다. 결혼생활을 86년 하였습니다. 동갑입니다. 둘 다 5살에 결혼하였습니다. 1853년에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0년에 91세의 일기로 하나님께 갔습니다.

이것이 가장 오래 산 기록입니다. 가장 결혼 생활을 짧게 누린 기록도 있습니다. 식을 올린지 불과 4시간 만에 이혼하였습니다. 결혼 생활 4시간 한 기록입니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혼피로연 석상에서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던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삽시간에 이혼식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지 4시간 만에 화를 절제하지 못 하여 파혼하고 말았습니다. 파혼을 선언하고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인격의 완성은 절제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를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술 하나만 절제하였더라면 노아에게서는 흠을 잡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지만 완벽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첩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하여서였습니다. 조금만 절제하면 되는 데 그랬습니다.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만 없었으면 완벽한 왕으로 추앙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적으로 절제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다윗에게 흠이 생겼습니다. 완벽한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절제하여야 합니다.

 

(4)지도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이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을 지도하기 위하여는 절제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1-2)

어느 목사님이 분노에 대하여 설교하고 났을 때 한 부인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 분노를 폭발합니다. 그런데 그 때 뿐이거든요. 일분도 안 되어 그 사람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그런데 한방만 쏘아도 박살나고 말지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지요" 절제할 줄 모르면 지도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큰 일 나기 때문입니다.

화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개논교수는 화가 났을 때 인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르고, 위와 창자로부터 심장 근육 중추신경으로 옮겨 간다. 소화 작용이 멈추고, 간에 비축되어 있던 당이 배출된다. 화를 내면 육신과 정신이 병들게 된다.>

화낸 사람의 숨을 급속 냉각시켜 보았습니다. 농축액은 노란색이 되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의 것은 무색이었습니다. 한시간동안 화를 낸 이의 숨을 모았더니 무려 80 명에게 피해를 줄 정도였습니다. 이 독이 결국은 자기를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안정된 성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절제하지 못 하는 불안정한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것은 좋지만 믿음에는 절제가 더 해져야 합니다.

옛날 성자들이 자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자기 훈련을 자기가 시킨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두 절제 훈련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1)어떤 성자는 밥상을 놓고 밥이나 반찬을 밑에 놓고 먹었습니다. 겸손을 훈련하기 위한 자기 훈련이었습니다.

(2)성 아셉시마스는 무거운 쇠사슬을 자기가 이기지 못 할 정도로 몸에 걸고 다녔습니다. 일어나지 못 하여 무릎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자중하고 고통을 참는 훈련, 십자가 지는 훈련을 자기가 자기에게 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3)수도사 존 베사리온은 40년간을 앉아서 잤습니다. 극기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4)마카리우스는 6 개월간이나 벌거벗고 늪지대에 들어가 지냈습니다. 모기에게 뜯겨서 곤총들에게 물려서 마치 피부가 문둥병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어떤 고통을 참는 절제 훈련을 혹독히 하였습니다.

6개월 그런 훈련을 받고 나니 전도하러 어느 곳을 다녀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돌 위에서 자도 침대 같았습니다. 모기가 없으면 천국 같았습니다.

(5)성 시므온 스틸라이트스는 30년간이나 6 척 기둥 위에서 살았습니다. 좋은 집을 거절하는 훈련을 자기가 자기에게 시킨 것입니다. 기둥위에 좁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기도하면서 자면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후대에 그를 주상성자라고 불렀습니다.

(6)성 마론은 11년간이나 나무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를 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7)어떤 이는 동굴이나, 짐승의 굴, 건정(乾井:마른 우물), 무덤 속에서 살았습니다. 악취나고 벌레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속에서 살았습니다. 자기 극복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8)어떤 성도는 철사 셔츠를 입거나 거칠거칠한 말 털 마모(馬毛)셔츠를 입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육체를 찌르는 지 조금만 움직여도 아픈 옷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엄하게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9)어떤 이는 물속에 들어가서 코밑까지 물을 채우고 24시간 서서 기도하는 훈련을 하였던 이도 있었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10)어떤 이는 전봇대 위에 올라가 24시간 기도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살겠다는 자기 훈련이었습니다. 작년 엘파소에 갔을 때 걸프전 훈련소에 들러 본 적이 있습니다. 걸프전에 나갈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을 가두는 사과 상자보다 조금 큰 상자들이 즐비하였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면 다리를 펼 수 없습니다. 손을 뻗을 수도 없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 24 시간 있는 것이 한 훈련코스였습니다. 포로로 잡혀 갇혀 있을 때를 대처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자기를 이길 수 없는 이는 남도 이길 수 없습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 큰 사람이 됩니다. 모든 것을 이길 줄 알고 절제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1.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3. 완벽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4.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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