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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2 더하기! <지식>

by 【고동엽】 2022. 1. 5.

제2 더하기! <지식>

 

오늘 본문의 중요한 요절은 이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신의 성품은 7가지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덕입니다. 믿음에 가장 먼저 더하여야 할 것은 덕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덕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더 하여야 할 신의 성품은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머리털까지 몇 개 인지 다 알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머리이지만 자기 머리털이 몇 개 인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머리털도 세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중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지식이란 헬라어로 ‘그노스’라고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고 덕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식이 없으면 잘못 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지식이 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지식

2. 내가 소속하여 있는 곳에 대한 지식

3. 나에 대한 지식. 이 세 가지에 대한 지식을 모르면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지식은 꼭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지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지식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이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철로가 없는 기차 같아서 아무대로나 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믿으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잠8;10)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잠11;9)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잠24;5)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에 대하여 간단하게 잘 가르쳐 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간단하게 표현하십니다. 주기도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1)아버지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란 뜻이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육을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육을 낳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인류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64:8)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이 지으신 바가 아니냐"(말2:010)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 아버지이십니다.

②영을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영이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살리는 영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시 영을 살려 주셨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③영육을 기르시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며, 부족할 때 공급하시며, 잘 못 갈 때 부르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영육을 다 길러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가 됩니다.

(2)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신 데 땅에 있지 않습니다. 가정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란 공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하늘에 갇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이란 우주의 핵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거기서부터 우주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청와대의 대통령이 청와대에 갇혀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부시가 백악관을 차지했다는 말은 백악관 공간을 점령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을 다스리려면 다른 곳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다른 곳에서는 안 됩니다. 백악관에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를 다스리려면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하나님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115:03)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시1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시33:13)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념입니다. 어디가 하늘입니까? 땅위가 하늘입니다. 어디부터 하늘입니까? 땅위부터 하늘입니다. 땅과 하늘은 붙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우주를 통치하시며 어디든지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수술받기 위하여 수술실에 들어가는 환자를 붙들고 기도하고 나서 "나는 당신과 같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들어가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3)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선교적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독점할 수 없습니다. 모두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클까요? 자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클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외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잔인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절규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이때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을 때마다 뜨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고 "우리가"하는 사람을 좋아해야 합니다. "내 교회가"하는 성도보다 "우리 교회"하는 성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파를 초월하고 국경을 넘고 피부 색깔을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더 하여야 믿음은 믿음으로 완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에 지식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우리나라 속담에도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알되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8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하였어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였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최고의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하나님의 예정은 당신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려고 하는 것이니 죽을 준비를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은 아무리 예정하고 계시더라도 기도하면 예정도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낯을 벽으로 향하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 그대로 예정을 바꾸어 주시고 15년의 생명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쳤습니다. 그럴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정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이삭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으니 부활시켜 주실 것을 믿었기에 이것이 힘이 되어 이삭을 바쳤다고 성경은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하나님의 성품은 지식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맛을 눈으로 보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맛은 혀로 보는 것입니다. 냄새를 손으로 만져 보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냄새는 코로 맡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소련에서 최초로 우주에 올라가 본 사람은 가가린입니다. 그가 우주에 갔다가 와서 말했습니다. <내가 우주에 올라가 보니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는 우주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빌리 그래햄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증명하여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방금도 골방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다가 나왔으니까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 분을 믿으면 그 분이 무엇이나 다 가능하게 하여 주십니다.

 

2. 내가 소속하여 있는 곳에 대한 지식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믿음은 믿음다워집니다. 가라고 한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왜 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느 주인이 종에게 시장에 심부름시킬 일이 있어서 말했습니다. <너 시장에 좀 다녀오너라.> 그리고 조금 있다가 찾으니까 그 종이 없어졌습니다. 분명히 시장에 갔다 오라고 하여서 대기 중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한참 만에 그 종이 주인 앞에 나타났습니다. <어디 갔었어? 시장에 갔다 오라고 했잖아?> 종은 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시장 갔다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왜?> <몰라요. 갔다 오라고 해서 갔다 왔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 졌을 가요? 지식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자기가 속하여 있는 주인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속한 직장이 무슨 일을 추구하고 어디로 가는 지를 잘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잘 나가면 소위 출세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의 뜻을 잘 파악하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옛 날 낭비를 아주 싫어하는 왕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이 이전에 보지 못 한 빛나는 큰 보석을 들고 한 신하에게 주면서 이 보석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예, 폐하! 엄청나게 비쌀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왕은 진주를 옆에 있는 신하에게 주면서 당장에 바닥에 던져 깨뜨려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하는 말했습니다. "폐하! 이렇게 크고 훌륭한 보석을 부수어 먼지로 만든다는 것은 낭비입니다" 그리고 깨뜨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왕은 그 옆에 있는 신하에게도 똑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신하도 거절하였습니다. 왕은 다른 몇 명의 신하에게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비싼 보석을 어떻게 깨뜨려 버리느냐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신하에게 큰 보석을 주면서 깨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하는 서슴없이 그 귀한 보석을 큰 돌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돌로 내리쳤습니다. 산산이 부서져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리고 "미쳤군!"하며 수군댔습니다.

이 때 왕이 말했습니다. "조용하시오. 이 신하가 내 마음에 드는 신하요. 당신들은 보석이 중하오? 아니면 내 말에 순종하는 것이 중하오? 나는 어느 신하가 내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가를 시험하고 있었소."

그 신하 한 명만은 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섬기는 주인의 성격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소속한 교회의 목표에 대한 지식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협력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손에 손을 붙들고 같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12345 꿈>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잘 나가고 있습니다. 1. 유일한 교회 2. 2,000교회 개척하는 교회 3. 3,000명이 예배드리는 교회 4. 40,000명이 방문하는 교회 5. 500,000,000원을 선교비로 지출하는 교회 지식이 분명하여야 행동이 정확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하고 내가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알고 믿고 나가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알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맞추어 주어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믿음에는 지식을 더하여야 합니다. 재작년 이 때 나는 이스라엘에 들어가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9월 11일 쌍둥이 빌딩 폭파 사건을 사건 한 복판에서 본 셈입니다. 온통 이스라엘이 수라장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곳곳 마다 비상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뉴스는 어디에서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거리에는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때였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적진인 아랍진영도 다녔습니다.

솔로몬이 1,000번제를 드린 기브온 산당을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당신들 전쟁과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군대가 지키고 있는 곳이지만 우리를 구경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내게 말했습니다. "맞다. 당신들은 우리 적이 아니다. 들어가서 돈을 쓰고 나와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관광을 하였습니다. 줄 설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인 브엘쉐바에 가니 관광객이 없어서 박물관 문을 닫아 놓고 있었습니다.

나는 전화로 박물관 직원을 불러내어 우리만 구경을 하였습니다. 갑옷도 입어 보았습니다. 박물관장이 직접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옛날 칼을 꺼내어 박물관장님과 칼싸움도 하였습니다.

저들은 우리 적이라는 것을 알고 전쟁 중이었지만 그들에게 접근하여도 된다는 지식이 힘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지식은 힘입니다. 지식은 신의 성품입니다.

 

3. 나에 대한 지식

무조건 믿는 것은 맹종입니다. 지식이 있고 믿어야 분명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내 주변을 알고 그 다음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항상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이기는 자는 성을 빼앗은 용사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나도 나를 잘 알지 못 합니다. 남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더 정확하지 못 할 수가 있습니다. 남의 들보는 보면서 내 눈에 티끌은 보지 못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에 대한 지식이 확실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에 대하여 두 가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전문화시대이기에 한 가지만 잘 하면 됩니다. 두 가지를 잘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가지에 최고 전문가가 되면 그 방면으로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금요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 밤 12시 30분경 TV를 틀었습니다. 풍물 기행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미국 네바다 주 어느 한 마을 이야기였습니다. 갑자기 그 내용이 내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평원이 수 백 km 펼쳐지고 있는 중간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차가 달리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들어와 기름을 넣는 주유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고 달리다가 정 피곤하면 와서 자는 여관 한 개가 이 마을 전부였습니다.

물론 주민은 총 7명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가다가 기름이 떨어 졌습니다. 그 여인은 기름을 넣으러 그 마을에 들어갔다가 그 마을에 반해 버렸습니다. 조용하고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친절하고 한 가정 식구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지상 천국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줄 사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같이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여자의 직업은 발레 춤을 추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마을에 극장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발레였습니다. 매일 혼자 그 극장에서 발레 춤을 추었습니다.

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것이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여 보아야 7 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35년간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자 발레를 침묵 속에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집념이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은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극장 벽에 사람들을 빼곡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림 관객 앞에서 즐겁게 혼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름을 넣으러 왔던 이들이 발레를 구경하고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관에 자러 왔던 이들이 관람을 시작하였습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60세가 넘었습니다. 혼자서 35년간 발레 춤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극장에서 침묵 속에 추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여자의 춤보다는 그 여자를 보러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 7명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그 마을은 이제 큰 마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지금도 행복 속에 발레를 하면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보도였습니다. 한 가지만 잘 하면 됩니다. 장점이 무엇인지 알아 그것을 잘 하면 인생은 풍요하여질 수 있습니다.

(2)단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느 사람은 돈에 약합니다. 가룟 유다가 그렇습니다.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이성에 약합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에 약하였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였습니다. 그 남편까지 죽이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약합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노아는 당대 제일의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술에 약하였습니다. 술을 마시고 대낮에 벌거벗고 누울 정도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에 약합니다. 아도니야가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을 왕으로 지목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명예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혈기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정열적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혈기에 약하였습니다. 그래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몇 바퀴 계속 돌아 본 적이 있습니다. 동 서 남은 모두 낭떠러지입니다. 그러나 북쪽은 평지입니다. 그래서 다윗부터 지금까지 약 3000년 동안 적군이 쳐들어 왔다 하면 북쪽이었습니다. 북쪽은 약한 성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침범하기 어려웠습니다. 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약한 곳을 마귀는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약한 곳이 어느 곳인지를 알아서 잘 대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지식을 정확히 파악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덕을 더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더 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 더할 것은 지식입니다. 무슨 지식입니까?

1. 하나님에 대한 지식 2. 내가 소속하여 있는 곳에 대한 지식 3. 나에 대한 지식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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