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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만 하는 교만! (잠 18:2)

by 【고동엽】 2022. 1. 4.

자기 말만 하는 교만! (잠 18:2)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베르디는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이태리 밀란에서 베르디를 추모하는 오페라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 오페라를 지휘할 것이지 의논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두 명의 명지휘자가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두 명 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습니다. 한 명은 토스카니니이고 다른 한 명은 마스카그니였습니다. 두 명을 놓고 갑론을박 싸우다가 결국은 두 명 다 지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긴 부분을 둘로 나누면 되기 때문입니다.

마스카그니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한 마스카그니는 자기는 토스카니니보다 유명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어야 지휘하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를 지휘자로 모시지 않으면 오페라 권위가 없어지니까 더 많은 돈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스카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런 귀한 오페라에 지휘자로 선택된 것만도 감사합니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나는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돈을 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무료로 봉사하며 지휘하였습니다.

오페라가 끝났습니다. 겸손한 마스카그니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토스카니니의 인기는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미련한 사람은 명철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만 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이 그 단체에 끼어 있으면 안 좋은 일만 일어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분렬이 일어납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 의사만 주장합니다. 그러면 그 의견에 따를 수 없는 사람은 분렬되고 맙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이 있으면 분렬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얼마나 살기 힘들었겠습니까? 철판을 밖에 놓고 30분 정도 지나 달걀을 깨뜨려 놓으면 흰 자위가 후라이가 되는 뜨거움이 있는 사막입니다. 물 한 포기, 나무 하나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40년을 집도 없이 텐트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때 잡족들이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고자 하는 가나안 땅은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이란 거인이라는 말입니다. 거인들이 좋은 무기를 가지고 높은 성을 쌓고 살고 있다는 정탐꾼의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팽팽하게 두 의견이 맞섰습니다. 어느 한 편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결국 하나님은 진 끝에서 불이 나와 사람들을 타 죽게 하는 벌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에는 법궤에서 가장 먼 곳부터 임하게 하셨습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여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중에 붙여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곳 이름은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중에 붙은 연고라> (민11:1-3)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살라 죽이실 때 진 끝부터 불이 붙게 하셨습니다. 진 끝이란 하나님과 멀리 있는 곳부터 불살랐다는 말씀입니다.

법궤로부터 가장 먼 곳, 성막으로부터 가장 먼 곳,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부터 차례로 멸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가까워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 부리며 교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멸하십니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이 고집을 부리면 분렬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가끔 회의를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릅니다. 손금도 다릅니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다른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이 나오더라도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인정하여 주어야 합니다.

미국 아미쉬 사람들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달라도 틀리지 않다> 이 말은 그 공동체를 지키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다 인정하고 그 사람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로 만든 것입니다. 자기 의사만 들어내고 <그럼 난 안 해> 그리고 퇴장하면 회의 분위기는 깨지게 되고 남아 있는 사람이 무한하게 됩니다.

끝까지 의견을 조율하고 끝까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결정이 되면 따라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게 되면 그 공동체에는 분렬이 일어나게 됩니다.

 

2. 지혜를 배척을 합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미련한 자의 특징은 명철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장 옳다고 자기주장만 합니다. 사울을 예로 들어 봅니다. 사울은 왕이 될 때에만 하여도 지극히 겸손하였던 왕이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삼상 9;21)

그러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며 점점 교만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가지 교만이 사울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는 월권의 교만입니다. 사울은 왕이지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제사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사무엘 제사장이 7일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백성들이 도망치며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 하고 자기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삼상 13;12) 사울이 대답하였습니다.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 13;11-12)

사무엘이 꾸짖었습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 13;13-14)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왕을 세울 준비를 하셨습니다. 즉각 회개하고 사울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섰으면 하나님은 사울을 계속 왕으로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는 큰 죄를 범하였지만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데 침상이 둥둥 뜰 정도로 회개하니까 다윗을 하나님이 끝까지 사용하신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두 번째 교만 죄를 또 범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하고 있었습니다. 풍전등화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나와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외쳤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은 시기와 질투의 교만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데려 가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지만 이제는 생명을 거두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쫓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삼상15: 11)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 23)

이렇게 사울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도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 14) 그러나 다윗이 수금을 가지고 사울왕 앞에서 연주하였습니다. 상쾌하게 사울의 병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16: 23)

그러나 사울은 다시 교만하여졌습니다.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단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삼상19: 10)

사울은 라마 나욧에 있는 다윗을 잡으러 세 번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직접 갔다가 큰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았습니다. <사울이.....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었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삼상19: 23-24)

그렇게 성령을 받고도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는 제사장 85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삼상22: 18)

그러나 다윗은 동굴 속에서 사울 왕의 옷자락만 베지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고 사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 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삼상26:21)

이렇게 말하고도 사울은 다윗을 다시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도망하였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훗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불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삼상27:1)

그 후 사울은 결국 자살하였습니다. <그가 병기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든 자는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 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삼상31: 4) 결국 사울은 비참하게 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입니다. 위나라 문후가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어떤 왕으로 생각하는고?> 신하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책황이라는 신하가 왕 앞에 설 차례였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아니 옵니다. 언젠가 중상국을 토벌하신 후에 그 곳에는 소신을 봉하셔야 마땅한 데 황 태자를 영주로 세우셨습니다. 도리에 어긋난 처신을 하신 왕이시기에 어지신 왕이라 할 수 없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였습니다. 문후 왕은 이 신하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임좌 신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임좌가 무슨 말을 할 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왕이 물었습니다. 임좌가 대답하였습니다. <자고로 어진 임금 밑에서는 직언하는 신하가 난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책황은 확실히 맞는 직언을 하였습니다. 이런 신하가 왕 밑에 있다는 것은 왕이 어진 왕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말했습니다. <허허.... 참 옳은 말이로고. 내가 책황에게 큰 잘못을 할 뻔 하였구나> 그리고 책황을 다시 불러 드렸습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련은 지혜를 배척한다고 하였습니다.

 

3. 발전이 없습니다.

미련하여 자기 말만 하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속해 있는 공동체도 발전이 없습니다. 부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자기 교만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자기가 제일입니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그러면 지혜가 배척을 합니다. 그러니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부흥회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미국 어느 교회 이야기입니다. 교인 한 명이 자기는 순수한 보수주의라고 외치면서 교회에서는 복음성가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순수한 찬송가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라며 자기 나름대로 주장을 폈습니다.

복음 성가는 타락한 청년들, 믿음 없는 사람들이나 부르는 천박한 유행가라고 깍아 내리는 이였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복음 성가를 부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주자가 반주하고 교인들은 불렀습니다. 그 후 그 반주자를 그 사람이 은밀히 불러서 호통을 쳤습니다. <너 목사님이 아무리 복음성가를 부르자고 하여도 반주하지 말아. 만일 반주하면 내쫓아 버릴 것이다>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 후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다가 <내게 강같은 평화를 부르십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반주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가 되었고 고리타분한 교회가 되어 교회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교회 건물 유지조차 어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만한 이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합니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개인, 발전이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어느 시골 작은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가 있었습니다. 신부를 돕던 소년이 실수하여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떠는 소년의 뺨을 치며 버럭 소리쳤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성만찬을 떨어뜨리는 엄청난 죄를 지었다.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소년은 그 일 이후 일생동안 천주교에 발을 딛지 않았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공산주의 대 지도자인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반대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큰 도시에 있는 천주교회에서 주일 미사가 있었습니다. 신부를 돕던 소년이 역시 실수하여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놀라 떨며 금방 울 것 같은 소년을 사랑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괜찮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잖니?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단다. 너도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이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입니다.

너무 자기주장대로만 살면 안 됩니다. 양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에게 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를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편안합니다.

지금도 시골 잔치에는 돼지를 잡습니다. 잔치에 돼지를 잡게 된 유래를 이솝우화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부자 집 농가의 막내딸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받는 가축들이 주인을 위해서 보답을 하고자 모였습니다. 회의가 벌어졌습니다. 소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이 집에 오래 있었으니 회장이 되겠소” 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개회를 선언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집 주인의 사랑받는 따님이 결혼하는데 누가 잔치 때 잔치상의 제물이 될 것인지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주인을 위해서 할 일 없는 동물이 죽는 것이 좋겠는데 여러분 의향은 어떻습니까?” “좋소” 모두는 만장일치로 결의되었습니다.

먼저 소가 “나는 주인님의 농사일을 해야 되니까 지금 죽을 수 없소. 짐도 날라야 되고 밭도 갈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나귀가 “나는 주인님을 태우고 다녀야 되고 이번에 결혼할 막내 따님도 모시고 가야 되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되겠소.”하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개가 나와서 “나는 주인님의 도둑을 지켜야 되니까 죽을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성큼 올라서서 “나는 주인님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들을 지켜야 하니까 죽을 수 없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닭이 일어서서 “꼬끼오” 하면서 “나는 이렇게 새벽마다 울어서 주인 깨워서 일 시켜야 되니까 나는 죽을 수가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하는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돼지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나는 주인의 것을 먹고 한 일 없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그저 주인 따님 잔치에 내가 죽겠소.” 그래서 돼지가 잔치마다 잡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희생하고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게 되면 세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1. 분렬이 일어납니다.

2. 지혜를 배척을 합니다.

3. 발전이 없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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