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 (출애굽기 4:1-4)/(고)이중표목사
인류 역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또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간 위대한 사람들의 거의 공통된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입니다. 자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에게서만이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개발해서 위대한 인간을 성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이런 생각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모든 좋은 것은 다 남에게 있고 그리고 모든 보화는 다른데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왜 아무것도 없나 그리고 나는 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나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은 거의가 다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낸 사람들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또는 어떤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찾아서 그 보화를 개발하고 위대한 그런 승리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 각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속에 감추어진 보화,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시고 내 속에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추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화가 내게 있는 것을 찾아내는 그 생각, 그 마음, 그 눈, 그리고 우리의 손과 발 모든 자산이 다 내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우리 교역자들과 함께 거제도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에서 인간에게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제일의 조선소가 바로 거제도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들어진 배는 세계 일급 수준의 배를 만들어서 세계 모든 사람들을 감탄케 하는 그런 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배 한 척이 우리 한국돈으로 2천 500억원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배들을 1년에 50척을 만들기 때문에 한주간에 배가 한 개씩 나오는 그런 기적같은 사실을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순수한 한국의 기술로 엔진에서부터 마지막 포장까지 전부 한국의 기술로 만들어지는데 저는 방문록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놀랍도다 한국인의 저력이여,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길이 뻗어나라 대우조선
그렇게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라고 일필휘로 휘갈겨서 내가 싸인을 했어요.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외도라는 섬을 가보았습니다. 그 섬은 43000평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섬인데 1969년 이창호라고 하는 고등학교 선생이 낚시를 갔다가 폭풍을 만나서 육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섬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 섬에 3세대가 살고 있는데 그 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 순수한 인간미에 매력을 느끼고 인연을 맺어서 관계를 맺다가 드디어 그 3호수를 육지로 이주시키고 거기에 그가 들어가서 약 30년동안 섬을 개발합니다. 그의 땀과 눈물을 쏟아서 정성을 다해서 그의 청춘을 불살라 섬에 지상의 낙원을 만듭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송이 어느 것 하나 그의 손자국이 들지 않는 흔적, 모든 흔적을 다 남기는데 결국 에덴동산의 모든 성서적 의미를 담아서 그 섬을 개발했는데 그 비밀은 그는 신앙인의 믿음의 저력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그마한 교회를 세워놓고 예배를 드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한 사람의 저력이 남겨놓은 위대한 작품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거제도에 있는 장애자의 마을 애광원이었습니다. 김임순 장로님이 50년 전 28살에 홀로 되어 그곳에 들어가서 50년동안 지체 장애자들을 위하여 돌보면서 세계적인 장애마을로 만들어 거기에 사랑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학생이 약 500여명의 지체 장애자들이 거기에서 배우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로 자비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원장은 우리 교단의 장로님이시고 또 막사이상을 받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 그 놀라운 가능성 과연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런 가능성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정도로 가능성을 개발해 가고 있는가 인생을 이대로 끝낼 것인가 과연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을 것인가 혼자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개발하고 있는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어느 정도로 성취하고 있는지요. 한번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모세, 그에게 들여준 음성이 오늘 우리의 심장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으로 부르셔서 일을 시작할 때 그는 계속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못합니다.” 변명이나 핑계를 계속 다섯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여기 출애굽기 3장 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3절 읽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4장 1절 읽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10절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3절 읽겠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계속 모세는 다섯 번이나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하나님은 진노하셨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지을 때만 진노하고 내가 악한짓 할 때만 진노하는 줄 알지만 그보다 또 한가지 무서운 진노가 있는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하면서 “나는 못합니다.” 하고 핑계대고 변명할 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서 그에게 가혹한 책망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일하려고 하실 때 묻는 말씀이 딱 있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약속입니다. 이 두 가지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실 때에는 없는 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이게 처음 창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없는 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없는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일하지 않습니다. 없는 것도 있게 하신 하나님, 그것은 처음 창조 때에 해당되는 얘기지 지금은 없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있게 하셨으니까요. 이제 없는 것에서 뭘 나오라고 하나님은 하지 않습니다. 전부 있는 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네게 있는 것이 뭐냐,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할 때에도 죄를 지어서 의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죄인도 이대로 가지고 “네게 있는게 뭐냐?”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오너라” 그러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예, 병입니다.” “병을 가지고 오라 내가 그 병을 통해서 일하리라” 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예, 문제이옵니다.” “문제를 가지고 오너라 문제가 없는 사람은 내가 일할 수가 없다. 문제를 가진 자에게 내가 일을 하느니라”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생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괴로움이 있습니까, 질병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못한다고 하는 그 변명하는 모세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물으시는 질문이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말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있게 하시고 또 하나님은 이제 내게 있는 것을 찾으셔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를 믿지 않는 것은 이게 바로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또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계획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무능한 존재라고 탄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만심을 갖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완전히 좌절하는 것은 더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만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는 사람은 자살을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음속에 우월감을 갖고 자만심의 어떤 의욕을 갖는 것 자체는 자기가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포기해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상 끝장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죽을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은 더 악한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인 승리자로 만드는 것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무시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싹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지라도 내가 나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나만이라도 나를 좋아해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만은 나를 사랑해야 됩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대로 자기 존재에 대하여 신성한 자존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가장 무서운 전략은 뭐냐? 나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고 나 자신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가장 무서운 전략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자가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요. 남이 나를 사랑하기 전에 내가 사랑해야죠. 남이 나를 좋아하기 전에 내가 나를 좋아해야죠. 남이 나를 인정하기 전에 내가 나를 인정해야죠. 그래야 세상에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세에 미디안에 들어가 80세가 될 때까지 그는 그가 모든 것을 상실해 갑니다. 그는 젊음의 박력을 다 잃어갑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내 인생은 끝장이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또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바로의 궁궐 속에서 그 당시의 세계의 문화 속에서 내가 지성과 무예를 배웠는데 이제 나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는가 나는 이제 바로의 궁궐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봤는데 이제 미디안 광야에 내 눈에 비취는 것은 양떼와 가시밭길 밖에 없지 않는가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나에게는 없다는 그런 좌절감으로 자기를 이제 실망시켜가고 있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생각해보면 지금 모세에게는 다 없어져버렸지만 그래도 그 손에 그가 마지막 양떼를 치고 그가 그것 때문에 자기 장인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 수 있는 그 지팡이, 지팡이는 양떼를 인도하는 것이요, 또 피곤할 때는 지팡이를 의지하고 그가 길을 걷는 도구요, 그 지팡이는 무서운 어떤 야수가 침입하면 그것으로 막는 무기요, 그의 생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 잃어버렸지만 지팡이가 남아있는 것을 아시고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예, 지팡이니이다.” “지팡이를 던져라” 땅에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어 달려들 때 모세는 피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야 이 뱀의 꼬리를 잡아라” 꼬리를 딱 잡을 때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모세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독사를 지팡이로 잡았습니다. 모세는 이제 놀라운 표적을 보았습니다. 독사를 손에 쥔 위대한 능력을 그는 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슨 큰 능력이나 큰 어떤 표적을 그에게 준 것이 아니고 단 지팡이 하나의 표적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런 기적적인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진 것이 뭐가 남아 있습니까 이제 없는 것을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을 개발하면 됩니다. 우리가 부부간에 살면서도 없는 것을 얘기하면서 불평스럽게, 짜증스럽게 사는 부부가 많이 있습니다.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자기 자녀를 보면서 다른 아이에게 없는 것을 보면서 아들을 주눅들게 만들고 윽박지르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그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의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목사를 보면서도 목사에게 어떤 약점만 보면서 불평하는 교인이 있고 목사의 가능성을 보면서 기도해 주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는 언제나 좋은 것과 장점을 보고 그리고 부정적인 사람은 약점을 보면서 어두운 면을 봅니다. 똑같은 병원에 들어가지만 병원에서 치료받고 건강하게 나오는 사람을 보는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영안실로 들어가는 사람들만 보면서 ‘이 병원은 사람만 죽네.’ 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자신에게서 없는 것, 조상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탄식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있는 것을 개발해서 위대하게 성취해가는 승리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빈센트 빌 목사님은 유명한 상담가였습니다. 어느날 52살 된 한 중년 신사가 눈빛이 흐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은 잠잠히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쩐 일이시옵니까?”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했고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마지막 상담 하고 내 인생을 정리하려고 왔습니다.” “앉으시지요.” 따뜻하게 그를 맞이하고 “그렇게 다 잃어버렸습니까” “예, 한때 잘 나가다가 경제 공황으로 인해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 남은 것은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안심시키고 조용히 이런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아무것도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한번 찾아보시죠.” “찾아보시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찾겠습니다. 선생님 집안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까?” “예, 30년 같이 산 아내가 있습니다.” “소중한 분이군요. 또 묻습니다. 선생님에게 자녀가 몇이나 있습니까?” “예, 착하게 자라고 있는 삼남매가 있습니다.” “아, 하늘같은 보화구만 또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친구가 있는지요.” “예, 그래도 망하면서도 의리있는 친구가 몇이 있습니다.” “아,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들이구만 또 묻겠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래도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요즘 세상 나라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래도 세상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마지막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아! 선생님은 엄청난 것을 가지고 있군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하고 지금 있다고 고백한 것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처음으로 그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목사님, 제게 참 보화가 많이 있군요. 이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드디어 그 형제는 그렇게 눈동자가 흐리면서 좌절감에서 찾아왔던 그가 돌아갈 때는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10년후에 그 인생은 완전히 성공적인 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이 내 안에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그것은 제쳐놓고 시시한 것만 없다고 탄식하며 살아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게 있는 것 오늘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남의 자식 부러워 말고 내게 있는 자녀 사랑하십시오. 남의 남편 눈 흘기지 말고 내 남편 소중히 알고 눈을 뜨세요. 남의 아내 옆눈질하면서 눈 흘기지 말고 제 호박같은 아내라도 살아있는 게 고마워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세요. 남의 교회에 다니면서 목사 눈 흘기지 말고 ‘우리 목사 좋다.’ 한번 생각하고 믿어보시죠. 오늘도 예배드릴 때 웃음이 확 나올겁니다. 내게 있는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 20절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무슨 지팡이입니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양떼를 거느리던 그런 미디안 광야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그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양떼를 거느리던 그런 지팡이가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지팡이로 그 지팡이를 잡고 걷던 연약한 모세가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당당하게 그는 출애굽을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 말씀을 듣고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를 때 홍해가 딱 갈라져 육지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지팡이로 호렙산 반석을 쳐라” 할 때 반석이 깨지면서 생수가 흘러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이 마셨습니다. 드디어 모세의 지팡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내는 위대한 하나님의 지팡이였고 목말라 갈증에서 사경을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수를 마시는 하늘의 기적의 지팡이었습니다.
인생은 짧고 허무합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삼으사 그런 기적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게 잇는 재능이 내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능으로, 내게 있는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으로, 영생으로, 내게 있는 물질이 내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물질이 되어 기적을 이루는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주께서는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 그러나 이 지팡이가 땅에 떨어지면 다시 독사가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마지막 남은 것을 가지고 지팡이를 삼으려고 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팡이는 의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지팡이를 의지하는 사람들, 늙으면 늙어가면서 무엇인가 의지하려고 할 때 그것은 독사가 되어 나를 물려고 달려든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을 지팡이로 의지하고 거기에 살려고 할 때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많은 근심으로 나를 찔렀도다. 자식을 지팡이 삼아 살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자식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독사처럼 물려 가슴에 한이 멍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땅에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가 그 사람으로부터 버림당하여 한맺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땅에서 권력을 지팡이 삼았다가 권력으로 마지막 물려 죽는 권력자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지금 무엇을 지팡이로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지팡이 삼으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꾸세요. 그것을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세요.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예, 100살에 마지막 늙은 나에게 주신 아들 이삭이 있나이다.” “그 이삭을 내게 바쳐라” 모리아 산에 그 아들 이삭을 바치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 시돈땅 사르밧 과부에게 묻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밀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 있나이다.” “그래 그것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대접하라” 드디어 시돈땅 사르밧 과부는 기름통을 털고 밀가루 통을 털어서 마지막 먹고 죽어야 할 그것으로 주의 종을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은 밀가루와 기름통이 흉년에 마르지 않게 했습니다.
저 벳새다 광야에 장정만 5천명이 모인 자리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하룻길을 헤매고 온 허기진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누가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안드레 회중을 돌아다니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든 어린 아이 도시락을 들고 와서 “주여 이것이 있나이다.” “그래”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할 때 5천명이 먹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베다니 마리아에게 “네게 있는 것이 뭐냐?” “예 나드산 향유가 있습니다.” “그래 그 옥합을 깨뜨려 내 머리에 부어라” 예수님 머리에 부었던 마리아의 향유 하늘 보좌를 진동했고 오늘도 복음이 있는 곳마다 그 향기가 우리의 가슴을 진동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묻습니다. “록 펠러야” 그는 처음 월급 2달러를 주급으로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난 록 펠러가 그 돈을 받고 감사하고 있는데 주께서 묻습니다. “록 펠러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뭐냐?” “예, 2달러입니다.” “십일조를 바쳐라” 드디어 록 펠러는 20센트 십일조를 처음으로 바쳤습니다. 그는 훗날 100만달러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내가 주급 20센티를 바칠 때의 그 감격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이 축복을 내게 주셨노라고
저는 어제 저 영국에 있는 우리 조원태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메일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한번도 자기의 그런 어려움을 나에게 얘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유학 중에 학비 때문에 고통 당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도 나에게 얼굴빛 하나 보여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자기 어머니를 버렸고 집을 나갔기에 나는 어린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갈 곳이 없어 서울로 올라와 한신교회당에서 철야를 하면서 야간신학을 해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고아원에서 교회를 다니는데 마침 제가 다니던 교회에 성전건축을 하게 되었기에 헌금하고 싶은 초등학교 학생이 감동을 받아가지고 6개월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신문 배달을 해서 20만원을 성전건축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전도사가 되어 자기가 목사가 되기까지 유학을 꿈꾸면서 모은 돈이 6백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인도 선교사로 이옥희 목사님께서 가신다고 하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감동이 되어 그것을 그냥 그대로 바쳐버렸습니다. 저는 겨우 여비만 들고 영국에 갔습니다. 제 아내를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고 저는 저대로 또 청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데 하나님게서 제 작은 것을 받으셨는지 얼마나 은혜를 많이 주시는지 저는 버밍엄에 호세아서 11장을 가지고 박사 학위를 구약을 공부하고 있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기차를 타도 눈물이요, 도서관에도 눈물이요, 목사님께서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그 위대한 신앙 순교자의 영성으로 제게 가르쳐 준대로 저는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런 편지가 쭉 왔는대요. 얼마나 감동이 되고 내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해서 내게 있는 무엇인가 드리고 싶은 그 마음,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믿으면서 무슨 감동이 오고 있습니까 오늘 무슨 감동이 오고 있습니까 내 시간이 있습니까, 내 재능이 있습니까, 내게 물질이 있습니까, 건강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마음을 드리고 싶은 그 예배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내게 있는 것을 열납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생애가 기적의 생애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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