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라! (누가복음 10:30-36)/(고)이중표목사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받아야 할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은 건강의 복입니다. 우리가 출세는 못해도 건강하게 살아야 되고, 부자는 못되어도 건강하게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은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병들면 세상이 자기 세상이 아닙니다. 병들면 세상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천국도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병들면 물질을 가졌어도 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사는 자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영광도 누릴 수 있습니다.
건강에는 육체적인 건강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비뚤어지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마음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건강의 뿌리가 되는 영혼의 건강입니다. 내 영혼이 건강할 때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명으로 받아 그 말씀의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병은 상처를 통해서 우리에게 침투합니다. 육체도 어느 부분에 상처를 입을 때 그 상처가 곧 병으로 응어리지게 됩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깊은 상처를 남겨 결국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갑니다. 내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 그 인생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상처를 치유하면서 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 성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마다 육체, 마음, 영혼이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다"(사 1:6)라는 예언자의 말대로 모두 다 크고 작은 상처들로 응어리져 있습니다.
상처는 우리 인생을 탄식하게 만들고, 부정적으로 만들고, 우리 인생을 실패자로 만들어갑니다. 상처는 자기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가족, 내 이웃, 공동체, 나라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상처의 증세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할 때 불안감, 우울증, 소외감, 수치심, 무가치함, 열등감, 분노, 정신착란, 강박감, 불신감, 공포심, 이런 여러 형태의 증세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처를 받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우리가 직장에서 버림을 당한다든지, 인간관계에서 왕따를 당한다든지, 동료로부터 멸시를 당한다든지, 수모를 겪게 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든지 소외당할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사업의 파산에 의한 상대적 빈곤, 가난이 가져오는 인간의 처절한 고통, 사업의 실패, 채무의 압박, 이런 것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둘째,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있습니다. 부모의 학대, 억압, 멸시,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불신, 언어의 폭력, 자녀들로부터 받는 소외감, 이런 것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6·25전쟁 직후 한 노 부부가 포대기에 쌓인 채 길에 버려진 한 아기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다 길렀습니다. 이 아이는 얼굴이 하얀 백인 혼혈아였습니다. 부부는 이 아이를 친아들처럼 정성스럽게 키웠고 6년 후에는 아이를 친생자로 등록까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여읜 후에는 양아들에게 호주를 승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양아들은 홀로 된 어머니를 부양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노모는 키워준 은혜를 저버린 아들과 친생자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서 가정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판사는 양아들이 "키워준 은혜를 모르고 부모를 저버린 점이 인정된다"며 노모의 희망대로 모자관계를 파기시켰습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민자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백인들 속에 끼어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활고의 시달림, 국제결혼으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자녀들과의 대화단절로 인한 부모의 소외감, 인간적인 고뇌 이런 것으로 상처받은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가 끊임없는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 세 곳입니다. 저들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상처, 가정에서 생기는 불화와 갈등을 교회에 와서 쏟아놓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폭발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민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민 집회 가면 꼭 치유에 대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어떻게 저들의 상처를 치유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건전한 인격자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상처가 많습니다. 외세의 침략, 6.25의 민족전쟁, 냉전시대 50년을 겪어오면서 수많은 차별과 학대, 억압 속에서 시달려온 한이 우리 속에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분출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보십시오. 노사 갈등, 지역 갈등, 세대차이 이런 것이 다 이 민족이 가지고 있는 상처 때문에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상처는 인격적으로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병든 사람은 건전한 정신을 갖지 못합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있는 열등의식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고 화를 냅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둘째, 상처는 가정생활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상처가 가장 쉽게 표출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부부생활을 행복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가정의 실패 원인은 서로의 감추어진 상처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남편, 자식에게 언어폭력을 하는 어머니, 아버지로 인하여 상처를 받습니다.
셋째, 상처는 자녀에게 유전합니다. 부모의 상처는 자녀에게 유전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상처를 입고 부모를 증오하면서 그대로 닮게 됩니다.
어떤 분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본 자식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반감이 상처로 응어리져서 이런 다짐을 합니다. '나는 결단코 우리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으리라.' 그런데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결혼한 후에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아내에게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라고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지만 자기 뜻대로 안되었습니다. 아내가 목사님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남편과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한마디를 물었습니다. "시댁에 대해서 아십니까? 남편의 어린시절을 알고 있습니까?" "남편이 어렸을 때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에게 똑같이 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면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치유해야 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넷째, 신앙생활이 온전치 못합니다. 마음 속에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건강해야 하나님도 온전히 사랑하고, 은혜도 온전히 받고, 충성도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마귀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만듭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습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선악과를 왜 먹었느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내게 줌으로 먹었나이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이제 이 여자 없이는 못삽니다. 이 여자는 나의 생명입니다."라고 말했던 그 입으로 "이 여자 때문에 내 인생 망쳤습니다. 못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상처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창조의 형상을 상실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큰 아들 가인이 들 가운데서 동생을 돌로 쳐 죽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을 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면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형제의 의를 단절하는 무서운 인간으로 전락했습니다. 부모의 상처가 자식에게 대물림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내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다가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과 상종도 하지 않는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자기 나귀에 태워서 주막집에 데리고 가서 그를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떠나면서 주막집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와서 갚으리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율법사에게 말씀하시고 질문을 합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는 무관심하고 자기 유익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상처난 사람들을 치유해주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남을 억울하게 만들거나,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혹시 나 때문에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슴을 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비극입니다. 가정에 돌아가서 내 아내, 내 자녀, 그리고 내 이웃, 내 형제들에게 아픔의 상처가 있다면 치유해주고 돌봐주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내 상처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아야 됩니다. 내가 병들고서 누구의 병을 고쳐주겠습니까 아픈 사람이 누구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내 속에 있는 상처가 신음하고 있는데 누구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나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처방이 있습니다. 영양요법, 요양요법, 투약요법입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됩니다. '먹어야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서 세 가지를 먹어야 됩니다. 첫째, 자연식품을 먹어야 됩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도 먹고, 물도 마시고, 공기도 호흡해야 됩니다. 둘째,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내는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녀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됩니다. 엔돌핀이 솟아나고, 혈관이 부드러워지고, 세포가 춤을 춥니다.
성경에서 제물로 쓰이는 짐승이 셋 있습니다. 소, 양, 비둘기입니다. 이 중에서 소는 레위기 1장에서 제일 먼저 나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소를 봤는데 미국 소는 넓은 농장에서 재배한 옥수수를 먹고 삽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소는 좁은 외양간에 가두어 놓기 때문에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또 미국 소는 사나운 반면 한국 소는 착합니다. 벼농사 지으면 볏짚은 소가 먹고 쌀은 주인에게 줍니다. 콩 농사 지으면 콩깍지는 소가 먹고 콩은 주인에게 줍니다. 고구마 농사 지으면 고구마 넝쿨은 소가 먹고 고구마는 주인에게 줍니다. 그래도 소는 전혀 불평하지 않고 주인 에게 순종합니다. 주인의 밭도 갈아주고 짐도 날라줍니다. 소는 죽어도 주인을 유익하게 합니다. 가죽은 벗겨서 옷, 핸드백, 구두 만들고 고기는 도가니탕, 설렁탕, 꼬리곰탕, 안심, 등심, 갈비, 내장탕,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소가 주인에게 희생적인 존재가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24시간 새김질하기 때문입니다. 영양이 없는 여물을 먹어도 24시간 새김질해서 영양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예수 믿기 전에는 소가 새김질하는 소리가 여물 먹는 소리로 들렸는데 예수를 믿은 후로는 새김질하는 소리가 "아멘 아멘" 하는 소리로 들려왔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먹으면 신령한 은혜를 받고 신령한 살이 찌게 됩니다. 신령한 은혜를 받으면 열심히 일해서 부스러기는 내가 먹고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아멘으로 먹는 자는 은혜를 받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주야'는 낮과 밤입니다. 낮은 밝고 밤은 어둡습니다. 그래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잘될 때나 안될 때나, 기분 좋을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약할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먹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없는 사람은 주야로 섭섭한 것, 억울한 것만 묵상합니다. 주야로 감사를 묵상하십시오.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마음속에 사랑을 담으십시오. 불행한 것을 자꾸 머릿속에 생각하면 인생이 더 부정적으로 변화합니다.
며칠 전에 한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초등학교시절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살 길이 막막하니까 저와 제 동생을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떨어지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에서 예수를 믿게 되면서부터 저는 예수님을 저의 유일한 희망으로 삼았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지내던 어느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갈릴리 나사렛 천대받는 땅에서 태어났다. 하늘 가문을 버리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흠모할만한 용모나 풍채도 없이 태어났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애굽으로 피난 가는 처절한 신세가 되었다.' 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는 주님에 비하면 출생이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록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 왔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받도록 나를 출생시킨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사에 대한 꿈을 품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소와 돼지가 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돼지는 미워하고 소만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돼지가 소에게 물었습니다. "소야, 우리 둘 다 이 집에서 똑같이 사는데 왜 사람들이 나는 미워하고 너는 좋아할까" 그때 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나 나나 똑같이 주인을 위해 죽지만 너는 살아서 주인에게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살아서 주인에게 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얼마전에 양수리 수양관에서 알파코스 주말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가운데 유언장을 써서 발표하는 순서가 있는데 진행 순서는 이렇습니다. 유언장을 읽기 전에 먼저 자리에 눕히고 흰 천으로 온 몸을 덮습니다. 그리고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이때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어서 주변에 둘러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유언장을 읽습니다. 유언장 중에 한 집사님이 자기 아내에게 쓴 유언장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을 만난 지 수십년 당신은 착한 아내였지. 나는 당신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가오. 당신을 생각할수록 내 마음은 한없이 슬프오. 그동안 살아온 것을 회상하니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소 미안하오. 사업의 쓰라린 고통을 통해서 당신에게 압박감을 주었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때로는 눈물도 흘리게 했지. 그러나 내 마음만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소. 내 가진 소유를 그대에게 다 주노니 그대 필요한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쓰시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작성된 유언장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전달하도록 합니다. 유언장을 읽을 때 얼마나 상처가 치유가 되겠습니까
셋째, 남의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안히 쉴 곳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풀 곳은 이 세상 어느 곳도 없습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쉴 곳 아주 없습니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요. 돌아갈 피난처인 내 교회 여기일 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쉼을 얻어야 합니다. 쉴 곳은 아버지 집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와서 말씀 듣고 은혜 받아서 풀고, 기도로 풀어야 됩니다.
저는 어린시절 우리 어머님과 함께 받았던 은혜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시집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친정에 가서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밤새도록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자기 속에 있는 사정을 다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목회하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친정집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 친정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요, 성령님은 우리 친정 어머니와 같은 분이다.'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로 다 내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위로하시면서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유일한 처방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었습니다. 우리가 치유를 받고 건강한 자가 되었다면 가정과, 직장과, 사회로 들어가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어야 됩니다.
며칠 전에 박윤성 집사님 어머니께서 봉투를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거 집 판 돈입니다. 목사님 쓰시고 싶은 곳에 쓰세요." 봉투 안에 3억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어요. 귀한 돈을 잘못 쓰면 안되니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안산의 들꽃피는마을 김현수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가출 청소년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건물을 샀습니다. 이제 상처받은 청소년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로 만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상처받은 부모님, 상처받은 노인, 상처받은 청소년, 상처받은 성도, 이웃들을 치유해주는 자비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손에 있는 것! (출애굽기 4:1-4)/(고)이중표목사 (0) | 2022.01.02 |
---|---|
살아있는 믿음! (야고보서 2:14-17)/(고)이중표목사 (0) | 2022.01.02 |
예수를 배우라.- 마11장28절~30절 (0) | 2022.01.02 |
예수님의 향유- 마 26장6절~13절 (0) | 2022.01.02 |
넓은 마음 큰 사람! (고린도후서 6:11-13)/(고)이중표목사 (0) | 2022.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