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8)

by 【고동엽】 2022. 1. 1.

48

제 목 :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딛 2:11-15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분단

국가였던 독일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함으로 통일국가가 되었고 예멘 역시

남과 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서독은 당초 동독을 흡수통일 하는데 소용되는 비용을 1조 마르크 정도로

잡았지만,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고, 약 2조마르크(약 9백50조원)가 넘어서

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을 흡수통일 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인가에 대하

여 [일본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는 2천억달러(약 160조원)로 추산했고

국내 경제학자들은 40조원에서 많기는 6백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통일을 위한 비용이 천문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도 엄청난 생명 유지비가 들아갑니다. 마

시는 물,산소, 심장이 뛰고, 위가 수축작용을 하고, 세포가 생성되고,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고,그것이 열량으로 변해 각 기관에 보급되고, 자동으로

손, 발가락이 움직이고, 듣고, 보고 걷는 것 등,

돈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하루에 1000만원 정도의 시설비와 유지비

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달이면 30억이 되고, 1년이면 360억원이 됩니

다.

 

그런데 우리는 병들면 돈내고 병을 고치면서도 매일 1천만원 정도의 생명

유지비를 공짜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감사도 없습

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통일의 경우 1인당 비용을 산출하면 890만원 꼴이 된다고 합니다.

죽을 내 생명이 죄사함 받고 다시 살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본문은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했습니다. 돈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은

혜란 조건부가 아닙니다. 조건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몇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은혜라든지 거저 주신다든지 하면서 싸구려인

양 치부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받는 나는 은혜였고, 거저 받은 선물이었습니다만 그 은혜와 선물을 주시

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면 죽게 하

시고 그 공로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값싼 은혜도 아니고 싸구려 상

품이 아닌 것입니다.

 

고층 빌딩마다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가지 돈을 내고 엘리베이

터를 타본 일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무역센타빌딩이나, 엠파이어스테이

트빌딩은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받습니다만 그러나 대부분의 빌딩은 공짜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베이터 자체가 공짜인 것은 아닙

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당 5천만원 1억 혹은 2억 하는 것들도 있

습니다. 내가 그 엘리베이터를 공짜로 탄다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공짜인 것

 

 

 

은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기까지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십

자가에서의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보내셨고, 죽게하신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고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인종과,

지역과, 계급과, 성분과,출신을 포괄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십니다. 단,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어느날 밤 관장이 야순을 돌다가 도둑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관가로 데려

다가 엎드려 놓고 볼기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갑자기 "아이

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볼

기를 치자 도둑 역시 계속하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며 자기가 태조대

왕의 후손임을 암시하는 바람에 풀어 주었습니다.

 

그 기발한 소문을 듣게 된 어떤 도둑이 밤에 도둑질을 하다가 야순관리에

게 붙잡혀 관가로 끌려가 볼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볼기를 내려치기 시작하

자 그 도둑은 "아이구 염라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제딴에

는 아무려면 태조보다야 염라대왕이 더 높겠거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

니다. 그런데 그를 때리던 관리는 염라대왕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었습니

다. 그날 그 도둑은 염라대왕 덕택에 반쯤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0:13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

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고, 사랑받

고, 복을 받게 됩니다.

 

2. 우리를 양육해 주십니다.

 

12절을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된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

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영적으로 출생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태

어난 생명은 양육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부산 일신병원에 갔다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신생아실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생명이 인큐베이터안에서 보호받으

며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일정기간 동안으로 끝나야 합니

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태어난 새 생명은 엄마의 품 속에서 고동소리를 들

으며 사랑받고, 보호받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자라고 신앙이 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양육되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그

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내가 누구의 보호를 받고 양육받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

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간수의 경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지키는 사람

은 마귀의 소유인 것입니다.

1800년대 미국의 시인이었던 롱펠러(Henry Wadsworth Longfellow) 는 보통

종이 위에 그의 시를 써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의 시는 6천 달

러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0불 미만의 종이 위에 그렸던 모나리자나 만종은 지금 수십만 달러의 명

 

 

 

화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것이 되느냐, 누구의 보호를 받느냐, 누가 나를 키워주느냐가 중요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키워주시고 이끌오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강조입니

다.

 

3.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르게 살라는 것입

니다.

12절을 보면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

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경건하게 살고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하고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호화여객선 [아틀랜틱호]가 핼리팍스 해안에서 조난당해 수백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살아남은 생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우체국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전보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

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길이 간직

하기 위해 전보용지를 액자에 넣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

고 그는 날마다 "구원 받았다"는 전보내용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의 채찍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청년들의 모임에서 바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

은적이 있었습니다.

참석했던 젊은이 90%가 잘 사는 것보다는 바로 살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

다. 그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잘 사는 것과 바로 사는 것의 차이점이 무

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잘사는 것.

1) 잘 먹고, 잘 쓰고, 잘 노는 것이다.

2) 하고픈 짓을 하고 사는 것이다.

3) 제 멋대로 사는 것이다.

4) 남의 간섭을 배제하고 사는 것이다.

 

바로 사는 것.

1) 자기를 통제하며 사는 것이다.

2)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사는 것이다.

3)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4)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점과 해석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자녀된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

다. 바르게 삽시다.

 

4. 선한 일에 열심이기를 원하십니다.

 

14절 끝을 보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

습니다.

구라파를 휩쓸던 나폴레옹이 1백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러시아를 쳐들어갔

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러시아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워터루

전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그는 외쳤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각자 살

아 남을 방도를 찾아라"고.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는 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믿으면 산다,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산다.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최종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헤야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선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영국 웨스터민스터 교회 목사인 [모건] 박사에게 한 소년이 편지를 보냈습

니다. "저는 지난밤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한 후 예수님을 구주

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로 나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

습니다. " 여기까지 편지를 읽은 모건박사는 깊은 생각이 잠겼습니다. 설교

를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지다니.. 그러나 그 다음을 읽는 순간 기쁨이 되살

아났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토록 슬퍼하는 이유는 제 아버님이 아직 예수

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사는 날 동안 해야할 가장 귀하고 크고, 위대하고, 절실한 선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내는 것입니다.그것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

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발행일 : 940619

분 류 : 설교

 

~~~~~~~~~~~~~~~~~~~~~~~~~~~~~~~~~~~~~~~~~~~~~~~~~~~~~~~~~~~~~~~~~~~~~~~~~~~~~~~~~~~~~~~~~~~~~~~~~~~~~~~~~~~~~~~~~~~~~~~~~~~~~~~~~~~~~~~~~~~~~~~~~~~~~~~~~~~~~~~~~~~~~~~~~~~~~~~~~~~~~~~~~~~~~~~~~~~~~~~~~~~~~~~~~~~~~~~~~~~~~~~~~~~~~~~~~~~~~~~~~~~~~~~~~~~~~~~~~~~~~~~~~~~~~~~~~

49

제 목 : 나와 내 집이 사는 길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행 16:29-34

 

 

역사 연구의 대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연구에서 그동안 역사의 지

평에 떠올랐던 21개의 문명이 있었는데, 그중 19개가 자멸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신론과 물질주의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종교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자도 없고 옷도 입지 않는 야

만인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신도 있고,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지능지수가 높고 고급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개나 침팬지에게는 신이 없습니

다.

 

그 차이는 간단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학에서의 논의되고 있는 사람에게는 뇌의 의식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

합니다. 다시 말해 뇌의 의식활동이 멈추게 되면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

다. 마찬가지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영적 활동을 하지 않

는다면 죽은 영혼이 되고마는 것이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람을 구성하

는 가장 중요한 중심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본질이라고 본다면,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껍데기란 본질을

감싸고 있는 옷에 불구한 것입니다.

양장점 쇼윈도우에 서있는 마네킹은 철따라 달마다 새 옷으로 갈아 입곤합

니다. 그것도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입니다. 그러나 그 누

구도 마네킹을 바라보면 행복한 여인이라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네킹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의식활동이 정지된 사람들이 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는

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참 행복이나 보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살기좋고 잘 사는 나라로 유명합니

다. 인구는 400만 정도에 불구하고 수도인 오슬로는 47만명정도가 살고 있

습니다. 쿠웨이트 다음으로 석유가 많이 나오는 나라이며 GNP는 25,000불이

넘습니다. 병나면 국가가 고쳐주고 늙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먹여 살려 줍니

다.

 

부자들은 섬이나 산속에 별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별장생활을 즐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별장들은 텔레비젼을 놓지 않고 수

도시설은 집 안에는 없습니다. 나무때서 밥해먹고, 물도 밖에서 길어다 먹

고, 맨발로 걸어다닙니다. 다시 말하면 원시적 삶을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

다.

 

여러분, 잘 산다는 것은 편한 것입니다. 편하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영적인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편안해야 몸도 삶도 편안해지는 것

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

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를 하신

것이빈다.

토인비가 지적한대로 문명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무신론과 물질주의에 빠

지게 되면 침몰하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러시아의 붕괴입니다. 70년동안 러시아를 지배해 나온 것은

무신론과 유물론 사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무너졌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님은 없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대로 살고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믿으면 나

쁜 짓을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믿으면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건전한 종교와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 세계 의학계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못지 않게 전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준 [살을 먹는 괴박테리아]의 정체 규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는 성형수술을 잘못받은 후 괴사성 근막염 증세를 보이

고 있는 환자 두명을 놓고 연구한 결과 정확치는 않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

루어 성형수술 부작용이라는 개연성이 높다는 소견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개연성이 높다는 소견이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삼가하는 것이 좋습

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것, 그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본래의 것이 무너지면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

다.

 

인간의 본래 모습은 내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순천자(順天者)

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문명, 문화, 과학, 경제, 학문이

라는 조건들 때문에 계속 성형수술을 받아 나오는 동안 전혀 다른 이질적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이즈러진 나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자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오늘 읽으니 성경 사도행전 16:31은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이와 비슷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

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기독교가 강조하는 복음의 골자는 쉽고 간단합니다.

고대 빌립보 교도소에 바울이라는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죄명은 귀

신들린 소녀를 고쳐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도소 소장이

죄수 바울을 향하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종교적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신분이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정상적인 가정과 가족이 있었습니다. 정신건강도 정상적이었습니

다. 그러나 그도 역시 영혼의 문제에 대해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는 어떻게 해야 내 영혼이 구원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겠는가를 물은 것입

니다. 그 물음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명료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

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가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요...."

 

B.C 2세기 [안티파토루스]라는 사람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를,

1) 이집트의 피라미드.

2) 바빌로니아의 허공에 매달려 있는 정원.

3)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4)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5) 할리카르나수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6) 로즈섬의 콜로수스 거상(巨象).

7)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시사잡지(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목록

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1971년 미국 인텔사의 테드호프가 발명한 마이크로 프로세서.

2) 전세계 9천만명의 여성이 사용하고 있는 피임약(1951년 멕시코시티에

있는 신텍사스의 젊은 연구원인 칼제라시가 발명).

3)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벧이 발명한 전화로 이것은 거대한 세계를

 

 

 

지구촌으로 좁힌 일동공신이라는 것.

4) 한번에 570명을 태울 수 있는 점보 제트기.

5) 해상 석유채굴 시설.

6) 1950년대 미국이 처음으로 실험한 바 있는 수소폭탄, 이것은 지구의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공포의 에너지라는 것.

7) 1969년 7월 20일 오후 10시 18분 미국 우주선인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아폴로 11호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고, 그곳에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명판을 남긴 이후 달기지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 등을 7대 불가

스의로 꼽았습니다.

 

7대 불가사의는 인간이 만든 지식과 지혜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더욱 불가

사의한 것은 그토록 위대한 업적과 유산을 남긴 인간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렸지만 여객기 추락을 막지 못하고 있는가하면 생명공학

을 발전시킨 인간들이지만 죽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인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등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것은 마치 빛을 향한 모습과 빛을 등진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빛을 등진

얼굴은 침울합니다. 그러나 빛을 바라보면 찬란합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간의 삶은 정신적으로 한대 지방과 같습니다.그래서 성경

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도소 소장의 "내

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은 빛을 등지고 살았던

한 사람의 고뇌에 찬 절규였습니다.

 

그에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짤막한 대답 속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구원의 가능성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직업이 무엇이며, 신분이 무

엇이며, 나이가 몇이며, 재산이 얼마이며, 학벌이 어느 정도인가 등 그런

것들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신이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그리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

니다.

 

둘째는, 구원의 연쇄성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그 영향과 변화 때문에 가족과, 친척과, 이

웃과, 친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무엇인가를 묻는 잡지사의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함께 사는 사람.

2) 함께 가는 사람.

3) 함께 나누는 사람.

4) 사랑하는 사람.

5) 서로를 보완하는 사람이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렇스빈다. 가족이나 부부란 함께 살고, 가고,나누고, 보완하는 관계입니

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과 믿음을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 비

결이 무엇입니까?

 

 

 

 

어느 교도소 소장의 경우처럼 가족이 함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1956년도 미국의 100대 재벌 랭킹에 들었던 기업가운데 1992년까지 살아남

은 기업은 불과 21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천년이 되면 현재 10대 재벌 가운데 3개 정도가 탈락

하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 직속 21세기 위원회가 예견했다고 합니다.

영원한 재벌도 영원한 건강도,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일본 주식회사의 얼굴이라는 평판을 듣던 [모리타 아키오]소니사회장이 뇌

출혈로 쓰러지자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경제인들은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키오 회장이 돈이 없어 쓰러졌겠습니까? 지정병원과

주치의가 없어 쓰러졌겠습니까?

그것은 모리타 아키오 회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솔직하게 우리는 나 자신의 제한성과 한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미국이 중요한가를 판단해 우선 순위를 따라 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우선 순위일까요?

다시말하면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하다가 쓰러진 52세의 사장은 "제가 바보였습

니다. 쓰러지면 끝나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라며 나와 내 집이

사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좋은 일, 급한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발행일 : 940612

분 류 : 설교

~~~~~~~~~~~~~~~~~~~~~~~~~~~~~~~~~~~~~~~~~~~~~~~~~~~~~~~~~~~~~~~~~~~~~~~~~~~~~~~~~~~~~~~~~~~~~~~~~~~~~~~~~~~~~~~~~~~~~~~~~~~~~~~~~~~~~~~~~~~~~~~~~~~~~~~~~~~~~~~~~~~~~~~~~~~~~~~~~~~~~~~~~~~~~~~~~~~~~~~~~~~~~~~~~~~~~~~~~~~~~~~~~~~~~~~~~~~~~~~~~~~~~~~~~~~~~~~~~~~~~~~~~~~~~~~~~

50

제 목 : 가면서 전파하라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마 10:5-15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이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

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가르치신 일과 병자들을 고치신 일과 복음을 전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신 궁극적 목적을 살펴 보면 복

음을 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성공경부 운동과 제자훈련 운동이 일

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하지 않는 성경공부나 제자

훈련은 의미가 없습니다.

도시마다 기독교 이름을 내건 병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본래 선교사들이

그 병원을 세울 때의 정신은 가난하고 불쌍한 병자들을 고쳐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병원들이 복음전도는 없애

버리고 의료 행위만 계속한다면 병원문을 닫든지,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입

니다.

주님은 부단히 열 두제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도현장으

로 파송하셨습니다.

본문은 열 두제자를 전도현장으로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 당부는 오늘 우리에게는 전도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피를 물려받은 동족입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핍

박했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동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선교명령도 맨 먼저 예루살렘

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

니라"고 했습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데서부터, 관계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전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서 늘 느끼는 것입다만 내 가족이 제일 어렵고 가장 가가

운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

다.

가령 남편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듣는 순간부터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두번,세번, 진단

을 다시 해 보고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

은 영혼이 죽어가는 문제에 대해선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박테리아 때문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해 있

습니다. 24시간 만에 사람의 살점을 다 파먹고 죽게 만든다는 괴박테리아의

공포가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보다 더 무서운 박테리아가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송두리채 파멸시키는 박테리아, 그 이름 [죄의 박테리아]입니다.

이 박테리아는 영혼도, 정신도, 육체도 모조리 썩게 만들고 맙니다. 이 죄

의 박테리아를 퇴치하고 고치는 백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

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죄를 사함받고 내가 새 사람이 되는 것입

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가족, 네 친척에게로 가라"고, "가서 그들을 건져내라"고. 어떤 주부

는 주걱으로 밥을 퍼서 담을 때마다 십자가를 그으며 예수 믿게 해달라고기

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주부느니 남편 구두를 새벽마다 싸가지고 나와 신발임자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주부는 6개월 아침 금식을 하면서 남편 구원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주부는 건성피부증 때문에 가려워 하는 남편의 등을 긁어 주면서 십

자가를 긋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구원

해야 합니다.

 

2. 가면서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이 여러가지 입니다만 그중에 하나는 기독교는 가

면서 전파하라는 종교인데 반해 불교는 한 곳에 머물면서 전파하는 종교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거리로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

즈음 웬일인지 불교가 기독교보다 더 설치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가면서 전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호흡하고 세상을

걸어가면서 그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16을 보면 "내

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내십니다. 입산수도하는 도사처럼 찾아오는 사람

들에게만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찾아가서, 기회를 만들어서 복

음을 전해야 합니다.

찾아 갑시다. 만납시다. 기회를 만듭시다.

그리고 가면서 전파하라는 말씀의 뜻은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두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가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3. 능력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8절을 보면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 속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전도자에게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무슨 재주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

이르리 깨끗케 하며 귀신을 내쫓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전도하면서 당하게 될 사태들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고치

고 내쫓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둘째, 전도는 전투라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하셨는데 귀신은 순순히 쫓겨가는 법이 없습니다.

귀신은 더럽고, 악하고, 나쁜 존재입니다. 귀신은 방해꾼이고, 훼방꾼입니

다.귀신은 이간질에 능하고 평화를 깨뜨립니다. 그 귀신을 내쫓는 방법은

귀신보다 더 강한 능력을 받으면 되는데 그 능력은 예수 능력인 것입니다.

전도는 귀신이 점령하고 있는 영역을 빼앗는 전투이기 때문에 능력을 받아

야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마지막 때 사단이 인류를 위협하는 도구로 핵무기, 에이즈

박테리아 등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아서 고칠 것을 고치고 막을 것을 막아내고, 내 쫓을 것

은 내 쫓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주여 능력을 주옵소서.

 

4.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9-10절을 보면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전도 이외의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전도가 과연 될까?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어 줄까? 그 날 나와 줄까? 그 사

람이 예수를 믿으면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 처신을 해

야 하는가? 등등 전도 자체보다 걱정거리가 더 많게 됩니다.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마치 무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알몸으로 떠났습니

다. 이유는 관광 떠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예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 전도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를

시작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염려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힘 주시고 동행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8:20에서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아니

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여행 도중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 평안을 먼저 빌라는것입

니다.

그리고 평안을 비는 행위는 오늘 우리에게도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도는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평안이 성립됩

니다. 영혼의 참 평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둘째, 평안한 마음과 태도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작정하고 기도하는 대장자와 말다툼을 한다든지, 입씨름을 한다든지,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는 것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양보

하고 후퇴해야 합니다.

정신질환자를 상담요법으로 치료하는 사람은 고성을 지르거나 책상을 치는

법이 없습니다. 환자의 심리상태를 편하고 안정되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말씨와 태도가 부드럽고 안정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태도 역시 평안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자면서 한숨을 내

리쉰다든지 팔자 타령을 한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예수의 복음을 평안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15에서 "평

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6.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순결은 기독교인이 지녀야 할 두가지 큰 덕목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손해만 보게 되고 순결이 없으면 손가락질을 당하게 됩니다.

전도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하는 전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문서 전도라고 합니다. 입으로 하는 전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개인

전도라고 합니다. 발로 하는 전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방문 전도라고 합니

다. 온 몸으로 하는 전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격 전도, 삶의 전도라고 합

니다.

우리가해야 할 전도는 온 몸 전도입니다. 그리고 가면서, 가서 하는 전도

라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매우 중요한 주간입니다.

다음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1)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2) 자신의 건강과 감정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다툼이나 충돌을 피해야 합니다.

4) 다음 주일은 전도 대상자의 시간과 여건에 나를 맞춰야 합니다.

5) 단 한 사람만을 대상자로 작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는 실패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6) 대상자를 계속 양육해야 합니다.

(1) 좋은 본을 보입시다.

(2) 덕을 끼칩시다.

(3)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합시다.

(4) 계속 양육합시다.

가면서 전파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도 가면서 전파하라"고.

전도합시다.

하면 됩니다.

내가 합니다.

아멘.

 

발행일 : 940605

분 류 : 설교

~~~~~~~~~~~~~~~~~~~~~~~~~~~~~~~~~~~~~~~~~~~~~~~~~~~~~~~~~~~~~~~~~~~~~~~~~~~~~~~~~~~~~~~~~~~~~~~~~~~~~~~~~~~~~~~~~~~~~~~~~~~~~~~~~~~~~~~~~~~~~~~~~~~~~~~~~~~~~~~~~~~~~~~~~~~~~~~~~~~~~~~~~~~~~~~~~~~~~~~~~~~~~~~~~~~~~~~~~~~~~~~~~~~~~~~~~~~~~~~~~~~~~~~~~~~~~~~~~~~~~~~~~~~~~~~~~

 

51

제 목 :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욘 2:1-10

 

 

요나는 주전 790년 북왕국 이스라엘을 무대로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활동상황은 요나서 이외에는 별로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요나서의 특징은 하나님의 보편성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지마는 다른 민족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 본

서의 특징입니다.

어느날 요나는 그당시 최대 강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들어가 하나님

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곳으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길이 멀기 대문입니다.

육로로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둘째 감정문제입니다.

앗수르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대국가였습니다.

셋째, 선민사상과 우월감 때문입니다.

요나를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네만을 선택했다고 믿었습

니다. 그런에 앗수르 서울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요나의 신앙이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마침내 그 원인이 요나

에게 있음을 발견한 선원들이 그를 바다에 던졌으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 본서의 줄거리입니다.

 

1.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이유를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1:3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하

여"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요나의 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는 그 발상과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요나의

신관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 139편에 나타난 시인 다윗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

며"라고 했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가서

거할찌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피하면 피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사람의 낯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의 낯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2) 하나님이 던지셨기 때문입니다.

1:4을 보면 "여호와께서 태풍을 바다위에 내리셨다"고 했고 1:17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라고 했

습니다.

왜 하나님이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던져 삼키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요나가 가는 길과 하려는 일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신 이유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어디든지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

다.그런데 요나는 그것을 기피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기피자의 불안한 삶과 사명자의 떳떳한 삶을 비교해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요나의 기피행각은 그 목적지로 정했던 다시스에 가기도 전에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사히고 요구하시는 일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가를 본 사건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물고기 뱃속을 [스올]이라고 했습니다. 스올은 음부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복음명령을 거역한 사람이 들어갈 곳은 스올이라는 것입

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을 [스올]로 표현한 데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음부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것은 스올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부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경우 앗수르의 국법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몰래 배

를 탄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실정법을 어기고 도피한 것도 아니었습니

다. 그러한 그가 스올의 고통 속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

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뭣니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구원을 외치라는 것이었

습니다.

요나는 그 명령을 거역한 것이빈다.요나로서는 그 명령을 거역할 만한 충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나라,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리며 침략하려는 나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복했던 요나는 스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

속에 있는 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요나서 2장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2. 요나의 기도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

고 했습니다.

기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지만 신령한 눈을 들어 성

전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세상을 보고, 물질을 보고,

사람만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회개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깜깜한 스올의 뱃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삽니까?

딸만 넷을 낳은 어떤 사람이 42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너무 귀한 아들이

라며 아들을 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날마다 귀인이 바라보는 재미로 산다

면 즐거워했습니다. 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습니다. 어느날, 귀인이가

잘못한 일이 있어야 야단을 쳤습니다. 그날 밤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이런 저

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귀인이한테 물었습니다. "얘 구인이라 넌 엄마가 좋

으니 아빠가 더 좋으니"라고. 귀인이 대답은 당당하고 또렷했습니다. "난

엄마가 더 좋아. 아빤 싫어 보기도 싫단 말이야. 난 아빠하고 안 놀거야"낮

 

 

 

에 야단 맞은 후유증이 남은 셈입니다.

 

그러나 귀인이 아빠가 그 순간 많은 것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야단한번 맞

고 싫어졌다는 그 감정표현을 긍정적으로 보면 진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그러나 자식만을 바라보는 재미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에게는 경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 우리를 가장 놀라게 했던 슬픈 사건은 유산 때문에 부모를 살해

한 어떤 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부모가 그 아들을 낳아서 키우는 동안 기대와 꿈의 컸을 것입니다. 어쩌면

유명한 교수나 의사 아니면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나갈 한약사가 되어 준느

것이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휘두른 흉기에 부모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축제에 참석한 대학생이 마음이 허전해 어느 집에 들어가

이유가 없이 흉기를 휘두른 사건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시대의 파생성, 고질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수입 오렌지족들은 한달에 600만원에서 800만원을 용돈으로 쓴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중병을 무엇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나는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만이 우리 시대와 병든 역사와 정치와 살마

들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2)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를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6절 끝을 보면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에서 건지셨다"고 했고, 7절을 보면

"내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를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요나는 해결의 방법을 올바로 찾았습니다. 내 영혼이 피곤할 때 내 생명을

구덩에서 건져 내시는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피곤할 때, 고통스러울 때, 괴롭고 답답할 때 무엇을, 누구를 생

각하십니까? 파도가 철석거리는 동해안의 백사장을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안개꽃 펼쳐진 들녘을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를 도와 주리라고 기대하는

그 누군가를 생각하십니까?

 

요나의 고백은 다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그

이유를 9절 끝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

나이다"라는 요나의 고백인 것입니다.

친구란 가장 필요할 때 생각나는 사람이며, 그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

고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친구들은 내가 꼭 필요할 때 내곁에 있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부도, 자식도 타인인 셈입니다. 어린 자식과 아내를

남겨둔채 어느 날 남편 혼자 훌쩍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그런가하면 자식이 노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요나는 고백합니다. "나는 피곤할 때 여호와를 생각하노라"고, "나

의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고.

이 고백은 오늘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생 삶이 피곤할 때

주님을 생각한다","나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다." 이 고백이

곧 나의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서의 결론은 요나가 니느웨로 들어가 하나님의 구원을 외치는 것으로

끝납니다. 요나의 오침을 듣고 니느웨에 살고 있던 왕과 대신들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옷을 찢고 무릎쓰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최근 잇달아 터지는 대형 사건들과 패륜을 지켜 보면서 니느웨의 회

갱누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6월 12일은 요나운동과 그리고 니느웨 운동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예수가 진실로 그 역사 속에 들어가고 가정 속에 들어가고 부모 속에 자식

 

 

 

속에 들어가면 패륜이나 죄악이 자리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교회 마당을 가득 매운체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

을 볼 때면 행복하고 가슴이 벅찹니다.

예수를 전합시다.

예수를 말합시다.

예수를 이야기 합시다.

병든 역사,무너진 도덕, 망가진 정신이 다시 살려면 예수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도 합시다.

하면 됩니다.

내가 합니다.

 

발행일 : 940529

분 류 : 설교

'〓주제별 설교〓 > 설교.자료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종순 목사 설교집 (10)  (0) 2022.01.01
박종순 목사 설교집 (9)  (0) 2022.01.01
박종순 목사 설교집 (7)  (0) 2022.01.01
박종순 목사 설교집 (6)  (0) 2022.01.01
박종순 목사 설교집 (5)  (0) 2022.01.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