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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6)

by 【고동엽】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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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 성에 유하라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눅 24:44-49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

건과 거기서 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세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45절을 보면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했습니

다. 구약성경 도처에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특히 죽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기사도 여러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반신반의 하는가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고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닫게 하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45절을 보면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천사의 소리를

들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도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튼튼하고 견고한 열쇠는 이스라엘,독일,미국 것들이라고 합니다. 아무나

함부로 열지 못하는 것이 견고한 열쇠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간단한 쇠

꼬챙이 하나로 모든 열쇠를 다 열수 있다고 합니다. 자동차, 아파트, 사무

실, 심지어 금고까지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그 누구도 열지 못하는 자물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

간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쇠꼬챙이로도 열지 못하고 이스라엘 열쇠로도 열

리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을 보면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이 문을 열고 들어올 만한 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

나 내가 나의 의지로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교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예수를 안믿고 지옥

가기로 작정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는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말합니다.

 

남녀관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만나는 것도 가능하고 대

화도 가능하고 결혼도 가능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외적 조건이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맞질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경직되고 굳게 닫힌 제자들의 마음을 먼저 열고 그후에

성경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에서는

성경도, 설교도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졸고 있는 사람 성경을 읽으며 하품만 연속하는 사람, 천날

만날 듣고 읽어도 감동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그 무엇인가로 막혀있는 사람

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설교를 깨닫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나와 너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을

모조리 차단해 버립니다. 마음 속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도 않고 깨달음이 없게 됩니다. 내 영혼이 죽지않고 영생을 얻으려면 빨리

숨겨놓은 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둘째, 교만입니다.

교만은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보다는 중학생이 더

아는 척합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보다는 대학생이 더 아는

척 합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의 성향도 비슷하빈다. 초신자 보다는 오래된 사람이 교

만합니다. 직분 안가진 사람 보다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더 교만합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 보다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성경을 배웠거나,

귀담아 들은 사람들이 훨씬 더 교만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안다. 이미 알고 있다. 이미 들었다는 잘못된 경험 때문

에 마음의 문을 닫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큰 병입니다.

이 중병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가 "우리는 넉넉하다, 부족한 것이 없

다. 부유하다"면서 실상은 거지였던 것처럼 영적 가난뱅이가 될 것이기 때

문에 그 고질병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셋째, 잡념 때문입니다.

잡념이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에 생각

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빈다. 몸은 교회에 앉아 있지만 그 마음은 동네방

네 동서남북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있는 사람, 찬송부르고 기도를 하고 설

교를 들어도 예수는 떠오르지 않고 다른 것들만 오락가락 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잡념에 빠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대학입시를 앞에 두고, 공부하는 학생이 잡념에 사로잡히면 공부가 되질

않습니다. 공부가 안되면 그 사람은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잡념이 많으면 말씀은 제대로 듣질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강단을 바라보는 눈동자의 촛점이 흐려있기 마련입니다. 말

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 영혼이 고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을 모셔드립시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 드립시다.

본문을 보면 성경은 무엇이 죄이며 누가 죄인인 것을 가그쳐 줍니다. 마음

을 열고 성경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원한 생명이 내 것이 되는 것이빈다. 지

금 마음의 문을 엽시다.

 

2.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49절을 보면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

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능력은 위로부터 임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힘은 땅에서 생겨납니다. 음식을 잘 먹고 영양식을 한다든지,보약

을 먹고 강장제를 먹는다면 육체의 힘은 생겨납니다. 그리고 운동으로 체력

을 단련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영혼의 힘은 그런 것들로 생기는게 아닙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영혼의 힘이 솟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의 힘은 위에서

임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받

으면 힘이 솟구칩니다. 삶의 새로운 활력이 솟아납니다. 세상사는 재미가있

고 일하는 맛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찬송소리가 달라지고 기

도시간이 달라지고, 교회나오는 발걸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위로부

터 임하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그 능력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옷도 입지 않으면 내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

도 먹지않으면 내것이 안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뜨겁고 강한 성령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할 때 그 능력을

내가 입어야 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입는다]는 말

과 [입힌다]는 말은 다릅니다. 입는 것은 내가 입히는 것을 말하고 [입힌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입혀 주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은 "위로부터 능력

을 입히울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내가 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입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는 것도,능력 입는 것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능력을 입기위해 해야할 일이 있습니

다. 그것은,

 

3. 이 성에 유하라는 것입니다.

 

49절 끝을 보면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서 말하는 [이 성]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대부분의 제자들은 거칠고 삭막한 수도 예

루살렘을 떠나 그들의 고향이었던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루

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120명만 성령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만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익숙하지 않더라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갈릴리지방 사람인 제자들로서는 예루살렘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벗하며 배의 노를 젓던 그들에게 딱딱한 돌집이며, 거리는 전혀 생

소한 곳입니다. 분위기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제도, 법, 관행을 따지는 예

루살렘 보다는 바닷바람이 속시원하게 부는 갈릴리 바다가 훨씬 더 친근하

고 익숙합니다.

 

더구나 예수없는 예루살렘에는 한시간도 머물고 싶지 않은 것이 그들의 마

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준미은 "이 성에 유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벗하며 살다가 교회를 처음 나왓다든지, 교회를 옮긴 사람들은 모

든게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낯설고 생소한 것들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를 떠나거나,예수를 떠나면 안됩니다. 낯이 설고 익숙하지 않더라

도 이 성에 유해야 합니다.

 

둘째, 싫더라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물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가? 1

천명중 128명만 재미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에 제일 많은 대답은 거쳐야할 과정이니까, 대

학에 들어가야 하니까, 안하면 사람구실 못하니까 등 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우도 그 진가를 알기전 까지는 멋도 맛도 모르기 마련입니

다. 그러나 "이 성에 유하라"는 말씀은 주목해야 합니다.

싫더라도 안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등입니다.

예수믿고 능력받아 힘있게 사는 것은 귀찮고, 힘겹고, 싫더라도 해야합니

다. 싫더라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싫더라도 이 성을 떠나면 안됩니다. 밥을 먹기 싫다고 해서 한달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싫더라도 교회 나오고, 저녁예배 나오고, 새벽에 나오고, 수요일에 나와야

그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에 유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의 의미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넓게는 예수의 품이

며, 교회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지 말라 이 성에 유하라. 주님과 교회를 떠나지 맙시다.

그래야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행일 : 940828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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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를 힘입어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골 3:15-17

 

 

바울 서신을 보면 벗으라는 말과 입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벗고 입

는 행위는 인간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입고 벗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털갈이나, 허물갈이는 있습니다만 사람처럼 옷을 벗거

나 입는 일은 없습니다.

 

창세기 3:21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가죽 옷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은 인간이 벗고 입

는 일에 관여하셨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은 벗어버리라"고 했고, "하

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에베소서 4:22-23에서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지시하는 벗으라,입으라는 행위는 단순한 의상착용에 관한 교훈은

아닙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옷을 벗고 입는 패션의 발달은 인간만이 누려온 문화

특권이기 하지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벗고 입는 문제는 영적 사건인 것입

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물든 영혼의 옷은 벗어 버리고 예수를 옷입듯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그리스도를 힘입으라]고 한

것입니다.

 

1. 우리가 벗을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에베소서 4:22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

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해산용어 가운데 [유산][난산][사산][순산] 이라는 있

습니다.

유산이란 임신도중 임산부가 받은 물리적, 외적 충격이나 정신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난산이란 해산과정이 순조롭지 못해 임산부가 태어나는 아기가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산이란 문자 그대로 태어나는 아기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순산은 고

통과 긴장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이 순조롭게 태어나 고고성을 터트리

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도 흡사합니다.

믿는 척하다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산과 같습니다.

믿긴 믿는데 남을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자신도 고통스럽게

살면서 가까스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난산과 같

습니다.

가롯 유다 처럼 예수 따라다니고 직분도 받고 집회참석도 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에 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영혼이

멸망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사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연단을 잘 견디고 그리스도와 교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잘 참으면서 마침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순산]한 사람인 것입니다.

교회다니고 교인행세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유산,난산,사산 신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벗어 버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벗으라]가 아닙니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벗는 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입니다. 벗

은 것을 멀리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생가치가 없기 때문에 폐

기처분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을 보면 그것은 썩어져가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썩어져 가

는 것은 도려내고 수술을 해야 새살이 돋아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아깝

다든지 아쉽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

나의 옛사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욕심,방탕,시기, 질투,음란,도

적질하는 것,훼방, 분쟁, 고집 등 이루 헤아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빨리 벗어버려야 합니다.

 

가롯유다도 옷벗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벗질 않고 고집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감했습니다.

골로새서 3:5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 부정,

사욕, 정욕, 탐심이라"고 했고 3:6을 보면 "이런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치고 있던 누더기를 빨리 벗어 버립시다. 누더기에 묻어있는

세균이 내 몸을 온통 썬게 만들기 전에 지금 벗어 던집시다.

 

2.무엇을 입어야 합니까?

 

에베소서 4:24에서는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골로새서3:17에서는 "그

를 힘으라"고 했습니다.

낡고 더러운 옷을 훌훌 벗고나면 알몸이 됩니다.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

는 것은 나체주의자나 정신착란증 환자일 것입니다.

벗었으면 다른 것을 입어야 합니다. 벗어 놓은 것을 다시 입으면 안됩니

다.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를 힘읍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고약한 마음을 고쳐보기 위해 어느날 속옷,와이셔츠,

넥타이, 벧트, 양복, 양말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했습니다. 기분

도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라면 화를 내거나 신

경질을 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100만원을 빌려간 뒤 석달째 종적을 감추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갈아입고 , 나온 새 옷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옷말 갈아입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한 새 사람이란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예수의 소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형의학의 발달로 신체의 모든 부분의 성형이 가능해졌습니다. 쌓꺼풀수

술도 가능하고, 코도 높였다 낮추었다 하는 것이 가능해 졌고, 가슴 크기도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형으로 안되는 것도 많습니다. 작은 키를 10CM정도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성형의학으로 교정하지 못하빈다.

 

인간의 영혼을 교정하고 바로 잡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국가가 예수를 힘입으면 선진국가가 됩니다.

교회가 예수를 힘입으면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가정이 예수를 힘입으면 평안한 가정이 됩니다.

 

중국에는 기공술이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220보트의 전기를 자기몸에 흐

르게 한 뒤 그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입니

다.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손으로 전구를 잡으면 그 전구에 불이 들어옵니다.

전류가 흐르는 손으로 제 손과 목덜미를 만질 때마다 강한 전기가 감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힙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전류가 내 몸에 흐르는 것처럼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예수님의 힘을

내가 받고 예수의 힘을 옷갈아입듯 입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지만 예수를 힙입으면 나도 힘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빈

다. 나는 쓸모가 없지만 예수를 옷입으면 쓸모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망서리고 미룰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누더기는 벗어 버리고 예수를

힘입어야 합니다.

 

3. 그를 힘입고 난 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15).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평강이 우리 삶 속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세상에서 얻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에

좌우됩니다. 그 길이도 짤막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

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기분이나 조건이 좌위되지 못합니다. 그

길이 또한 영원하빈다. 그리고 사람도 마귀도 빼앗아 가지 못하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 재직할 동안 보람도

있었고 일도 많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았다.그러나 고향으로 돌

아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정한 평안과 위

로였다"고 평강은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선물입니다.

 

2) 감사하게 됩니다(15).

일반 회사와 교회의 다른 점이 여러가지 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용어

입니다. 교회는 은혜, 감사, 사랑, 믿음 등 세상에서 흔치 않은 용어를 많

이 사용하곤 합니다. 특히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용어입니다.

정말로 거듭나고 예수를 힘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가 차고 넘쳐야 합

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는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셋째는 물질로 표시해야 합니다.

 

3)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삶은 16-17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는 말씀이 풍성합니다.다시 말하면 말씀이 넉넉하기 때문에 그 영혼

이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배고프면 시끄럽고 불평이 많지만 배가 부르

면 온갖 불평이 잠잠해지고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새

활이 짜증스럽고 교회생활이 불평스런 사람은 [내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프구나]라고 진단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찬송은 감사, 고백, 경배를 한데 묶어 드

리는 곡조붙은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거나 탈진상태에 빠진

사람은 소리가 작습니다.

찬송소리가 작은 사람, 찬송부르며 딴 잡념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영적 건

강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힘입으면 찬송의 크기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

라지게 됩니다.

 

셋째는 모든 일에 예수의 이르으로 합니다. 기도도 예수 이름으로 찬송도

예수님께, 봉사도 예수이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옷입으면 나는 감

춰지고 예수가 드러납니다.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은 예수로 감싸지고 예수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예수 이름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입은 바 된 에수의 그옷과 힘을 다시 벗어던져선 안된다

는 것입니다.

 

시편 31:10에서 시인은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약하며 나의 뼈

가 쇠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블레셋 여

자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주색에 몸과 영혼을 망쳤습니다. 그의 힘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고 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40:31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힘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마귀 밥

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힘입고 새 사람이 되면 영적인 세계에서 당당한 승자가 될 것입니

다. 예수를 힘입고 승리합시다.

 

발행일 : 94082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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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 목 : 해방된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롬 8:1-2

로마서 8:1-2은 바울의 해방선언문입니다. 특히 2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본에는 "나를 해방하였다"로 되어 있습니다.

해방은 한마디로 자유로워 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고,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경제적 속박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해방입니다.

다시 말하면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을 해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네 이념투쟁을 걸핏하면 해방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킨다며 6.25 전쟁을 일으켰고, 월남을 해방시킨다면

오랜 세월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해방은 피를 부르고 가난을 자초한 해방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입니다. 그러

니까 해방된지 어언 반시기가 지난 셈입니다. 김일성 사망이후 중단된 남.

북대화,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핵대화,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외교

정상화를 개시하게 될 것이라는 것 등이 맞물린 정세 속에서 8월 15일 해방

기념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방기념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감사의 조건이 생각났습니다.

첫째, 해방된 주권국가가 되게 하신 것.

둘째,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신 것.

셋째, 자유롭게 살게 해 주신 것.

넷째, 천만 넘는 기독교인을 주신 것.

다섯째, 전쟁을 막아 주신 것.

여섯째, 가뭄과 태풍을 막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이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면서 참된 해방이란

어떤 것이며 우리는 어떤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8:2 끝을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니라"고 했습니다. 위

에서 말씀드린대로 어떤 다른 사본에는 "나를 해방하였다"로 되어 있습니

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죄와 죽음에서 자유

롭게 해주셨습니다.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죄값으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 죄를 없애거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짐승을 사람 대신 잡아 제사드림으로 죄를 사함받았습니

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를 사해 주

셨고 누구든지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

는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죄와 죽음에서 나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

다.

 

출애굽기 21장을 보면 6년 동안 주인을 섬기던 종이 7년 되는 해에는 아무

조건없이 주인을 떠나 자유롭게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시년 제도

라고 합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안식년을 일곱번 지나서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희년이 되면 땅도 쉬고 종도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을

희년제도라고 하빈다.

종이 제멋대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와 죽음의 종으로부터 해방받는 것도 내멋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밝힌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 자

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법으

로 내가 자유를 얻고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내멋대로 사는 것은 육신의 생각이지 성령의 생각은 아닙

니다. 8:5를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을 생각한다"고 했고 8:6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

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고, 13절을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고 육신에 속한 일을 하고 살면서 생명을 얻는 것은 불

가능합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제멋대로 죄짓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살면 죄와 죽음에서 해방받고 15절에

서 밝힌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

다.

 

결단은 내가 해야 합니다. 죄의 종노릇 하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 하다가 영생을 얻을 것인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맺고 살면

서 행복하고 잘 살수가 있겠습니까? 죄와 죽음에서 해방받으려면 예수깨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면 안됩니다. 죄

에서 자유함을 받은 감격을 안고 살아 갑시다.

 

2.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법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표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법

을 시행령과 금령으로 구분됩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 무엇을 어떻게 하라가

시행령입니다. 금령이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하면 어떤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행령은 적극적인 법이고, 금령은 소극적인 법입니다.율법 속에

는 이상의 두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이유는 다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율법조항이 너무 많고 세분화 되면서 법을 다 지키기

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법은 있는데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은 거짓말을 시작

하게 되고 위선으로 자기를 감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반드시 한번씩 금식을 해야 하고, 구제를 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지키지 못하는 어떤 종

교지도자가 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공개되면 그

의 지도력이나 출세에 지장이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법을 지키는

양 하게 되고, 자기를 위선의 천으로 포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

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율법의 의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로마서 7:7을

보면 "율법이 없이는 죄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이 죄를 사하

지는 못하빈다.

 

율법은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인 것입니다.

 

미국에서 겪은 일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목사님이 저를 데려가기 위해 호

텔 앞에 잠깐 차를 세워놓고 제 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사이 교통순경이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법주차를 했다는 것입니다. 차주인이 교통순경에게

나는 교회 목사인데 오늘 아침 설교할 목사님을 모시러 왔다가 잠깐 차를세

운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통순경은 "목사

님이 법을 어기면 되느냐"면서 티켓을 끊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

도 저도 할말이 없었습니다. 얼마짜리나겨 했더니 20불 짜리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하와이에서 주일 아침에 불법주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제가 불법주

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제가 내려오는 시간을 합해 5분 정도였습니다.교통

순경에게 한국에서 온 목사님을 모시러 왔다가 잠깐 주차를 했노라고 했더

니 자기도 기독교인이라며 좋은 하루 되라고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벌금 티켓도 떼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두 사건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불법주차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도로교통법입니다. 그러나 그 법을 집행하는 교통순경의 재량에 따라

법집행의 방법이나 결과는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방법이나 결과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법은 좋고 나쁜 것과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만, 그 법

은 내 죄를 도말하거나 속죄해 주진 못합니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내가 비록 죄를 범했더라도 그 죄르

리 용서하시고 새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것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해

방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에서 해방되고,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3.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죄를 만들어 냅니다. 악을 만들고 이 세상이 온통 죄로

썩어 냄새가 나게 합니다.

마귀의 별명 가운데 바알세불이라는게 있습니다. 그 뜻은 [똥무더기의 주

인]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신선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세력확장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전쟁,

분열, 술수,사상, 음란,퇴폐,불신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합

니다.

그리고 한번 마귀에게 사로 잡히면 내 힘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불가능합

니다. 속박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0:2를 보면 마귀를 옛뱀이라고 했습니다.

뱀의 여러가지 특성 가운데 공격목표를 한번 감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그만큼 휘감는 힘이 강합니다.

마귀에게 잡히면 해방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가능합니다. 예수는 마귀의 머리를 깨뜨렸기 때문

입니다. 뱀은 머리에 치명타를 입으면 전신의 힘이 풀린다고 합니다.

창세기 3:15을 보면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의 머리에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는 예언입

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리

고 그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부터 마귀는 우리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죽음으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 자유,마귀로부터 자유,이

사람들을 바울은 해방된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바울의 경고를 주목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기 서

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유는 그 자체로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가 내 것이 되었다는

것은 감격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잘못쓰면 무질서, 혼란, 방종, 타락, 자멸의 무기가 됩

니다. 비록 자유를 얻고 해방받는 사람이라도 날마다 그 자유가 방종이 되

지 않도록 자기와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었습니다. 단 예수를 위해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위하여 나의 자유와 해방을 써야 합니다.나는 하나님의 자

녀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맬 수가 없습니다.

 

발행일 : 940814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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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 목 : 선택받은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합동

구 절 : 골 3:12-14

 

본문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사상은 구약과 신약 전편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일관

된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

시고자 하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중심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1. 왜 선택하셨는가

 

1) 수가 작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그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기 때

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효가 적다는 것은 숫자가 적다는 뜻도 있고 약소민족이라

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약한 것은 아닙니다. 재래식 폭탄은

큽니다만 핵폭탄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작은 것이 더 큽니다. 반도

체의 경우도 작을수록 그 가치와 효용성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큰 사람은 오만합니다. 큰 나라도 오

만합니다. 그러나 작은 자들은 자기 실체를 알기 때문에 오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폐품들을 모아 짜맞추는 예술행위가 있습

니다. 일명 전위예술이라고도 합니다만 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모아 하나

의 조각작품을 만드는 것을 어셈블리지(aSSEMBLAGE)라고 부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여기저기 쓸모없이 버려진 폐품조각과 같은 존재들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주워모아 쓸모있는 작품을 만드시고 거기다가

존재의 의미까지 부여해 주신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가르쳐 주

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황소의 머리]라는 조각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

전거의 손잡이와 자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만일 무명의 작가가 자전거 손잡

이와 좌석을 모아놓고 [황소머리]라는 작품명을 부쳤다면 놀림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

라고 했습니다. 작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선택하셨다는 것은 선택받은

우리에겐 감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은 찬송케 하기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 가운데 의미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

늘의 해와 달과 별들, 땅과 바다와 거기있는 모든 생명체들, 풀 한포기에서

하루살이까지 필요없는 것은 없습니다. 인체에 돋아난 솜털까지도 필요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호주 어느 목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독수리가 양떼를 채가는 바

람에 목장주가 화가나서 산탄총을 쏘아 독소리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랬더

니 그 후로는 양떼들이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

봤더니 독수리가 채간 양은 거의가 다 병든 양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 이야기기 속에서 두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병든 양을 독수리가 채간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양도 독소리도 존

재와 필요가치가 다로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폐품같은 나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

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악기는 다 제 소리가 있습니다. 관악기는 관을 통해 소리를 내고, 현

악기는 현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타악기는 두드려서 소리를 냅니

다. 모든 악기는 크기와 생김을 따라 소리가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다른

소리가 한데 어우려져 화음을 이룰 때 음악예술의 극치가 이루어지는 것입

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악기입니다. 각각 제소리를 내면 됩니다.

큰 소리도 있고 작은 소리도 있습니다. 높은 소리도 있고 낮은 소리도 있습

니다. 강한 소리가 있고 약한 소리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필요한 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북한은 하루 아침에 김일성 찬가를 김정일 찬가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찬송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찬송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3)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물론 이 사랑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

습니다.

일시적인 만남은 사랑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 만남의 시간이 길수록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차 한잔을 나누는데는 사라

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되려한다든지 부부가 되어 일생을 함께 살기로 한다면 반드

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택하셨습

니다.

사랑은 늘 함께 가까이 하고 싶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늘 까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기도도 찬송도, 감사도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4)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결정적 이유는 구원입니다. 죄에서 건져내시고 영생을 선

물로 주시기 위해 버려진 폐품같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모 일간지 실렸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로스앤젤스에 [리언 그레이브스]라

는 흑인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81년 어느날 그 노인이 살고 있는 아파

트 옆방에서 사흘간이나 아기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들어가 보았더니 출

생증명서 한장과 포대기에 쌓인 아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고아원에 보낼

생을 했으나 그 아기가 천사철머 보여 기르기로 작정하고 지금까지 키웠는

데 그 아이가 금년 13살난 [정로이]이군 이라는 기사였습니다. 흑인 노인

[그레이브스]씨가 아니었더라면 그 아이는 울다가 질식해서 죽었을지 모릅

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죄

에서 건져내지 않으셨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미 내 영혼은

죄에 눌려 죽었을 것이고 천하의 개망나니로 살다가 제명에 살지도 못한채

지옥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웬 사랑입니까?웬 축복입니까? 왜 이토록 날 사랑하

셨습니까?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갈보리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 갈보리 가야했네, 왜 날 사랑하나. " 아멘.

 

2. 선택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선택받은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택하신 후 아브라함의 후손을 그곳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나안은 지금의 성지 이스라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

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그 아들 이삭도 살기 편한 그랄로 이민갔다

가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의 대장정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

역시 모압 땅으로 이민 갔다가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은 그 전통 그대로 성지를 지키며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주 넓은 땅을 다 빼앗긴 것처럼 저들도 넓은 땅 다 빼앗기고 지금

은 비록 강원도 크기의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민족 가운데 자기네 땅

을 성지(HOLY LAND)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유대인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경우는 어느 곳이 택한 곳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품입니다.

그곳을 떠나면 안됩니다. 시인은 "내가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리이다"라

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이 품은 나의 영원한 처소이며 성지입니다.주님의 품

밖으로 벗어나면 죽게 됩니다.

 

둘째 교회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버리고 등지고 외면하면 안됩니다. 구약의 성전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유대민족이 성전중심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간혹 교회가 병들었다느니 썩었다느니 라며 공격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교회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모인 사람이 병든 것입

니다. 그리고 설사 교회가 병들었다 손치더라도 버리면 안됩니다.

병원만큼 병자가 많고 병균이 많은 곳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병원을 외

면한다면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충신교회 교인은 충신교회가 하나님이 택해주신 성소인 것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충신교회 교인들은 다음 몇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첫째 충신교회가 주님이 계신다.

둘째 충신교회가 제일이다.

셋째 충신교사가 내 교회다.

넷째 충신교회를 끝까지 섬긴다.

 

2) 택하신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법을 지키고 살아야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에게는 사랑의 법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은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법을 민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잘잘못을 가리고 결정하는 법을 형법이라고 합니다. 입법부인 국회

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그 법을 진행합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택하신 자들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을 옷입고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

하신 것 같이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이

 

 

 

구절 속에서 택함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부부는 일종의 계약관계입니다. 계약조건을

따지면 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법

아래 있으면 문제될게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참으로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

다. 율법은 정죄가 있습니다만 사랑은 정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

랑을 강조한 것입니다.

 

3) 택하신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과 북 경계선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군이나 북군을 다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가열되자 그는

고민끝에 바지는 남군이 입는 것을 입고, 저고리는 북군의 것을 입기로 했

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군이나 북군이 자기를 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

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날 그는 밖에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북군은 그의

남군바지를 향해 초을 쏘아대고 남군은 그의 북군 저고리를 향해 총을 쏘아

대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세가지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서로 사랑

합시다. 화목하고 위해주고 도우며 삽시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 앞에 서는 시간까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합니다. 때

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를 받드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반드는 것은 주님을 받드는 것입니다. 교회

를 섬기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택한 곳에서 살고 택한 법을 지키

고 택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 가장 멋지고 복된 사람들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발행일 : 940807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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