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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4)

by 【고동엽】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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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열납되도록 드립시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레 22:17-23

 

 

어느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고, 선물도 거절했습니다. 그때 거절당한 기

분이 어떠했겠습니까?

 

거절당한 제사, 거절당한 예물, 거절당한 호의는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우

리는 본문과 그 외의 몇군데 성경구절을 통해 어떻게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가를 발젼하게 됩니다.

 

본문 18절과 19절을 보면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열납되도록 드릴

찌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드려야 열납하시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1.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했고, 레위기

3:1을 보면 역시 흠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물이나 예물을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짐

승을 드릴 경우 상처가 있다든지, 신체부위에 이상이 있다든지, 병든 짐승

을 드리면 받지 않으셨스니다.

 

흠없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불완전한 예물은 받지 않습니다. 그

래서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속된 제물이나 죽은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는 산 짐승, 흠없는 짐승을 드렸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강조된 흠없는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허물투성이입니다. 흠이 없고, 약점이 많은 존재입니다. 바로

그러한 나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고 산 제

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이 짐승이든, 곡물이든, 사람이든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쓰다버린 찌꺼기나 잉여 농산물을 드려선 안됩

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가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벽이 떨어지고, 비가 새어도

당회가 교회 건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젊은 집사 10여명이 헌

금을 작정한 후 가장 돈많은 장로님을 찾아가 호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장로님 생전에 교회를 신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로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저희들이 심부름은 하겠습니다."

"철없는 사람들이로군, 교회를 아무나 짓는 줄 아는가, 그리고 교회를 지

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네"

 

 

 

"그런 저희도 압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할테니 장로님도 헌금

을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허 사람들하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헌금을 하나"

"장로님 이 집하며, 중심가의 빌딩하며, 여기저기 땅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다 내것이 아닐세"

"장로님 것이 아니라니 누구 것이란 말씀입니까?"

"이 집은 우리 집사람 이름으로 돼있고, 빌딩은 큰 아들 이름으로, 땅은

딸이름으로 농장은 둘째 아들 이름으로 과수원은 손자 이름으로 돼있다

네..."

찾아간 젊은 집사들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일어서면서 한 집사가 내뱉은

말은 "하나님 몫만 없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흠없는 것으로 주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2.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7:11을 보면 "화목제를 드릴 때 감사함으로 드려야 된다"라고 했

고, 15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대표적인 제사가 다섯가지이었

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 속건제입니다. 그

리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넷으로 구분됩니다.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를 [화제]라고 부릅니다. 흔들어 드리는 제사를[요

제]라고 부릅니다. 높이 치켜들어 드리는 제사를 [거제]라고 부릅니다. 부

어서 드리는 제사를 [전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제사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구속의 은총에 대한 감

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학생이 여행중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

니 누가 신발을 훔쳐 갔습니다. 그는 어제 밤 잠자기전 분명히 하나님께 지

키시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하필이면 가난한 자기 신발을 훔쳐가게 내버려둔 하

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인이 미안하다면 창고에서 헌 신발 한 켤레를

꺼내다 주며 오늘은 주일이니까 교회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못

해 따라가긴 했지만 기도도, 찬송되 되지 않고 신발생각만 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는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는가 하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태도가 너무나 간절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자세히 그를 바라보다가 깜

짝 놀랐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

발 신을 발도 없는 사람이 저토록 감사와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데 나는 신

발 한 켤레 잃어버렸다고 원망하고 투정을 부렸구나"라며 회개했습니다. 그

가 훗날 독일의 재무장관이 된 [마르틴 바덴]이었습니다.

 

시편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

다"라고 했고 "감사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조지 메길은 "감사라는 과목은 졸업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일평생 그리고 천당에 가서도 감사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3.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을 보면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

을 삼아 드리라"고 했습니다. 고운 가루는 한마디로 가장 귀한 상등품 밀가

루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운 가루란 더 이상 방아를 찧을 수 없을 만큼

세미하게 만든 가루를 의미합니다. 밀이 가루가 되는 것은 자기를 으깨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고운 가루란 가장 오랫동안 많이 희생당한 가루라는 뜻입니

다.

 

고운 가루일수록 돌이나 먼지가 들어가면 안됩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려면

섬세한 관리와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나 예물도 정

성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오다가다 생각나서 드리는 예배는 고운 가루 예배

가 아닙니다.

 

저는 국립중앙극장 입장권과 예술의 전당 입장권과 세종문화회관의 입장권

뒤에 있는 주의사항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공연 개시 10분전에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 6세이하 어린이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 공연 중 사진촬영, 화한수는 할 수 없습니다.

@ 공연 중에 객석을 출입할 수 없습니다.

@ 음식물을 장내에 가지고 들아갈 수 없습니다.

@ 공연 도중 입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태도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1994년 4월 16일(토) 저녁 7시30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살로메'가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교

회일로 저는 늦게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문은 모두 잠겼고 문마다 사람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내 손엔 표도, 지정좌석도 있었지만 늦었다는게 창피스

러웠습니다. 사정 사정해 도둑 고양이처럼 곁문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곁에

사람들에게 여간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나오고, 정성으로 드

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그런 것들보다 천만배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4. 순결한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1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라고 했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 속에는 썩게 하는 누룩을 넣으면 안됩니

다. 그것은 썩은 정성, 썩은 태도, 썩은 정신, 썩은 물질을 드려선 안된다

는 것은 가르쳐 줍니다.

 

누룩은 나만 썩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썩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소제물은 썩은 것을 드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동기도, 방법도, 결과도 선해야 합니다.

예배 역시 그 동기와 방법이 순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과 그 은혜가 감격스럽고 감사해서 경배와 찬야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도 순수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13을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뻣뻣한 것을 순을 죽여 부드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소금은 맛을 내줍니다. 소금을 치라는 것은 썩지않게 부드럽게 맛있

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즐겁고 맛있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도 나

를 맛있는 사람으로, 멋있고 즐거운 사람으로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지나가던 왕이 "네가 구걸한 물건중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라고 했더니 쌀 한 알을 깡통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거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깡통 속에 왕이 준 금으로 된 쌀알

이 딱 한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지는 무릎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깡

통채 다 주는건데....."

순수한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5.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4:10을 이하를 보면 속죄제를 드릴 때 모든 것을 불살라 드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온전한 제사는 불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불사른다는 히브리어는 [사

라프]입니다. 그 뜻은 완전히 소각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드리는 것

이 참 제사이며 예배입니다.

 

나를 드리지 않고 물질만 드린다면 그것은 참 예배가 아닙니다. 그리고 참

감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장 귀한 예물은 나를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친 후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삭도

되돌려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6:19-20을 보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엇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내 몸도, 내 영혼도, 내 물질도, 내 시간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고 영광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

다.

주여 나를 드리나이다.

 

발행일 : 941030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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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음을 정한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시 108:1-4

시편 108편은 다윗이 읊었떤 찬송시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끄는 대목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는 시의 서두입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태도가 결정됩니다. 제아무리 극한 슬픔이라고 해도

마음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게속 슬픔에 빠질 수도 있고, 그 슬픔을 극

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줄 것인가, 안줄 것인가 등으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나면 행동은 저

절로 뒤따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정한 마음이 세 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찬양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그는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

금아 깰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래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정규 음악원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아

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뛰어는 시창력과 연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를 창작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자작시에 곡을 붙

여 연주하고 노래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노래하는 자신의 삶을 소년시절의 감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일

생동안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를 심령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

다. 성악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발성법과 호흡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공명의 폭이 좁지만 배와 폐부에서 끌어내는 소

리는 세종문화회관이나 광장도 울릴 수가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입술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심령으로 부르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입술로 부르는 찬양은 듣는 사람의 귀를 감미롭게 할 수는 있

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 부르는 노래는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하

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심령으로] 라는 말의 뜻은 영광을 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영광을 얻기 위해 온갖 시련을 다 겪었습니

다. 정적에게 쫓기는 고통을 겪었는가 하면 아들의 반역으로 가슴 찢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차지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결단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조되는 다른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

다. 그는 별 탈없이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 어느 날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와 영광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그 영광을 길이

누리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그 영광을 양보할 수 없었고, 틈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마저도 자신이 누리겠다

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원인이 돼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

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조는 몰락했고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심령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정성과 사

랑과 재능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영혼의 노래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

다.

 

2.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건강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생체리듬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생활에 유익하지 않

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거의가 야행성 기질로 변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까지 잠 안자고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몽롱하게 보내게 됩니

다.

 

그런 습관은 신앙생활도 힘들게 만듭니다. 새벽기도 생활을 못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남자 교인에게 신년도 서리집사를 임명할

테니 순종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체질이 야행성이어서 저녁 늦게까지 잠 안자는 것은 얼마든

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죽어도 못합니다.

집사가 되면 새벽기도회에 나가야 할텐데 저는 죽었다 새벽에 깨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잠자다가 깨긴 어렵습니다. 새벽기도 나오라는 말씀을 안하신

다면 집사를 맡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어도 못 일어나는 새벽기도를 어떻게 억지로 하겠습니까 혹 깰 수 있거

들랑 나오시지요"라고 했더니 "그럼 해보겠습니다"라며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해 3월말 연속 새벽부흥회가 계속되던 토요일 새벽 4시 30분 교회로 나

오다가 길에 서있는 그 집사를 만났습니다. 깜깜하고 추운 새벽이었스비다.

"웬일로 서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친구들하고 낚시하러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라며 헤어졌습니다만 제 속으로 "야행성이라 죽어도 새

벽엔 못 일어난다더니.."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마음 정하기에 달렸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관리하는 태도와 습관도 고쳐야 합니다.

 

둘째, 하루의 일과를 주님과의 교제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가끔씩 측근들과 새벽조깅을 즐깁니다.제아무리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미국이라고 해도 클린턴을 보좌하는 스탭들이 늦잠을

자야 된다는 이유로 대통령과의 이른 아침 조깅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입니

다. 아마 조깅이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싫어도 대통령과 함께 뛰

니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시간입니까?

 

셋째 다른 사람을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소리가 없어졌습니다만 교회의 은은한 새벽 종소리는 잠든 사람

들을 깨우곤 했습니다. 새벽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은 거리를 깨우는 사람

들입니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시내버스,

전동차, 택시기사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벽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은 잠든 민족의 양심과 혼을 깨우

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시들고 마모되고 죽어가는 이 민족의 양심과 정신을 깨우는 새벽종

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주일 아침 주일학교

아이 하나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얘 토미야! 넌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다고 생각하니"라고

어떻게 배웠을까하는 것이 궁금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갑자기 긴장을 하더니 "목사님 전 절대로 아녜요, 전 여리고성

을 무너뜨린 일이 없어요 전 그 곁에 가본 일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기가막혔습니다. 도대체 선생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그 선생을 불로 물었습니다. "수잔나 선생, 내가 조금 전에 토미에게 열리

고성이 왜 무너졌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여리고성 곁에 가본일도 없다며

자기는 결코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잡아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이 말을 듣던 수잔나 선생은 "목사님 그 애 말이 맞을꺼예요, 그애는 절대

로 성을 무너뜨릴 애가 아니예요, 그 애는 착하고 얌전하거든요?라고 대답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예배후 당회가 모인 자

리에서 그 얘길 꺼냈습니다.

 

"장로님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여리고성이 왜 무너졌느냐니까 토미

는 성 곁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잡아떼고 수잔나 선생은 그 애는 절대로 성

을 무너뜨릴 만큼 힘도 없고, 얌전하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

까?"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재정담당 장로가 "목사님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떻

게 하겠습니까? 누가 무너뜨렸건 교회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재

정으로 수리하도록 하십시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가장이 깨어야 가정이 깨는 법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깨야 교회가 깨어

납니다. 교회가 깨어야 사회가 깨고 민족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나는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였노라"고 그것은

내가 먼저 깨겠노라는 것이며 내 가족을 깨우겠노라는 것이며 내 민족을 죄

의 잠과 영혼의 깊은 잠에서 깨우겠노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너무나 깊은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깨워야 합니다.

 

3.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3절을 보면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라고 했습니다.

1993년도 미국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는 [에니어그램]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강좌에 넣었습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인 면을 가진 인간의 감정형태를 9가지로 분류하고 긍정적인 면은 강조하

고, 부정적인 면은 고쳐 나감으로 그 사회나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게 한다는 프로그램입니다.

 

[에니어그램]에 드러나는 9가지 성격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완벽주의자 (2) 베푸는 형 (3) 연기자형 (4) 낭만주의자 (5) 방관자

(6) 회의형 (7) 향락주의자 (8) 보수형 (9) 조정자형입니다.

 

이미 뉴욕에서는 이 분류법을 적용해서 사람을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

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채용하거나, 임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어느 농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농장주인의 아내가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일을 끝내고 식탁에 둘러

앉은 일꾼들은 한마디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없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

웠습니다.

 

며칠후 그녀는 일꾼들이 저녁 식탁에 말이 먹는 건초를 잔뜩 잘라서 그릇

에 담아올려 놓았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일꾼들은 "아니 이럴 수가 우릴

짐승으로 보는 거야"라며 화를 냈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 번 당신들은 내가 무더운

날 비지땀을 흘리며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그 누구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를 한 사람이 없었어요, 한마디의 감사도 없이 식탁에 앉고 일어서는 사람

들은 값비싼 선물을 발로 짓밟아 뭉게는 마굿간의 소나 말과 다름없어요"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은 얼굴을 붉히며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평생 감사하며 사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우리도 주께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합시다.

언제나 감사합시다.

심령으로 감사합시다.

주경가 베이커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헬라인으로 태어

난 것, 철학자가 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스튜어트 목사는 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마주앉아 한주간 동안의 은혜를

계산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합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합시다.

주여 내가 마음을 정하였나이다.

아멘.

 

발행일 : 941023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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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 목 : 바로 드리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고후 8:1-8

 

 

지방 중심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어느날 그 도시의 천주교 신

부가 찾아 왔답니다. 찾아온 목적은 신도드을 모아 놓을테니 몇시간 집회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천주교에서 개신교 목사를 청해다가 집회를 할

려고 하는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달라는 것인가라고 물언더니 이미 로마

바티칸의 허락까지 받았다며 개신교의 십일조하는 법을 얘기해 달라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찾아온 신부의 얘기는 도대체 천주교 교인들이라는게 헌금할 줄도 모르고

바티칸에서 돈오기나 기다리고 있어서 답답하고 속상하다며 몇시간 개신교

인들 헌금하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쾌히 승락하고 가서 몇 시간 십올조 얘기를 했더니 반응이 크

게 일더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더 헌금생활에 익숙하

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세계교회 가운데 한국 교인들이 가장 올바른

헌금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빈다.

 

그러나 보다 더 헌금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드린다면 받으시는 하나님

께는 더 큰 영광이 될 것이고 드리는 우리에게도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8과 고린도후서 8:1-8과 고린도후서 9:1-7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주신 헌금에 관한 교훈입니다.

몇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6:3을 보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1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했고, 8:4을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6을 보면 "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행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그 행위자체를 은혜로 해석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은혜]로 해석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감사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10월 5일 아침 계약 회사원이었던 전용기 씨가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두개골 골절 등 14가지 합병증세로 전주예수병원에 입

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쫓아간 부인 성정식 씨의 놀

라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 네살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

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

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방을 병원 앞에 얻어 남편의 간병

을 시작했습니다.

 

남편 전용기씨는 식물인간이었습니다. 하루 수십 차례씩 가래를 빼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등 남편 수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고통의 날들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5년 11개월이었습니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고 시댁식구들도 발길이 뜸해지는가 하면 의사들도

합병증세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을 벗어

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사람들은 새출발을 하라

고 권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급성폐렴 등 합병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겼는가 하면 성정식씨도 4

개월만에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씨는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환자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한달에 4-5만원

을 받아 남편의 기저귀를 사거나 약값에 보탰습니다.

본래 성정식씨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집으로 출가를

해왔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쓰러지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날마다 병원교회에 나가 남편 살려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4년 11개월간의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

다.

 

저는 이 사연을 신문에서 읽었고, 예수병원 관계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

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드라마입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

주 바라보며 주고 받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여보 고맙소","여보 깨어나줘서 고마워요"

"내 일생 당신 은혜 잊지 않을꼐"

"나 당신 사랑한다구"

"저두요"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대화가 오고 갈 것입니다.

 

은혜는 순수한 것입니다. 은혜는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는 감동과 감

격과 감사가 넘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감동하고 감격한다면

드린다는 행위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드릴 수 있고,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억천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죽어버리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고 또 드릴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제아

무리 드리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다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

릴 것이 있다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무릎꿇고 즉시 그 자리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깨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게 해주셨군요. 귀로 듣게 해주셨군요 입으로

말하게 해주셨군요. 손발이 움직이게 해주셨군요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주셨

군요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일어서곤 합니다.

여러분, 억천만원을 벌지 못했더라도, 성공출세를 내 욕심대로 못했더라면

살아있다는 것과 내 것이라고 몫지은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

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은혜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내과 전문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평소 식도락을 즐기

던 두 남자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위장병 환자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음식을 조심해야하고 특히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빈다. A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의 말에 순응하고 치료되면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절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치료가 급속도로 빠릅니다.그런데 B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는 재미로 사는데 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느냐, 먹으면서 치료를 하는 법은 없느냐, 먹고 치료하면 되지 않

느냐며 항의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환자는 A 환자에 비해

80%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는것입니다.

 

먹게되면 먹게 되서 감사하고, 먹지 못하면 이 다음에 잘 먹게 될 줄로 믿

고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그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

니다.

건강한 것, 드릴 수 있게 된 것, 드릴 것이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여기 존

재한다는 것 그것을 은혜로 믿고 감사합시다.

 

2.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면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헌금을 하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들어 설명해 보게습니다. 가령 남편이 딴집 살림을 차리고 딴

살림을 하면서 그것을 미봉하기 위해 자기 부인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좋은

옷을 사주고 용돈을 분에 넘치도록 준다고 가정해 좁시다. 부인은 남편이야

어디를 싸돌든 돈주고, 차사주고,옷사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수 있겠습

니까?

 

돈이 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저는 어느 사진전에 갔다가 별난 작품을 구경했습니다. 사진모

델은 주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거의가 얼굴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각선미, 히프 가슴, 팔목, 등 그런 부분만을 클로즈업시켜 찍은 사진들이었

습니다. 얼굴없는 지체들의 전시회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돈만 드린다면 그것은 얼굴없는 가슴처

럼 흉물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나

를 먼저 드릴 때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물질과 시간과 재주를 받으시는 것

입니다.

 

3. 심는대로 거둡니다.

 

고린도후서 9:6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농사법칙이고 인생

법칙입니다. 바울은 그 법칙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칙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쿠바의 산티아고 마을에 [마리아]라는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말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어떤 날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로 학

교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림새가 꽤재재한 거라든지

맨발로 뛰는 걸로 보아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았더니 자기학교 학생이었고, 검은 눈이 초

롱초롱 빛나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마리아 선생

은 구두 한 켤레를 사서 그 학생에게 주었고, 정성껏 도와 주었습니다. 그

리고 그 다음해 그는 그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후 쿠바의 지도자로 카스트

로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마리아 선생은 한 신문에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 선생은 곧 바로 정보과

정에게 넘겨졌습니다.

 

마리아 선생을 본 정보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마리아 선

생이 아니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 구두 사준 학생이 바로 접니다."

라며 덥썩 손을 잡았습니다. 구두 한 켤레와 작은 정성이 훗날 위기를 모면

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을 뿌리고,부덕을 뿌리고,죄를 뿌리면 그것들을 많이 거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많이 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떤 날 아브라함 집에 낯선 손님 셋이 찾아왔습니다.

너그럽고 후덕한 아브라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송아지를 잡고 요리를 만들

어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그날 아브라함

은 그들을 대접하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그날의 약속대로 일년 후에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많이 드리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

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면서 늘 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더 많

이 못드려 죄송합니다","주님 정성껏 드리겠습니다","주님 더 많이 드리도

록 복 내려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알고 드립시다.

은혜를 감사하며 드립시다.

나 자신을 드립시다.

풍성하게, 넉넉하게, 많이 드십시다.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드리는 사람들의

헌신과 헌물과 감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드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거지

도 거지취급하면 화내고 덤빕니다.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발행일 : 941016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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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수년안에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합 3:1-4

하박국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BC 612년에서 605년에 이르는 7년 기간이었습

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의 정황은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킨 바벧론의 급부

상으로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벧론은 여세를 몰아 BC 605년 갈그미스

(Carchemish) 전쟁에서 애굽을 이김으로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스빈다.

그러한 국제 패권다툼과 경쟁 속에서 남왕국 유다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 문제였습니다.

 

통치자들은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했습니다. 강대국에 조공을 바쳐야 된다

는 이유로 백성을 늑탈했고 공의를 외치는 주의 종들을 듣기 싫다는 이유로

잡아 죽였습니다(렘 36:20).

그런가 하면 도덕은 땅에 떨어져 구원의 여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악인의 활동을 방치하시렵니까"

"어느 때에 의인들을 구원하시겠습니까?라고,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가 깨달

은 몇 가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의문은 "왜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의 심판을 지체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불의한 바벧론을 들어 택한 백성을 징계하시는가" 라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로 깍거나, 돌로 다듬어 만든 생명없는 신이 아닙니다. 보시

고 들으시는 인격적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자동검색기처럼 순간순간 삐삐소리를 내지는 않습니다.

 

바벧론이 남왕국 유다를 침략하고 괴롭히고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

님을 원망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는 바벧론의 말발굽이 택

한 땅을 유린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수 있는가라고 항변했

습니다.

 

그러나 하나니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렇다해서 바벧론을 방치하신 것은 아

닙니다. 그들 역시 신흥국가 페르시아에 의해 역사의 지명선에서 점멸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어느날 텔레비젼 드라마(한명회)를 보다가 느낀게 많았습니다. 세조

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나이 어린 왕이 그 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장면은 어전회의였습니다. 손자뻘에 불과한 어린 왕이 뭐라고 한마디를

하고 있었스빈다.

 

그러자 일제 대신들은 코가 마루바닥에 닿도록 엎드리며 소리를 합창했습

니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물론 이것은 왕권을 절대화하고 신격화 했던 전제

정치 하에서나 있었던 풍속도입니다.

왕은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정책결정에 오류를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보좌하는 대신들은 왕명을 절대시 했고 성은

 

 

 

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박국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비록 그것

이 인간의 논리나 경험에 비추어 마땅치 않다고 하더라도 "모두 정당하고

옳다"고 믿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로마서 12장에서

표현했습니다.

 

성경 전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입

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옳다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항변하고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으

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하고 반기를 들고 도전했던 사람들은 복을 받

지 못했거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예를 들겠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령에 도전하다가 추방당한 실

패자가 되었습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다가 홍수로 전멸당했습니

다.

 

자신들의 지식과 과학문명을 하나님으로 대치하기 위해 시날 평지에 모여

반역의 탑을 쌓던 지식주의자들과 과학주의자들은 탑도 무너졌고 동서남북

으로 흩어지는 이산가족이 됐습니다.

 

퇴폐와 탈선과 범죄에 빠진 채 하나님을 외면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흔적도

없이 사람도 도시도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정면 도전했던 고라와 그의 일당은 지진으로 생매장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조건없이 순종하고 대홍수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무모한 것 같은 섭리에 순종했기 때문에 자신과 그

후손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철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다가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실패를 넘어 성공을 한 것입

니다.

 

이런 이야기를 성경전체를 메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그 모두가 옳으십니다"라고

고백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나와 내 후손이 복받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현대이을 위협하는 성인병을 일명 인조병이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현대인

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생활방식 때문에 성인병이 발병한 데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인병은 크게 다섯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1) 암, (2) 뇌졸증 (3) 심장

마비 (4) 간장병 (5) 당뇨병 입니다.

 

암의 경우는 그 원인이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전문가들은 정

신적 원인과 물리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공기 오염, 식수 오염, 음식물 오염, 불규칙한 생활 등이 복합

적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뇌졸증의 경우는 동물성 기름의 과다섭취로 뇌혈관이 막혀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이고, 심장마비의 경우는 과로나 과음이 원인이 작용해 돌연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간장병 역시 과음이나 과로에나 약의 과다복용이 그

원인이 된다는 것이고, 당뇨병은 과식, 운동부족, 주색잡기, 근심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성인병은 내가 만드는 인조병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

러나 성인병보다 더 큰 인조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행과 저주입니다. 불

행과 저주는 꽃가루처럼 공중을 떠돌다가 아무에게나 내려 앉는 것이 아닙

니다. 그것은 내가 동기를 부여하고 내가 발전시키고 내가 제조하는 인조병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전하고 반기를 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영적 인

조병에 걸리게 됩니다.

 

영적 성인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이 편치않고 불안합니다. 모든 생각과 일에 안정감이 없습니다.뭔가

목에 걸려 있는 것 같은 증상이 계속됩니다. 기도가 막히고 찬송이 힘이 없

습니다. 영적 식욕감퇴로 말씀이 맛이 없도 거부심리가 발동합니다. 그 증

상이 깊어지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

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그 존재와 하는 일이 의심스러워

지게 됩니다. 이 영적 성이병을 빨리 고치지 않는다면 내 영혼은 지옥에 떨

어지고 맙니다. "오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서 하신 일과 하고 계시는 일과

그리고 앞으로 하실 모든 일은 모두가 옳고 정당합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

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 그래야 영혼의 성인병을 고치고 살 수 있습니다.

 

2. 불의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의와 불

의, 선과 악, 신앙과 불신앙으로 점철된 사건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긴 사건이 아닙민다.

 

하박국의 신앙은 설령 이 지상에서 불의와 악과 불신앙이 흥왕한다 하더

라도 최후의 심판대에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빈다.

 

그래서 불의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의 성공이나 행복 때문에 가슴칠 필

요도 없고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북극해를 항해하느라면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빙산들이 365일 남쪽으로 흘

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은 북쪽으로 떠내려 간다는 것

입니다.

 

빙산은 75%가 바다 밑에 잠겨있기 때문에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따라 떠

내려 가지만 해면에 떠있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은 표면의 바람을 따라 북쪽

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바다 속에 잠긴 채 떠내려가는 빙산의 방향이 바

닷물의 진짜 방향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 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사건들, 부정, 부패,횡령,살인,

퇴폐, 불법 따위들은 북극바다 해면에 떠있는 얼음덩어리들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바람에 밀려 북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저네들끼리

부딛쳐 가루가 될 것이며 햇빛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지나가는 뱃창에 부딪

쳐 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빙산은 말없이 그 웅지를 감춘채 남쪽으로 흐릅니다.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침묵이 계속 된다고 해서 바람따라 살면 안됩니다. 불의는

심판받고 정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수년내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3:2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년 내에 라는 것은 "금방,짧은 시간 안에, 속히" 라는 뜻

입니다.

 

그리고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것은 두가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죽었던 것을 다시 소생시켜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건강을 회복시

켜서 치료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행중 하박국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용기와 소망과

위로를 찾았습니다. 인천북구청 세금 횡령사건과 지존파의 살인 사건으로

온통 충격 속에 빠져있던 지난 주간 저는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에 머무는 동안 부녀자 납치살해 사건과 군부대내의 장교 길들이기 사건,

강원도 탄광사거 사건, 뉴스를 들었습니다.

 

제가 만난 몇몇 지도자들은 "요즘 한국 어때요?"라고 물었고 저는 "글쎄

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제 개인의 생각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다가 벼랑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고민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수년 안에 살리시고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박국의 믿음이며, 고백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살리시고 치

료하신다는 확신과 고백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신 주님, 거라사의 광

인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신 주님, 그 주님은 오늘 우리 사회와 우리 시대를

살리시고 치료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터지고, 땅위에서 터지고, 바다에서 터지고, 집안에서 터지고,

길거리에서 터지고, 땅 속에서 터지고, 관청에서 터지고, 내무반에서 터지

는 사건, 사건, 사건들을 누가 어떻게 막고 고치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주여 수년 안에 살리시고 치료하소서."

 

1858년은 미국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흥운

동은 평신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2년동안 200만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역사가였던 챨스 콜슨(Charles Colson)은 그 운동을 가리켜 "이 운동

은 허드슨 강에서 시작하여 시카고를 휩쓸었고 마치 산불처럼 미 전역을 휩

쓸었다. 그 당시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직업을 가진 전도자들이었다. 날마다

길과 밭과 지장에서 전도했다"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 사회를 고치고 살립니까?" 수년 안에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누가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장에서, 길

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마치 1858년의 미국처럼 전도자가 되고, 등불이

되고, 소금이 되고,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절망은 없습니다. 우리 시대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주여, 수년 안에 고치시고 살려 주옵소서.

우리를 부흥케 하옵소서.

 

발행일 : 941009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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