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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2)

by 【고동엽】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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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키시는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년 01월 22일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될 법도를 재조명

하고 확인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을 떠나 광야를

횡단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신앙과 생활 지침서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신명기 32-34장은 신명기의 결론부분이 됩니다.

 

신명기의 결론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축복한 것입니다. 본문이 말

하는 하나님은 한마디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짖

켜주심을 살펴보겠습니다.

 

1,열악한 환경과 위기에서 지켜주십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만나시

고"리고 했스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했던 광야는 사람이 거처하거나 통과하기가 힘든 곳

이었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질만큼 폭염이 계속되다

가 밤이 되면 추위가 몰아 닥칩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기 십상이

고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기 때문에 언제 기습을 받을런지 예측불허입니다.

거기다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곳을 "황무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그토록 열악하고 위험천만한 황야를 횡단했던 이

스라엘 민족이 단 한명도 목말라 죽었거나 일사병으로 죽었거나 배고파 죽

었거나 추위에 얼어 죽었거나 맹수에 물려 죽은 일이 없었스빈다. 애굽에서

나왔던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그들이 죽은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

고 불순종한 죄 때문이었지 황무지와 짐승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32:21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환경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좋은데 타락하거나 잘못되는 경

우가 있는가 하면 환경이 열악한데 바로 되고 잘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 유치원의 경우를 보면 중구 교육청 관내뿐 아니라 서울 시내에

서 모범 유치원으로 공인받고 평가를 얻었습니다. 매년 평가에서 빠지지 않

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장 건실하고 알찬 교육

을 실시하는 모범유치원이라는 것입니다.

 

충신유치원보다 더 시설규모나 내용이 크고 화려한 유치원이 많습니다. 그

러나 충신유치원은 협소하고 제한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모범적인 유

치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고 주님을 떠나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

경이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믿음을 굳세게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잘 벌고 성공하고 잘 살게 됐기 때문에 주님 외면하고 교회등지는사람

이 있는가 하면 감사하고 감격해서 신앙생활을 더욱 잘 하는 사람들도 있습

니다. 중요한 것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일이 되

든지 안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외

 

 

 

면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황무지와 짐승이 울부

짖는 광야에 들어섰을 때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

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은 그들이 사잘굴과 풀무불 속에 들어 갔을 때 사

자의 입을 봉해 주었고 풀무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저는 가끔식 비극적 생애를 마감한, 고 박대통령 내외분을 새각하곤 합니

다. 인물평가란 적어도 그 세대가 지난 후라야 가능한 법입니다. 100년후에

내리는 평가가 정직한 평가가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의

생각으론 자신들의 정권연장을 위한 무리한 정치 행동을 제외한다면 어느

대통령 못지 않게 일을 많이 했다고 평가하고 싶스빈다. 그런데 불행한 것

은 육영수 여사는 철통같은 경비망을 뚫고 잠입한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세상을 떠났고 박 대통령은 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여사의 경우는 그 자리에 우리나라에서 사격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

과 완전무장한 경호원들이 보는 앞에서 저격당했습니다. 박대통령의 경우는

가장 신임하는 경호실장, 비서실장, 정보부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저격당했

습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의 상처들이긴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대

체 누가 누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잘못은 절대자이신 하나가링을 과소평가하고 상대자인 사람의 능려

이나 그 역할을 절대 평가하는데 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사람은 대단

한 것으로 평가하고 하나님은 소홀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39을 보면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하며 상하게도 한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보호와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희 집 안방에는 고 갈물 이철경 선생께서 써주신 한글족자가 걸려있습니

다. 살아계실 때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라며 부탁드리고 받은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

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시편 121:1 -2 말씀입니다.

 

2. 왜 지킵십니까?

 

신명기 32:9을 보면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

업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자기 백성이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을 선택하라고 추천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우리를 선택해 다랄고 부탁한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의도와는 상관도

없는 일방적 선택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버

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자식을낳은 부모는 자식을 기르고 지키

고 가르칠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또 다른 이유는 언약 때문입니다. "내가 너

를 지키겠다 사랑하겠다 인도하겠다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

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조건과 제한과 약점과 허물을 넘어서고 덮어줍니다. 이스라엘

과의 약속 때문에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기 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에 덮어주

시고 용서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약속은 엄밀하게 보면 냉정한 것입니다.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약속은 깨

어지는 법이고 그 책임은 어긴 사람 쪽에 있는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사람

은 대접을 받기도 어렵고 용서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용서와 관용과 도움을 받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던 약속도 ,하나님만 사

랑하겠다던 약속도, 결코 한눈팔지 않겠다던 철석같은 약속도 제멋대로 깨

트려 버렸습니다. 대접은 커녕 매맞고 내쫓기고 버림받을 일만 골라 했습니

다. 그러나 [사랑]때문에 용서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스빈다.

 

사랑으로 눈이 가리워지면 세상만사가 아름답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사랑이 절대 조건이긴 하지만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무에

결혼을 결저아는 단계는 이성적 관찰과 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단 이성

적 판단과 결정이 된 다음에는 불같이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 결혼의

절차인 것입니다.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맞는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받고 보호받는 이유는 순전히 사랑 때문인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3. 어떻게 지켜 주십니까?

 

10-12절이 설명해 줍니다.

 

1) 구체적으로 지켜주십니다.

10절을 보면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

다"라고 했습니다. [만나시고]는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서 지키신다는 것

이빈다.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는 전폭적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자

기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것은 완벽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눈동자 같이 지키시낟는 말씀을 주목해야 하빈다. 사람의 눈에는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거리,광도, 색상을 자동으로 조

절한다고 합니다. 모든신체의 기능이 오나전 자동차화 시스템으로 되어 있

지만 특히 눈의 기능은 전자동이라고 합니다. 눈꺼풀만해도 완저 자동 개폐

식이어서 유사시에는 즉흥적으로 눈꺼풀이 덮히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샘을

만들어 언제나 안구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촉촉하게 습도를 조절해 줍니다.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시나는 것은 자기

눈을 보호하듯 철저하게 완벽하게 지켜 주신다는 것이빈다.

사람의 지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신경조직, 두뇌판단, 눈동

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눈을 보호하듯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2) 홀로 인도하십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

도다"라고 했습니다. 힘이 모자라 누구의도움을 받는다든지 연합전선을 펴

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셨습니다.애굽의 바로

왕은 기병대를 동원하고 술객들을 동원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고 괴롭혔

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홀로

하셔도 무엇이나 가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방법입니다. 11절을 보면 "독수리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

을 업는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짤막한 한 구절 속에 독수리 훈련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새 중 왕이 되는 것은 가혹한 훈련 때문이빈

다. 알에서 금방 나온 독수리는 병아리나 꿩새끼와 다른 바 없습니다. 그러

나 철저한 훈련을 통해 새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등지 안에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것은 어미의 보호본능입니다. 그

러나 보호만 하는것이 아닙니다. 둥지를 흔들어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위기

를 느낀 새끼들이 몸부림치며 등지 안에 머물려고 하면 날개를 너풀거려 떨

어뜨립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가 땅을 향해 떨어질 무렵 어미는 다시

받아 둥지로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복합니다. 그 뜻을 모르는

다른새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어미 독수리가 심술이 났다든지 정신이

돌았다고 수근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수리의 강훈련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훈련하셨고 오늘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현대인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하루 만보를 걸으라고 합니다. 그래

야 하체가 튼튼해지고 신진대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신체를

단련하고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십니다. 영광도 호롤 받으십니다. 축복도 홀로 하십

니다. 지키시고 힘주시는 것도 홀로 하십니다.

인생을 살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보금자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파멸은

아닙니다. 그리고 종점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이며 연단이며 훈

련방법입니다.

 

105인 사건으로 투옥된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5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합니다."감옥은 이상한 곳이다. 강철같이

굳세게 되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썩은 들풀처럼 약해져 나오는 사람도 있

다."

하나님은 온실의 화초처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독수리

가 새끼를 훈련하듯 지휘관이 병사를 훈련하듯 감독이 선수를 훈련하듯 하

십니다. 거기에 합격하면 강한 독수리가 되고 강한 병사가 되고 강한 선수

가 되는것입니다. 오늘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의 인도와 보호를 따릅시다.

주여, 나를 지켜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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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예화 > 독소와 해독

자료원 : 박종순목사

발행일 : 95년 04월 20일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가 구약의 엘리사가 국을 끓일 때 독을

제거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오는 독을 다음과 같이 말

했다.

"현대전의 무기는 첫째 핵무기, 둘째 중성자탄, 셋째 세균이

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루, 사랑의 가루, 화해의 가루를 뿌려

서썩는 곳에 소금이 되고 어두운 곳에 빛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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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생명의 면류관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1월 15일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를 놓

고 볼때 하는 일과 맡은 일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스니다. 그 가우데서

기억하기 쉬운 것들만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삼촌,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형부, 매제, 이모부 등이 저에게

따라 다니는 이름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서울 시민이고 용산 구민에다 이촌동 동

민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충신교회 담임 목사, 서울서노회 노회원, 예장총회

목사입니다. 그리고 연합사업이나 사회 단체, 교회단체 등에서 맡은 일이

수십가지 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을 잘 해야 되기 때문에 시민 노

릇을 소홀히 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잘 하기 위해 남편 노릇을

가볍게 취급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으로도 비거운데 할아버지 노릇까지 감당하기는 더 어렵다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못한다라고 거절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감당해내는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하느냐 하지 않느

냐인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일곱교회

가우데 가장 모범적이면서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열악한 환경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처했던 상황을 9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

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과 훼방에 직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와 환난과 생활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유대주의자들의방해

와 훼방이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의 황제 숭배와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서머나

교회를 위협했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황제숭배를 거절하는 사람은 재산을

목수당했고 일터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드른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외부기온을 따라 변한다면 시낭지키기가 어렵게 되빈

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게 됩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올라가면

얼었던 물이 녹게 됩니다.

외적 조건이 조금 어렵다고 움츠러들고 약간 편해졌다고 활개치는 그런 신

앙이라면 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국 초대 교회 순교자 가운데 한 분인 최태용 목사님이 1926년1월호 [영

과 진리가]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 속에서 "이제는 신앙혁명을 들으라.기독

교가 아니요, 그리스도 자신을 믿으라. 교회 생활이 아니요 영이 더가라.

진리가 되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교인이 아니라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

니라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등불이 방 가운데 들어가매 어둠이 밖으로

도망가고 물이 그릇 안에 들어가매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믿음이 마음 가운

데 들어가매 의심이 밖으로 나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燈入房中夜逃外

하고 水入器內氣出外 하며 信入心中疑出外라).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쫓겨나고 물이 차면 공기가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

다.

세계교회 신앙 선배들의 신앙면모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열악한 환경과 조

건 속에서 더욱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도 그랬습니다.

 

2. 영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생활을 잘 한다든지 예수를 잘 믿는다든지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와 하루 봉사를 했다고 해서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

닙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사건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축복

을 받는다는 것도 당장 내 손에 수표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당

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쪽 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입

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영적인 문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

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고 영이 복을

받아야 육신이 살고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 경찰에 체

포되어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목사님은 일경이 고문을 할때마

다 '주님은 저 위해 피흘러 돌아가셨는데 저도 고문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

니다"라며 고문을 견뎌내었습니다.

어느날 일경이 물었습니다. "영감, 천황 폐하가 기독교를 믿으면 죽이겠다

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이기선 목사님은 "천국법도 지키고 국법도 지키겠소"라고 대답

했습니다. "어떻게 둘 다 지킬 수 있단 말이요?"라는 물음에 이목사님은 "

하나님이 예수믿으라 했으니 예수 믿고, 천황이 죽으라 했으니 죽으면 됩니

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지, 죽음

이 두렵지 않다든지 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십자가

를 면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나 서머나교회 교

인들이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것은 영적

인 문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잘 산다고 해도 그 집에서 앞으로 8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80년 안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를 에워싼 조건들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한시적입니

다. 그러나 영원합니다. 그리고 영적 사건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오늘의 쾌락이나 행복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포

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는 본문 10절 하반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

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이미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환난

과 궁핍과 고통을 감당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교인들에게 주님은 말

씀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이 한마디 속에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던 충성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이미 충성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으로 만족

하거나 자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나 가치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게임 끝나고 훈련을 쉬는 선수

는 다음 경기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있든 없든 훈련을 계속해야 강

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독창회나 연주회가 끝났다고 해서 연습을 중단

해 버리는 음악가나 전시회 끝났다고 해서 붓을 던져버리는 미술가는 훌륭

한 작품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힘써 그일을 계

속해야 합니다.

 

둘째,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수지 댐이 터지는 것은 지극히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기 시작하고 그것

이 점점 커져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성인병의 경우도 커져서 원인이 점던 커져서 큰 병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

적으로 사람의 위 용량은 200CC 의 음식물이 위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위가 10배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루가 매 끼니마다 터질 지경

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위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짠 것, 매

운것, 질긴 것, 뜨거운 것, 오만가지 나쁜 것을 다 집어 넣습니다. 쉴 날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피곤해서 잠깐 쉴까하면 커피 집어넣고, 과일 집어넣

고, 과자 집어넣고, 저녁 잠자는 시간에도 2000cc를 집어넣고 중노동을 시

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위병의 원인이 바로 그러한 위장관리에서 비

롯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 소홀히 취급하기 쉬운 일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어하

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서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성과가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일

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적위주에 치우치다 보면 형식과 전시효과를 중요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일은 오늘 당장 그 실적이 드러나

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했다고 해서 오늘 상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그일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시간제가 있고, 일급이 있고 주급이 있고, 월급이 있고, 연봉이 있습니다.

한시간 일하고 받는 보수는 극히 작습니다. 대개 엄청난 보수일수록 연봉으

로 계산합니다.1년에 얼마를 주고받기로 계약하고 일을 하는 것이 연봉입니

다. 한 시간 일하고 그 자리에서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입니다. 한 시간 일

하고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일은 연봉이 아니빈다. 최고봉이빈다.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장 오늘 일하고 칭찬이나

보상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과소평가 하면 안됩니다.

 

넷째,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나혼자 다 맡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맡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맡지 않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잘못입니다.A 회사에 입사를 했으면 그 회사일에 최

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A 회사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B회사 일에

군침을 삼킨다면 A 회사가 그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일에 최선

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순교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

다.

[예수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목사님은 1939년 6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2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40일 금시기도에 들어갔습니다. 40일 금

식기도가 끝난후의 최목사님은 산송장이었습니다. 병보석으로 나와 기홀병

원에서 15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가지 못하고 1944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시기전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신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뿌린 피와 흘린 땀 위에 한국교회는 세워졌습

니다. 오늘까지 한국교회가 역사의 격동과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피와 땀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도록 충성한 다음에 오는 상급이빈다. 본문을 보면 "그리하면 내가 생명

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싸움에

서 이긴 개선장군,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퇴임하는 장관에게 면류관을 주었

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않는 면류관, 사

랑의 면류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유는 생명을

바쳐 얻은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히믈 다해 최선을 다하면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음을 받는 것이 됩니다.

 

금메달리스트는 금메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금이 있고 연봉이 있고

명예가 있고 직장이 보장됩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최선을 다한 그리스도인

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 상급이 내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남

의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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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선을 다하는 교회 II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1월 08일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 최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고 최선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바울사도의 삶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디모데후서 4:7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길을 마치

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한 구절 속에 바울의 삶의 여정이

그려져 있습니다.[싸웠다,마쳤다, 지켰다]는 세마디야 말로 그가 일생을 어

떻게 살았으며 어떤 태도로 일했는가를 설명해 주기에 넉넉합니다.

 

그는 싸우는 병사처럼,달리는 운동선수처럼, 성을 지키는 파숫군처럼 싸웠

고 달렸고 지키며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최선을 다한 삶이었습니

다.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마라톤 선수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걸어서 결승점으

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경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달리는 사

람은 걸으면 안됩니다.

축구열전이 벌어지고 있는 운동장에서 공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선수는 없

습니다. 있다면 부상당하고 퇴장하거나 반칙으로 퇴장당하는 선수일 것입니

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운동경기로 비유했고 전투로 비유했습니다. 최

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1994년 11월 9일 저녁 6시 제주공항을 떠나 광주로 이륙하던 대한항공 326

편의 비행기 왼쪽 엔진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기 시작했습니다. 300명의 승

객과 승무원은 순간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곧바로 기장은 기수를 제

주로 돌려 회항했고 다행히 불은 착륙과정에서 꺼졌습니다.

원인 조사 결과 망가진 엔진사이에 꿩이 깃털과 피가 남아 있었습니다.

활주로에 있던 꿩이 비행기에 부딪쳐 일어난 조류충돌사고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외국에서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고 부릅니다.

꿩 한마리 때문에 엔진부품인 팬블레이드(Fan Blade) 46개가 망가져 40억

원의 수리비를 날렸다고 합니다.

 

1995년부터 23년간 민항기와 군용기 73대가 새와 충동해 추락했고 138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92년 한 해동안 전 세계적으로 5,605건의 조류 충동사건이 있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꿩 한마리와 비행기, 비교도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만 그 작은 새한마리가

비행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40억원의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이 사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은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소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

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면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면장이라는 사실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공부를 못했나. 대학을 안나왔나, 얼굴

이 못생겼나, 헌데 겨우 면장이라니" 하며 면장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는 술타령을 일삼고 걸핏하면 도지사 만나 교제해야 된다며 도청소재지에

나가 살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왜 면장일을 소홀히 하느냐고 물으면 "나한

테 대통령을 시켜보라 내가 누구보다 잘 해낼거다"라며 기염을 토합니다.

이 소문이 도지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을 댕오령 시켰겠습니까?

그 달 말로 해임되고 자리에서 쫓겨나야 마땅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핑계가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나를 무시해도

분후가 있지. 이걸 일이라고 준단 말야? 다른 걸 맡겨보란 말야, 잘 해낼테

니.."라며 핑계를 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들은 둘을 맡겨도 다섯을 맡겨도 충성을 다합니다. 무

엇을 맡겨도 그 일에 최서을 다합니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취급하거나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왜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의 일군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일군]이라는 말의 의미는 배 밑창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노를 젓는

사람을 뜻합니다. 북소리에 맞춰 줄지어 앉은 채 노를 젓는 사람을 가리켜

일군(훼파레스)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에는 노예가 노를 젓는 일을 맡았습

니다. 어두운 배 밑창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노를 젓는 동안 한눈을 팔거나

딴전을 피우며 꾀를 부리는 노예가 발견되면 감시원의 가죽 채찍이 날아옵

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한눈을 팔아도 안되고 딴전을 피워도 안되

고 꾀를 부려도 안되고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뒷줄은 힘드니까 앞줄로

가겠다든지 기분 나쁘니까 쉬다가 하겠다느니 불평도 핑계도 통하지 않습니

다.

 

북소리의 리듬에 맞춰 노를 젓기만 하면 됩니다.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 목적지가 어딘지에 관한 것은 선장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 살면서 모내기를 해 본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모내기를 합니다만 옛날엔 사람이 줄 지어서서 손에 한웅큼

씩 모를 들고 있다가 줄을 따라 모를 심곤했습니다. "평당 쌀이 몇가마니

나올까, 비료값은 얼마나 들까, 이 논에서 나온 쌀은 누가 가져갈까"등 그

런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이 어이 하는 구령에 맞춰 모를 심고

일어서고 다시 모를 심곤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일군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이며 하나님의 배에서

노를 젓는 노예이며 하나님의 논에서 모를 내는 일군인 것입니다. 일군의

할 일은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연두기자 회견이 끝난 후 TV 토론에 참여한 어느 연사의 말이 생

각납니다. 그는 '대통령의 시정방침이나 세계화 구상이 발표됐습니다만 국

민의 할 일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모든 국민이 그 뜻을 따르고 협력한다면

선진화나 세계화가 이뤄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구상은 한낱

구상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군은 일해야 합니다. 떠들고 일 안하는

사람보다는 조용하게 일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일군입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맡은 자]라는 것은 관리자,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본래 뜻

은 오이코스노모스(Oikosnomos) 라는 것으로 집을 관리하는 자라는 것입니

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면 얼마나 신임이 두터우

며 그 책임이 중요합니까?

미국 대통령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사람가운데 검은 가방을 든 사

나이가 있습니다. 그 검은 가방은 만일의 돌발사태에 대처할 대통령의 결

정에 관한 장치가 장착되어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 가방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습니까.심복도 가장 신임하는 심복에게

맡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스런 사명을 맡겼겠습

니까? 믿고 신임하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을 소홀히 취급하고 과소 평가

하는 것입니다.

 

관청마다 벽에는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어느날 장관이 자기방에

걸려있는 대통령 사진을 떼낸 후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았다고 합시다.사

진이란 인화지에 현상한 그림에 불과하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존재와

권위와 인격을 짓밟는 것입니다. 그 장관의 목이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나한테 직분을 주셨습니까? 내가 누구의 종이며 일군이며 청지기입니

까?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신 일

을 소홀히 취급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맡았든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구나

비밀가방을 소홀히 취급하면 그 화가 더 큰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 축복받는 비밀, 영원한 생명의 비밀,천국가

는 비밀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 비밀을 알리고 전하는 청지기 노릇을 잘

해야 합니다.

 

3.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3을 보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에 공력을 밝히

리니"라고 했고 4:4 끝을 보면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창조론과 종말론을 가진 종교입니다. 창조론이란 하나님이 천지

를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종말론이란 이 세상의 종말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계가 영속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빛이 무엇인가에 대하 명확한 개념이나 정의를 정립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뉴톤(Newton)은 [빛은 발광체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하여 나오는 입자]라는 학설을 주장했습니다. 즉, 광립자

(particulate Theory) 설이 뉴톤의 학설입니다. 그런가하면 물리학자 호이

겐스 (Huygens)는 빛은 하나의 파동이라고 하여 파동설(Wave Theory) 을 주

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빛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라고 하는 광량자설

(Photon Theory)을 주장했습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빛은 파도의 파장처럼

파동성(Wave)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전자파니(electromagnetic wave) 파

장(Wave Length)이니 주파수(cycle) 니 가시광선(visible light)이라고 부

릅니다.

그러나 창세기 1;3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빛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었습니

다. 빛은 하나님께서 혼돈과 흑암을 물리치기 위해 말씀으로 만드신 창조물

이라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규명하고 연구해도 미지한 그 빛을 말

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성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고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리라]고 했고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낱낱이 심판이 있을

것이며 잘한 사람에게는 칭찬과 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

은 일군과 맡은 자들에게 요구하는 자격조건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은 학벌도, 가문도, 미모도, 경력도 아닙니다.

충성입니다. 다른 조건들은 충성하는데 필요한 것들이지 충성보다 그것들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베드로보다 훨씬 더 사회겨험이

나 가문이나 학벌이 출충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만 베드로를 선택하

신 것은 그의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십자

가를 지는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디모데전서 1:12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

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내 가

문때문에,내 학벌때문에,내 경험때문에라고 말하지 않고 "나를 충성되이 여

겨"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꾸짖고 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것은 왜 공부하지 않느냐, 왜 경험이 적으냐가 아닙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입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본문 4:4에서 '자책할

일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본 것입니

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내가 맡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앞에서 꾀를 부릴 순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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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선을 다하는 교회(1)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1월 01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는 금년 한해동안 이 구절을 암송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암송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회 모일 때도, 제직회 모일 때도 교역자 모임에서

도 예배시간에도, 남녀선교회 모임에서도 맨 먼저 이구절을 암송하고 시작

해야 합니다.

이유는 금년 우리 교회 표어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최서을 다해야 한

다는 것은 금년 만의 경우는 아닙니다. 인생과 신앙을 포함한 모든 일에 최

선을 다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최선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최선이

란 "산모가 아이를 낳을때 힘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없어서 실감나는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만 여

자들의 말에 의하면 죽을 힘을 다하고 목숨을 걸고 힘을 써낳는다는 것입니

다.

산부인과 병원이 없었던 시절의 임산부들은 민간요법으로 집에서 해산을

하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 방에 들어가는 임산부들 마음 속엔 내가

벗어놓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으로 해산에 임했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세계에는 대충대충 대강, 적당히,슬슬, 되는대로

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다가 그만 둘수는 없는 대충대충, 슬슬, 적당하, 되는대로,아이

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죽기 위해 남겨둔 힘까지도 써야 고고성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인생사는 것도,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적당히,

슬슬 해 치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국 격언 가운데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신의 축복을 기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축복받을 생각을 말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지미 카터]입니다. 그는 그의 고향 조지아 주에 카터 연구소

를 만들어 국제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하면 국제 해결사로 각광을 받고 있습

니다. 그는 작년 경직화되어 가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

김일성을 만났고, 보스니아의 내전해결을 위해 세르비아계의 본거지 팔레를

방문했는가 하면 아이티를 방문해 아이티의 긴장을 해결하는데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했는데 제

목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Why not the best?)였습니다.

 

카터가 해군중위시절 해군함정을 타고 항해하던 중 어떤 날 함장 리코버

제독으로부터 "귀관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라는 책망을 받은 일이 있

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크게 깨닫고 자극을 받아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

했고 그러한 삶이 원인으로 작용해 대통령이 되었노라며 리코버 제독에게

감사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성공의 조건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재벌들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들

은 오늘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게되빈다. 음악도,운동

도, 미술도, 세계 정상에 오르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대충대충 시간이

나 메꾸려는 태도로는 예술가도 되기 힘들고 학자도 되기 힘들고 목회자도

되기 힘듭니다.

성공의 일곱가지 비결이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을 바로 관리해야 합니다.

 

시간이란 초와 분과 시들이 모여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스러기를

모아 만든 작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나 분 하나하나를 소홀

히 취급하고 낭비하다 보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로 목적성취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투리 시간을 선용하고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100억 환상에 빠져 백원이나 천원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은 일생 가난뱅이가 되든가 아니면 어느날 도둑

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잠도 줄여야 합니다. 24시간 중 4분의 1이상을 자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성공의 길은 멀어집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잠이 많으면 기도생활도 힘들고 규칙적인 신앙성

장이 어렵게 됩니다. 특히 목회자는 잠이 많으면 고생스럽습니다. 한국교회

의 경우 새벽기도회가 없어지긴 어려울텐데 목히자가 잠이 많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겠습니까? 올바른 시간관리는 성공과 직결되어 있음을 기억

해야 합니다.

 

둘째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성공이 어렵습니다. 구멍가게도 부지런하면 성공하지만 게

으르면 문을 닫게 됩니다.

신선한 야채와 생선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게는 아침 11

시나 되어야 문을 엽니다. 가정 주부들은 그날 아침 일찍 문여는 다른 가게

로 가서 물건을 사가곤 했습니다. 넉달만에 그 게으른 가게는 문을 닫았습

니다.

 

교회도 게으른 교회는 부흥하기 어렵습니다. 불꺼져 있는 시간이 많은교

회, 담임목사도 게으르고, 부목사도 게으르고, 장로도, 권사도, 성가대도,

교사도, 교인도 모두 게으름뱅이들 뿐이라면 그 교회는 부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1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

기라"고 했습니다.

잠언 6:6을 보면 "게으른 자는 개한테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일하는 소의 입에는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고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으면서 댓가만 챙기는 것은 안됩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민주

화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일하기를 기피하는 풍조가 돌기 시작했습니

다. 맡은 일을 적당히 땜질이나 하고 댓가만 챙기겠다는 망국적 풍조가 풍

미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일 안하는 사람은 권리도 없습

니다.

우리는 민족적으로 좀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복지부동]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희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입니다.

복지부동이 무업니까? 너는 떠들테면 떠들어라 나는 꼼짝도 안한다는 것입

니다. 죽일테면 죽여라.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 복지부동입니다.

게으르고 일 안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은 나라 망치는 병균입니다.

신앙도 게으르고 일 아니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금년은 무엇이든 누구든

한 가지씩 일을 합시다.

 

셋째,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힘을 다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명기 6:5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

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성품, 힘을 다하라는 것은 전력

을 다하라는 것이며 전 인격을 다 쏟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전력투

구해야 성공합니다. 한 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해냅니

다. 그러나 작은 일 한 가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둘도 셋도 제

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맡았든지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의 길도 막히지 않고 그 다음 사람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넷째, 성공한 사람을 본떠야 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성공한 사

람들은 남이 따르지 못할 비범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우연히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점과 그 면을 예의주시하고 배우고 본뜨

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것, 악한 것, 범죄수단은 본뜰 필요가 없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삶의

자취는 따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다섯째,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대받을 수도 있고 호

강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개가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절대로

한국에 이민 가지 말라"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철탕집으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 뉴저지 주에 살던 [보미]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주인이 죽으며 100만 달러를 유산으로 몰려주었습니다. 그 유산은 변호사가

관리하며 개전용 캐딜락 승용차에 전속 운전수를 고용했고 주치 수의사가

건강을 체크하는가 하면 전속 개의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을 입혀 주었

습니다. 그 개는 주인 잘 만나 호강한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면 성공길이 열리고 잘못 만나면 열렸던 길도 닫히고 맙니

다. 그러니까 성공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친구나 이웃 선택을 잘 해야 합니

다.

제가 어렸을 때 한 동네에서 교회를 다니며 늘 어울리느니 7-8명의 친구들

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4명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

를 들면 장난삼아 남의 수박을 훔친다든지, 호박 잎을 가루처럼 만들어 담

배처럼 피운다든지 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곤 했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그들과의 만남이나 교제를 끊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오늘의

저는 목사가 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모두가 예수를

떠났고 세상 사람들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귀고 있는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친구려니 하고 교제하는사람을

둘러 보십시오.

빨리 삶에 오염되기 전에 주변을 정리하십시오.

 

여섯째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회란 시간과 사건이 합해서 되는 것이기 때

문에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마치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그 기회를 붙잡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은혜도, 구원도 지금이라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일곱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성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해도 성공의

결정권은 하나님이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조건 속에서도 성공을

만들어 내시는가 하면 성공의 결정에서도 끌어내리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

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성공과 행복과 평안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역대상 29:10이하를 보면 다윗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

니다. 그는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주권과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께

속하였으며 주께로부터 왔노라"고 했습니다.

 

1995년도 충신교회 표어는 [최선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관련성구

는 고린도전서 4:1-2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이 구절을 때마다 암송해

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저는

계속해서 왜 최선을 다해야 하며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하며 최서을 다하면

어떤께 되는가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바람직하고 바르고 좋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결

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도박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요일 오

후에 몰려들기 시작 토요일과 주일까지 도박에 미쳐 있다가 오후가 되면

시뻘겋게 충혈된 눈과 빈혈병자처럼 비실거리는 걸음거리로 주차장으로 간

다는 것입니다.

도박군들은 이틀밤씩 최선을 다했지만 남는 것은 허탈, 기진, 패배감 뿐

인 것입니다. 나쁜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1995년 한해동안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뜻있고 보람된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각각 맡은 일들에 최서을 다합시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상급이 임할

것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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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목 : 새해를 맞는 마음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1월 01일

 

우리나라 만큼 사계절의 순환과 구분이 명확한 곳도 많지 않습니다. 노르

웨이 같은 경우는 겨울이면 몇 달씩 밤만 계속되는가 하면 여름이면 낮만

계속됩니다.

노르웨이 최북단 사는 주민들은 1월18일이 되면 여러달 동안 계속된 밤이

끝나고 새롭게 솟아오르는 해를 보기위해 높은 산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본느 순간 "아침이다! 해가 솟는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강원도 경포대의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 위해 12월 31일

저녁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 성전에서 영원한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감사의 주제나 내용 가운데 새해

니까 특별히 더 감사해야 된다는 공식은 없습니다. 감사는 언제나, 늘 감사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난 한해는 수를 셀 수 없는 감사로 점철된 한해였습

니다. 주님 떠나지 않고 믿음지킨 것으로 시작해 죽지않고 살게 된 것, 사

지백체가 기능상실하지 않은 것, 주님 섬기게 해 주신 것, 전쟁 일어나지

않은 것, 굶어죽지 않은 것, 오늘 여기 모일 수 있게 된 것..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대망의 새해를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며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카렌다는 바

뀌고 해는 바뀌었지만 그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

다.

어떤 공산주의자가 뉴욕에 있는 콜럼버스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

산주의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염을 토하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에게 새로운 옷

을 입혀 줄 수 있습니다"라고

그의 연설을 듣고 있던 기독교인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새 옷을 입을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라고

새 옷보다는 새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값비싼 새 옷을 입어도

도둑놈은 도둑놈입니다. 새 옷 입는다고 도둑놈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옷만 갈아 입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시편 131편은 시인의 소박한 열망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

은 시인의 삶의 다짐이기도 하고 소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인의 그 소

박한 다짐을 새해를 맞는나의 소망과 다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1절에서 시인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후기 작품입니다. 다시말하면 그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

을 치며 불렀던 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 통치자인 왕으로 재위하는

동안 을었던 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며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자신의 겸손을 고백한 것입니다.

겸손은 내적인 것이며 인격적 사건입니다. 겸손은 자포자기나 체념이 아닙

니다. 겸손이라는 원문의 뜻은 [누르다][낮추다][괴롭히다]라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누르고 낮추고 괴롭히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누가복음 18:13-14을 보면 어느 죄 많은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사하셨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이며 무가치한 존재이며 얼마나 잘못한 것

이 많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될수록 겸손의 부피는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풀리처]에게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풀리처는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대가 영국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써 주실 것이다"라고

주경가 베이커는 "인생은 계단과 같다.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알게되고

밑으로 내려가면 자신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드보르작]은 민족주의 낭만파 음악

인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특히 그가 작곡한 첼로 협주곡[신세계 고

향곡]은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날 드보르작을 존경하는 프라하의 시민들이 그에게 꽃다발을 증정했습

니다. 그 꽃다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라는 리본이 매어

있었습니다.

며칠 후 사람들이 드보르작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주었던 꽃다발은

드보르작의 작곡실 한켠에 있는 베토벤의 흉상 밑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리

고 드보르작이 직접 쓴 찬사도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

드보르작은 시민들의 찬사와 꽃다발을 받고 몸둘 바를 몰라하며 고민하다

가 자신의 음악세계에 결정적 영향력을 주었던 베토벤에게 바치기로 결심했

던 것입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겸손한 삶의 태도는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 말미암았으며 주님께 돌려야 하며 주님의 받으셔야 된다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최고의 겸손인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금년 한 해 겸손하게 살아갑시다.

 

2. 과욕을 버리겠습니다.

 

1절 끝을 보면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일과 미치지 못하는 기이한 일이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된 삶이나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정치의 이슈는 [잘 살아보세]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경제적 중진국 대열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사는 훈련은 전무였습

니다. 허영, 사치,낭비의 물결이 홍수처럼 휩쓸어도 속수무책입니다.

시인은 그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힘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고

백합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쓸 수 있는 힘은 제한되어있습니다.

수명 자체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힘과 생명을 헛된 데 낭비하면 안됩니

다.

돈은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만 그 돈을 벌기 위해 과욕을 부리면 결국 그

돈 때문에 인생을 그릇치게 됩니다.

쾌락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쾌락만을 구하다

보면 그 쾌락에 빠져 패가망신하고 마는 것입니다.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올바로 사용합시다. 노력하고 힘을 다해 살되 욕

심은 버립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3. 평안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절을 보면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와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실컷 젖을 먹고 난 후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먹였을 대 아기의 표정과 엄마의 젖을 먹을때 아기의

표정을 비교해서 관찰해 보십시오. 이유식을 받아 먹고 있는 표정은 만족한

표정이빈다. 그러나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 표정은 행복하고 평안한 표정입

니다.

 

외국 미술단체에서 [평화]를 주제로 미술작품을 공모했습니다. 많은 작품

이 공모됐는데 소재가 다양했습니다.

구름 한점도, 바람도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한척, 한적한 시골의 전

원풍경, 꽃핀 들녘에서 가족들이 소풍을 즐기는 모습, 노을지는 석양 한쌍

의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 푸른 초장에서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등, 평화를 상징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공보전의 당선작은 다음 그림이었습니다.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가의 작은 오두막 엄마의 품에 안겨 밖에서 일

고 있는 풍랑이나 소란에 아랑곳 없이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기의 미소"였

습니다.

아기의 최대 요람은 엄마의 품입니다. 집안에 돈도 있고 TV도 있고,만화책

도 있고, 언니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옷도 있고, 신발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보험 증서도 있고, 침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느

니 서럽게 울어댑니다. "엄마- 부르며 웁니다. 아가의 최대 행복과 평화는

엄마의 품입니다. 그곳에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품 거기서 젖뗀 아이처럼 행복하고 평안을 찾겠노라"고 다

윗은 시편 17:8에서 하나님의 품을 "주의 날게 그늘"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의 품, 그 날개 그늘에서 쉬고, 평화를 찾고 평안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 날개 및 내가 평안히 쉬네

밤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주님 안에서 그 날개 아래서 평안을 누리며

금년 한해를 살아나갑시다.

 

4.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며 살겠습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했

습니다.

3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내 일생 하나님을 높이며 겸손히 살겠다. 헛된 일에 나의 건강이나

정력이나 소유를 낭비하지 않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품 속에 살면서 젖

먹고 난 어린 아이처럼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겠다. 이스라엘아 내가 그렇게

살기로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는 통치자로서의 바램을 피

력한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원한다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

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면 세상 것은 얻을 수 있지만 만족과 행복은 얻지 못하빈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볼 땐 나는 만족하였네"라는 노래처럼 하나님을 바라

면 참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스라엘아 영원까지 바

라면 내가 누릴 만족과 행복도 영원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태양이 밝았습니다.

겸손하게 삽시다.

욕심을 버립시다.

평안을 누리며 삽시다.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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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목 : 구원의 우물에서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4년 12월 25일

 

본문은 하나님을 나의 구원과 힘과 노래로 밍고 사는 사람들에게

임할 은혜와 그 삶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

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

다.

3절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

나님을 나의 구원, 힘, 노래로 믿고 산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은혜를 받은 사람인

가 하는 것은 그의 사는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3

절 [그러므로]이하의 설명을 주목해야 합니다.

 

1.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네가 생각하는 땅이나 물에 대한 개념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성지로 믿는가하면 물이 귀

한 곳이기 때문에 [구원]의 상징으로 묘사된 곳이 많습니다.

사8:6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죄를 가

리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고 묘사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살던 어떤 여인은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물

길러 나왔다가 거기서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기

쁨으로 물을 긷게 된 것입니다.

출17:1-7을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받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시게 해 주셨습니다.

이상에서 말한 물과 얽힌 모든 사건 등은 결국 영원한 생명의 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 긷

는 사람들 입니다.

지금도 수도 물을 사용합니다만 옛날엔 우물을 파고 그 물을 두

레박으로 퍼내 썼습니다.

우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동네 여론의 집합소입니다.

우물가에 둘러앉은 아낙네들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속상한 얘

기며 축하할만한 소식들을 주고 받는 곳이 우물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여론광장인 셈입니다.

둘째, 우물물은 퍼내야 맑고 깨끗합니다.

물을 퍼쓰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이끼가 끼고 썩게 됩니다.

물은 흔들고 흘러야 생수가 되는 법입니다.

셋째, 두레박이 터지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물이 다 새어 나가게 됩니다.

넷째, 우물물은 계속 새롭게 솟아납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 마치 우물물

이 솟아나듯 기쁨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물 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보다 더 큰 감격이 신령

한 우물을 만난 사람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누굴 만날까봐 뜨거운 한 낮에 물길러 나왔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

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참 기빛븜, 참 행복, 참 만족을 얻으려면 구원의 우물에

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구원의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우물가에 둘러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의 꽃이 피운다면 참 기쁨이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최초의 언어는 [감사합니다]라는 것입

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주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

가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에게 맨 먼저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형씨 몇살이슈?"

"주민등록 번호가 뭐유?"

"어디 사슈?"라야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안됩니다. 첫마디는 "감사합니다"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감사의 대상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

며"라고 했습니다. 딴이름 부르며 감사하면 안됩니다. 나에게 구원

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 후반부를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

습니다.

때로 우리는 정말로 감사해야 될 하나님과 상대적인 감사의 대상

인 사람을 뒤바꿀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는 최선을

다해 감사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선 대충 대충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

다.

 

3. 그 행하심을 만국중에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내가 감사하고 있는 그 사

실과 내용을 선포해야 합니다.

어느 해 농아인들과 정박아들이 함께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보다 건강한 제가 볼 때 그들은 감사

할 조건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는 그들의 노래와

손놀림 속에서 감격적 감사를 목격했습니다. 감동적인 예배였습니

다.

우리는 사지백체가 말짱하고 먹고 배설하고 잠자고 깨어날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적었습

니다.

감사는 하나였고 원망은 아홉이었습니다.

감사의 노래는 한곡 뿐이었고 원망과 시비의 노래는 수천곡조였

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사를 중얼거렸을뿐 선포하지못했

습니다.

본문은 만국 중에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좋은가, 귀

한가, 위대하신가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김포 공항 직원들의 성탄 축하예배에 설교를 하기위해

갔습니다. 그날 마침 모 백화점이 제2공항청사 지하 넓은 공간에

매장을 열고 자선바자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 장소가 그곳

매장을 지나서 가야하는 곳이어서 매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코너를 지날 때마다 판매원들이 "어서 오십시요" "할인 판매

합니다" "기회 놓치지 마십시요" "좋은 물건입니다"라며 손님 끌기

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상품 판매에 열을 쏟는 젊은이들의 신념을 볼 수 있

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망서림도 없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사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해야 합니담. "예

수님은 나를 위해 오셨다"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예

수님은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고 "예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5절 끝을 보면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만국 중에 선포하라든지 온 세계에 알게

하라는 것은 복음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민정부 출범초기의 이슈는 개혁과 민주화였습니다. 그리고 어

번 개각을 계기로 내건 이슈는 세계화입니다.

이제는 동남 아세아의 한국이 아니라 세계의 한국이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어차피 세계 정세는 세계화를 지향할 수 밖에 없습니

다.

러시아나 중국이 이미 개방 정책을 표방한데 이어 북한도 영공개

방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폐쇄나 쇄국정책이 설 자리가 없

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주전 700년경 하나님의 구원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온 세계에 알게 하라는 본문의 교훈이야말로 복음선교의

세계화를 위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벳바게라는 마을을 떠나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길가에 서있던 시민들이 종려가지를 흔들

고 겉옷을 벗어 길에 편 채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

도자들이 웬 소란이냐며 말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만일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

셨습니다.

4-6절 사이에 "그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며, 알게하라, 소리높여

부르라"고 반복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4.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 보겠습니다.

 

왜 감사해야 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선포하고 높이고 찬송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5절 끝을 보면 "가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극히 아름답다는 것은 탁월한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탁월

하고 비교할 수 없고 영광스러운 사건이며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

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중국 상해나 북경에도 성탄나무(Christmas

Tree)를 세우고 성탄 할아버지(Santa- )를 만들어 세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전 세계가 그분의 탄새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

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삶을 산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고 예수님처

럼 죽은 사람이 누굽니까? 오직 예수 뿐입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크리스마스입

니다.

이 복된 날 우리에겐 너무나 감사하고 증거할 사건들이 많습니

다.

윌리엄 거널은 "악한 일을 하고 기뻐하는 모습이나 그리스도인들

이 슬퍼하고 낙심하는 모습은 똑같이 꼴불견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제(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늘 주님]이라는 붓글씨

를 써서 표구사에 보냈습니다. 어떤 분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였

습니다. 저는 그 분을 만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사

람입니다. 저희 교회 장로님이 몇년 전 제가 써준 [늘 주님]이라는

족자를 사무실에 걸어 놓았는데 어느날 그분이 그 방에 들어 왔다

가 그것을 보았답니다. 어렸을 때 교회 생활을 하다가 장년이 된

뒤로부터는 신앙생활을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늘 주님]이라는

족자를 보는 순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휘호 하나를 더 부탁해서 받아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것입니

다.

[늘 주님]을 히브리 말로는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이

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뤄진 날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릅니다.

크리스마스는 구원의 우물이 되신 주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

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이 사건을 감사합시다. 이 아름다운 사건을 만국에 전파합시다.

오늘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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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은 나의 구원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4년 12월 18일

 

이사야12장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이스라

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찬양이 136편이나 되었다고 합니

다. 본문의 찬양 주제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12:1은 "그날에 너희가 말하기를"이라는 서두로 시작됩니다. (In

that day you will say) 그 뜻은 그날에 있을 사건 때문에 찬양한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날은 주님이 메시아로 오시는 날

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볼 때 이사야12장은 주전 700년 전에 불렀

던 성탄송가가 되는 것입니다. 12장은 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1-2)과 하나님의 구원을

세계 만방에 전하라는 것입니다(3-6). 우리는 2절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워이심

이라"고 했습니다. 2절 속에 하나님 찬양의 내용이 드러나고 있습

니다.

 

1."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찬송합니다.

 

우린 여기서 [나]라는 1인칭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시라고 노래하지 않고 나의 구원이시라고 노래한 점을 주목해야 합

니다.

1절 끝을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나의 구원"이 바른 고백입니다. 구원은 내 것일 때 감격스

럽고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만성 고질병을 앓던 사람이 명의를

만나 병을 고쳤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병을 고쳤는

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울먹이멸 어느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고 의사 이름도 모르는데 하여튼 우리가 고침받았다고 떠

벌렸다고 가정합시다. 그 사람은 가장 중요한것을 잊어버린 사람입

니다. 병원을 대고 고쳐준 의사 이름을 대고 내가 그분 때문에 고

침받았다고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이 고백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만 나의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유일성과 구원의 유일성을 천명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구원의 길도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바울은 갈1:6에서 [다른 복

음]이라고 했고, 1:8에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

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도량이 크고 넓은 사도였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배신했거

든 의견을 달리했던 사람들도 용납하고 포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사상 가운데 종교 다원주의라는게

있습니다. 미국은 본래 합중국이어서 각 나라 각 민족이 각각 다른

종교를 가진 채 모여 살고 있습니다. 각 나라 사람마다 각각 다른

종교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 구원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유

교나 불교나 회교나 인도교나 그 어떤 종교도 구원이 있기 때문에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이 종교 다원주의 주장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나 교회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무신론보다 더 무서운 적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이 말한 [저

주받을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

다.

둘째 하나님은 나를 용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구원의 과정이며 조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내가

죄용서 받는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

다.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이 죄없는 사

람더러 "내가 당신을 용서하겠소"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지은 죄는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지옥갈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특사로 수감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교도소에서 나온 사

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사]라는 말은 듣는 순간 하늘이 빙

빙 돌더랍니다. 그리고 설마하는 생각으로 기가 막히더랍니다. 자

기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답니다. 분명 꿈은 아니더랍니다. 전신의

힘이 쑥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답니다. 그리고 이젠 살

았구나라는 감동이 전신을 휘감고 소리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더랍

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은 그 감격은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에 그것을 비길 수 있겠습니까? 위가 쓰리고 아파

서 병원을 찾아간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설마 했지만 암이라

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현기증이 일어

나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암이야라는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암이란말야, 뭐 이따위 병원이 다있어?"라

며 모든 것이 다 증오스러워 졌습니다.

그 시간 부터 위가 쑤시고 열이 오르고 구역질이 나고 개스가 터

져 나왔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

을 들은 친구 의사가 모 종합병원의 내과 과장을 소개해 주면서 다

시 한번 검사해 보도록 주선을 했습니다. 결과는 암이 아니었습니

다. 그 순간 세상이 그렇게 밝고 아름답고 햇빛이 그토록 찬란하더

랍니다. 의사가 그토록 고맙고 팔다리에 힘이 솟고 차 안에서 노래

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특사받은 감격만도 못하고 암이 아니라는 건강 진단을 받은 후의

감격만도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도 있고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벌하실

수도 있고 상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무서운 심판을 받은 사람이나 민족들의 이야기

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경우는 용서받은 사

람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 그 구원은 영속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의사나 약은 내 몸둥이를 고쳐 줍니다. 그러나 그 몸둥이는 나이

들면 노쇠하고 병약하게 됩니다. 영원히 건강하게 되는 것이 아닙

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외국의 어떤 여자 배우는 얼굴 성형수술만

세번을 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는 눈이며 코며 양 볼의 보조개

를 성형했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에는 이마의 주름을 없애고 팽팽

하게 하기 위해 머리 속으로 이마 피부를 끌어 잡아 꿰메는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늘어진 목덜미와

턱을 팽팽하게 만들기 위해 목 뒤로 피부를 비끌어 메는 수술을 했

다는 것입니다. 그 잡지의 평은 만일 50이 지난 그녀의 얼굴을 비

끄러맨 실을 가위로 싹뚝싹뚝 잘라 버린다면 하루 아침에 그녕는

60 노파가 되고 말 석이라고 했습니다.

미인도, 영웅도, 영광도, 재물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은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2.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찬송은 경험적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힘

을 체험한 사람만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육체의 힘입니다.

물건을 드는 힘, 만드는 힘, 무력, 폭력, 경제력, 정치력, 지식

의 힘 등 인간 세계에서 생성되고 행사되는 모든 힘을 가리켜 육체

의 힘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이 힘이 없으면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 힘과

힘이 겨루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힘입니다.

영적인 힘은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입니다. 마귀도 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힘은 누구도 무엇도 겨룰 수 없고 맞설 수 없습니다. 가장 이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마귀의 힘인데 이밈 마귀는 하나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지 오랩니다.

하나님의 힘은 자기 힘을 믿는 사람에게서는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을 믿고 의지하면 강한 힘이 돼 주십니다. 교만과 불신

과 의심과 염려는 내게서 힘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앙망하면 새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사40:31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힘을 체험하며 살았던 다윗은 시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

고 이어 2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자,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시라"고 노래 했습니다.

다윗은 고독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시련이나 환난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힘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

으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구원이십니다.

 

3. 하나님은 나의 노래라고 찬송 했습니다.

 

가사있는 노래는 사람만 부릅니다. 새들의 노래는 소리와 곡조는

있습니다만 가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노래는 가사가 있고

사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노래는 자연, 이념, 사상, 사랑을 예찬하거나 표현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그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은 "기도는 우리의 길을 하늘로 향하게 하

지만 찬양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래 가운데 가장 귀하고 고상한 노래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

니다. 그것은 거룩한 노래이기 때문에 [성가]라고 부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등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을 많이 쓴 크로

스 비는 생후 6개월만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그녀에게 "하나님은 왜 너 같이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을

맹인이 되게 하셨을까?"라며 한마디 했습니다. 크로스비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태어나는 순간 네 소원이 무

엇이냐고 물으셨다면 나는 맹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을거야 왜

냐하면 천국에 가서 맨처음 눈을 뜨고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야"라고...

그녀는 일생동안 2000여개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도 24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각각 다릅니다.

두 눈을 뜬 사람도 있고 감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문제 투성이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

비는 두 눈을 감을 채 2천여개의 감사와 감격의 찬송시들을 썼습니

다.

시119:164절을 보면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행16장을 보면 빌립보 옥

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깊은 밤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 크신 사랑을 찬송하는 계절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더라도 감사하고 찬송합시다.

금성철벽 여리고 성도 나팔불고 찬송하며 돌았기 때문에 무너졌습

니다.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신 주여 내가 주를 찬양 하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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