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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목사설교모음(1)

by 【고동엽】 2022. 1. 1.

박종순 목사설교모음

 

 

3 돌아온 사람들

4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5 자아관리에 최선을

6 은혜로 사는 사람들

7 한인교회협 정기총회

8 은혜와 삶

9 우울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

10 향과 기도

11 기도에 최선을

12 주 밖에 없나이다

13 경배하는 사람들

14 깨어 있으라

15 지키시는 하나님

16 < 예화 > 독소와 해독

17 생명의 면류관

18 최선을 다하는 교회 II

19 최선을 다하는 교회(1)

20 새해를 맞는 마음

21 구원의 우물에서

22 하나님은 나의 구원

23 엎드리는 사람들

24 승리하는 교회

25 던지고 다시 찾는 법

26 물동이를 버린 여인

27 졸지 맙시다

28 제자가 됩시다

29 열납되도록 드립시다

30 마음을 정한 사람들

31 바로 드리는 사람들

32 수년안에

33 나의 삶 속에 평화를

34 원망하는 사람들

35 하나님이 주신 양식

36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37 풍요로우신 하나님

38 예정에서 영화까지

39 이 성에 유하라

40 그를 힘입어

41 해방된 사람들

42 선택받은 사람들

43 피조물의 탄식소리

44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45 내 생각을 너희 생각과 다르며

46 건강한 사람들

47 단비를 주소서

48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49 나와 내 집이 사는 길

50 가면서 전파하라

51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

52 저주받은 도시들

53 한나의 성공비결

54 어떤 부자의 일생

55 하나님이 주신 기업

56 실패에서 성공으로

57 배가 되기 위하여

58 사는 길로 인도 합시다

59 확실한 증거들

60 나의 객실이 있느냐

61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

62 차고 넘치는 교회

63 나중까지 견디는 사람들

64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65 전진합시다

66 빛이 있으라

67 실패한 관리자들

68 하나님의 대사들

69 칭송하며 선포하며

70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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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목 : 돌아온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누가복음 24장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

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3장-35절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

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신앙을 회복한 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두 제자의 행보 속에서 몇가지 산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두제자의 잘못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제자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열두사도 중의

두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고 모셨던 사람들

이었음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 두 사람의 행보는 다음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오늘 나의 잘못인 것입니다.

 

(1) 삶의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일하던 곳,다른 제자들과 함께 어울려 살던 예루살렘을 떠났습니

다. 13절을 보면 "그날에"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부활하신 그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조급하게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세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방관주의, 회피주의, 도피주의

입니다. 방관은 무관심이고, 회피는 편의주의이며, 도피는 적극적 외면이며

부인입니다. 세가지 다 나쁜 것입니다. 가령 두 제자가 한달 정도 예룻라렘

에서 고통받아가 떠났다면 이해가 가능합니다만 그러나 그날 더우기 부활의

소식이 퍼져나가고 있는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제아무리 미화하고 호평을

한다해도 이해되지 않는 처사였습니다. 현대 크리스챤의 특징은 방관자, 회

피자, 도피자라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내밀고, 불리하면 움츠리는데 익숙합

니다.

떠나면 안됩니다. 부활의 현장인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떠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떠나면 안됩니다.

 

(2)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

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

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뇌에 충격을 받거나 손상을 입으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우는 사흘 전까지 곁에 있었던 예수를 알아 보지 못했

습니다. 한마디로 비극입니다. '눈이 가리워졌다'는 것은 신령한 것과 신령

한 세계를 보는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안과의사들은 사람 눈에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 수십가지라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질환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질환 가운데 가장 큰 질환은 신령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겐 네 개의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사물을 보는 눈입니다.

산을 보고, 사람을 보고, 하늘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눈이

대기오염과 텔레비젼 시청 등 물리적인 원인에 의해 점점 어두워지고 있스

빈다.

둘은 이웃을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정신의 눈이며, 연민의 눈이며, 사랑의 눈입니다. 그런데 이 눈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웃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는 눈으로 병들어가고 있

습니다. 이웃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는 눈으로 병들어 가고 있고, 좋은 점

은 보이지 않고 허물만 약점만 보는 눈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셋은 세계를 보는 눈입니다.

인간의 눈 자체의 가시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천리안이라는 말이 있

긴 합니다만 천리를 보는 눈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조장치를 이용하면 아

메바도 볼 수 있고 월세계도 볼 수 있고, 사람의 위장도 들여다 볼 수 있습

니다.

사람에겐 세계를 보는 눈이 있습니다. 세계란 넓고, 크고, 깁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통합하고, 이해하는 것이 세게를 보는 눈입니다. 그런데 우

리네 눈은 좁고 침침합니다. 나 밖에 모르고 우리 밖에 모릅니다.

모 TV 토크쇼를 진행하는 사회자이 말이 생각납니다.

"요즘 세계화가 한창 강조되고 있습니다만 한국사람에 세계화 되는 것이

빠를런지, 세계를 한국화 하는 것이 빠를지 얘기해 봐야 될 것같습니다."라

고 했습니다.

세계화 수용 태세가 덜 됐다는 뜻일 것입니다. 세계를 보고 역사를 보고

미래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넷은 하나님을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믿음이라는 보조 수단이 없는한 보이지 않는 눈입니다. 그리고 성

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나님을 보는 눈입니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하소서 성령이여"아멘

그런데 현대인은 그 눈이 점점 어두워가고 있습니다.

중세기는 천주교의 교리와 성물숭배가 믿음의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

때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21세기는 인간의 지식과 과학문명이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영적 암흑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두 제자의

경우 신령한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곁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

니다.

 

(3)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길 가면서 그들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풀

어주는데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네 가지

단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듣는 것이고, 둘째는 느끼는 것이고, 셋째는 깨닫는 것이고, 넷째

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듣긴 듣는데 느낌이 없다든지 느끼긴 하지만 깨달음

이 없다든지 깨닫긴 했는데 실천이 없다면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제자가 말씀을 깨닫지 못한 원인을 25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미련하

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이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선지

자들의 예언을 의미합니다. 그 예언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

님의 말씀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구약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신약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

는 일에 익숙한 사람은 무엇이나 잘 믿습니다. 그러나 안 믿고 의심하는데

길들여진 사람은 무엇이나 안믿고 믿지 못하빈다.

안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예수님이 직접 말씀을 하셔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

다.

 

(4)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남의 이야기처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 자신의 부활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마치남의 이

야기처럼 했습니다.

어떤 주간지를 보니까 요즈음 대구에는 "카더라"통신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유언비어를 말하는데, "..했다 카더라.. 아니라 카더라...

한다 카더라"식의 유행어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유행어여도 안되고 유언비어여도 안됩니다.

만일 두 제자가 부활신앙이 확실했더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다시 사신 예수를 만나진 못했지만 그 분은 반드시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라고 우리나라 속담에 "남의

얘기하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부모나 처자를 그리고 남편을 남처럼 여기거나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

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남처럼 여기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내가 다니

고 은혜받는 내 교회를 남의 교회처럼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2. 두 제자의 변화를 살펴봅시다.

 

두 제자의 이야기는 부정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 놀랍고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됩니다.

 

(1) 시각이 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밝아진 눈으로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 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눈이 밝아지면 예수가 보이고 천국이 보이고 영원한 세계가

보입니다. 반대로 죄의 눈이 밝아지면 세상 것들이 보입니다. 쾌락이 보이

고, 죄짓는 법이 보이고, 불의한 길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제자의 눈

이 언제 어떻게 밝아졌느냐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저희와 함께 음식잡수실 때에"라고 했고, 31절을 보면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도니"라고 했습니다.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에수님과의 격의없는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

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은 신령한 눈이 밝아지고 신령한 마음이 열리는

법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과 교제하고 먹고 마시면 금방 악을 본뜨게 됩

니다.

내가 신령한 눈을 떠서 예수님을 보려면 그 분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즉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심령이 변했습니다.

 

32절을 보면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

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성령체험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그날 거기서 성

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난후 그들의 모든 것은 변했습니다. 냉소

적인 신앙이 불처럼 뜨거운 신앙으로, 침체되었던 신앙이 되살아나는 신앙

으로 탈진했던 신앙이 활기찬 신앙으로, 의심하던 신앙이 확신하는 신앙으

로 회복되었습니다.

언제 뜨거워졌습니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라고 32절이 설명합니다. 그들은 길에서 말씀듣고 성경말씀 듣다고 성

령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말씀들은 이

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 베드로의 설교 요지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

활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듣는 도중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고넬료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방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말씀과 성령의 깊은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

고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와 운동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도 발견되게 됩

니다. 말씀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취급하는 성령운동은 잘못 탈선할 위험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가 그날 들었던 그 말씀은 바로 성경이었다는 사

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날 두 제자는 예수님 말씀듣고 성령받았습니다. 그리고 심령이 변했습니

다.

 

(3) 행동이 변했습니다.

 

33절을 보면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행

동없는 변화는 참 변화가 아닙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신줄 알고 그리고 마

음이 뜨거워진 뒤에도 그냥 엠마오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이야말로 부활신

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곧 그 시"는 "바로 그 때"라는 뜻입니다. 29절을 보면 그때는 이미 저물

었을 때입니다.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가려면 12km나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이나 아니면 2-3일 흐른 뒤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은 바로 그 때 되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결단입니다. 믿음이 떨

어지면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러나 믿음이 회복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참 회개는 즉시

해야 합니다. 미룰 필요도 없고 늦출 필요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났던

그들이 곧 그 시로 돌아온 것은 회개의 신속성을 의미합니다.

떠났던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하나님께로!

떠났던 믿음에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가수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을 불러 한국과 일본에서 수십만장의 디

스크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와야 할 곳은 부산항이

아닙니다.

 

부활의 신앙의 현장, 선교현장, 사명의 현장입니다.

그들은 돌아와 길에서 만난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돌아왔습

니다. 36절 이하를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사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온 사람들,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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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목 :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고린도전서 15장은 바울의 유명한 부활신앙의 고백이며 증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34절은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35-49절은 부활한 몸의 성격에 대하여

50-58절은 부활과 승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증거합니다.

1:3절을 보면 "성경대로 죽으시고" 1:4절을 보면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아이사

야 53장과 다니엘서 9:26과 시편 22편과 스가랴 12:10등에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 역시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

라 성경에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둘째,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셋째,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눅24:33-39).

넷째,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습니다.

다섯째,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여섯째,모든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일곱째,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14-15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은 헛것이며 훗날 거짓증인으로 발견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 또 확신

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종교이며 나도 다시 산다는 개인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이 바로 '부활신앙'인 것

입니다. 불교,유교, 도교,회교, 힌두교 등 그 어느 종교도 교주가 다시 살

아났다는 교리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기독교가 죽은 종교가 아니라 산 종교라

는 뜻입니다.

본문은 세가지를 교훈합니다.

 

1.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51절을 보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더니"라고 했고, 52절을 보면

"우리도 변화하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체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

간의 육체는 변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힘도

쇠하고 허리도 굽어지고 눈도 침침해지고 얼굴도 주름투성이로 변합니다.

곱고 깨끗하던 피부도 거칠어지고 주근깨며 검버섯이 피어납니다. 꾀꼬리

소리나 은방울 굴리던 소리같던 목소리도 쉬고 굵은 소리로 변합니다.

그러나 부활하니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인간이 상

상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나고야 대학의 연구팀이 사람과 같은 혈액형을 가진 돼지를 사육하는

데 성공했다고 4월 12일 교도통신이 보도했스니다.

나고야 대학연구팀은 사람의 피를 생성하는 효소 유전자를 수정된 돼지의

난소에 주입시킨 뒤 수정란을 19마리의 암돼지 자궁에 이식했는데 그 중 3

마리가 낳은 27마리의 돼지 새끼가운데 1마리가 사람과 동일한 특성을 지닌

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피와 같은 특성을 지닌 돼

지를 사육하려면 앞으로 10년이 더 걸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 피와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돼지는

돼지 일뿐 그것이 사람피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해

서 사람 몸에 수혈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제 몸속에 돼지피를

넣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피는 생명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사람 생명 속에 돼지 생명을 혼합시킬 수

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의 피가 정맥과 동맥을 순환하고 있는데도 돼지만아

도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물며 돼지피가 사람의 혈관을 흐른

다면 돼지처럼 꽥꽥거리고 낄낄거리고 온통 세상이 돼지 우리가 될까봐 겁

이 납니다.

사람 몸속에 사람의 피를 수혈하면 생명을 구하거나 연장하는데 도움이 됩

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피로 씻음을 받은 사람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51절과 52절은 변화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홀연

히 변한다"는 것이고 썩지 않을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순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신령한 몸이

란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도 받지 않는 몸을 의미합

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은 서서히 몇 십년 걸려 진화하는 것이 아

닙니다.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합니다.

상처 후 재혼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에게 요청한 상담의 내용은

훗날 천당가면 부인이 둘이 될텐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

다. 저는 그 사람에게 마태복음 22:30말씀을 소개했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했습

니다. 우리는 모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축복된 것입니다.

 

2.이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55절을 보면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

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고 57절을 보면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게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김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했

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자이십니다. 40일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시험을 이기셨습니

다. 유대 교권자들과 지도자들의 도전을 이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영적싸움에 이기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죄와 유혹을 이기셨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이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축복을 주십니다.

사람의 몸에는 지구상에 사는 사람 수만큼의 온갖 세균이 기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안 거실에는 60만개의 곰팡이가 기생하고 있다

고 합니다. 무심코 피우는 담배한대 속에서 4천여 가지의 화학성분이 발생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온갖 질병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만 그때 그때 생성되는 강한

저항력 때문에 그것들을 막고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저항력이란

한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 능력을 받아야 죄도 이기고 시험도 이기고 유혹도 이

기고 마귀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죄를 이기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상법의 경

우에서도 드러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든

지 죄가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죄인된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의를 자랑할 수가 없

는것입니다.

구약의 경우를 보면 짐승을 죽여 그대로 그 피를 제물로 드림으로 죄사함

을 받았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림

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공로를 믿는 사람은 죄

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죽음을 이기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을 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

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

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하면 죽음을 이기게 해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예수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

아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이며 핵심진리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신앙은 하나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삽니다.

 

3.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58절은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이며 부활장의 마무리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

 

나이가 들면 손박이나 몸이 떨립니다. 그것은 몸의 기능이나 힘이 떨어졌

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부활신앙이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죽

을까봐 떨고 망할까봐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만 확실하

면 떨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35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했고, 8:38-39을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

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그 어떤 내적 갈등이나 외적 억압이나 영향에도 자기 믿

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고백이 가

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시 사는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데 죽음이 겁날리 없고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주시는 주

님이 계시는데 걱정될 리 없고, 우겨사임을 받고 핍박을 받아도 힘주시고

지키시고 이기게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바울은 본문에서 너희도 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집이 흔들리면 무너집니다. 나무가 흔들리면 뿌리가

뽑힙니다. 신앙이 흔들리면 그 영혼이 침몰합니다.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맙

시다.

 

(2)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은 두 가지 사건 때문에 힘을 얻고 주

님과 교회를 위해 힘써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할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

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따르고 좇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끝

이 났다면 충성을 바쳐 따르고 섬길 대상이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

고 더 이상 예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의 절망은 순간으로 끝났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감격

과 충성의 대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1914년 당시 정동교회는 미화로 200달러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

빚은 1893년에 시작한 교회 건축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목사님은 빚을 갚기 위해 헌금을 하자고 했지만 그날 걷힌

헌금은 50달러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교인은 이화학당 학생이 많았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치기로 의논하고 주일저녁

교회에 다시 모였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찬송을 부른 후 한사람 씩 나와 가

진 것을 바쳤습니다. 동전 17달러 정도, 반지 35개, 손거울, 자명종 2개,

양먈, 내의,구두,혼수감으로 어머니가 주신 붉은 명주도 있었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댕기머리를 잘라서 주님께 드린다며 내어 놓았습니다. 그날 그 교

회의 빚은 해결되었습니다.

빚바랜 이화여대 학생들의 요즘 세태에 비기면 고전소설 같은 이야기입니

다.

누가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습니까?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누

가 자신의 댕기머리를 잘라서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한평생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교회 섬기고 직분 감당

하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내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나

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오 주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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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목 : 자아관리에 최선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4월 09일

 

미국 [노테데임 대학교]의 철학과 교수인 톰 모리스(Tom Morris)는 성공에

는 5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1) 목표를 분명히 하라.

(2) 당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찾아라.

(3) 집요한 끈기로 자신의 포부를 실천에 옮겨라.

(4) 전심전력을 다하라.

(5)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놀만 빈센 필] 박사는 "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공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과 신

앙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톰 모리스 교수나 빈센 필 박사의 얘기들은 결국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느

냐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16:32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

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탈무드를 보면 "가장 힘센 자가 누구냐, 자기를 이기는 자다"라고 했습니

다.

미국 캔터키감리교회 담임목사였던 데이빗 씨맨즈(David Seamands)박사는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을 치료받기 위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1)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2) 고침받기를 원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3) 어떤 문제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4)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5)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6)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 바를 성령

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씨맨즈 박사 역시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자신이며 기도가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타락사건 이후 인간은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버릇에 익숙해졌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떠넘기고, 하와는 뱀에게 떠넘겼던 그 나쁜 습성이 지금

우리들 속에서 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요즈음 사람들은 "주제를 파악하라"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그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알고 자아를 통찰하

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교회 목사였던 조웽(Jowett)은 사람은 두

개의 자로 자신을 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자는 자아의 죽음(Life for Christ)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위해 내가 죽는 것,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부정이

며 바른 삶의 등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세 가지 자아관리의 방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1. 감정관리입니다.

 

32절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라고 했습니다. 바다

에 파도가 있고, 전파에 주파가 있는 것처럼 감정에도 기복이 있습니다. 마

치 날씨처럼 흐렸다. 갰다를 반복합니다.

클라이드 네레모어(Clyde M Narramore) 박사는 "인간의 신체적조건

(Physical)과 정서적 조건(Emotional),그리고 영적조건(Spiritual) 은 상호

간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기도하기

도 힘들어갑니다. 그 영혼이 탈진상태에 빠지면 정신도, 육체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체, 정서, 영혼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을 내는 것 역시 그 원인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성내기를 잘하는 원인으로서는,

(1) 습관성 원인, (2) 정서불안의 원인, (3) 외적 충동에 의한 원인,

(4) 물리적 자극에 의한 원인 등이 있습니다.

화를 자꾸내는 버릇에 익숙해지면 반복해서 화를 내게 됩니다.

심지어 좋은 일도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투나 행동 표현이

화를 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게

됩니다.

성내는 것은 그 원인보다 결과가 더 무섭습니다. 라틴어를 잘 모르는 사람

이 라틴어로 학술토론하는 학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

다. "자네는 라틴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가?" 그러자 그는 "알아듣지 못하

네. 그렇지만 누가 토론에서 밀리고 있는가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네"

"어떻게 그것을 안단 말인가?"라고 묻자 그는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밀

리는 사람 아니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자가 먼저 화를 내는 법은 없습니다. 믿음 좋은사람은 벌컥벌컥 화를 내

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순간 모든 피가 역류합니다. 그래서 혈압이 상승작용을 하게 됩

니다. 화낼 때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는 것은 혈압의 상승작용 때문입니다.

화를 내면 모든 신경조직에 비상이 걸립니다. 위벽이 긴장을 하고, 위액분

비가 중단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적 헛점이 생기게 됩니다. 영적 헛점은

마귀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해지도록 분을 품

지 말라"고 했습니다.

밀턴은 "자신을 통제하며 자기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공포를 다스리는 사

람은 한 나라의 왕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상담학자인 로렌스 크랩(Lawrence J.Crab)박사는 나쁜 감정을 유발

하는 네 가지 원인을 밝혔습니다.

첫째, 나쁜 행동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바르게 행동하라.

둘째, 나쁜 목표가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의 방향을 수정하라.

셋째, 나쁜 생각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생각하라.

넷째, 나쁜 신앙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신령한 생활을 힘쓰라고 했습니다.

내가 올바로 나 자신을 관리하려면 나 자신의 감정을 바로 관리해야 합니

다. 로렌스 크랩 박사의 말처럼 나쁜 감정을 올바른 행동과 목표와 생각과

신앙을 가질 때 통제되고 조절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고백입니다만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건 화를 내고 난 다음 시간

이 지나면 저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워 집니다.

일생동안 저 자신이 자신의 감정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그 순간을 참고 넘깁니다.

둘째, 감정유발의 책임을 나한테서 찾아냅니다.

셋째, 빨리 그 사건을 잊어버립니다.

넷째, 기도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리는 용사보다 위대한 사람입

니다.

 

2. 마음관리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50대 중년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소화가 안되고 설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검사를 해보자며 위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위에 암세포가

있는 것 같다면 3일후 종합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부터 위가

쓰리고, 열이 오르고, 사지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죽도 소화가 안됩니

다. 몇달 안에 암이 퍼져 죽을 것 같습니다. 지옥같은 3일이 지난 후 초췌

한 모습으로 병원에 찾아가 종합검사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

왔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부터 위도 안쑤시고, 열

도 오르지 않고, 기분이 날아갈 듯 하더랍니다.

그것은 마음 곧 정신작용의 결과였습니다. 마음은 그만큼 그 사람의 정서

와 감정과 행동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규태씨의 한국인의 건강관리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옛부터 한국인은 심인

설을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원인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

다.

 

건강을 해치는 다섯가지 요인을 양생오난이라고 하는데

一難은 명성이나 재물을 구하는 마음을 멸할 수 없는 것.

二難은 기쁘고 노여움을 제할 수 없는 것.

三難은 노래와 여색을 거절할 수 없는 것.

四難은 맛있고 살찐 음식을 거절 못하는 것.

五難은 근심걱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양생법(건강법)은 마음을 곱고 편하게 갖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관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 신앙관리입니다.

 

33절을 보면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잠언 29:26을 보면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

니다.

시편 127:1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

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

앙입니다.

제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그리고 제아무리 최고의 실내장식으로 꾸민 건

물이라도 기초가 흔들려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몸이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벌고 정신적으로 튼튼하다고

해도 영혼이 흔들리면 그 인생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유는

영혼이 인간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과로사로 생명을 잃는 사람이 3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주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고도반응의 사람들 - 민감한 반응의 사람들이며, 고독한 사람들이

며, 까다로운 성미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느냐인데 그것은 느긋한 마음으로 운

동을 즐기고 생활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느긋한 마음은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인 케네스 펠레티어박사는 크게 성공한 남녀

51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가

운데 제일 많은 것이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고, 다음이 정신이나 신체활동을

제어하는 생체자기제어(Biofeedback)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상을 마음

에 떠올리는 심상화(Visualization)등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사는 방

법 역시 기도가 제일이라는 과학적 증명은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명체와 같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하면 살고 활성화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시들고 죽게 됩니다.

내 신앙이 죽지 않고 산 믿음이 되려면

첫째,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거나 떠나면 죽

습니다.

둘째, 때를 따라 말씀으로 영양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영적 건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만이 건강한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만들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감정과 마음과 신앙을 철저히 관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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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목 : 은혜로 사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는 마른 땅을 적시는 여름날의

소낙비와 같다"고 했습니다. 만일 여름철 소낙비가 없다면 대지도, 초목도,

사람도 메말라 시들고 말 것입니다.

어떤 날 페르시아의 고레스(Kyros)황제가 친구 중 한 사람에게는 금메달을

걸어주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금메달을 받은 사

람은 키스를 받은 사가을 몹씨 부러워했습니다. 이유는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에게 키스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명예를 얻는 것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총애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총애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 하나만으로도

일평생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4:32-37은 은혜받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소개해 줍니다. 그 모습

은 이상적 교회상이며 이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 내용을 구

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은

 

1. 한 마음 한 뜻이 됩니다.

 

4:32를 보면 "무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라며 살고 있

는 부부도 한 마음 한 뜻이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년 사이 이혼율이 5배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1970년도

말에 3만쌍이었던 것이 1993년에는 8만쌍으로 증가했습니다. 이혼의 사유는

부정행위, 학대, 직계존배속 학대, 악의에 찬 유기 등이 대부분입니다. 그

리고 이혼율은 매년 가속되고, 증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도 한 마음,

한 뜻이 되기가 어렵다는 실증인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의 함께 은혜받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감정, 의지, 사상, 생각이 집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부부가 하나되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은혜

를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사건 이전의 그들은 저마다 각각 놀던 사람들이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난 이후부터 마음과 뜻이 하나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세가지 안목이 열립니다.

 

첫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인이었던 나, 허물많은 나, 쓸모없는 나, 연약한 나를 제대로 보게 됩니

다. 그리고 주의 은혜로 거듭난 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웃을 보게 됩니다.

이웃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고 통찰력있는 교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셋째,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못받으면 선악

과가 보이고 벌거벗은 수치가 보이게 됩니다.

 

일본인들은 [가다오까(KATAOKA)]를 중의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네 차례나 일본 중의원 의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불신자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날 안

개낀 철길을 건너다 기차에 치어 공중으로 튕겨 올랐습니다. 수십미터를 날

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얼마후 정신을 차려보니 모래밭이었습니다. 그날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누가 나를 모래밭에 떨어져 살게 했을까

를 생각하다가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친데도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모래밭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발로 교회를 찾아가 예술르 믿기 시작했고,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정치에 투신 중의원 의장을 네번씩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고 문간에 서서 들어오는 교

인들의 신발(게다)을 정리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매 월말이면

자신이 직접 [아오끼] 목사님께 드리는 생활비를 봉투에 담고 리본을 매어

찾아와 무릎꿇고 드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은혜받은 산증거인 것입니다.

 

산산조각난 부부가 하나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회사가 잘 되려면

사장도, 사원도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목사도, 교인도

함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은 은혜받고, 예수의

마음으로 변화될 때 가능해집니다.

 

2.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32절을 보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서로 통용했다는 것과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나누는 삶이 가능합니다. 그리

고 헛된 욕심이 사라집니다. 소유는 전투적 과정과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집

니다. 그러나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

습니다(약1:15).

사람은 나이가 들면 하루에 뇌세포가 10만개씩 소멸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의력도 기억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월남전 당시 미군 포로들은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

다. 그때 그들은 둘러 앉아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담뱃재로 만든 잉크로 성

경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포로들은 모두가 기억력과 건

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인 물을 썩는 것처럼, 돈벌어서 나만 쓰고 나만 먹었던 부자는 한결같이

당대로 망했습니다. 그러나 나누며 산 부자들은 대를 이어 나갔습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는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참

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저희 교회는 세례문답할 때 십일조 여부를 반드시 묻습니다.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는 경우에도 부부에게 따로 질문을 합니다. "십일조를 하는가,언

제부터 할 것인가"라고 십일조의 경우도 부부가 함께 은혜를 받아야 가능하

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하자는데 남편이 반대를 한다든지 부인은 교회가자는데, 남편은 놀

라가자면 신앙생활이 고달퍼집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나누는 삶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구경꾼도 없었고

빠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9:8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

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

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의 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은 넘치도록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만큼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눌 때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강하게 됩니다.

딤후 2:1을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은혜를 받은 사람과 나누는 사람과 은혜안에 사는 사람

은 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강하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부

자입니다.

둘째, 성장합니다.

베드로후서 3:18을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믿음과

지식이 자라갑니다. 은헤를 받아야 교회도 성장하고 회사도 기업도 직장도

자랍니다.

셋째, 더욱 풍성해 집니다.

나누면 작아지고 줄어든다고 믿는 것은 세상 경제원리입니다.그러나 나눌

수록 커지고 많아진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경제원리입니다.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전 세계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미국경제

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를 위해 이유야 어떻든 나누

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바로 그 나누는 정신과 신앙 때문에 미국이 복을 받

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인 것

입니다.

 

사도행전 5장으로 건너가면 나누기를 주저하고 욕심에 눈이 어두웠던 아나

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적 최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부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베드로를 속이고 성령을 속여려 하다가 한날 함께 죽었습니

다.

칼빈은 아나니아의 죄를 여섯가지로 지적했습니다.

(1)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 (2) 성물을 거짓으로 바친 죄,(3) 허영심으로

바친 죄,(4) 거룩한 교회에 오점을 남긴 죄,(5) 불신앙의 죄,(6)외식의 죄

등입니다.

아무리 내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

도, 시간도 재능도 함께 드리기로 한 것은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를 부활을 증거합니다.

 

33절을 보면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여기서 부활을 증거한 사건과 큰 은혜가 동시적이었다는 점을 주목해

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증거되는 곳에는 큰 은혜가 넘친다는 뜻도 되고 큰

은혜가 넘치는 곳에는 반드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왜 받아야 합니까?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초대교회 사도들은 큰 은혜를 받고난 후에 큰 소리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받고 예수의 부활을 전파했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은 식도락입니다. 그러나 힘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고 일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은혜를 음미하기 위해 은혜를 받는 것은 영적 사치입니다.

은헤는 예수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연쇄

적으로 일어난 사건들, 지존파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도시가스 폭발사

건, 세금 포탈사건 등은 한강의 기적과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독일의 경우

는 라인강의 기적은 있었지만 우리나라 같은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급걱한 사회변동에 대처할 올바

른 가최관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종교분포를 보면 기독교 25%,불교25%(물론 생전절에 한번도 안

가는 사람을 포함해), 유교, 무종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매년 무당조

합에 연회비를 내는 무당만도 5만여명이 됩니다. 그리고 소위 유형문화재라

고 해서 나라돈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들 가운데 80%가 불교사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방향도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패륜도, 사치도,무법

도, 사고도 세계 제일이라고 합니다.

서울대학의 윤이흠 교수는 절대가치를 이 민족과 사회 앞에 제시할 사회적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정치권도 아니다. 대학도 아니다.무당도 아니

다. 종교 아니다. 바로 개신교다"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기독교만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신앙이나 잡신앙

을 가진 종교는 유일한 가치나 진리를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생명을 믿습니다. 부활이 뭡니까?

다시 산다. 죽어도 다시 산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

다.

희망의 종교라야 희망을 줄 수 있고 생명의 종교라야 생명을 줄 수 있고,

부활의 종교라야 부활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길 막고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없습니다.

비내리는 땅은 푸른 초원, 녹음방초로 우거지고 비내리지 않는 땅은 사막

과 황토로 뒤덮여 있는 것처럼 은혜받은 나라, 교회, 가정이라야 푸르르고

기름지고 잘 살게 됩니다. 은혜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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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인교회협 정기총회

자료원 : 한국컴퓨터선교회

발행일 : 95년 06월 29일

 

미장로교산하 한인교회협의회는 오는 8월 1일-4일까지 소망수양관에서 통

일기원대회 및 정기대회를 개최한다.

 

[자유를 공포하라]라는 주제아래 열릴 이번 대회는 한인교회협의회 소속

목회자 수백명이 참가한다.

 

이 대회에는 곽선희, 박종순목사, 송영대 장로(통일원차관)가 강사로 참

석, 교회 및 정부의 관심사에 대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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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목 : 은혜와 삶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3월 26일

 

은혜와 은혜 아닌 것, 은혜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

이도 없다면 구태여 은혤르 논할 필요도 없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늘과 땅만큼 엄청난 차치

가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은혜를 강조하고 있으며 은혜를 받으라고 강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은혜 베풀 때 너를 도

왔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라고 말씀하면서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도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은헤를 강조했습니다만 그 가운데 특히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강조했습니다. 이유는 바울 자신이 풍성한 은혜

의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깨달은 사람과 체험한 사람들이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은혜는 올바로 받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

의 은헤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에 대하여 권면

하는 자신의 위치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

는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이 권면은 바울의 개인적 충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설교듣는 사람들이 지녀야 될 태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

님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케 합

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고 순종

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편식방법과 태도로는 은헤받기가 어렵습니다. 본문

1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뜻은 은헤의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은혜 자체는 금은보석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헤를 잘못 받으면

그 삶에 아무런 변화도 갱신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동안 유교전통과 문화를 지켜 나왔기 때문에 유교적

윤리와 도덕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유교윤리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삼강오륜]이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부모와

자식, 윗사람과 아랫사람, 부부간의 윤리가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높이

고 순종하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고 동양윤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94년도에는 유학갔던 아들이 돌아와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한 사

건으로 온 세상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

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버지를 살해함으로 더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부 언론은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더 큰 충격

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정말 기독교인이었다면 은혜를 체험

하고 거듭난 신자였다면 그런 일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1,200만-1,500만이라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은혜를 모르고

교회만 들락거리는 사람들 속에는 도둑놈, 소매치기, 살인자, 불한당, 이중

생활하는 자, 그리고 어쩌면 살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들도 은혜를 제대로 받기만 하면 거듭나고 새사람되고 회개하

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니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성악가 김영미씨의 얘기는 감동적인

것입니다.

 

미국 L.A 에 있는 나성한인교회 김의환 목사님이 김영미씨에게 주일 2시

예배에 와서 성가연주회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미국 대부분의 교회

는 저녁예배가 없거나 2시에 드리는 교회가 많습니다.

 

김영미씨의 대답은 주일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L.A에

있는 제퍼슨 감리교회 성가대원인데 성가대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빠질 수

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은혜받은 사람만 가능한 감동적 이야기입니다.

김영미씨의 성공은 그녀 자신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입니다만 그러나 주님

과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신앙과 책임감 때문이었으며 그것을 보신 하

나님께서 그녀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 저는 이 말 뜻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자주 물었습니

다. "엄마 어떻게 엉덩이에 뿔이 나?"라고 그때마다 제 어머님은'크면 알게

된다"라고 하셨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란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어머님의 대답은 명답이었습니다. 철들고 세상을 알면

서 그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뜻이 때론 떠오릅니다. 엉덩이에 뿔

나는 법은 없습니다. 뿔은 이마에 납니다.

만일 엉덩이에 뿔이 난다면 그것은 기형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데 장애물

이 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거나 잘못 받으면 기형아가 됩니다. 그리고 자

신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서울시내 모 큰 교회 정문입구에는 그 교회가 꼭 사서 넣어야 할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회 자체도 땅이 비좁거니와 그 땅을 사서 넣어야 교

회 전경도 드러나고 출입도 자유로워지는 건물입니다. 큰 교회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돈도 있습니다. 문제는 건물임자가 땅을 내놓지 않는 것입니

다. 그런데 어느 해 그 건물을 팔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긴급히 당회

를 모였습니다.

 

그런데 당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결사반대를 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

를 들이대면서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그 교

회는 그 건물을 사지 못했습니다. 그후 그 장로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

렸습니다. 들은 바대로는 그 분은 지금 미국에서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반

대했는지 모르겠다"며 후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고집은 다릅니다. 내 고집을 강조하는 사람은 은혜받은 사람이 아

닙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주관과 고집과 죄악과 악습을 십자가에

못박고 꺽어 버립니다.

 

다른 얘기 하나를 더 하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모 큰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바로 뒷편에 붙어 잇는 500평 대지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성장이

나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입해야 하는 땅입니다.

15년전 어느 날 평당 100만원에 팔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당회를 모였습

니다. 땅이 너무 비싸다며 한 사람이 한사코 반대를 하는 바람에 포기했습

니다. 7년이 지난후 5억에 팔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모였습니다만

반대하던 그 사람 때문에 부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날 50억에 팔겠다는 연락을 받고 14년만에 50억에 샀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고집부렸던 그 사람은 교회에 세 가지 큰 손해를 주었

습니다.

첫째, 49억 5천만원의 손해를 주었습니다. 첫번 기회에 반대를 안했다면 5

천만원에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성장을 14년 정지시켰습니다.

셋째, 긍정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신앙적 상

처를 주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바로 받으면 태도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

고 신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헛되

이 받으면 다른 삼과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와 상처를 주게 됩니다.

 

사울왕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

었습니다. 그는 은혜받고 예언을 하는가 하면 나라 정치를 잘했습니다. 그

러나 그 은혜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헛되이 여기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외면하고 교만하기 시작하고 세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자 하나

님이 그를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자신도 그의 왕가도

몰락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그리고 바로 받아야 합니다. 부천의 영생교, 일본의

오음진리교, 그들이 표방한 것은 영생이고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인

을 주저하지 않는 비영생, 비진리 집단이었습니다.

여러분, 부모도, 자식도,남편도, 아내도,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은혜를 받아 합니다.

 

2. 지금 받아야 합니다.

 

2절 끝을 보면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라고 했습니다.

"보라"는 것은 은혜의 공개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은혜 자체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란 숨쉬는 그 순간, 살아있는 이 찰라를 의미합니다. 이 순간. 이

찰라, 맥박이 뛰고 심장이 고동치고 손발이 움직이고 두 눈이 껌벅거리고

있는 이 순간이 지금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순간에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다

분히 종말적 긴박성이 강조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안됩니다. 은혜를 덱토스라고

합니다. 그 뜻은 "입증된"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입증된 사건입니다. 두 번다시 그 효과를 물

어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카이로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유쾌하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유쾌하고 행복합니다. 본문은 은혜와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결과를 구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은혜받아야 행복하고 유

쾌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더 이상 은혜를 미루고 소홀히 취급할 생각입니까>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하던 어스킨(Erskine) 목사의 설교를 들은 스칼렛 부

인이 그 날 큰 은혜를 받고 깊은 감동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

일 그녀는 어스킨 목사의 설교를 들엇으나 은혜를 받지 못받았습니다. 스칼

렛은 목사님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스킨의 댈바은 "지난 주에는

당신이 예수를 만나려고 왔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받았지만 오늘은 나를

보려고 왔기 때문에 은헤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출처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은헤를 주는 것입니

다.

지금 은혜받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내일도 내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은혜를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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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울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3월 19일

 

시편 61편은 다윗이 B.C 979년 경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

나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을 때 쓴 것으로 보는 비탄시입니다(삼하15:17).

다윗은 자신의 비통한 심정과 정황을 2절에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끝

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표현했습니다.

 

2절에서 말한 "눌리다"라는 말의 뜻은 "상하다. 다치다"라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다윗은 아들의 반역 때문에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고 다칠대로 다쳤

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에 쌓여 있어 답답하

고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원인은 각각 다릅니다만 모든 사람은 그 어떤 이유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초조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가정주부가 이웃집에 놀러가 그 집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떨어 뜨

리고 자신도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인은 그사람이 우울증을 앓

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윌 스트리트 저널]지의 보도에 의하면 월가에서 가장

가까운 뉴욕병원은 최근 가슴통증과 심장발작환자들의 급증으로 응급실을

추가로 설치해야될 형편이라고 합니다.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월

가의 금융기관 종사자들로 주가의 등락, 환율변동 등으로 인해 긴장과 스트

레스가 겹치는데다 불규칙한 식사와 흡연등으로 심장발작을 일으킨다는 것

입니다.

 

뉴욕병원의 심장전문의인 이라 슐먼 박사는 "인구 1천명당 심장발작 비율

이 윌가가 가장 높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현대인의 40%는

정신질환의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열 명중 네명은 정신질환에 걸

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가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정서적으로 소극적이며 수용적이며

긴장해소의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여성복싱이 유행하는가 하면 한국에서도 여성검도 인구

가 늘어나고 각종 레저시설마다 여성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것은 한마디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자구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 바이올라 대학의 심리학교수 클라이드 네데모어(Clyde M.Narrnmore)

박사는 우울증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1)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거부를 받은 경험(parental rejection)이 있을때

(2) 부모의 지나친 비판이나 간섭(overly-critical parents)을 받은 경험

이 있을 때.

(3) 부모의 잔인한 행동(cruel parent behavior)을 경험했을 때

(4) 무의식적인 적대감정(unconsicous feelings of hostility)이 있을때.

(5) 과거의 외상적 체험(traumatic experience)이 있을 때

(6) 본능적인 충동(instinctual drives)과 사회적인 요구(demends of

society)사이의 갈등이 있을때.

(7) 근심과 무가치감이 있을 때.

(8) 강한 죄의식이 있을 때.

 

브리시터(C.W.Brister)교수는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가치의 혼란, 정통문

화의 붕괴, 실존적 무법현상 때문에 젊은이들 세게에 급속히 번져가고 있

다"고 했습니다.

욥은 욥기 7:3이하에서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

게 작정되었구나.. 새벽까지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본문은 2절에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라고 탄식했습니다. 한 마디

로 욥이나 다윗도 자신들의 우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영국의 명재상 처칠경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위기에 빠진 연합군과 영국 젊

은이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명언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

나 그도 일생동안 우울증으로 시달렸고 베토벤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

닐. 그러니까 우울증은 동서양 모든 사람과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치료방법입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다윗의 고백 속

에서 그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1. 먼저 잘못 선택한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근심이나 걱정,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극성 있는 음료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위는 우

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1992년 11월 들소의 항체를 연구하던 존 폴리 박사는 흡연자와 페암환자의

페조직을 현미경으로 비교조사했습니다.폴리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실 경우 담배필터의 미세한 입자들이 잘게 쪼개지면서 폐속으

로 들어가 최소한 수개월 동안 길게는 평생 동안 잠복한다는 것입니다.

 

92년도 샌프란시코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커

피는 불면증, 카페인 중독,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가 하면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를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매년 6천명의 생후 6개월된 신생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부모가 피우는 담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태어난 생후 1년만의 아

기가 갑자기 숨지는 것을 유아급사증후군(sids) 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간접

흡연이 주원인이라고 힐러리 클로노프 박사가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읍주, 흡연, 약물복용 등은 우울증 해결에 도움이 안됩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특히 유아들에겐 독약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불건전한 오락이나 레저에 빠지기

도 합니다. 예를들면 도박이나 불건한 모임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방법이 건전해야 결과도 건전합니

다.

 

2. 올바른 치료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건강한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근심걱정에 푹빠진 사람들이나 우울증에 시다릴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만나

면 그곳은 우울증 환자 수용소가 되고 말 것입니다.

 

환자는 명의를 만나야 하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는 건강한 생각과 삶을 사

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건강하고 건전한 삶의 이야기들

을 듣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을 상담학에서는 상담요법이라고 부릅니다.

우울증뿐만이 아니고 인생살이도 신앙도 좋은 이웃과 바른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인도자나 안내자를 잘못 만나면 둘 다 불행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것을 가리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웅덩이에 빠진다"고

표현했습니다. 늘 한숨짓고 탄식하는 사람,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걸핏하면 절망하고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대하면 우울증상

은 더 심각해지고 맙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

들을 만나야 합니다.

 

2) 건강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선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보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할

일이 있고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 내가 살고 있고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

려야 합니다.

 

그들은 병들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걷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

고 볼 수 없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한 채 6개월-1년씩 신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베

풀고 나눠주고 베푸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

간 일을 일삼아 되새기고 불행했거나 힘들었던 과거를 되살릴 필요가 없습

니다. 가치있는 일을 위해 손을 펴고 봉사를 시작하십시오. 남을 섬기고 돕

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십시오.

 

3) 기도로 치유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 61:1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라고 했고 2절에서는 내

마음이 눌릴 때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비록 내가 되돌아 올 수 없는 땅끝 벼랑으로 밀려 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라는 복음성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을 줍니다. 우리는 1-2절에서 기억

애햐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과 땅끝에서라도 부

르짖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높은 바위 위에 인도하실 줄로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소리내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

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땅끝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과 우울의

벼랑에서도 기도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나를 높은

바위 위로 끌어 올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를 근심과 걱정과 우울증의 심면에서 끌어 올려 주신다는 것입

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소리 높여 기도합시다.

 

4) 주님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라고 했고

4절을 보면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

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망대,날개'라고 노래합니다.

이 셋은 모두가 보호수단입니다.그리고 4절을 보면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

에 거하며"라고 했습니다. 주의 장막은 성막(Tabernacle)을 말합니다. 성막

은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에 피하여 머문

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며 염려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피난처, 망대, 날개, 장막으로 믿고 의뢰했던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고 압살롬에게 쫓기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자신을

자학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곳이 있고 바라볼 곳이 있고 숨을 곳이 있고 영원히 머물 장막이 있

는 사람이 무엇때문에 우울한 삶을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

을 절대로 의지한다면 모든 정신적 고통은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성경은 인

간의 성공,건강, 행복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고난,역경, 불안,실패, 사건, 위기상황 등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하시고 처리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기

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위기상황이나 절망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누구

라도 불안이나 걱정으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믿으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것들을 극복할 수도 있고 무릎을 꿇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약물치료법이나 상담요법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정신이 조절하고, 정신

은 영혼이 통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혼은

신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혼이 바로 서면 정신도 바로 서고 육체도 바로 서게 됩니다. 영혼이 건

강하면 정신도 육체도 바른 리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방법보다

믿음의 방법이 가장 위대하고 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 망대,날개, 장막이심을 믿읍시다. 그리고 날마다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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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향과 기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3월 12일

 

요한계시록에는 3대 재앙이 예고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곱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대접의 재앙입니다. 인을 뗄 때마다 사건이 터지고 나팔

을 불때마다 재앙이 임하고 대접을 쏟을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

하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8장은 일곱번째 인을 떼었을 때 일어난 사건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금향로에 많은 향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데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드리며 그 향과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 갔다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가

함께 하나님께 올라 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1. 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가?

 

1) 구약의 경우

구약의 경우 향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향으로 주

로 화장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향으로 그것은 제조방법이나 사용방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22이하를 보면 향 만드는 법이 나와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

습니다.

 

첫째, 최고의 향재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여러 가지 향 소합, 나감, 풍자 등 최고급 향을 배합하되 동일한 양

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다른 것은 첨가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도,인생

도, 물질도 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드리면 안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 해

거둔 첫 수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나랏님께 진상을 했습니다.

 

어느 농부는 매년 제일 빨리 거둔 쌀을 대통령께 바친다면 청와대로 가져

온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게 드리는 향을 최고의 것이어야 했던 것처럼 기

도의 시간도 제일 좋은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건축자재는 최고 최상품이었습니다. 금은 오빌

에서 수입한 정금이었고 나무는 그 향이 은은한 레바논의 백향목이었고 둘

은 석질이 가장좋은 예루살렘 근교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언제나 최상품이어야 합니다. 최고의 향품을 일정량으로 배합하

겠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좋다면서 살립도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않고 교회도 안

나오고 사람도 안만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은혜를 받고나면 평소 싫었던 사람이 좋아져야 합

니다. 멀리하던 사람이 가까와집니다. 지옥처럼 느껴졌던 가정이나 세상이

할 일 많은 일터가 됩니다. 귀찮던 일들이 즐거워지고 멀어졌떤 교회가 사

랑스러워지고 힘없던 신앙생활에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세 가지 향을 동일한 중수로 배합했던 것처럼 기도생활은 조화와 균형을

잃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가정주부의 경우 "하나님 아버지!"도 잘 불러

야 하지만 "여보!"고 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란 외골수로 빠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금을 쳤다는 것입니다.소금을 치면 세가지 현상이 벌어

집니다.

 

 

 

 

하나는, 순이 죽게 됩니다.

배추도 생선도 소금을 치면 순해집니다. 자칫 기도생활이나 영적체험에 깊

이 빠지다 보면 팔딱 거리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거기다 소금을 쳐야 합

니다.

 

둘은, 맛이 납니다.

제아무리 설렁탕,곰탕,삼계탕이 진국이라도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습

니다. 제아무리 열심이고 기도를 잘 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것 때문에

맛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맛없는 음식은 따돌림을 받습니다. 소금치지 않는 기도생활이나 신앙생활

은 이웃이나 교회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소금치고 맛있는 사

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은,고칩니다.

열왕기하 2:19-22을 보면 여리고의 물근원에 문제가 있어 그 물로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익기도 전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어느날 물 근원(수원

지)소금을 던져 그 물을 치료했습니다. 내가 소금처럼 녹아 희생하면 가정

도, 교회도, 역사도 치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소금이 녹아내리듯 십자가에 자신을 던졌기 때문

에 모든 인간이 고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금은 그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녹아야 소금입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안됩니다. 맛 잃은 소금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향은 그 사용방법도 일반향의 용도와 달랐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거룩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빈다.

예를 들어 자기몸에 바른다든지 화장실에 뿌리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기도

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신령한 문

제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이사문제, 집 사는 문

제, 어디가는 문제, 누구만나는 문제,따위가 기도의 전체를 차지한다면 그

것은 육체를 위한 기도로 끝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

는 신령한 기도를 수단이나 방법으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개인의 운명이나

점쳐주고 대소사를 밝혀주는 것으로 기도를 전락시켜선 안됩니다.

 

둘째, 아침 저역으로 분향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7-8을 보면 아침마다 아론이 분향했고 저녁 등불켤 때 다시

분향했습니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저녁은 하루의 마감입니다. 그러니

까 분향으로 시작하고 분향으로 마치라는 것입니다. 분향은 기도입니다. 기

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내야 합니다. 만일 기도소리를 들으

며 태어나고 기도하며 살다가 기도로 숨을 거둘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행

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곧 삶이어야 합니다.

 

셋째, 제사장 외엔 분향하지 못했습니다.

역대상 23:13을 보면 아론과 그 자손들만 분향하되 그들도 몸을 성결케하

고 분향한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10:1-2을 보면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

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소멸되어

죽었습니다. 역대하 26:16-19을 보면 웃시야 왕이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영

역을 침범해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분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분향입니다. 헌신짝처럼 취급해도 안되고 그 필요성을 외면해도 안

됩니다.

 

2) 신약의 경우

크게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밝힌대로 향과 기도가 함께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곧 향이 기도임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받으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금향로에 담는다는 것은 기도가 그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입

니다.

둘은, 삶을 뜻합니다. 고린도후서 3:15을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고 했고 3:14을 보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탸내시는 하나님

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예수 향기를 날릴 수도 있고 악취가 날 수도

있습니다. 백합화는 바람이 불면 그 향이 널리 퍼집니다. 그리고 찢기면 더

향이 짙어집니다. 우리가 풍랑을 겪고 상처받고 찢길 때 그 사건이나 아픔

때문에 예수 향기가 널리 전파된다면 정말 좋은 향이 될 것입니다.

 

2. 향과 기도의 의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며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연

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고 다른 향은 섞어

만들어도 안됩니다. 그리고 그 향을 드리는 장소 다시 말하면 분향 장소는

성전이라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분향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정한 방법대

로 정한 사람이 정한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왜 성전에서 분향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성전에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라고 했고 7:16을

보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솔

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주신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무소부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처소로 삼으시고 그곳에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전으로 나와야 합니다.

 

둘째, 성전에서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5을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

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면 비를 내리고 재앙을 거두시고 죄를

사하시고 그 땅을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얼마전 농수산부 직원들이 산에 올라가 돼지 대가리를 상에 올려놓고 넙죽

히 엎드려 절하며 비를 달라고 기우제를 지냈스빈다. 우선 세계화를 표방하

고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국가 관리들이 돼지 대가기를 놓고 절하며

기우제를 지냈다는 그 발상이 기가 막혔습니다.

 

돼지 대가리 놓고 절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

습니다. 만일 그때 바로 혹은 그 다음날 비가 내렸다면 농수산부는 기우제

때문이라고 떠벌렸을 것이빈다. 제때에 비내리고 바람이 순하게 부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고 바람의 방향을 돌리

시는 것입니다. 미국도 일본도 과학의 힘으로 비오게 하고 태풍을 막고 땅

갈라지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셋째, 성전에 영원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6을 보면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

다. 잠깐 머물다보면 떠나는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거기 계시겠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집을 언젠가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할 곳이빈다. 그

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론으로 본문 8:5을 주목해야 합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된 성도들의 기도 속에는 순교자의 피의 호소도 있었습니다.

고난받고 핍박받은 성도들의 탄원도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

게서 드디어 응답으로 심판의 불을 쏟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는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문제는 기도해

야 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

다. 기도하긴 하는데 의심하는 것 이것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

을 드리듯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향을 바로 만들어야 하듯 기도를 바르게

합시다. 성전에서 분향해서 하듯 성전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향이 하나님께

올라가듯 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향은 향기로

운 것처럼 내 기도와 삶이 향기나는 것이 되게 합시다.

주여 기도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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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에 최선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3월 05일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

에 이르게 하는 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성경을 부른다면 그

것은 [기도의 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도

에 관한 이야기들과 기도의 사람들에 과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

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증거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특히 시편은 거의가 다 기도시들로 엮어져 있습

니다. 시편 145편의 경우도 다윗이 을었던 찬송시로 되었습니다만 그 내용

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

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떤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가를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내가 날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

습니다.

무디는 "기도란 내 사고와 목적으로 하나님을 끌어 당기는 것이 아니요 나

의 사고와 배려와 갈망을 하나님 편으로 끌어주어 그의 도안과 예정에 맞추

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기도의 자세와 응답받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간구하는 자에게 가가이 하십니다.

 

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

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18절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라는 말씀의 뜻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혀 줍니다. 기도의 대상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

니다. 성모 마리아나 성인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

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정인의 기도만 들으시거나 특정인에게만 응답이나 계시를 주시

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나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고 지시를 받

는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나님이 내 기도만 들으신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

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

한다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운명을 묻고

점치듯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입으로 간구하는 자들과 자기 소리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

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

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했고, 시편5:3을 보면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66:17을 보면 "내가 내 입으

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특정

인에게만 그 응답을 국한하여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은, 진실하게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한 간구란 과장이나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기도를 뜻합

니다. 현대인은 포장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쓰레기 종량제로 포장기피현

상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시원찮은 상품도 고급포장으로 감싸 놓으

면 고가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겉치장만 화려하면 진면목은 어떻든 높이 평

가하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그런 따

위의 포장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를 들면 고졸의 기도보다 대졸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석사의 기

도보다 박사의 기도를 더 높이 평가하신다든지 월수입 100만원 보다는 1000

만원짜리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하는 인간적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진실과 간구입니다. 우린 하나님 앞에 정직과

진실과 솔직한 모습과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헛기침을 할 필요도 없고 채색

옷으로 자신을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유행어 가운데 [알몸표 수영복]이라는게 있다고 합니다.

적나라한 모습을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설때마다 "나는 알몸표 수용복을 입었습니다."라는

심정으로 서야합니다.

[간구]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라칼레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가까이서 부르

다'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이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서로 허위가 있고 거짓이 있고 꾸밈이

있으면 사이가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서 부르지 못하

는 것은 나에게 허위가 있고 감추고 싶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을

가리켜 무촌간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라는 뜻이빈다.

 

부부관계가 왜 가장 가까운 무촌간입니까? 그것은 서로 숨김이 없다는 것

입니다. 부부간에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사랑은 반비례합니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그러나 그보다 더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나와의 관

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까이서 부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만 가까이서 부르시기 위해 친히 이 땅 우리 곁에 오셨습니

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가까이 나와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여기서 왜 우리가 때를 따라 교회에 나와야 하며 교회에 나와 기도해

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가능하면 교회에 나와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여건상 그것이 불그

낭하다면 시간을 정하고 교회가 있는 동부 이촌동을 바라보며 있는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

다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2.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19절을 보면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

음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외]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이고 받드는 태도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면서 창조주이십니다. 사랑이시면서 공의이십

니다.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

다.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면만을 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

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련의 저항작가 솔제니친이 미국에서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조국

소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낙후된 조국 러시아이지만 자신의 조국을 인정했기 때

문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고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품은 러시아의 품이 아닙니

다. 미국의 품도 아닙니다. 영원히 안전하고 풍요로운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곳에 나의 행복이 있고 응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품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은 부르짖으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풍랑으로 난파당한 선원들이 무인도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개

월째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

니까? 지나가는 배가 스스로 알아서 우리를 구해주겠거니라며 앉아서 잡담

이나 나누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왕 죽은 목숨 발버둥 칠 필

요가 있겠느냐며 포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길은

나무를 모아다가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고 옷을 벗어 높은대로 올라가 흔듦

도 죽을 히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신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특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을 향해 부르짖고 두 눈을 떴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부르짖고 딸을 괴롭히던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어떤 과부는 부르짖고 자신

의 억울한 원한을 풀었습니다. 누가복음 18:7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부르짖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둘째, 목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자존심으로 목이 붓고 막히면 소

리지르지 못합니다.

셋째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고 응답받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리높혀 하나님을 찾고 부르

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넷째,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면 구원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잇

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부르짖지 못합니다.

요즈음 연예인이나 가수를 따라 다니던 10대 오빠부대가 체육관으로 그 주

소를 옮겼스빈다. 농구나 배구 경기가 벌어지는 체육관은 온통 고래고래 소

리를 지르는 오빠부대들의 괴성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한때

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극성과 정열은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습니

다.

 

저는 이 괴성과 응원열기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들의 기도제사와 신앙열기

를 따져보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세상일 때문에 악을 쓴다든지 신경질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든지 홧

김에 울부짖는 것은 창피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힘써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선한 사

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악인으로 대칭시키고 있음을 주목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보호하신다는 것도 주목해

야 합니다.하나님이 악인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까닭은 없습니다.

 

20절은 시편 145편의 결론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누구를 지키

시는가 누구를 보호해 주시는가 누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가에 대한 대답

이 20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크면 물은 많이 담을 수 있지만 그릇이

작으면 물을 적게 담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많이 크게 하는 사람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

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증오하고 반역하면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우리는 시편145:20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사랑하면 보호해

주시고 악인은 멸하신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

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향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안해도 된다는 교

만이나 착각은 버립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지속을 위해,고독한 사람은 그 고독의 극복을 위해,

병든 사람은 치유를 위해, 은혜받은 사람은 감사를 위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듭시다.

 

기도에 최선을 다하면서 최상의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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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 밖에 없나이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년 02월 26일

 

시편 150편은 거의가 다 다윗의 저작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른 사람

의 작품도 몇 편씩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동시대의 인물로 보는

아삽이나 아굴 그리고 다윗와의 아들인 솔로몬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

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73편의 목적은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도 주와 같은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영원

히 찬양하며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을 중심으로 아삽의 신앙과

고백을 찾아보겠습니다.

 

1.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25절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

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잡신이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약 200만개의 잡신을 섬긴다

고 합니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입니다. 아삽이 이 시를 을

고 노래를 불렸던 그 시대의 중동지방 역시 우상과 잡신이 들끊고 있었습니

다. 예를 들면 바알,아세라, 아스다롯, 몰렉등 사람들이 신격화하고 숭배하

는 우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러한 주변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이나 잡신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

황에서 아삽은 유일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

밖에 없으며 사모할 자가 없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

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과 상통합니다.

 

주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오직 한분이신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링

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만으론 안됩니다. 그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

모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다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으로 결정했다는 것입니

다.

 

찬송작가 프라이(C.W.FRY)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

님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 이후 서

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깨진 부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주님과의 간격을

떼도록 하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시험으로 다가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다

오기도 하고 물질을 통해서 오기도 하고 명예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권력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유혹과 시험이 갖는 공통점이 있습니

다.그것은 달콤하고 감미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이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소근거립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진 사람은 모두가 한결

같이 실패했거나 파멸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

습니다. 가인은 질투와 시기 때무에 시험에 빠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

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눈이 뽑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의 유혹에 빠져 성령님을 속이려다가 한낱 한시

에 부부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복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실수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유혹에 빠졌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했을 때 하나님

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가 섬기고 사랑하고 사모할 분은 주님뿐임을 믿고 고백

합시다.

 

2. 인간의 육체는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며 분깃이라고 노래

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육체를 쇠잔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점점 약해지고 힘

이 없어지다가 결국 침상에 눕게 된다는 것은 전세계에서 매년 1,500만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그중 간진 (리히터

규모 6-9)이 100회 이상, 중진(4-6)이 1만5천회정도,나머지는 (1-4)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미진나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현대과학으로는 정확한 지진의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물에서 거품이 끓어오르고 쥐가 쥐

구멍에서 기어나와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면하던 뱀들이 기어나와 길에

서 열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칸사이지방의 대지진이 있기 전 동남해에선 이상하리만큼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중국에서는 금년들어 닭,돼지,쥐,고양이 등이 유별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가는 외양간에 메어둔 황소가 하늘을 바라보고

유별나게 울면 지진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거북이떼가 떼지어 기어나면 지

진이 일어났따고 합니다.그러나 최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일본

도 지진예측에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 무

력한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간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사람은 잘

못알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이며 무엇이나 해

낼 수 있다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암이 걸렸을 경우

퍼지는 속도가 10-2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술은 몸 속의 세포들 뇌신경세

포, 위장세포, 간세포, 백혈구들의 저항력을 약하게 해서 암의 전이가 빨라

진다는 것이다.

 

샌디에고 의과대학의 암 전문인인 이기천교수는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는 모습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른 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움,공포, 아픔으로 인해 그 죽는 순간이 너무나 처절하더라는 것입니

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죽는 사람

들은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

다. 시인의 고백대로 나의 영원한 반석이며 피난처이신 주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노래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음녀같이 벌하신다"고 했고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고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GNP는 1963년 100달러였습니다. 1989년에 5천달러를 돌파했고

드디어 1995년인 금년에 1만달러를 넘게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을 경우 발생할 문제들을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습니다.

@ 승용차의 대형화

@ 가전제품의 원색디자인과 대형화

@ 독신자 용픔 시장 확대

@ 교외에 세컨드 홈

@ 전력소비의 급증

@ 상품수요의 폭발

@ 취미생활의 변화

@ 투자패턴의 변화

@ 자동화 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태도의 변화입니다. 소

득이 높아지고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대신 세상을 의지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교회는 빈자리가 많아지게 될 것

이고 찬송과 기도소리는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저를 음녀같이 멸하셨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잘 산다는 것 그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이 문제될 것

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 하거나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하거나 떠나면 망하고 멸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과학문명을 대치시켰습니다. 그러

나 세계도처에서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홍수와 전염병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문명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데 대한 심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죽이기 위

해 강력한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모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기들과

함께 초가지붕에 서식하는 곤충들을 잡아 먹는 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결

과로 초가지붕 속에는 곤충이 들끓기 시작했고 얼마뒤 지붕이 곤충 때문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교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지금 지옥으로 만들어가

고 있습니다.국가도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 하면 안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상의 복인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

는 날 이 세계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하나

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공하고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맙시다. 하

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4. 모든 행사를 전파하겠다고 노래합니다.

 

28절 끝을 보면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오전 한국통신회의실에서 가진 한국-러시아-일본 3개국 부총리간에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영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홍보와 교류의 새로운 기

대가 열렸음을 시사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지 않아도 국제회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보시대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그런데 시인이

주의 행사를 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입과 몸과 몸과 삶으로 전하겠다는 것

입니다. 제아무리 광케이블을 통한 정보교환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인

간은 직접 만나 얼굴을 대하고 손을마주 잡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

리는 최대한 문명의 이기들을 선교도 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을 기계에서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전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주 밖에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영원히 찬양하고 섬길 분은 주 밖에 없습니다. 나의 반

석이며 피난처이신 분도 주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까이하고 복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영원히 부를

노래도 주 밖에 없습니다.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주 밖에 없나이다"

"영원히 가까이 할수록 행복하고 떠나면 죽는 분도 주님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 중심을 지키고 믿을 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

다.주님만 나의 구원,요새,산성,피난처시라는 다윗의 고백과 아삽의 노래는

그 맥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과 노래가 나의 고백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게 합시다.

그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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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목 : 경배하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년 02월 05일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은 여러가지입니다. 사람은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점이라든지 도덕이나 윤리 규범을 지키는 능력 등 짐승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절을 짓고 사워을 짓고 교회를 짓는 것은 인

간세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은 침팬지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세계엔 하나님 예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모인 곳엔 예배가 있고 교회가 있는 것입니

다.

경배의 대상이나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습나다만 그러나 절대

자를 찾고 경외하고경배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종교행위인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늘,땅,해,달,별같은 천체나 바람,비,번개,우뢰같은 자연 현

상들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숭배(Nature Worship)라고 합니다. 무엇

인가를 그리거나 새겨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면 믿

는 행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물숭배 (Fetichsm)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숭배행위는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해서 숭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숭배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창조주를 십계명의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찌니라"고 했고 제2계명은 "너를 위하

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종교와 창조주를 절대자로 예배하고 숭배하는 기독교를 같은 종교

범주에 넣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채필근 목사님의 비교종교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어른은 유모어가 풍부하시고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하글

겸비하신 학자였습니다. 본래 채목사님은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라며 유교

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14살 되던 해 아버지가 (1898년)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때 소년 채필근의 심정은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같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는 유명한 한

학자로 600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분이었습니다. 채필근은 공자에

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부자님, 제 아버지는 그리스도교를 좀 알아라지

고 그 종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보시더니 그만 불행하게도 이단에 빠졌습니다. 성인님께서

이단을 공부하고 연구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이것을 가리키심인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성인의 도를 저버리지 않기로 맹세합니다"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후 어느날 아버지가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

당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변명도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이단자를따라 난생 처음 예배당엘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공부자님께 다시 호소했습니다. "공부자님 참말로 죄송합니다. 성인님의 가

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간하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좇으라

고 하셨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 3년까지 고치지 말라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 세상 떠나시면 3년상 치르고 틀림없이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습니

다."라고 그러나 그 채필근이 끝내 공자한테 안돌아가고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훗날 채목사님은 [공자님께] 라는 글속에서 "내가 꼭 다시 성인님에게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공부자

님이 계시다면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부자나 소크라테

스나 석가모니같은 성인들과 철인들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

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이기 때문입니

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9편1절에서 시인은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그를 예배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

니다.

 

시편 29:1-2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예배는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했습니다.돌

리고 돌릴찌어다라는 거슨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이빈다.

신체의 리듬은 일할 때 일하고 쉬어야할 때 쉬고 먹어야 할 때 먹고 잠자

야 할 때 자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간격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은 반복되어야 합니다.

정월 초하룻날 1년분의 음식을다 먹을 수는 없스빈다. 사흘 휴가 기간동안

1년 밀린 잠을 다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한번이나 한달에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의 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의 시간입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정말 친해지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장관이 예배하러 예

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세례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국사에 바쁘고 교통조건이 열악했던 때였습니다만 그는 아직 예배를 드리

기 위해 남의 나라를 방문했던 것이빈다.그리고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에디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에 들어가빈

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던 저들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에디오피아를 떠난 것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말이면 모든 상가가 철시를 하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정장한 모습으로 교회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이나 경제적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은 세계에 제일이 었

습니다. 그러나 60가대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리고 세속문화의 거센 도전

에 정신문화가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사람들은 주말이면 저마다

문을 닫고 바닷가로 산으로 술집으로 들로 빠져나갔습니다. 교회는 텅텅비

기 시작했고 문을 닫거나 교회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날개를 달고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도처에서 위신이

추락했고 경제가 흔들렬싶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가히자 하나님

은 저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아니고 미국을 염려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본래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미국 신대륙에 상륙하여 첫 해 지은 농사

로 맨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하나님

을 예배하는 정신인 것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돌리고 돌릴찌어다'라고.

 

2.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리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배방법은 제사였습니다. 모든 제사는 정해진 법대로 드려야 하빈

다. 제물을 선택하는법 , 제물을 잡아서 드리는 법,제사장이 제사를 집전하

는 법 드이 소상하게 정해져 있었스빈다. 그러나 신약의 경우는 그 기본 정

신과 자세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24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고 바울

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구체적

으로 바른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옷차림, 헌금,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하고 당일에 서둘거

나 조급히 굴면 안됩니다.

 

둘째, 모든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였던 주기철 목사님이 어느 주일날 예배인도를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장로였던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헐레벌떡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급한 일로 늦었던 것입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자오

님이 늦으면 교인이 본받을게 뭐가 있겠습니까?"그 한마디에 조만식 장로님

은 그날 선 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후 목사님을 찾아와 앞으

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늦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조만식 선생님은 주기철 목사님의 오산학교를 다니실 때 교장이셨고 주 목

사님은 학생이셨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모시기로 하고 조만식 장로님을 청빙대표로 보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주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사님 저희교회에 부임해 주실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대인의 겸손이셨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교통사정,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뵙는 시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바른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태도도 바르게 마음고 바르게 찬송도 기도도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그리

고 예배 이외의 다른 사건이나 소음이 예배장소를 어지럽히면 안됩니다. 예

를들어 예배도중에 핸드폰이 울린다든지 그리고 유유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

다든지 무선호출기의 삐삐움이 들린다든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됩니다. 그리고 유아가 쿵쾅거리고 활보를 한다든지 울음소리가 남의 예

배를 방해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신 예배였는지를 생각해야 합

니다. 헛수구로 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아름답고 거룩하게 드려야 합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라고 했스빈

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옷이란 거룩함으로 꾸민 아름다운 옷이라는 뜻이

빈다. 구악시대 제사장이 하나가링께제자드리기 위해 입는 옷은 팅여상복이

아니었스빈다. 최그급 천에 수를 넣고 금수술을 달아 만든 거룩하고 아름다

운 옷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는 옷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단정

해야 합니다.

 

복장문화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다양하고 멋있는 의상을 접하게 되었습니

다. 유니섹스라고 해서 남녀의 성구별이 모호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의상도

남녀 구별이 어려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초로 인간이 옷

을 입기 시작한 것은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어떤 옷이든 입어서 추하고 혐오스러우면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하

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는 옷은 더더욱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름다운 예배,

기쁘고 즐거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84:3을 보면 '참새도 주의 전에서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둘 보금

자리를 얻었나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4;4을 보면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9;11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

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전에 나오기를 힘쓰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에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자명합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리고 교통이 차단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

셨습니까? 예배에 최선을 다합시다. 예배생활에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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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목 : 깨어 있으라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발행일 : 95년 01월 29일

 

주경학자들은 마태복음 24장을 작은 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계시

록이 담고 잇는내용들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말에 과한 자세

한 설명이 있기 때무에 요한게시록과 상통점을 갖고 있는것이빈다. 오늘 읽

은 본문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삶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마태복음 24장 4절이하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2) 난리와 난리소문이 무성할 것이다.

(3)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간의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다.

(4)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

(5) 사랑이 식고 반목과 갈등이 첨예화 할 것이다.

(6)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노아홍수 당시의 상황을 예로들어 주셨습니다. (37-39).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게 된다

는 외침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더 불행한 것은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

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39-).

그리고 인자가 다시 올 때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

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 칸사이 지방을 휩쓴 대지진 참사

를 지켜보았습니다.

 

2월 1일자 뉴스워크지의 표지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고층건물의 처참

한 모습을 싣고 있었고 "무너진 일본의 내진신화"라는 타이틀과 함께 "고베

의 악몽"이라는 화보 특집을 다루었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고베 고속도로에 깔린 트럭사진 밑에 이런 설명을 써놓고

있었습니다. "일본 칸사이 지방의 산업 중심지였던 고베시 일원이 대지진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모든 사태에 대한 대비가 완벽한 것으로 여

겨졌던 초일류 산업기술국 일본에 어떠헥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일본 당국

은 수년째 지진에 대한 안전보장을 큰소리쳤는데.. 일본인들은 2차대전 이

래처음으로 자신들이 취약국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라고 .

 

지난 1월 17일 오전 5시 46분에 발생한 지진은 불과 20초간 계속되었습니

다. 그러나 사망자는 5,100명을 넘어섰고 2만 5천명이 부상당했는가 하면

이재민은 3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그리고 5만채의 건물이 무너졌거나 파

손되었다고 합니다.

 

20초간의 재앙치곤 그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고 큽니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일어난 지진상황을 살펴보면 1970년 페루 북부에서일어

난 지진으로 66,794명이 사망했고 1976년 중국 당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4망2천명이 사망했고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4,200명이,

1988년 아르메니아 북서부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5만5천명이, 198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62명이, 1990년 이란 북서부의 지진으로 4만명이,

1990년 필리핀 루손 지진으로 1,621 명이, 1993년 인도 마드하라슈트라 지

진으로 3만명이 1994년 캘리포니아 노스리지 지진으로 61명이,1995년 고베

지진으로 5,100명이 죽었습니다. 25년동안 지진으로 죽은 사람의 수르루

합하면 444,833명이 됩니다. 그리고 진도는 6.4에서 8.2였습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지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입니

다. 그것은 지진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며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

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구는 12대의 지각판으로 구성되어 있따고 합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판

들은 계속 이동하면서 판사이의 단층선에서 서로 충돌한다고 하빈다.그때

한쪽판이 다른 한쪽판 아래로 꺼지거나 위로 치솟아 오르게 되는데 그는 충

돌의 충격으로 암반이 갈라지면서 지진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전

세계는 지각판의 이동과 함께 지진대에 걸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가들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선 안됩니다.

 

성경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여 합니다. 마태복음 24:7을 보면 "처처에 기근

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지진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 출애굽기 19:18을 보면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다"고

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6:31-32을 보면 고라

와 그 일당이 모세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고 작당하여 반항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땅이 갈라지고 입을 열어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매장된 일이 있었습

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매몰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9:11을 보면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아합왕을 피해 도망쳤을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다"고

했스빈다. 아모스 1:1아늘 보면 여로보암왕 시대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했

습니다.

 

마태복음 27:50-51을 보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지진이 있었고 마태복음 28:2을 보면 주님이 부활하실 때도

큰 지진이 났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지진은 하나님의 능력과 현존, 진노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특히 마지막 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각판의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의 겨로가라고 설명합니

다만 그러나 성경은 지진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 심판과 진노의 뜻

이 들어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서 12:26을 보면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기니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고 했습니다. 땅도 하늘도 진동시키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고베 지진 이후 일본사람들의 걱정은 재해복구나 슬픔의 회복보다는 더 큰

지진이 일본을 강타하리라는 두려움이라도 합니다.

 

뉴스워크지 베를린 지국장 빌 포웰(Bill Powell)은 [지진 속에 파묻힌 '오

만의 시대']라는 글 속에서 "심각한 경기침체와 만성적 정치혼란이 뒤엉 닥

친 지난 주의 지진은 80년대 후반 최고조에 달했던 일본인들의 경제적 기술

적 우월감의 소산인 오만의 시대가 나긴 잔재들마저 일소해 버렸다"면서 5

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제적 상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서구의 쇠퇴와 퇴폐를 손가락질하면서 설교하는 동안 도

쿄의 졸부들은 그들의 생선 초밥에 반짝거리는 금가루를 뿌려 먹었다. 자만

심 가한 미군도 일본의 기술지원이 없었더라면 걸프전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본의 중의원 이시하라 산타로 의원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러나 이제부터 일본 사람들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썼습니

다.

저는 세계적으로 계속된 대지진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지난 주 가장

가까운 일본 칸사이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사건을 보면서 "그런즉 깨어 있으

라"는 주님의 말씀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몇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첨단 과학문명국입니다. 그런데 지진이나자 고

베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물도, 전기도, 먹을 것도 없었스빈다..

가장 발달된 도시 고베시 한복판에서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고 잠잘

곳도 입을 옷도 없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일본의 정보, 통신, 교통도 손

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주전 2160년경 메소포타미아(Nesopotamia)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로 큰 도시(Great City)를 건설하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

작했습니다. 그 탑의 목적은 두 가지 였습니다. 인간의 기술문명을 자랑하

고 이름을 떨치자는 것이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하늘 닿는데까지 탑을 쌓

아올려 하나님을 기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탑을 무너뜨리

진 않았습니다. 시날(Shinar)평지에 모여 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을 흩어지

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흩어지면 탑은 자연히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명이나 과학의 종말을 역사는 증거해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떠들고 소리지르고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자만이나 교만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상쳐를 건드리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만 미국이 지진으로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고가도로가 엿가락처럼 휘어 내렸을 때 일본 언론들은 앞을 다투

어 비아냥댔습니다.

그걸 공사라고 했느냐는등 적어도 지진대비는 했어야 된다는둥 그러면서

일본은 지진대비만은 철저하다는등, 고속도로나 고속전철은 어떤 경우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장담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수대교가 무너지자 일

본 언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실공사였다느니 원리의 붕괴라느니 사회

현상의 붕괴라느니 비아냥대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당사자인 우

리로서는 기분이 좋을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할 말이 없게 되

었습니다. 교만이나 자만은 금물입니다. 일본의 지진은 먼산의 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경도와 동해 동북부지역 그리고 전국 곳곳이 활성단층이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지질과학과 이기화 교수는'우리나라가 지각판 경게에서 떨어져 있

긴 하지만 지각이 약한 단층구조가 많아서 인접지각판의 충돌로 대규모 지

진이 일어나게 될 경우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

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심판의 두려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나 L.A. 노스리지 지진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뜻있는 사람들

은 미국을 향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이번 칸사이 지방의 지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수용

하는지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이며 경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예외도

없습니다. 단 회개하면 예외가 성립됩니다. 우상숭배와 교만은 하나님이 가

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

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2을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

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고 44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도 예배

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한낮에 당하는 지진피해 보다는 잠자다가 당하는 지진피해가 더 크다고 합

니다. L.A. 노스리지 지진도, 이번 고베 지진도 잠잘 때 일어났습니다.

6.25남침도 주일새벽 잠잘 때 일어났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잠잘 때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일어납

니다. 주님의 재림도 졸며 잠잘 때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잠잔다는 것은 무

엇을 뜻합니까? 하던 일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의식 상태에 빠지

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눈 감고 불 끄고 편히 드러누워 쉽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적당한 휴식이나 긴장해소는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영적으로 네

활개 펴고 편히 쉬어를 계속하면 큰일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오늘밤 주님

이 오셔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심판을 향한 초침소리는 점점 긴박해져가

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갈등,반목,증오,지진,이단의 출몰등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

다. 우리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주님 오실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한 손엔 창을 한 손엔 연장을 들고 예루살렘성을 재건했던것처

럼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믿음을 지켜 그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준비하고 준비하며 일해야 합니다.

졸지 맙시다. 깨어 기도합시다. 깨어 준비합시다. 신앙생활 잘 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어소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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