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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아시는 주* 이재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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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

마음을 아시는 주"
글/이재철 목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성경 창세기 1장 1절 말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믿
음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이 말씀을 믿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믿
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이 이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음 또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네
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성경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 예레미야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레미야를 알
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100주년기념교회에 있는 양화진 공원을 설계한 사람이 그곳이 공터일 때부터 완공될 공원의 전
경을 정확하게 알듯,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창조하셨기에 그가 잉태되기도 전에 그를 알고 계
셨고, 당신의 자녀로, 도구로 구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레미야, 다시 말해 자신
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자신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심을 깨달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좆아 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성경 시편 B9편을 통해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
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성경 시편 139편 1〜4절 말씀
(표준새 번역)
다윗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아시는 분, 자신의 모든 생각을
낱낱이 아시는 분, 입술과 혀를 통해 발설치 않은 말, 이를테면 마음속 깊이 담아 둔 말까지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마음에 이르기
까지,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그렇게 믿
는 까닭을, 역시 성경 시편 139편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찌 맞추셨습니다. -시편 139편 13절 말씀
(표준새번역)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
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 성경 시편 139편 16절
말씀 (표준새번역) 다윗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하신 분이셨습니다. 자신을 창조하셨기에,자
신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태아의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미 보고 계셨
고, 자신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태어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속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은, 다윗
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것을 인식하고 감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러하므로 주어진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거
나 회피하지 않고、도리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가운데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해
갔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가장 대표적인 시로 일컬어지는 성경 23편의 4절 내용은 다음과 같습
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성경 시편 23편 4절 말씀
여기서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란, 인생의 위기, 실패, 고난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친히 우리를 지켜 주신다면, 애초부터 우리가 사
망의 골짜기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 주심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왜 위급한 상황으로 가게 하
시고는, 또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까? 왜 병 주고 약 주고 하시는 것
입니까? 다윗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해 이런 불평을 내뱉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하나님께
서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사망의
골짜기를, 오직 믿음으로 통과하는 과정을 겪지 않고는 믿음의 장수가 될 수 없음 역시, 하나님
께서 알고 계신다고 다윗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에 의해 다윗은 믿음의 장수로 빚어질 수 있엇습니다. 사도 바울
이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 성경 고린도후서 3장 17절 말씀 정알 그렇지 않습니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를 당하든,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을 주셨을 것인즉, 어떤 블안이나 두려움에서도 자유롭지 않겠습니
까? 바울이 온갖 고난과 핍박에서도, 추호의 른들림 없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상황을
주신 분이,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두卜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콜과 성도들은, 가롯 유다로 인해 결
원이 된 사도 한 명을 제비를 콥아 보선하였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
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 성경 사도행전 1장 24〜25절 말씀
지금 이 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을 포함하여 약 120명입니다. 바
로 그들의 모임이 신약성경 최초의 교히, 즉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시발점이었
습니다. 사복음서 이후 신약성경의 시발점 또한 그들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교회의 역사요, 신약성경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의 역사를 밝혀 주는 사도행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최
초로 부른 호칭이 "뭇사랑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라는 것은 참으로 의미 심장학니다.
말씀에서 '못사람'이란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뭇사랑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라고 번
역된 헬라어 원문을 종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이, 하나님, 당신이시
여!'가 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특정인의 마음이 아니라,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
시는 분임을 가장 먼저 고백하였습니다. 물론 그 고백의 대전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
다는 믿음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다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아직 나의 혀로 발설지 않은 마음속 생각까지도 알고 계심을 믿기 전
까지는,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 되심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
셨음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속까지도 아시는 분임을 믿는 것으로
이어저야 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믿음을 지닌 사람만 예레미야나 다윗저럼, 사도 바
울처럼, 어떤 상황에도 굴함이 없이 참된 신앙인으로 끗꿋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
이 원지 않는 상황을 만날지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이기에,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믿음으로 받아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을 가장 먼저 •모든 사랑의 마옹을 아시는 이'로 고백한 이유
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어떤 경우에도 참된 교회를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f마옹을 아시는 이'는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카르디오그노스데
스', 이 한 단어로 표현되는데, 성경 가운데 사도행전에만 두 번 등장하며, 하나님께 국한하여 사
용됩니다. 모든 사랑의 마응을 아시는 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한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
함입니다. 그와 같은 믿응을 지닌 사랑들에 의해 교회가 일구어지고, 사도행전이 엮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제비를 병게 하여, 사도률 보선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 중, 누구의 마음이 더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하나님만 아신다는 의미로 하나님을 그렇게 불렀고, 맛디아가 더 중성할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름 선택하신 것으로 알입니다.
그러나 제비에서 탈락한 요셉은 '제 곳으로’간 가롯 유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저음부터 끝까지 주님율 모셨던 사람이요, 동료둘이 보기에 사도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 없는 사
람이었습니다. 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초대교회를 이문 120명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
제가, 그와 맛디아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율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종더 깊은 자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에서 당신 모습이 변화되
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처럼, 중요한 현장에 늘 베드로、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대동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랑들은 그 이유를, 세 사랑이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신학자 캠멀 을간은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합니다. 예
수님께서 그 세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 것은,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가장 연약하
여, 그러지 않고서는 주님의 제자로 바로 설 수 없움을 아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캠벨 몰간의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 세 사람의 평소 됨됨이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
미가 급한 베드로는 실수투성이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신할 정도로 비겁한 인간이
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 령제는, 반대자들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블로 태워 버리고 싶어 할 정
도로 과격하고 영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권을 장악하시리라 확신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는, 두 아들을 중용해 주실 것을 예수님께 은밀히 청탁할 정도로 세속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율 앞두고 갯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시는 동안,그듈
셋은 장에 공아떨어저 있율 만큼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연약함율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둘
에게 특별한 관심율 베푸시지 않았다면、그둘이 우리가 아는 바대로의 사도가 될 수 없었율 것
은 불 보듯 벤합니다. 이 갑은 관점에서 오늘 본문율 듈여다보면, 초대교회 교인둘이 '모든 사람
의 마음율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도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성도들의 추전율 받은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은 모두 신실한 하나님율 믿는 백성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비콜 통해 그들 중 한 사람만, 사도란 칭호를 얻을 수 있엇습니다. 제비에서 뽑힌 사랑
은,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명예콜 얻겠지만、제외된 사랑은 큰 상처콜 받을 수
도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두 사랑을 추천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든 사랑의 마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한 사랑을 택해 주시기를 기도드렸고、하나님께서 그 웅답으로 맛디아를 선택하셨
습니다. 캠벨 을간의 관점으로 본다면、하나님께서는 요셉보다 맛디아가 더 연약함을 알고 계셨
습니다. 요셉은 사도란 직함 없이 평신도로서도 사도답게 살아갈 굳건한 중심이 있었지만、맛디
아는 제비에서 탈락되는 것올 받아들이기에, 너무나도 약한 심성임을 아시는 하나님이 맛디아
를 택해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제비에서 뽑힌 맛디아보다, 탈락한 요셉을 더 신뢰하신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서 어려웅을 겪고 있습니까? 전히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아 삶의 곤고함
에 빠저 있습니까? 뜻밖의 시련과 고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당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모
두 하나님께서 '카르디오그노스테스'/우리 모두의 마옴을 아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
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과정을 겪옴으로서 비로소 신실하고 성숙한 하나님을 임는
백성이 될 것임을, 그 상황에서만 우리의 영론이 정금처럼 정제될 것임을, 아니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답게 끗끗하게 살아갈 우리의 견고한 마옴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좋은님! 우리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머니의 태속에 임태되기도 전부터
우리를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율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률 알고 계십
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체질, 우리의 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율 신뢰
하십시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율, 변함없는 사랑율,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심율 믿으십시오.
그 믿음 안에서 모든 두려움과 블안,절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으십시오.
그때 지금의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 상황을 통해 아름답게 결실 맺을 것입니다. 나
콜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움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
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 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콜 때 그가 들으시죠, 아멘.
[줄처】 이재철 목사-마움을 아시는 주! 中에서-®
예수가줄다오
글들 보시고 스크랩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댓글로 따뜻한 소감으로 감사들 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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