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자신을 바꾸자*이재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9.
 
처음 목록가기
 

☞예수가좋다오

 

자신을 바꾸자*이재철 목사
하나님을 경톨히(輕怒: 말이나 행동이 갑벽고 담탁하지 않다.)
여기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성경의 평가는 대단히 냉혹향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한다는 성경
의 원칙에 입각해 블 때, 하나님을 경롤히 여기는 인간의 죽음에는。그 어떤 가치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뒤에, 남 왕국의 네번제 왕이였던 여호사밧에게는 7명
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세상을 떠나면서 장자 여호람에게는 자신의 왕좌를 물려주고, 나머지 6명의 아
들들에게는 막대한 재물과 함께 견고한 성읍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장자 여호람은 아버지로
부터 왕좌를 이어받은 뒤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의 6명의 아우들
과 그 즉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 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아우들에게 물려주었던 막대한 재
물과 견고한 성읍들을 독차지함과 동시에, 자기 왕권에 대한 잠재적인 도전자들을 아예 제거해
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패역한 왕 가운데 한 명이었던,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을 아
내로 맞아들이고서는,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서 백성의 영적 타락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여
호람은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자행하는 인간이
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처럼 굴림한 패역한 인간이었습니다.
여호람은, 왕좌에 오른지 8년만에 창자가 빠져나오는, 요즘 용어로 표헌한다면 심한 탈장증세로
죽고 말았습니다. (탈장: 신체의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조직을 통해 돌출되거나 빠
져 나오는 증상) 성경 역대하 21장 20절 말씀은, 바로 그 여호람을 가리켜서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역대하 21
장 20절
여호람은 그저 그렇고 그런 필부(四夫:신분이 낮고 보잘 것없는 사내)가 아니었습니다. 여호람은
유다 왕국의 왕이었습니다. 여호람의 시신에 입혀진 수의와 그의 시신이 안치된 관을 포함해서,
여호람의 장례식에 동원된 모든 물품들은 유다왕국 죄고의 명품들이었을 것입니다. 왕이었던만
큼 그의 장례식의 규모와 장중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러한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도, 유다 백성도,그 누구도, 여호람을 아끼는 사람은 없
었습니다. 장중하고 화려한 규모와 형식의 장례식에 비한다면,아무도 아끼는 자 없는 가운데에
죽음을 맞이한 여호람이야 말로, 가장 측은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처
럼 굴림했던 여호람의 죽음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이처럼 냉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조금도 아까워하시지 않았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리파 1세(해롯대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
국 황제의 종애를 힘입어서, 당시 헤롯 아그리파 1세는 팔레스타인 거의 전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지하는 지배자였습니다. 전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인이면서도 유대인의 왕좌를 자지한 해롯
아그리파 1세는, 유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
던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참수형에 처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사도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페니키아의 무역항구 도시인 두로와 시
돈의 주민들은, 식량을 전적으로 인근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 아그리파
1세는 하루아침에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식량공급을 중단해버렸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야
두로와 시돈의 수없이 많은 주민들이 고통에 빠질것이 뼌한대도,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 역시,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자기 손안에 들었다고 믿는 인간이었습니다. 졸
지에 식량난에 봉착한 두로와 시돈의 지도자들이 헤롯 아그리파 1세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헤
롯 아그리파 1세가 공개연설을 하는 날, 박수부대를 동원해서 헤롯 아그리파 1세를 하나님이라
고 지켜 세우면서,환호성을 지르러했습니다. 그 환호성에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정말 자신이 하
나님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사도행전 12장 23절은、그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혜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야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
사도행전 12장 23절
혈라어 명사 스콜렉스는 벌레 세균을 뜻하고 특히 구더기를 뜻합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일
평생, 막대한 돈과 명품으로 울을 삼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그 스스로 하나님인양 착각하며
군림했던 헤롯 아그리파 1세 역시, 아무도 아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구더기 밥이 되어 비참하
게 그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아까워하시지 않았고,성경은 그
의 죽음을 냉특하게 평가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성경 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
장하는 모든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헌실 속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세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사람은,이른바 구원파의 교주 유병언 회장일
것입니다. 지난 4월 16일 낮.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되어서, 승객 476명 가
운데서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되는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
던 어린 학생들이 희생을 당해서,온 국민이 중격을 받았습니다. 유병언 회장은 그 참극을 빚은
세월호가 소속된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 소유주였습니다.
그러나 유병언 회장은 검찰 줄두를 무시하고, 소위 구원파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금수원에서 신
도들의 비호 야래 도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병언 회장은 시중잡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
원파로 불리는 기독교 복음 침례회의 교주였습니다. 명색이 하나님과 성경을 내세우는 종교지
도자였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소유한 세월호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참극
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그는 마치 시중잡배처럼 무책임하게 도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유병언 회장과 그의 자녀들은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들은 모두 재벌
같은 호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또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유병언 회장이 도주하면서 마련했
던 현금이 한화로 약 30역 원, 미화로 16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그의 차명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병언 회장 일가족이 보유한 그 막대한 부, 그들이 누렸던 재벌 같은 호화판 부귀영화의 원천
이,구원파 신도들이 바친 헌금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성경을 들
여다보아도,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부를 죽적한 선지자는 없습니
다. 신약의 사도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자기 자식들과 함께 재벌 놀음한 사도들도 없
습니다. 있다면 모두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거짓 선지자들,거짓 사도들뿐이었습니다.
유병언 회장은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당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성경을 내세워 재벌 놀음
을 했습니다. 아니 그 자신이 구원파 내에서 하나님으로 군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그의 재벌 놀음은 구원파 내에서는 정당한 일이었고,구원파 내에서 그의 말 한마
디 한마디는 곧 하나님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몰래 도주했던 그 유병언 회장은 시신이 되어 온 국민 앞에 되돌아 왔습니다. 구더기
에 덮혀서 반백골 상태인 시신 상태가 얼마나 통즉했던지, 그 시신을 발견한 주민도 신고를 받
고 줄동한 경찰도 모두 무연고 노숙자 시신으로 간주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시신 발견 당시 유병언 회장이 입고 있던 점퍼는,일반인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가격이
최소한 천만원 이상이라는 최고가 명풍 로로피아나였습니다. 또한 그가 입고 있던 바지, 속옷,
운동화까지 모두 명풍이었습니다. 유병언 회장은 죽을 때까지 명풍으로 자신을 울 삼고 있었지
만,그 명품들이 자신의 시체가 구더기에 뒤덮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을 조금도 막아주지 못
했습니다.
그는 구원파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아끼는 자없이 그런 모습으로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
마저 스스로 지키지 못한 채, 그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구원파 내에서 하나님으로
군림하던 유병언 회장은 그렇게 죽었지만,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은 무섭게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코끝에 호름이 남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오늘의 말씀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고린도교회가 자생력을 확립했다고 판단되
자,자신의 본거지인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환하기로 하였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을 돈던 브
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그 때에 고린도를 떠나는 바울을 따라 나섰습니다. 고린도의 와항
겡그레아에서 그들이 승선한 배가 잠시 에베소에 기항하자, 이번에도 바울은 어김없이 에베소
의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고卜 당시 로마제국 내에서 에베소는 대규모 도
시였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
하니. (사도행전 18장 19절)
말씀에서 그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언뜻 보면,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 항구나 에베소 시내에 그
대로 머물게 한 것저럼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 이후를 살펴보면 위 말씀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성경 사도행전 18장 20-21 절
에베소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받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종 더 에베소에 머물면서 자신들
에게 오래토록 복음을 전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
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그들과 작별하고, 본래의 계획대로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는 바울의 이 말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아니하면
다시는 에베소에 오지 않겠다는 말이 아님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반드시 에베소로
되돌아오게 해주실 것을 믿는 확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본래의 계획에 따라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되돌아가면서, 자기 대신에 브리스길
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그대로 남아있게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돌아올 때까지, 바
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에베소 사람들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가 보살펴주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도록 한 것입 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 24절 이후를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 요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블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
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사도행전 18장 24~26절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잠시 기항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들이 바로,역사상
에베소에 최초로 세워진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바울 대신 에베소에 남게 된 브리스길라
와 아굴라 부부는, 그 에베소 최초의 교회인 최초의 구심점이 된 것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본래 천막제조업자였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모든 군인들의 병영은 다 천막이었
고,일반인들의 천막수요도 많았던지 라 천막제조업은 유망업종이었습니다.
만약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더라
면,그들의 인생목표 역시 돈의 노예가 되어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재울과 더 많은 명풍으
로 자신들의 울을 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 역시,스스로 자기 인생의 하
나님이 되어 자기 욕망 내키는 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2000년 전에 아무도
아끼는 자 없는 가운데, 한 중의 름으로 른적도 없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만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인생관이 새로워졌습니다. 자신들의 영
원한 울이 되어주실 분은 예수그리스도뿐이심을 알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목적으
로 인생 주인으로 모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고린도에서 닦아 놀았던 탄탄한 사업적 기
반마저 미련 없이 포기하고, 고린도를 떠나는 바울을 따라 주저 없이 나섰습니다. 그들 역시 바
울저럼 주님의 도구로 복음의 통로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에베소를 떠나는 바을은, 그들 부부에게 교회 개척
자금이나 선교헌금 명목으로 동전 한 닢 건네주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도 돈과는 거리가 멀었
던 사도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단지 자신을 대신해서 에베소에 그리스도의 증
인으로 남아주기를 요청했을 뿐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남게 된다면, 자신들의 생계는 전적
으로 자신들이 스스로 책임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들의 영원
한 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인생관이, 인생의 목적이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에베소 교회라고 부르는 교회
는 바울이 다시 에베소를 방문할 때까지, 역사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
님께서 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얼마나 아끼셨는지,인류 역사상 에베소에 에베소 최초의 교
회에 최초의 구심점으로 그들 부부를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오늘 말씀이 들어있는 사도행전
18장 속에서만 그들이 무려 4 번이나 언급되게 하셨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의 영과 삶의 족적은 영원한 진리로 옷 입
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품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마디가 원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넌
센스 퀴즈의 답은 질문자가 일러 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답이 워냐고 물었더니
그 분의 답이 기상천외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첫마디를 건네셨답니
다. "니네들 내가 죽었을 때 받은 내 조의금 다 어디다 썼니?" 모든 우스개 애기는 세태를 반영
하거나 풍자합니다.
두 달전에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종수가 자신의 여동생 장례식에 보낸 조의금과 관련해서, 그
자녀들이 송사를 벌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다섯 자녀들이 어머니의 장례
식에 들어오는 모든 조의금 가운데에서 장례식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1乃씩 공평하게 나누
기로 했는데, 재벌 종수 외삼존이 보낸 수십억 원의 조의금을 나머지 남매들이 자기 몰래 빼돌
렸다고 둘째딸이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
도 없는 것은 이미 옛이야기이고, 이제는 부모 장례식의 조의금마저도 소송거리가 되는 비정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후 첫마디와 관련해서,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우스개 이야기가 세인
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실은 스스로 자기 인생의
하나님이 되어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음의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 설렁 역만
금을 모은다 할지라도, 그 인생은 아무도 아끼는 자 없는 구더기 밥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를 쫒기에는 살아온 횃수와 상관없이 인생은 중분히 길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좆는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미 영원에 접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인생의
하나님이 되어 돈의 노예로 살기에는, 설령 남은 인생이 100년이라 할지라도, 그 인생은 몽땅
연필보다 더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 앞에서는 100년도 찰나에 지나지 않는 까닭입니다.
늙었다고 절망하거나 젊었다고 자만해서는 안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월은 결코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계는 명추어도 세월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지
금 바로 이 순간에도 세월은 1초 1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1초 1초를 어떻게 엮어 가느냐에 따라서,여호람이나 헤롯 아그리파 1세처럼 돈과 명품으로
자신의 울을 삼고서도 , 아무도 아끼는 자 없는 냉록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비록 세상에서
는 아무것도 지 닌 것이 없다 한들,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하나님
의 영원한 작품으로 승화될 수도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울로
삼는 것보다, 더 자신을 아끼는 길은 없습니다.
출처: 이재철 목사님 '그들을 거기 더물게 하고'- 설교 中
예수가종다오
글을 보시고 스크업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y글로 따뜻한 소갑으로 갑사5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됩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