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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심판을 면하는 참회*이재철목사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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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

심판, 면하려면 참회하라.
글/이재철 목사
유대인 법에 의하면,유대인 남자 성인이 최소한 W명 이상이 있으면, 유대인 회당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복수의 회당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유대인 거주자가 많았던 관계로 복수의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를 찾아간 바울이 처음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던 회당의 유대인들은,집요하게 바울을 괴
롭히며 조직적으로 바울이 더이상 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배척했습니다. 그때 회
당 바로 옆집 주인인 디도 유스도가 자기 집을 예배당으로 내어 놀았고, 바울은 그 이방인의 집
을 복음 전도를 위한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덕분에 다른 회당의 회당장이였던 그리스보가 바울을 찾아와서 복음을 듣고, 자신의 온 혈족
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고린도 시민들도,원가 이질적인
유대인 회당보다는, 자신들과 똑같은 고린도 시민인 디도 유스도 집을 마음 편안히 찾아와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바을이 복음을 전했던 회당의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바을을 쫒아내었던 결과로 가
능할 수 있었던 신비로운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쫓아내었던 회당의 유대인들 입
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분통이 터질 일이였습니다.
자신들이 쫓아낸 바울이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회당 옆집을 예배당 삼아서 복음을 전하기 시
작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 회당장과 그 혈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없이 많은 고린도 시
민들이 바울을 찾아와서 복음을 듣고 매일 세례받는 일이 이어지는 것을, 그 유대인들이 어떻게
가만히 눈을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바울이 이제는 고린도를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고린도를 떠나기까지 이제는 침묵
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날밤에 주님께서 친히 바울을 찾아가서
서, 두려워하거나 침묵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해 주시지 않았던들, 바울은 그때에
고린도를 떠나버렸을 것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말씀은, 그와 같은 일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던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그리
고 그토록 바을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배척했던 유대인들의 주모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였
는지를, 그의 결국이 어떻게 되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종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을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 성경 사도행전 18장 12절 말씀 때는 갈리오가 로마제국 행정 구역상,고린도가 속해있
는 아가야 지역의 종독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가야 지역은 그리스 남반부를 일컫는 지역으로
서, 아테네도 아가야에 속해 있었습니다. 델피 신전의 비문에 의하면, 갈리오 종독은,주후 51년
부터 52년까지 1년간, 아가야지역의 종독으로 재임했습니다.
갈리오는 한때 네로황제의 가정교사였던 그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면서 웅변가였던 세네
카의 친형이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노바투스(Novatus)였는데, 원로원 의원 유니우스 갈리오의
양자로 입적(入籍) 되면서,이름이 갈리오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친동생 세네카와 함께 한때 로
마제국 내에서 탄탄한 권력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후 65년에 네로황제를 축줄(逐出)하려는
모의에 가담했다는 험의를 받은 동생 세네카와 함께, 네로황제의 명령에 따라 자살로 생을 마감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기는 갈리오의 일생 중에서,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갈리오
가 아가야의 신임 종독으로 부임하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
고 갔습니다. 우리말 '일제히 일어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카테피스테미•는,쇄도하다, 공격
하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일치단결해서 기습적으로 바울을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간 것
이였습니다.
그 주동자는,성경 사도행전 18장 17절에 밝혀져 있는 회당장 소스데네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18장 17절 말씀
그는 바울이 저음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던 회당의 회당장이였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을 선동해
서 집요하게 바울을 괴롭히고 배척해 온 주모자였던 것입니다. 그 소스데네가 신임 총독이 부
임하자, 자기를 따르는 유대인들을 다시 선동해서, 바울을 기습적으로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이였습니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경우에 갓 부임한 종독은 현지사정에 어두워서 쉽게 여론에
휘둘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옛 고린도의 유적지를 찾아가면, 이때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끌려갔던 법정의 른적이 생
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말하되 이 사람이 을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
한다 하거늘.-성경 사도행전 18장 13절 말씀
회당장 소스데네와 그를 추종하는 유대인들이, 갈리오 종독에게 바율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
님을 경외하게 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우리말 '말하되'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레고(levgw)_가 원
문에 분사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동일한 고발내용을 반복해서 계속 소리져
서 외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위 말씀이 헬라어 '노모스(nomos)'를 을법으로 번역한 것은 적
합한 번역이 아닙니다. 헬라어 노모스(nomos)는 유대인의 율법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법! 다
시알해 로마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위 말씀을 정확하게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하
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새번역성경 사도행전 18장 13
절 말씀
회당장 소스데네는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을 어겼다고 고발한 것이 아니였
습니다. 바을이 로마제국의 국법을 어겼다고 고발한 것이였습니다. 로마제국 내에서는 로마제국
으로부터 허용받는 종교만 포교활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럼으로 회당장 소스데네는,바울이 허가
받지도 않은 그리스도교라는 불법사이비종교 포교로 고린도시민을 선동하면서, 사회질서를 문
란시키고 있다는 식으로 바을을 고발한 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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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를, 로마법과 관련된 정지문제로 바울을 고발한 것이였습니
다. 정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활동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든 정치가 개입하면. 아무리 사
소한 문제라도 일단 정치문제로 비화되기만 하면, 정치는 사람을 죽입니다. 기독교든 블교든
각 종교의 교단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장애가 되는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불의를 저질러도, "이거
정지문제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다몸어 버립니다. 세속정치든 교단정치든 그것이 정
치의 속성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
을 정치범으로 몰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당장 소스데네는 대단히 교활한 인간이였
습니다.
그가 바울을 종교문제가 아니라, 로마 법과 관련된 정치 문제로 몰아서 고발했다고 하는 것은,
바울을 완전히 생매장 시킬뿐만 아니라, 바울이 전하는 복옴과 그리스도교를 발본색원(破本室
源)하기 위함이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 중앙정치무대 출신이자 그 유명한 세네카의 친형이
였던 갈리오는, 회당장 소스데네가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자기마음데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
상이 전히 아니였습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옮거니오卜.-성경 사도행전
18장 14절 말씀
소스데네와 유대인콜의 고발에 대해서 바울이 자기 변호를 시작하려하자,갈리오 종독은 바울
의 자기 변호를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을을 제지하면서,유대인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즉
바울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을 저질렀다면, 너희들의 고발을 마땅히 내가 받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바울의 문제는 로마 법과 관련된 문제가 전허 야님으
로,너회들의 고발을 받아 즐 수 없다는 뜻이였습니다.
그리고 갈리오 종독은 유대인듈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만일 문제가,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
에 관한 것이면 너회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 성경 사도행전 18장 15절 말씀 갈리오 종독은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발을, 언어와
명칭과 유대인듈의 법, 즉 묻법에 관한 문제로 파악했습니다. 우리알 •언어•라고 번역된 헬라어
는,하나님의 말씀을 일컫는 '로고스(logos)'라고 원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갈리오 종독은, 예수님이 구약이 예언한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바울의 전도행위를 구약 말씀
의 해석의 문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는가?하는 명칭의 문제,그리고 유대인 율법 적
용의 문제로 파악한 것이였습니다. 바울의 문제가 로마 법과 관련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유대인 내부의 종교적인 문제로 판단한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갈리오 종독은, "나는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유대인들의 고발을 아예 각하(却下)해 버렸습니다. 소스데네는
로마법으로 바울을 옭아매러고 했지만, 갈리오 종독은 그것은 율법의 문제일 뿐이라고 일죽한
것이였습니다. 그콜을 법정에서 쫓아내니-성경 사도행전 18장 16절 말씀
갈리오 종독이 소스데네를 비롯한 유대인들을 법정으로 쫓아내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이겠
습니까? 갈리오 종독이 그둘의 고밀옳 각하(却下)하였옴에도 률구하고, 유대인들이 종독의 판결
율 받아들이고 승복하지 아니하고, 법정에서 마치 시위를 하듯 계속 소리치며 소란을 피웠던 것
입니다. 갈리오 종독은 즉각 경비병들로 하여금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어 버리게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콜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성경 사도행전 18장 17절 말씀
위 맡씀의 모든 사람은 그 법정에 참관했던 고린도 시민들이였습니다. 당시 법정은 누구든지 참
관할 수 있는 공개장소였습니다. 소스데네와 유대인들이 패거리를 이루어 바을율 불잡아 이끌
어 법정으로 가서 소리콜 지르면서 고발을 하자, 지나가는 고린도 시민들이 대체 무슨일인가?
하고 법정으로 몰려 둘었습니다. 그듈은 패거리콜 이훈 유대인둘에게 죄수로 끌려온 전허 죄수
처럼 보이지 않는 연약한 몰골의 바을을。자신들의 눈으로 보았고,유대인들이 패거리률 이루어
그 연약한 바울 한 사람을 악달하게 고발하는 내용을 귀로 들었고, 그들의 터무니없는 고발 내
용묻 종독이 단숭에 각하(邱T)해버리는 장면을 자신콜의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종독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하듯이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며 난
동묻 피웠습니다. 그 악랗하고도 무례한 유대인둘의 행동옳 본 고린도 시민들이 다갈이 분노콜
느꼈습니다. 그들은 갈리오 종독이 경비병율 시켜서 유대인들율 법정에서 쫓아내자마자 따라나
가서, 그들 중에서 가장 악달했던 유대인을 종지휘했던 회당장 소스데네콜 붙잡야서, 바로 법정
앞에서 때렸습니다. 우리말 •때리다'라고 번역된 헬라어동사 '튀프토(tuvptw)•는, 지나가면서 한
번 룩륵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주먹으로 치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분노에 쌀인 고린도 시민들이 소스데네를 한번 록룩쳐본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집단 폭행을 가한
것이였습니다. 조금 전까지 기세동등했던 소스데네는,로마법으로 정치적으로 몰아 바울을 생
매장 시키려 했지만, 뜻밖에도 그 자신이 분노한 고린도 시민묻에게 집단폭행묻 당하고 말았습
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서, 바을은 남은 기간동안 고린도에서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복융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갈리오 총독이 분명히 보는 앞에서 회당장 소스데네가 고린도 시민들에게 집단
독행을 당하는데도,치안을 유지해야 할 갈리오 종독이 소스데네콜 구해주러 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종독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더욱 중격적인 사설은, 소스데네의 사주콜 받아서 기
습적으로 바율을 블잡야 법정으로 끌고가서, 소리소리 치며 바을움 고발했던 유대인듣마저도,
고린도 시민들에게 집단폭행 당하는 소스데네콜 방관했습니다.
그것은 바을율 악람하게 괴롭혀 온 소스데네에 대한, 하나님의 지상에서의 무서운 심판이였습
니다. 만약에 소스데네가 이때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소스데네는 죽은 뒤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도 절대로 모면하지 못했묻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순을 통해서,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가지는,우리가 바울처럼
선한 일옳 하고도 그 선한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악릴하게 괴롱림옳 당한다고
해서, 그 선한 일을 중단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되면 그 악람
한 사람을 반드시 당신의 방법으로,이 세상에서든, 당신의 영원한 심판대 앞에서든, 당신의 방
법으로 반드시 손 보실 것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그로인해 오히려 더 강인한 자유인이 될 것이
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만약 우리가 누군가룹 불의하게 괴릅히고 있다면, 지체없이 그 일
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어리석게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율 쫓아서 선
한 길을 걷다가, 지금 누군가로부터 악달하게 괴롭힘을 당해서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
다면,참회의 절기인 사순절 두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함께 참회하십시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쫓다가 이 땅에서 설령 바옳처럼 참수형옳 당해 죽어도,그것은 실은 주님안에서 영원한
자유인으로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누군가콜 불의하게 괴끙히고 있다면, 더더욱 지금 당장 참회하십시다. 그것은
바을윤 악람하게 괴롭히던 소스데네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재 분노한 고린도 시민들에
게 집단 독행을 당하둣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자신을 무모하게 내 던지는 자살행위입
니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옳 살펴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둥지고 사람윤 괴롭히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재철 목사 2014.3.16 '모든 사람이 소스데네콜 잡아'-설교 내용 中 일부 녹쥐-®
예수가좋다오
글플 보시고 스크갭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엇굴로 따쯧한 소감으로 갑사뭏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目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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