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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모세, 그 후 행7:35~38 07.04.01. *원제목 : 나와 같은 선지자를
어쩌면 모세의 인생은 그야말로 광야의 이름 없는 양치기로 끝날 신세였다.
그러나 3천5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수님의 그림자' 모세가 된 것은,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났기 때문이었는데...
◑1. 만남의 섭리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에게는, 모든 인간과의 만남은...
좋은 인연이든지, 악연이든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무익한 만남은 없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인생에 큰 유익을 얻지만,
자칫 잘못된 사람을 만나면,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유익한 만남과 그렇지 못한 만남을 조심스레 구별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무익한 만남은 없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인간과의 만남이 합력해서 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애굽 공주와의 만남으로 왕자가 되다
그가 노예 신분인 부모 아래 태어난 것은... 자기 가정배경을 원망할 만 하다.
그러나 자신이 노예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석 달 만에 나일 강변에 버려졌고,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왕궁에서 무려 40년 동안 제왕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난 덕분이었다. 자유인의 자식이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당시 바로왕은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모세는 후계자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 때 모세가 이집트 공주를 만나지 않았던들
이스라엘 노예 가운데 과연 누가 출애굽 민족을 이끌고 지도 할만한
학식, 지도력, 행정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노예들은 모두가 무학에다가 일자무식 아닌가!
(잘 아는 예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거기서 그는 떡, 술 맡은 관원장들을 만나면서 교육도 받았겠고,
후에 바로를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잡는다.)
▲자기를 배척하는 동족과 만남의 섭리
그러나 모세는 자기가 믿었던 동족의 배척으로,
자기의 살인을 덮어주지 않고, 도리어 누설하는 동족때문에
하루아침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 만남도 악연이 아니라, 모세를 광야수업의 길로 선도해 주었다.
▲십보라와 만남의 이득
모세는 이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을 통해,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구비하고 있어도
그것이 결코 영원할 수 없으며, 일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는
허무한 것이란 진리를 뼈저리게 터득했다.
광야에서 모세는, 인생은 ‘나그네’일 뿐이며 (게르솜: 첫째 아들)
오직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만 인간이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엘리에셀: 둘째)
철저히 깨닫는다.
모세가 하나님을 깊이 못 만났더라면,
그는 평생 자기의 동족을 원망하며,
애굽의 왕자에서 하루아침에 양치기로 전락한 자기신세를 한탄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보니,
노예의 자식으로 억울하게 태어난 것으로부터
자기가 도와주려던 동족에게 도리어 미움을 받았던 것 등
모든 만남이 섭리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불필요한 만남은 없다.
모세의 일생을 보면,
전혀 무가치하게 보이는 그런 만남(부모, 공주, 동족, 십보라)도
하나님 안에서 필연적인 연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모든 만남은 모세를 모세 되게 하기 위한 필연적인
만남으로 승화되었다.
모세의 일생에서 그 만남 가운데 단 한 만남이라도 결여되었더라면(연속성의 결여)
모세는 결코 우리가 아는 성경속의 모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적용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내게 유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내 재산, 명예, 건강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 해를 끼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가운데는
우리의 모든 만남은, 유익해 보이는 만남이나, 해로워 보이는 만남이나
그 모든 만남은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대책’으로 바꾸시기 위한
필연적인 만남으로 승화되게 된다.
◑2.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환경)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악의 조건도 문제되지 않는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대책이 되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
모세에게는, 당시 최강의 이집트 군대와 맞설만한 군대가 없었다.
거사를 실행할 넉넉한 군자금도 없었다.
그가 지닌 것이라곤 마른 막대기 하나뿐인 빈털터리 80세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갖고 있을 때,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악의 조건이 오히려 강점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그 자체가
자기가 지닌 큰 자산이었다.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도구로 온전히 쓰실 수 있었던 것도,
모세의 그런 점,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했던 점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기적 일어난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40년간 기적을 행하였느리라 행7:36
아무 쓸 모 없이 끝나버릴 것 같았던 모세의 인생이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그 삶 자체가 온통 하나님의 기적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그 주위 여건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적이 일어나는 최적의 여건이 조성된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그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어떤 상황이라도, 악조건일지라도, 반드시 역사가 일어난다.
만약 악조건이라면, 기적이 일어나서라도 그는 사명을 감당해 낸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행7:37, 신18:15
‘나와 같은 선지자’는 ‘단수’(↔복수)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나와 같은 선지자’로 부른 것은
모세 자신이 성자 하나님(예수님)의 그림자라는 의미이다.
▲1. 모세가 예수님처럼 된 이유 - 말씀의 대언자
그 빈털터리 노인이 성자 예수님의 그림자라니... (황당?)
도대체 모세 노인이 어떻게 성자 예수님의 표상이 될 수 있겠는가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7:38
모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던 대언자의 삶을 살았다.
그 말씀이 얼마나 많았던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구약성경의 1/4, 성경전체의 1/5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이 친히 육신이 되시고,
당신의 삶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그림자는 모세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말씀의 대언자)
▲2. 모세가 예수님처럼 된 이유 - 속량자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행7:35
하나님께서는, 자기 동족으로부터도 배척당했던 모세를
단순히 그 동족을 위한 지도자(관리)로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속량자로 보내셨다.
속량자(리트로테스)란, 누군가를 구원하되
반드시 자기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 구원하는 자를 뜻한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대책’이 되라는 그 명령에 순종해서
전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살았다.
바로 모세의 헌신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체험하고,
모세의 희생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리를 죄와 허물에서 속량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 자신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셔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날마다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기희생, 속량자 의미로)
유한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된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 당사자의 삶이 이미 영원한 의미로 승화되었음을 의미한다.
▲3. 모세가 예수님처럼 된 이유 - 빈손
모세는 40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뒤에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의 소유라곤
마른 막대기 하나밖에 없는 빈손이었다.
모세는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르솜'(나그네)임을 바르게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자기 삶으로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80세의 나이에,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던 모세는
60만 가정의 지도자로 40년 동안 다스렸다.
40년 동안 한 민족의 최고 지도자로서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실로 막강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 당도했을 때
그들은 모세 앞에 은, 금, 패물을 갖다 바쳤다.
무려 60여만 가구가 패물을 가져왔으니 그 양이 얼마나 엄청났을까?
만약 그 때 모세가 자기의 막강한 권력으로
전적으로 자기 관할 하에 있는 그 물질에 집착했더라면
그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고, 막대한 재물을 관리하였지만
빈손으로 그 역할을 감당했고 빈손으로 자기 생을 마감했다.
단 한 순간도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고 일평생 선한 청지기로 살았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르솜(나그네)인 모세에게
이 세상의 것이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위한 도구일 뿐이요
그것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었다.
▲인생은 티끌이다
모세가 무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자기 소유의 양이 아니라, 장인 소유의 양을 치면서 터득한 진리가 이것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스스로 이렇게 노래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시90:3
모세에게 인생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돌아가라!” 명하시기만 하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과도 같았다.
그래서 모세는 빈손의 정신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 빈손의 삶의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만약 모세가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궁핍함을 채우고자
자기 관할 하에 있는 물질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탐했더라면
그의 말년은 차라리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로 끝나버리는 것보다
더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4.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지녀도 빈손의 정신으로 산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모든 죄는 따지고 보면, 인간의 욕심이고,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돌아가라 명하시면 돌아갈 수밖에 없는 티끌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영원하지 못한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어리석음에서부터 모든 인간의 죄가 파생된다.
오직 영원한 것(말씀)을 소유하는 자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이 세상의 것은 수단이요, 목적이 아니기에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지닌다 할지라도 빈손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그 결과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승화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낮으로 그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크리스천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5:24
우리가 진정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주님과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면
‘우리를 눈멀게 했던 영원하지 못한 것들’ 즉,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추구하자.
그 허망한 탐심과 정욕의 하수인 노릇했던 우리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자.
그렇게 못 박혀 죽을 때, 부활의 영광이 임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못 자국이 선명한 빈손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십자가 자국이 새겨진 빈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자.
빈손의 신앙을 지닌 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지녀도
선한 청지기로 살아갈 것이다.
빈손의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만, 진리를 위해 불의에 맞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질 수 있다.
빈손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만,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며
분별한대로 행동하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갈 때,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우리 자신이 날로 예수를 닮아가는 그 분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4.01. *원제목 : 나와 같은 선지자를 행7: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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