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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듣는 것을 사양치 않는 크리스천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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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듣는 것을 사양치 않는 크리스천 행10:24~29 인터넷설교 녹취정리

 

 

▲요즘 욕먹으면서 헌신하는 사람... 찾아보기 드물다.

예수님의 헌신과, 오늘날 우리의 헌신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자기가 망가지고,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헌신하셨는데 반해,

우리의 헌신은 자기가 높아지고, 존경을 받기 위한 헌신이다.

 

이것이, 우리가 헌신은 헌신대로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까닭이다.

 

아예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더 높이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헌신일 뿐, 하나님을 위한 참된 헌신이 아니다.

 

오늘날, '욕먹으면서도 헌신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데...

 

 

◑욕먹으면서도 헌신한 베드로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베드로는 대단한 용기가 있었다.

선민의식에 젖어있던 당시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정통 유대인은 결코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탁에서 교제하지 않는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행10:28

 

‘너희도 알거니와...’ 라는 말에서 보듯이

이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유대종교의 관습은,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 세상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배타적이었다.

 

▲유대지도자들이 빌라도 총독관저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

이런 유대종교의 독선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성경이 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허가를 얻으려고

빌라도 총독의 관저(브라이도리온)에 찾아갔을 때,

어느 누구 한 명도,

그 관저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관저 바깥에서만 소리치며 서성거렸다.

 

빌라도가 팔레스틴의 최고 권력자 로마 총독이라 할지라도,

유대인이 이방인이 사는 집(총독관저)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더럽힘을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고 유대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자기를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18:28

 

이런 유대종교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빌라도 총독은

자기가 관저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지도자들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요18:29

 

▲욕먹기로 작심한 베드로의 순종

당시 이런 분위기에서,

유대인 교회지도자 수장인 베드로가,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식탁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베드로의 헌신은 <욕 먹기를 작심한 헌신>이었다.

 

이 사건 후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

한바탕 유대인들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비몽사몽간의 환상을 통해, 그에게 분명히 지시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동족 유대인들의 비난의 갈래 길에서

베드로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쪽을 택했다.

<욕 먹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욕을 먹었지만 베드로가 옳았다.

행 10장의 고넬료의 집 방문 전도는

이방인 선교의 포문을 열었고,

세월이 지나서 행 15장의 예루살렘 공회는,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가결하게 된다.

 

비록 처음에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비난과 욕먹음을 감수해야 했지만,

베드로의 소신있는 순종은

초대교회史에, 또한 2천년 기독교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것이었다.

 

 

◑욕먹으면서도 헌신하는 소신 있는 지도자가 필요함

 

▲학자가 정치가의 길을 가기가 쉽지 않은 이유

2006년 말 당시 집권 여당은, 당시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열린우리당 대선후보로 영입하려고 여러모로 애써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총장은 가타부타 확언을 하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마침내 2007.05.01. 대통령선거불출마 선언을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모 정치평론가는 오래 전부터,

정운찬 총장이 대선출마에 나서지 않을 것을 예측해 왔었는데,

그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 정치평론가의 판단은 이랬다.

“저는 정운찬 총장이 학자의 명예를 절대로 포기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의 자리는, 학자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정치가는, 서로 이해가 상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집단들 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소위 정치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소외된 계층의 욕을 얻어먹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자리다.

 

그래서 학자로서의 고고한 이미지가

정치가로 나서는 순간 확 달라지는 것이다.

그 불확실하고 욕먹는 ‘정치가의 명예’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학자의 명예’를 선택했다는 것이... 그 정치평론가의 분석이었다.

 

▲그렇다. 소신 있는 지도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장래를 위해 미래를 내다보며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자기 사욕과 눈앞의 이익에 가득 찬 일부 반대자들로부터

언제나 비난과 저항을 감수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 교회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를 책임 진

참된 지도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이런 지도자는, 처음에는 비난과 욕을 먹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그의 소신과 판단이 참되고 옳았음이 반드시 증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지도자가

당장 사람들로부터 욕 듣는 것을 사양하거나 두려워한다면

이런 지도자는 역사에 참된 지도자로 길이 남지 못할 것이다.

 

이런 지도자를 <포퓰리즘(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저열한 자>라고 혹평한다.

 

▲특히 성경과 2천년 기독교 역사에 나오는 대부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들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시대에 살 동안,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고수하고 지키려다가

많은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했던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시대를 살리는 참된 지도자였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서 역사가 증명해 주었고,

수 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까지,

그들 ‘욕먹은 지도자’들은 영원히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오늘날 크리스천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려 할 때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저항과 욕을 듣게 되어 있다.

‘포퓰리즘(대중 인기)’에 절대 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 지도자가 당연히 가게 되는 길을 피하지 마시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19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5:10

 

이 길을 피하면... 참된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이 길을 참고 나가는 것,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욕먹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역사와 공동체를 밝히 비추는 참된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중 인기에 영합해서 포퓰리즘을 따라가면...

현재는 당장 인기 있을지 모르나

‘역사의 죄인’이 반드시 되고 말 것이다. 역사의 죄인!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욕 듣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되십시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동료 정치인들로부터 욕 듣는 것은 물론이요,

국민들로부터 욕 듣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진정한 크리스천 정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때

이 나라의 장래는 진정 새로워질 것이다.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료 공직자들에게도 욕 먹는 것을 두려워 않고,

시민들로부터 욕 듣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크리스천 공직자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것이다.

 

모두가 걱정하는 말 많은 교육계에도

국민들에게 욕 듣는 것을 각오하며

소신있는 교육을 펴 나가는 크리스천 교육자가 있을 때

존경받는 교육 풍토가 이뤄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시는 본을 보여 주셨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도 그런 모범을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욕 듣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성숙한 크리스천 되는 것>이

앞으로 우리 기도 제목이 되어, 그렇게 살게될 때,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무식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이지만

사도 베드로처럼 장차 <시대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줄 믿는다.

<08.08.24. 인터넷설교 녹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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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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