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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길’ 만 꿋꿋이 걸었던 사람들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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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꿋꿋이 걸었던 사람들          행9:1~2

 

 

 

▲제자란 -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

행9:1절은 크리스천들을 ‘주의 제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1

 

2절에서 ‘제자’의 뜻을 설명하는데 -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사울이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행9:2

 

즉, 주의 제자란, 세상의 제자처럼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도'란, ‘길’(道, 호도스)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제자들

 

늘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성공하는 사람들만 메스컴에 집중 소개되어서 그렇지,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제자들이, 오늘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예를 들면, 오늘도 북한에서 성경책을 땅 속 항아리에 숨겨두면서,

자기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잡히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한다.

 

오늘도 중국과 이란 등 세계 각지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

그들은 투옥, 고문, 재산몰수를 당한다. 이런 소식은 거의 매일 접할 수 있다.

다만 우리 눈과 귀가 그것들을 보고 듣기를 외면할 뿐이다.

 

오늘날에도, 크게 보도가 안 되어서 그렇지,

한국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해마다 서너 명은 질병, 강도, 사고로 목숨을 잃으며,

부상당하는 이는 부지기수이다.

 

오늘도 아무 일정한 수입도 없이,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보조로(월 50만 원이하)

무의탁노인, 호스피스, 농어촌 개척교회, 교도소, 청소년선도, 노숙자급식,

문서선교, 찬양선교, 캠퍼스 사역, 야학교사, 장애인사역 등을

묵묵히 자기 사명인줄 알고 감당하는 사역자는,

국내에서만 수만 명에 이를 것이다.(천주교에도 많다) 

 

그 길만 포기하면 되는데...

남들처럼 대충 믿으면서 살면 모든 게 다 평탄한데,

(외국에서) 당국이나, (국내에서) 가족이나 이웃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무식하게 그 길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똑같은 예를 사도행전 9:1~2절에서 찾게 되는데...

 

 

◑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은 초대교회 제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길(제자의 길)을 걷는 대가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유대교인들에게 핍박당하고,

스데반 같은 이는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의 삶의 터전을 버려야 했고,

거기서 2백 키로나 떨어진 다마스쿠스로 피신을 가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사울 같은 극우 유대인들은 원정대를 조직해서

2백 키로나 떨어진 곳으로 그들을 잡으러 갔으므로

다마스쿠스에서조차도 제자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의 크리스천들이 그런 상황에서 ‘예수 믿는 제자로 산다는 것’은

유대교인들에게 ‘자기들의 생명을 내어 맡기는 것’과 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생명의 위협적 상황 속에서도

당시의 ‘제자’들은, 신앙을 지키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혹독한 박해를 당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변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처한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지극히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 그 길을 버리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그들을 구태여 이리저리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유랑할 필요도 없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 가슴 졸이며 살 필요도 없었다.

그 뻔한 해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들은, 율법에 의한 인간의 선행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통해서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됨을 확신했다.

 

이처럼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 과정에 있어서 겪어야 할 고난과 박해와 죽음위협에도 아랑곳없이

그 길을 굳게 고수할 수 있었다.

 

그 확신이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부터 말미암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곧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확신했다.

부활을 목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생명의 길임을 믿었다.

 

그 길만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갈 수 있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버리지 않은 바울

 

▲처음에는 ‘필경 사망의 길’을 걷다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소지한 사울은

머나먼 다마스쿠스까지, 제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보무도 당당하게 나아갔다.

 

그것은 사울에게는, 자기 신념의 길, 자기 의지의 길, 자기 정의의 길이요,

유대교 내에서 자기 출세가 보장된 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사망의 길이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14:12

 

 

▲오늘까지 2천년간 쓰임 받는 사도 바울 - 그의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길을 발견했다.

그 후로 그는 일평생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걸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바울이 된 그는 이렇게 증거 한다.

그리스도의 길이(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그는, 자기가 믿었던 대로, 그가 걷고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전1:18) 영원한 ‘사도’로 세움 받았고,

그가 전한 모든 말과 그가 쓴 글은, 영원한 성경말씀이 되었다.

 

만약 그가 계속해서 자기 길을 걸었다면, 2천년 전에,

그가 유대교 내에서 출세하고, 한 때 화려하게 살았을 런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2천년 전에 이미,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란 영원한 이름은, 다른 이에게 그 촛대가 옮겨졌을 것이다.

 

그는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고수했기에

자기 삶에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 안에서 세상과 영생을 둘 다 얻었던 것이다.

 

잊지 마시라!

세상은,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비로소 얻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생전에, 세상을 얻으려다가

세상과 함께 자기 생명까지, 둘 다 모두 잃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위대한 승리자였다.

그는 세상을 떠난 뒤에,

세상과 영원한 생명을 둘 다 함께 얻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사도바울을,

세상을 살리기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악가 오현명 선생님은 한평생 고집스럽게 ‘성악가의 길’만 가신다.

사람이 유명해지다보면,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라는 데도 많고,

이 자리, 저 자리 탐을 내서, 제 발로 찾아 갈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길로 한눈팔지 않으시고,

오직 일평생 고집스럽게, 겸손하고 진실하게, '성악가의 길' 한 길만 택하셨다.

그래서 여든이 넘으시기까지, 조금도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빼어난 기량으로 관객을 압도하신다.     

 

 

 

2007 년에 83세이신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형편이 닿으면

교회의 초청을 받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다고 한다.

 

 

 

만약 선생님이 성악가의 길을 걷는 동안,

한 눈을 파셨거나 외도를 하셨다면(정권 등 다른 세상 영광을 쫓아갔다면)

오늘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 구상 선생님은 2004년에 85세로 소천 하셨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하얀 수염'이다.

그가 수염을 기르게 된 계기는, 1979년 등장한 신군부가,

시인 구상 선생님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려고 회유했다.

 

 

 

거절하자, 신군부는 회유를 넘어 협박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하와이로 떠나시면서 그 때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의 수염은 '나는 현실 정치와 거리가 먼 노인이므로, 내게 관심을 갖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렇게 선생님은 일평생 고집스럽게 '시인의 길'만 가셨다.

그 결과, 85세가 되도록, 그분은 계속 '시인의 길'을 걸으시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하는,

수정같이 맑은 신앙시를 쓰실 수 있었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일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로 사는 길을 변절하지 않으셨다.

그는 지금, 한국 최고의 의료인으로서 대대로 존경을 받고 있고,

수많은 의학도들에게, '한국의 슈바이처'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바울처럼,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kjyoun24/60040943119

 

 

(이런 위대한 분이, '교회 성장 및 성공신화'에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늘날 교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참된 기독교인의 표상임에도 말이다. 편집자)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

오늘날 '현세적이고 찰나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유행 때문에

의사도, 의술을 버리고 큰 병원의 병원장이 되려는 성공을 추구하며

학자도, 학문을 버리고 큰 학교의 경영자가 되려고 하고,

과학자도, 연구를 버린다. 크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고... (꼭 그런 것은 아님)

 

 

 

신앙인도, 성공을 추구하다가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대신에 성공만 보인다.

예배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찾지 아니하고,

대신에 '성공신화'를 찾아 기웃거린다. 

 

 

 

 

▲마치는 말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던 가룟 유다는,

결국 그 길을 버리고 자기의 길을 가고 말았다.

그것은 당장은 은 30냥을 얻는 형통한 길처럼 보였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이었다.                                                                                      잠14:12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고 교인을 색출하려고 다마스쿠스 원정에 나서는 등

자기의 길, 사망의 길을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발견한 이후, 초지일관 그 길을 변절 없이 걸었다.

 

 

그 길은 자기에게 조롱과, 비판과, 모함과, 박해와 죽음의 길이었지만,

필경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생명과 진리의 길이다.

세상의 예술가, 의료인들도 함부로 자기 길을 변절하지 않건만,

그의 제자들이, (특별한 위에서 부르심이 있는 경우는 제외하고),

자기 야망과 성공 신화에 이끌려,

혹은 핍박과 어려움에 시달려,

그 길을 포기하거나 변절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대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예수그리스도의 길이 맞다면,

사도바울과 같이,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외롭고 어려운 길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인정받고 성공하는,

무엇보다도 -영원히 후회없는- 보람 가득한 삶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그 길을 걸으시라!

결코 어리석게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라!     <07.09.02.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2746573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박지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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