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받은 사명을 위하여(행 20:17-24) / 이종윤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8.

받은 사명을 위하여

사도행전 20:17-24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하나님이 이 시대, 이 장소에 나를 있게 하신 이유는 나에게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Ⅰ. 모든 피조물은 사명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들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 시부터 각각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아담의 사명(창 1 : 28)은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데 있었습니다. 969살까지 산 무드셀라는 이름에 사명이 담겨 있는 사람으로서 죽다라는 뜻의 무드와 보낸다라는 뜻의 셀라가 합쳐져 ‘그가 죽을 때 올 것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온다는 것은 바로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즉, 무드셀라는 홍수 심판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969세를 살게 한 의미이며 그가 죽을 때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노아 홍수시 비둘기와 까마귀 역시 사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사명자 역할을 한 것은 비둘기입니다. 까마귀는 날려보냈을 때 돌아오지 않은 반면 비둘기는 노아에게 땅이 마르고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가져 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사명을 갖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Ⅱ. 기도의 파숫군 삼으려고 우리를 부르셨다.

 

잠언 4장 23절에는 모든 지킬 것 중에 네 마음을 더욱 지키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사탄에게 넘어가면 그 마음은 깨지고 결국 모든 것이 깨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며 과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바로 기도의 파숫군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파수를 하되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닌 각자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파숫군이 됨으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키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파수는 밤낮으로 쉼 없이 해야 합니다. 낮은 낮이기 때문에 방심하기 쉽고, 밤은 밤이라서 태만하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먼 곳보다 자기 집 앞부터 파수를 해야 합니다. 자기 집 앞 더러운 것은 보지 못하고 남의 집 앞 더러운 것만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두 방관자가 아닌 기도의 파숫군이 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Ⅲ. 전도의 사도적 사명 완수케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다.

 

로마서 15 : 16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바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즉 전도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0 : 24에서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사명임을 바울이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바울의 전도자로서의 생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열어놓고 산 바울, 두 번째로 바쳐놓고 산 바울, 세 번째로 가책 없이 산 바울. 그는 이 세가지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하나님 앞에 바친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사명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내가 살고 죽고, 일하고, 먹고, 공부하고, 쉬는 것도 이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는 기도의 파숫군입니다. 마음, 물질, 생명, 명예를 지키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전도의 사도적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자로 살면 욕심에서 자유를 얻고 복음 증거에 충성을 다하여 바쳐놓고 살게 되며 가책 없이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받은 사명을 위해 기도의 파숫군, 전도의 사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