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인자하심을 감사하라 (시136:1-12)
새문안교회 감사주일 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전체가 26절로 이루어진 시편 136편에서는 매 절마다 예외없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후렴이 반복됩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시편 136편은 이스라엘 회중이 예배드릴 때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시편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습니다. 매 절의 앞부분은 제사장이나 예배의 독창자나 아니면 찬양대가 불렀을 것이고, 매 절의 뒷부분인 후렴은 전체 회중이 화답하며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이 특별히 어떤 예배 때에 사용되던 것인지에 관해서는 두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시편이 유월절 때에 사용되던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10절부터 여러 절에 걸쳐 출애굽사건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시편이 한 해의 소출에 대해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에 쓰여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히 25절을 그 근거로 듭니다. 25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나 이 시편 136편이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또 사용되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건 그들의 삶의 근거와 그들의 행복의 근거와 그들 나라의 존재근거를 확인할 때마다 그들의 생각을 늘 창조주 하나님과 출애굽의 하나님에게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이 그 좋은 예입니다.
1절부터 3절까지의 첫 세 절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도입부이고 마지막 절인 26절은 그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25절은 이스라엘이 감사해야 할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4절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여기서 "홀로"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과, 그 하나님과 같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그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는 말에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크고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고 우리 인간의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며 언제나 선한 일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깊은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습니다.
5-9절에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10-15절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16-22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후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23절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그 나라로 붙잡혀 가서 살아야 했던 포로시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으로 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2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조국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25절은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온 세상의 삶을 가능케 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시고 모든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포괄적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시편 136편의 매 절마다 예외없이 반복되는 후렴에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한 것입니다. 이 시편은 회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찬양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회상하며, 그 기업의 땅으로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되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돌이켜보고,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먹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곰곰히 생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린 결론이 다름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못난 이스라엘 백성들, 그 못되고 목이 곧은 백성들, 하나님의 그 크고 특별한 은혜를 받고도 그토록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로 돌아서곤 하는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확고부동하게 인자하신 하나님이라는 감격과 감사의 찬양이 이 시편 136편인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옮겨놓았지만 히브리 원어 "헤세드"는 단순히 "인자하심"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 매우 포괄적이고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과 맺으신 관계를 유지하시는 방법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헤세드"는 확고부동하고 한결같은 사랑, 택하신 백성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데 있어서의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뜻하는 "미쁘심",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심 등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이 "헤세드"의 의미에 가장 많이 접근한 우리말의 단어를 꼭 하나만 들라면 아마도 "은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헤세드"의 최고의 표현과 실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러한 "헤세드"를 베푸시는 데에는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사49:6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따라서 하나님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반복해서 찬양하는 백성이라면 마땅히 그에게 주어진 이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할 책임을 함께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가 다 농사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민들의 수고 위에 해와 비를 내려주시고 땅을 지켜주셔서 금년에도 넉넉한 수확을 거두게 하시고 우리로 그 수확으로 말미암아 양식을 삼을 수 있게 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쌀과 각종 농산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각자의 직업을 통해 금년에도 양식을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농약과 온갖 공해에 의한 오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동차매연으로 찌든 공기 속에 싸여 지내는 우리 교회이지만 금년에도 우리 교우들 그 매연 때문에 돌아가신 분 없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정말 짜증나게 하는 정치인들로 가득찬 국회가 우리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홧병으로 돌아가신 분 없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영해가 침범 당해도 군인들이 총을 안 쏘고, 이리저리 눈치보느라 국방백서도 내지 못하며, 검찰은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고, 대통령의 아들들은 엄청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등 무능하고 썩어빠졌고 불의하고 파렴치한 정권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며 곧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바꿀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도 월드컵 축구대회를 유치하게 해주시고 4강에까지 오르는 국민적 감격과 희열을 맛보게 해주시며 세계 속에서 어깨를 들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주시고 잃어버렸던 국권을 되찾게 하시며, 북한 공산군의 침공으로 야기된 전쟁과 공산화의 위기로부터 구해주시고 잿더미 속에서도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과 희망을 다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 이상으로 징그럽고 지겨운 국민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교회가 부흥하는 나라로 만들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믿음이 바르고 순수하지 못하며 기복주의에 빠져있고 미신적이며 무속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해도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며 안팎으로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선교역사가 120년도 안 되는 우리나라이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 많이 하는 한국교회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자신은 비록 오래되고 비좁고 불편한 교회건물과 공간에서 지내면서도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계속 확장하며 사회봉사도 확대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넉넉하지 못한 교회재정에도 불구하고 굵직굵직한 새 사업들을 펼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확고부동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드리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에 성실하지 못했으며, 이유와 조건 따지기를 잘 하고 꼭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고부동하고 한결같으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미쁘심을 베푸셨습니다. 이렇게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 영원히 인자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한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푸시는 데에는 그들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고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쓰임 받기를 다짐하는 이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그러한 다짐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기뻐 외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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