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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4 너희가 하나님을 믿느냐? /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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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하나님을 믿느냐?

마태복음 6:1-4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저는 지금 막 중간 지점을 통과한 선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평가는 아직 내릴 수 없지만 매우 중요한 인생의 중간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중간 평가를 만일 저보고 스스롤 내려보라고 한다면 저는 제 인생을 매우 건방지지만, 그리고 남들이 비웃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스스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그것도 그만하면 성공했다가 아니라 나로서는 대성공이다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목회와 가정 그리고 자녀 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삶의 전반에 걸쳐서 저는 성공했습니다. 이 페이스대로만 나간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도 물론 많이 있지만, 그래서 늘 조심하고 자만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야 하지만) 저는 인생의 마지막 평가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삶의 성공에 대한 근거를 나름대로 댈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삶에 대한 후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20대나 30대 혹은 4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 꿈은 60대에 있습니다. 저는 제 60대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60대가 되면 또 70대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을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청년의 때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때 인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그만큼 제 삶에 만족합니다. 저는 참으로 건방진 이야기이지만 청년들이 저를 부러워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그런 삶을 살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성공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별로 저들에 대한 시기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정말 저들의 성공을 축하하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성공과 축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의 성공이 나에게 주는 만족이 크기 때문에 부러워는 하지만 시기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것도 제가 성공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왜 성공했는지 그 이유를 압니다. 저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고 싶습니다. 간증하고 싶습니다. 제 성공의 이유는 실력에 있지 않습니다. 실력에 관한 한 저는 아직도 컴플랙스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실력에 비해 성공이 크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의 성공을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운은 없습니다. 실력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이 좋아서 성공을 한 것은 아닙니다. 실력이 아닌, 실력보다 더 중요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공한 까닭은 허물과 흠이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허물과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물론 허물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을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저는 제 경험을 통하여 허물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이 꼭 성공의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자기 의를 자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모든 성공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입니다. 제 믿음은 다른 성공한 사람의 믿음에 비해 지극히 작은 것이어서 오히려 자랑이 되지 않고 부끄러움이 될만한 크기의 것이었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도 성공을 했으니 믿음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저는 오히려 큰 믿음의 소유자보다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예수님이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바다에 빠지라 하여도 그렇게 될 것이라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제가 바로 그 말씀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축복이 많이 있지만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축복의 스승 중 한 분이 제가 늘 말씀을 드려서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임택진 목사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목사님을 제 삶과 목회의 끈과 빽 그리고 울타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때 그렇게 생각하고 의지하던 때가 있었지만 어느 한 때 그것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정확히 84년 6월이었습니다.

 

84년 6월 목사님께서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하시다가 혈압이 좀 높아지셔서 강대에서 쓰러지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즉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목사님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거기 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기도가 문제였습니다. '저 앞으로 십 년은 더 봐 주셔야 되는데요'....

 

저는 순간 제가 하나님보다 목사님을 더 의지하고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즉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하나님보다 목사님을 더 의지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줄을 끊겠습니다. 앞으로는 목사님을 제 목회와 삶의 끈으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만 끈으로 붙잡겠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목회 하겠습니다' 그것이 84년 6월 달 제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습니다. 나름대로 그 기도를 지키느라고 애썼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시고 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힘있고 능력 있는 교인들과 함께 일 하려고는 하였지만 저들을 믿고 의지하여 따라다니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들을 제 목회의 끈과 튼튼한 울타리로 생각하거나 이용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무조건 죄악시하여 피하지는 않았지만 저들을 인간적으로 의지하거나 이용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도 마음속에 그와 같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주문처럼 '하나님만이 나의 끈이십니다' '나는 하나님만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과 기도를 믿음으로 보시고 정말 저의 끊어지지 않는 끈이 되어 주셨고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여러 해 전에 어머니가 방광 수술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영동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수술하기 전 날 사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 방광 수술 안 받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였습니다. 자기 장모가 그와 같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많이 고생을 하신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늘어진 방광을 올려붙이는 수술인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정확한 위치에서 일미리가 올라가도 문제가 생기고 일미리가 내려가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광을 그렇게 정확하게 붙이는 수술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수술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사촌 동생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병에 대해서는 의사와 약사가 하는 말을 신뢰하고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의사와 약사가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결정과 판단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 말대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는바와 같이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접과 진료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혹 사실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때 저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병원의 원장이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분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원장님에게 찾아가 어머니의 입원과 수술을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원장실을 찾아 올라가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수술을 원장에게 부탁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탁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방광 수술 완벽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수술하는 의사의 손을 잡아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술은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저의 작은 마음을 믿음으로 보시고 그 겨자씨 만한 믿음에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실력과 능력 그리고 사람됨에 비해 감당할 수 없는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인들 중에 제 사무실에 들어와 보지 못하신 분들이 아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혹 들어와 보신 분은 이제 제가 말을 하면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제 방에는 거의 상패나 기념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별로 받은 적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척 노력하고 기도해서 드디어 그런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한 까닭은 그런 것들을 좋아하면 결국 믿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상 받는 것을 좋아하고 패 받는 것을 좋아하면 믿음 없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에게 상 받기를 좋아하고 영광 받기를 좋아하게 되면 외식하는 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을 중심을 보시는데 외모로 사람을 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상 받는 것을 좋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속보다 겉을 더 신경 쓰는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상을 좋아 하다보면 훗날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이룬 것 중에 하나는 자리에 대한 욕심을 어느 정도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인정해 주실는지 잘 모르겠으나 저는 자리에 대한 욕심 별로 없습니다.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그것을 위하여 계획하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노회장과 총회장이 되는 것은 다 쓸데없는 일이고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하는 것이라고 매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그것을 욕심내어 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여 그와 같은 욕심을 버리려고 하는 이유는 그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의 자리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과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상좌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좌를 좋아하면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얼마 전 지방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었습니다. 당회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회실을 얼마나 어마 어마하게 해 놓았는지 모릅니다. 좋은 책상에 아주 좋은 회전 의자를 놓고 책상마다 당회원의 명패를 놓았습니다. 마치 국회 의사당에 들어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패는 서열대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도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저희 당회실에는 명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꼭 자기 자리라고 할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저희 교회 당회실에는 회의실이라는 명패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당회를 하지 않을 때는 어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일부러 붙여 놓은 것입니다.

 

당회의 권위는 당회에 있는 것이지 당회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회의 권위를 자꾸 당회실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 당회는 오히려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쓸데없이 교회에 특별한 자리와 방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리와 방이 많을수록

 

교회와 교인들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당회원은 당회의 일을 할 때만 당회원입니다. 보통 때와 특별히 예배 할 때는 당회원이 아니라 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 할 때에도 자신이 당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하여 다른 교인들과 특별한 자리에서 구별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 없는 소치입니다.

 

그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아주 용감하게 이 교회가 정말 부흥하고 발전하기를 원하신다면 당회실을 바꾸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시험에 들지 않고 장로님들이 그 말씀을 잘 받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끈을 붙잡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끈이 끊어집니다. 사람의 상을 바라고 그 상을 위하여 살면 결국 하나님의 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의 자리에 연연하여 욕심내어 살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끈과 상 그리고 자리에 연연하여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믿고 사는 것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산다면 사람의 끈과 상 그리고 자리를 초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끈과 상 그리고 자리를 욕심내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과 세상을 믿고 사는 사람을 절대로 자신의 삶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물론이고 땅에서도 결국은 승리하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고 하나님의 상과 자리만을 욕심내며 세상을 역행하며 사는 삶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하나님을 믿고 사십니까? 사람을 믿고 사십니까? 세상을 바라고 사십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사십니까? 여러분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세상 바라고 살면 실패합니다. 망합니다. 하나님의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하늘을 바라고 살아야 하늘에서도 살고 땅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결국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 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 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4-15)

 

 

 

저는 목사이기 전에 여러분들과 똑같은 신앙인으로서 하늘과 땅의 구원은 오직 믿음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저도 여호수아와 같이 저와 저의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겠습니다. 하나님의 상과 하늘 나라의 자리만을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성공과 승리 그리고 구원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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