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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네 생명을 보존하라 /창세기 19:12-22

by 【고동엽】 2021. 12. 24.

네 생명을 보존하라
창세기 19:12-22



한국 교회의 선교를 논의하기 위 한 지도자들의 선교 포럼이 모인 때 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가 를 토론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해 서 여러분들이 한국 교회가 극복해 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 것 중의 하나가 교회 안에 너무나 명목상의 교인들이 많다, 이름 뿐인 교인들, 진짜 순수한 그리스도 인들 이 아닌 명목상의 교인들, 소위 nominal Christian들이 지나치게 많 다, 교회는 나오지만 구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확신이 없는 교인들 이 소위 너무 많다는 점이 지적되었 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진정한 생명 성, 건강성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교 회 생활의 연륜도 많이 비껴갔고 따 라서 교회의 분위기도 익숙합니다. 예배 의식에도 잘 참여할 줄을 압니 다. 하지만 주일이면 이런 사람들은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 여하고 하지만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신앙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의 자리 로 돌아가서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지극히 세속적인 교인들의 모습. 저 는 오늘 그런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 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가 바로 롯 이라는 사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아브라함을 따라 다녔고 제단도 쌓고 여호와의 이름도 불렀지만 아주 세속적인 사 람이었습니다. 이해 관계를 따질 때 는 전혀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자기 에게 은혜를 베푼 아브라함도 몰라 라 하고 이해를 챙겼던 사람이 바로 롯이 아니었습니까? 오늘 본문이 포 함되어 있는 창세기19장의 전반부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 묘 사되고 있습니다. 이 롯의 집에 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가 이제 롯의 집을 방문하죠.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사람들 을 우리에게 좀 내어놓으라고 우리 가 성적 관계를 맺겠다 소위 동성연 애의 죄악이 벌써 소돔, 고모라 성 에 팽배하고 있었던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19장5절에 보시면 롯 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 그 런데 롯의 반응이 아주 재미있습니 다. 롯이 동네 사람들 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상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8절에 보시면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 고 이 손님들은 그대로 놔 두어라. 손님을 위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 딸 들을 부도덕의 현장으로 내어놓을 수 있었던 사람 롯. 지극히 세속적 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런 사 람이에요. 하나님은 더 이상 소돔, 고모라의 죄악의 수준이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 드디어 이 도시에 대한 심판 을 작정하셨습니다. 심판을 작정하 시고 나서 하나님은 롯에게 기회를 주시고 싶어 했어요. 롯에게만은 기 회를 주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롯아 네 가족 데리고 빨리 좀 도망가라고. 네 생 명을 보존하라. 여기서 네 생명을 보존하라는 말이 육체적으로 생명을 보존하라는 그런 의미가 물론 중요 한 의미죠. 그러나 우리가 문맥을 쭉 읽어보시면 단순한 육체적 생명 의 보존 뿐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서 네가 좀 변해라, 바꾸어져라, 새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라. 이런 하나님 의 기대가 하나님의 명령이 이 롯 이라는 사람에게 떨어지고 있는 장 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교회를 메우고 있는 수많 은 롯의 후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 다. 어쩌면 그 롯의 후예들 속에 여 러분의 얼굴이 끼어있을 지도 몰라 요.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롯들 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 하겠느냐? 소위 명목상의 교인들, 이름 뿐인 교인들, 지극히 세속화 된 교인들, 이해 관계에 따라서 이 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는 지극히 편리주의적인 실용주의 마인드를 벗 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땅의 교인들 이 한 번 변화되어 정말 확신과 감 격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하나님 의 사람들이 되려면 무얼 해야 되겠 습니까? 변화되려면 뭐가 필요하겠 어요? 오늘 그런 대답을 우리가 같 이 본문 속에서 찾고 싶은 것입니 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을 좀 진지하게 반응해야 하겠다, 주의 말씀에 대해 서 진지하게 반응해야 되겠다, 이것 을 첫 번째로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분, 사람이 어느 때 가장 진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이 가장 진지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 까요? 죽음 앞에서가 아니겠어요? 죽음 앞에서. 우리 기독교 신앙을 가리켜서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 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종말 론적 신앙 그러면 말세 노이로제에 걸려서 가정 팽개치고 산에 가서 주 여 하고 소리 지르는 그런 비극적인 이미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 런데 기독교 신앙이 종말론적 신앙 이란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날마다 매 순간 순간을 종말을 맞이하는 엄 숙한 심정으로 주 앞에 반응하며 살 아가는 사람들의 믿음, 이게 바로 종말론적 믿음이에요. 제가 가까이 지내는 여류 문학가 한 분이 있는데 집사님이십니다. 그 분 에게 아주 감동적인 간증을 들은 적 이 있습니다. 벌써 여러 해가 되었 습니다 만은 이 분이 건강이 안 좋 아서 병원에 가서 check up을 하는 데 다시 재검진을 받으라고 그러고 입원하라고 그래서 입원해서 검사를 받는 도중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 하고 있는데 식구들이 병원 바깥에 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자기 의 병세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암이라는 것이에요. 위암. 6개월 밖 에 안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 음에는 당황했지만 언젠가 와야 할 것이 온 모양이다. 이 분이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아주 냉철하게 마음을 먹고 자기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 습니다. 죽을 것을 생각하니까 꾼 돈도 생각나서 빚도 갚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생각나서 친척도 만나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오해된 관계에 있었던 그 사람을 만나서 오해도 풀 고 인간 관계도 바로잡고 나름대로 재산도 정리하고 그러면서 통원 치 료를 받는데 6개월이 지나가는데 별 로 더 나빠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데 누가, 주변 사람들이 그러지 말 고 다른 병원에 가서도 진단 받아보 라고. 다른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 아 봤더니 암이 아니고 오진이었대 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집 사님 돈도 많이 쓰고 그랬는데 후회 가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이 분이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얘기인데 아주 감동적이었어 요. 목사님 제가 돌이켜보면 지나간 6개월처럼 진지하게 내 인생을 살아 간 때가 없었습니다. 이 마음가짐으 로 그대로 나머지 제 인생도 살았으 면 좋겠어요. 죽음 앞에서 인간이 진지해져요. 자, 본문에 나타난 롯이 그 도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들었 습니다. 롯은 믿었습니다. 그 심판을 믿었어요. 어느 정도 이 사람의 밑 바탕에 신앙적인 의식이 깔려있는 사람이니까 롯은 믿고 자기 가족들 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셨다고 그 메시지를 전달을 합니다. 우리가 본문이 시작되는 그 12절부터 보시 면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하나 님이 보낸 천사들입니다. 이 외에 네가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 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끌어 내라. 그 다음에 13절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 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 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 가 멸하리라 하나님이 이 도성을 멸 망시키겠다. 그 심판의 메시지를 받 았습니다. 자, 어떤 반응을 보여요? 14절에 보시면 롯이 나가서 그 딸들 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 되 롯은 믿고 심판의 메시지를 자기 가족들에게 특별히 사위들에게 전달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위의 반응이 참 재미있습니다. 14절 다같이 읽겠 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 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 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 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하 나님의 말씀을 농담 정도로 여겼습 니다. 우리는 심판, 구원, 십자가, 재림 이 것을 신화적인 메시지로, 그냥 한 번 그런 교훈이겠지, 거의 농담 수 준에서 알아듣는 교인들이 참 많습 니다. 말씀드릴까요? 그것이 여러분 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예요. 말씀에 대한 진지한 반응이 없다 말 이죠. 물론 저는 혹시 롯에게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사위들에게 전달하 는 과정에 있어서도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혹은 장인이 좀 권위가 없 어서 그런지 사위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 탓도 있을 수가 있겠죠.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설교하는데 교인들이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 같 으니까 이게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 했어요.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 친구 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코메디언인 데 자기 친구가 테레비에 나올 때 보면 늘 형편없는 허튼 소리 하면서 그거 가지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 고 울리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감동 을 준다 말이죠. 자기는 진리를 밤 낮 얘기하는데도 이게 도대체 반응 이 없어요. 그래서 어느 날 자기 친 구 코메디언을 만났을 때 야 너는 밤낮 가짜 소리만 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감 동을 받는데 나는 진리만 얘기하는 데 사람들이 어떻게 감동을 안 받 냐? 코메디언 친구가 이렇게 대답하 더래요. 그 대답은 간단하다. 너는 말이야 진짜를 꼭 가짜처럼 얘기하 더라.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얘기하 는데. 케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지성 입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한 반응. 제가 목회하면서 보면 하나님의 말 씀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말씀 공부 하는 사람은 다 변해요. 그런데 이 말씀을 농담 정도로 신화 정도로 우 화 정도로 단순한 하나의 레슨 정도 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한 오 백 년 나가도 골백 년 나가도 마찬 가지예요. 안 변해요. 한 번은 유명한 빌리 그레함 목사님 이 하나님의 심판, 다가오는 하나님 의 심판에 대한 책을 쓰시려고 원고 를 끝냈습니다. 원고 작성이 끝나고 나서 자기 부인 루스 그레함 여사에 게 원고를 먼저 읽히게 했다고 합니 다. 그래서 당신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당신도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느 냐? 부인 루스 여사가 코멘트를 하 고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을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평생을 잊어버리지 못한다고 대답을 하셨어요. 부인이 이런 말을 하셨대요. 뭐냐 하면 만 약 하나님이 이 시대의 사람들의 죄 악상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시대의 사람 들에게 사과를 하셔야 할 거라고. 우리 시대의 죄악상은 얼마나 깊고 도 얼마나 그것은 어두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만약 이런 우리들의 죄악 과 그리고 역사의 죄악, 인류의 죄 악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 는다면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를 심 판하신 것을 사과하셔야 할 거라고. 여러분, 심판을 믿으십니까? 역사의 심판을 믿으십니까? 인류 역사의 심 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한 세 상을 살고 일평생을 살고 창조주 하 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산하 는 날은 반드시 온다. 내가 행한 모 든 행동들, 나의 모든 일들에 관해 서, 나의 모든 사고에 대해서, 내 모 든 토해낸 언어에 대해서 낱낱이 주 앞에 이것이 결산되고 심판된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가 참으로 믿 는다면 좀 달라지지 않겠어요, 여러 분?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반응을 통 해서 가능합니다. 이 말씀 속에 특 별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보세요. 변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인생이 정말 변하려면 주님의 강권하심이 은혜인 줄을 알 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촉구하십니다. 구원 받으라고, 회개 하라고 촉구하십니 다. 변화 받으라고 촉구하십니다. 그 런데 거의 그것을 호소하는 하나님 의 방식이 아주 강권적이에요. 누가 복음14장에도 보시면 하나님 나라에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이 각각 핑계와 구실을 들어 서 초청에 응하지 않잖아요. 마지막 에 주인의 모습으로 비유된 하나님 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길 로, 산을, 골목, 거리 나가서 아무나 좋다, 병든 사람도 좋다, 가난한 사 람도 좋다, 누구든 좋다,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거기 강권이란 단어가 나타납니다. 오늘처럼 개인의 자유 의사가 존중 되는 시민사회 속에서 강권이란 말 이 주는 이미지는 어쩐지 부담스러 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하 나님이 강권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강권하십니 다. 15절에 보세요. 동틀 때에 천사 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동틀 때에 재촉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강권 한 것입니다. 저녁에 와서 밤새도록 집을 떠나지 않고 심판이 온다고 떠 나라고 이 도성을 떠나라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라고 밤새도록 강권을 한 것입니다.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 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절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 가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 의 손을 잡아 뭐라고 그랬어요? 인 도하여 성밖에 두니 그랬어요. 17절 에는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 끌어 낸 후 강권해서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끌어내면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단어 하나가 있 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16절의 마지막 부분의 단어인데 두 딸의 손 을 잡아 성밖에 두니 그 다음에 강 권의 사건을 가리켜서 성경의 기자 는 이렇게 코멘트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것은 무엇을 더한 사건이라구요? 인자를 더하셨 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이 말입니다. 강권이 사랑이었다 말입니다. 강제 한 것이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저는 제가 가진 약점이 참 많죠. 저 도 열등감이 많아요. 모르셔서 그렇 지 제가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제가 열등감 중의 하나가 음 악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소문난 음치잖아요. 제 설교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에게 종종 편 지를 받는데 목사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설 교 끝나고 제발 찬송을 부르지 말든 가 녹음을 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은혜를 다 까먹습니다. 이런 코멘트 를 제가 많이 받아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실제로 음악(音樂)은 음악(音惡)이라고 생각하고 자라났 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다가 어떤 목 사님은 찬양도 하고 그러는데 제가 하면 시험 받으니까 찬양도 못하고. 제가 제 아이들을 기르면서 제 집사 람과 의논해서 우리 아이들은 좀 음 치만은 면하게 해주자. 그래서 어렸 을 때부터 아이들은 피아노 레슨을 강제했습니다. 그러니까 얘들이 그 것을 기쁨으로 가서 배우겠어요? 또 부전자전일 텐데. 뻔 하잫아요. 그래 도 강제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켰습니다. 한 번은 저희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때였는데 막 항의를 하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도 안 됐어요. 가라고 하니까 할 수 없 이 가는데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도 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억지로 가 기 싫은 것 억지로 가는 거예요. 그 래서 제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무슨 음악가가 되 게하는 기대는 절대 없다. 아빠의 기대는 단순하다. 너희가 음치만 면 하고 악보 좀 볼 줄 알고 아빠가 인 생을 살다 보니까 노래도 부르고 나 중에 기타도 치고 코드도 하고 어느 정도 음악을 알면 인생이 훨씬 더 활발하고 풍성할 수가 있는데 그 정 도 하기 위해서 네가 기초적인 피아 노 레슨 받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드 냐. 좀 해라. 그런데 영 안 해요. 억 지로 해요. 그 시간을 때우고 왔어 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보니까 저희 큰 아이가 기타 치면서 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곧잘 부르는 것 같 더라구요. 자기도 기쁘게 불러요. 그 래서 야 너 지금도 아빠가 너 피아 노 레슨 강제했다고 지금도 너 화나 있니? 씨익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 더라구요. 그때는 그게 아빠의 사랑 인 줄 몰랐죠. 그때는 그것이 아빠 의 사랑인 줄을 몰랐죠. 가끔 우리가 예수 좀 제대로 믿자고 주변 사람에게 전도하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에 좀 끌고 오고 그러 면 왜 이렇게 강제하나 자기 혼자 믿지. 그러니 이 분들이 나중에 하 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아 마 제 아들처럼 말할 거예요. 그때 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죠.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죠. 사랑하기 때문에 강제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바뀌 어 져라고,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 다고,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고. 사랑 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강권의 밑바탕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 람들이 변화될 수가 있어요. 아! 사 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해서 우리 보고 그렇게 회개하고 믿으라 고, 제대로 믿으라고 하나님이 나에 게 강권하시는구나. 이 강권이 사랑 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 들에게 변화의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우리가 정말 변화되려면 주님의 은혜에 지 체없이 응답해야 합니다. 자, 15절에 보시면 동틀 때에 천사 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그러니까 밤새도록 재촉하는 것입니다. 저녁 에 갑자기 어떤 이상한 손님들이 찾 아와서 심판이 온다고. 그 메시지 전한 것 자체가 불쾌했을 것입니다. 저녁에 자려고 그러는데 문을 두들 기고 들어와서 잠깐 실례합시다. 중 요한 메시지 전하러 왔습니다. 이 도시가 멸망할 것입니다. 떠나십시 오. 얼마나 기분 나빴겠습니까? 그 런데 밤새도록 졸라대는 거예요. 밤 새도록 졸라댔어요. 그러나 그 이튿 날 불비가 내리는 그 도시의 광경을 보았을 때 그들은 이 무례한 천사들 의 방문, 이 낯선 손님들의 무례한 강권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했을까 요! 여러분 중에 억지로 지금 끌려 다니시는 분 있다면 교회에,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믿게 되었다면 나 중에 천당에 가서 아마 그럴 거예 요. 감사하다고, 너무 너무 고맙다 고. 그리고 만약 그 강권이 stop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면 지옥의 영원한 불꽃 가운 데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친구들 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때 왜 좀 더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심판이 있다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인생을 count 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다고 왜 그때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김 집사 님, 정 권사님, 왜 나를 강권하지 않 았나요? 여보 왜 나를 좀 더 강권하 지 않았소? 강권이 필요해요. 그런데 사실 롯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응답했어요? 16절 에 보시면 16절이 어떤 말로 시작합 니까?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바로 응답을 못하고 지체했습니다. 여러 분, 인생에 있어서 인생을 살아가면 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서두를 필 요는 없습니다. 심사숙고가 필요합 니다. 깊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성 적인 결정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 다. 그러나 여러분이 절대로 결정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결정이 꼭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결정입니 다. 회개하는 결정, 회개할까 말까. 구원의 결정, 내가 구원 받기 위해 서 예수 믿을까 말까. 이런 영적인 결단에 관해서는 늦추어서는 안 됩 니다.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서두를수록 좋은 결단입니 다. 왜냐하면 사람이 내일 일을 모 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희는 내 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사람이 하 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 유는 이것은 성경도 그렇게 가르치 고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경험 적으로도 사실이에요. 이 회개라는 것도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 구요. 회개도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언제 회개할 수 있느 냐? 성령이 역사할 때. 믿습니까, 여 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감동할 때, 성령이 내 마음 속에 움직임을 주실 때 그래 맞아, 나도 죄를 버리 고 포기하고 주 앞에 나와 십자가 붙들고 하나님 믿고 제대로 살아야 해. 이런 마음을 주실 때 성령이 역 사할 때 그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 런데 우리가 이런 성령의 감동을 소 멸하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 안 되 는 그런 시점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 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 는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목회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종 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때는 한참 제가 주례를 많이 했는데 토요 일날 제가 많이 할 때 보면 아침에 결혼식 하고 오후에 장례식하고. 또 어떤 때는 헷갈려요. 결혼식인지 장 례식인지. 결혼식장에서 한 번은 제 가 거의 입술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부터 고. 말이 나올 뻔 했어요. 큰일 날 뻔 했어요, 아주. 그런데 한 번은 하루를 상간에 두고 장례식을 두 번 치렀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저희 교회와 관련된 사람들 두 사람이 나 란히 임종을 했는데 한 사람의 임종 을 제가 목격했어요. 예수 잘 믿었 던 분인데 목사님 좀 빨리 오세요. 갈 것 같아요. 그 가정의 아버님, 예 수 잘 믿던 분이었어요. 식구들이 쭈욱 둘러 앉아서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는데, 인간이 마지 막까지 살아있는 부분이 청각같아 요, 이 분이 듣는 것 같더라구요, 생 각이 오락가락 하지만.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는데 고개를 끄덕 끄덕. 한 순간 갑자기 숨이 멎 어요. 그런데 얼굴이 환하게 펴져요. 나는 그렇게 환하게 펴지는 모습, 미소짓는 모습. 나는 그 분의 임종 후에 그 집을 나오면서 마음이 행복 했습니다. 아름다운 임종,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 구원 받은 영혼의 아름 다운 임종. 그런데 그 다음날 또 식 구들이 그렇게 전도하려고 해도 안 믿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전도해 달라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고통스러운지 숨을 가쁘게 몰아 쉬 는데 좀 그때 되면 낫겠지. 전도를 해도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왜 왔느 냐고 시끄럽다고 악을 쓰고 그날 밤 에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제가 하다 가 실망이 되서 그냥 나왔어요. 고 통 속에 소리지르다가 가버렸어요. 두 사람의 임종, 이 극적인 차이. 그 때 내가 느낀 것이 뭐냐 하면 회개 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돼. 성령이 역사할 때 해야 돼. 회개케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 니다. 그런데 거기 값이 필요 없어요. 응 답만 하면 되요. 열린 마음으로 주 께서 역사하실 때 성령이 감동하실 때 맞아요 인정하고, 맞아요 하나님 죄인이에요, 인정하고 주님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구원 받는데 이 값 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 값없이 주시는 회개의 은혜, 왜 못 받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이것은 값이 없지 만 하나님 편에서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값없이 구원 받고 용서 받고 새로워지도록 하나 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천 년 전 이 땅에 보내시고 나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고난의, 비 아도르 아사, 피 묻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 수님, 그 분이 대가를 지불했기 때 문에 우리는 값없이 은혜 받고, 값 없이 용서 받고,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었던 거예요. 수 난 주간인데 그의 고난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와 보존의 은혜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십자가 를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이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미국 의 크리스천 작가가 쓴 아주 인상적 인 소설의 마지막 그림을 지금도 머 리 속에서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 본문에는 두 천사가 등장하지만 그 전 장에 보면 세 사람이 찾아왔죠, 아브라함에게. 세 천사가 세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한 천사, 사 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한 천사는 누 구를 가리킨다고 그랬어요? 예수님. 한 천사가 두 천사를 계속 지시하는 거예요. 저 쪽 산부터 산 머리를 넘 어와서 소돔과 고모라의 성에 들어 옵니다. 두 천사보고 롯의 집에 가 서 먼저 내 종 롯이 이 도성을 떠나 도록 너희들이 설득을 하라. 열심히 설득하죠. 설득하다가 새벽녘 안 되 겠다고 생각하니까 드디어 한 천사 는 롯과 그 아내의 손을 그리고 또 한 천사는 두 딸의 손을 잡고 강제 로 이끌어 냅니다. 뒤에서 계속해서 한 천사가 지시합니다. 빨리 끌고 나가라. 새벽녘 밝아오는 새벽 드디 어 소돔과 고모라의 언덕을 넘어서 산을 넘어갑니다. 한 천사가 계속 지시합니다. 빨리 가라고. 드디어 두 천사가 롯의 가족을 이끌고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을 떠나서 저 소알 작 은 성읍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자 안 도의 한숨을 쉬면서 나머지 한 천사 가 두 손을 이렇게 보냅니다. 그것 이 신호였어요. 그 순간 유황의 불 비가 막 쏟아져 내려옵니다. 불비는 먼저 이 천사를 삼켜 버렸어요. 그 다음에 이 불비는 소돔과 고모라의 성을 태우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무 얼 말해주고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우 리를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은 그 분 이 먼저 십자가에서 자신을 매달고 자신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대신하고 그 자리를 취하심으로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 구원과 용서의 은혜를 입을 수가 있 었다는 것, 이것이 고난 주간의 메 시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은 혜는 이 십자가 앞에 서서 바로 날 위해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내 대 신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고백하고 그 분을 따라 순종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만 이 은혜는 주어집니다. 이 구원의 은혜 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이 변화의 은총이 여러분의 것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은혜 받고 구원 받고 회개 하여 생 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은 혜를 거절하고 영원한 파멸의 길로 걸어가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 지고 싶어요. 오늘 밤 주님이 여러 분의 영혼을 불러가신다면 오늘 밤 이 나의 인생에서 이 땅에서의 마지 막 밤이라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천국 갈 확신이 있어요? 천 국 갈 확신이 있습니까? 대답할 수 없는 분들 계시지 않습니까? 목사 님, 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도 이제 회개하고 정말 하나님 자녀 되 어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 받은 자로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직 도 확신이 없이 아직도 변화가 없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가운 데 이번 고난의 계절, 부활의 시즌, 나도 내 인생 부활하기 위하여 예수 제대로 믿고 주님 따라가겠습니다. 혹시 그런 결심 하시는 분들 계십니 까?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 나를 위해 예수 그 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나의 구주,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제가 예수님 믿고 예수님 모시고 예수님 따라 가겠습 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 짤 막한 결단의 기도, 그러나 이 기도 가 여러분의 일생을, 영원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가 진 지하게 응답하기만 하면 바로 그 순 간 지체함이 없이 하나님은 여러분 을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 고 우리를 자녀로 인쳐 주시고 새로 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오, 하나님 이 은혜 주시옵소서. 이 축복 주시 옵소서. 이제는 변화되어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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