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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귀하게! (눅 15:3-7) |

by 【고동엽】 2021. 12. 19.

생명을 귀하게

 

눅 15: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

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 하리라.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병자들을 위해서 병원엘 자주 갑니다. 병원에 가서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신생아들이 입원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온몸에 몇 개씩 주사바늘이 꽂힌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회복이 되어도 사람구실을 하지 못할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은 한결같이 능력이 없는 부모들입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되는 것은 저 아이는 차라리 죽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내 아이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쉽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부모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아이를 살려보려고 안감 힘을 씁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생명일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가 망가지면 예비생명이 있어서 다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이 다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일생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주님은 ꡒ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ꡓ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한 생명의 귀중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 100마리 가운데서 한 마리 양이 이탈했습니다. 그때 목자는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99마리의 양을 놓아두고 동분서주하며 온 광야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 그 잃었던 양을 찾음으로 인해서 감사하여 집에 돌아와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여기 이 목자의 심정이 곧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의인 99보다 잃었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 더 소중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의 생명, 하나의 영혼구원을 가장 신성시하고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건강한 양 99마리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들의 신앙중심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을 보면 이 소중한 생명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생명, 이 영혼을 너무 값없이 취급합니다. 내 생명도 하찮게 취급하고 너의 생명도 우습게 여깁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내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죄이고 너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네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영혼 사랑하는 일이고 전도하는 일이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단 하나 밖에 없는 내 영혼과 내 생명을 사랑하고 네 생명과 네 영혼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이 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ꡒ자꾸만 세상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ꡓ입니다.

 

여러분, 이 오염이 생명을 알게 모르게 죽이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고 너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지금은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물이 썩고 공기가 썩고 땅이 썩습니다. 그러면 결국 나도 너도 내 자손도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 무지한 일입니다. 산이 썩고 물이 썩는 것을 보십시오. 이러다 마침내는 이 세상이 오염되어서 결국 모든 인간은 죽고 말 것입니다. 산이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오염되고 땅이 오염됩니다. 그러면 결국 이러다 마실 물도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이고 오늘의 풍조입니다.

어느 백인이 인디언에게 와서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줄 테니 이 넓은 땅을 다 팔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인디언이 백인에게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 팔 수 있으며, 이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우리가 사고 팔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서 똑똑히 가르치십시오,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은 조상의 육신과 같은 것이고 이 대지는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사람이 이 땅을 더럽히면 곧 자신의 삶도 더럽혀진다는 것을 가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 누가 문명인입니까. 자연을 마구 파헤치고 부수고 깨고 허물고 더럽히고 쓰레기로 산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 꼭 야만인같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매연, 이것도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여러분 차가 낡아서 매연을 많이 내 뿜으면 빨리 고쳐 써야 합니다. 그 매연이 올라가서 대기권을 망가트립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지금까지 우습게 여기다가 지금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대기가 건강해야 햇빛이 내뿜는 유해한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스와 매연을 무제한으로 뿜어낸 결과 오늘 대기권이 구멍이 뚫려 자외선 차단이 안 되니 각종 피부암에 걸리게 되고 일기의 체계가 변동되어 결국 오늘 이 같은 이상난동, 한파, 홍수를 일으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지구의 한편에서는 홍수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또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세상이 말라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다가는 결국 함께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비롯된 재앙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닙니다. 조그만 일부터 실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생명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ꡒ질서를 지키는 삶ꡓ 입니다.

 

무질서, 이것이 또 생명을 아주 경시하는 생활입니다. 오늘 무질서는 극에 달합니다. 자동차의 무질서, 이것은 곧 내 생명과 네 생명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난폭운전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 동안 교통사고로 죽는 수가 2만 명이나 됩니다.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입니다. 또 안전 불감증, 이것도 문제입니다. 매년 이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입니까. 무사안일, 이것이 생명 경시풍조입니다. 이 안전 불감증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센트럴 아메리카라는 호화유람선이 수백 명의 승객을 싣고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습니다. 가다가 빙산에 받치는 바람에 그때 배 옆에 구멍이 났습니다. 순찰선이 와 보더니 ꡒ위험하니 빨리 승객을 구조하라ꡒ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이 배가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재어보더니 무사히 갈 것 같다며 응급조치를 안 했습니다. 참 안일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도착 시간 얼마를 앞두고 그 배는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선장의 무사안일로 빚어진 참사로 수백 명이 수장되었습니다. 이것이 생명 경시태도입니다.

음식을 먹는데도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를 지키면 건강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폭음시대입니다. 절제가 없습니다. 이 폭음이 생명경시 풍조입니다. 담배, 술, 폭식, 이것이 사람을 모두 죽이는 행동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도 다 살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괜찮습니다. 죽지도 못하고 병들어 장기간 병석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생명도 사랑하고 네 생명도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너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학대하고 무시하고 원망하면 너를 경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만 자들이 함께 죽자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 불을 지르고 가스를 터트리고 그렇지 않습니까.

대구지하철 사고, 그래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아닙니까. 파출소에 차를 타고 돌진하는 사건도 같은 사고입니다.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두 인명을 경시하는 모습입니다. 나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니까 남의 생명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지금 끔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 번째는 ꡒ하나님의 생명사랑ꡓ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하나님의 정신이 이곳저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복음서를 보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탕자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한편 마음이 괘씸하고 분노가 일어났지만 또 한편 마음은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놓고 밤을 새워 기다립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잃은 동전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는 동전 열 개를 실에 꿰어 장신구로 목에 걸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악귀를 물리친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이 끊어지면서 열 개의 동전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아홉 개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밤을 새워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을 찾기 위해서 소동을 빚었습니다. 동전을 잃은 동안 악귀가 자기에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애타는 마음으로 찾다가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그래서 이 여인이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안심해도 되니까 말입니다. 이 비유들은 모두 하나의 중요성을 말씀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는 나머지 아홉 개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없는 아홉 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열 자식 가운데 하나가 아프면 나머지 모든 식구가 다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는 모두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의미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런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백 마리의 양을 치는 목자가 한 마리의 양이 이탈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목자는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겨우 찾았습니다. 그때 찾은 양을 안고 집에 돌아와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찾음에 감사했고 기뻐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한 생명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소중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런 마음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부분은 요 3:16절 ꡒ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보내셨다ꡓ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죽이면서까지 멸망당할 생명을 구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어찌 죄가 안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몸을 상하면 불효라고 했습니다. 이 몸은 부모님이 주신 몸인데 상하게 했다고 죄송해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게 주어진 삶, 인생, 생명,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나의 생명뿐 아니고 너의 생명도, 너의 영혼도, 너의 인생도 소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깨닫는 백성은 모두 이 생명과 영혼을 소중히 여깁니다.

지난번 태풍이 왔을 때 미국도 같은 규모의 태풍이 불어왔었습니다. 그때 미국인들은 무엇보다도 인명 존중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태풍이 몰려올 때 재산은 놔두고 먼저 몸부터 피신하게 했습니다. 대통령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서 태풍을 진두지휘 했습니다. 우리들이 볼 때는 너무 호들갑 떤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120명이나 피해를 입었고 그들은 겨우 10여명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재산 지키느라 집에 앉아 있다가 재산도 잃고 인명도 잃어버렸습니다. 태풍 경보가 발령되었는데도 사람들이 지하실에서 노래방에서 놀고 앉아 있다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통령은 연극장으로, 장관은 골프장으로, 일반인은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삶의 모습 저변에는 이 인명 경시풍조가 넓게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아주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인명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입니다. 사라호 규모의 태풍이 불어오는데도 피신시키는 일이 없이 스스로 알아서 대처하라는 식으로 태풍이 불어온다는 것만 알렸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먼저 하나님이 주신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을 더 우선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지금 태풍이 몰려오는데 재산 지키느라고 앉아 있다가 생명을 잃듯이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지금 구원해 내지 않으면 위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영혼의 귀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존중해야 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또 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소중한 생명 사랑은 전도하는 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구원받게 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지상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 이 전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혼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중보 기도하는 것 이것이 다음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주안에서 누군가의 영혼과 구원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고 시급한 일입니다. 기독교심리학자 랜돌프 버드박사가 중보기도가 병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컴퓨터에 393명의 심장 질환자를 입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39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은 배후에서 중보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질환상태를 매일같이 조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그룹은 아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개월을 보냈습니다.

10개월 후에 조사해 보았더니 기도한 그룹은 5/1정도만 항생제로 치료할 뿐 모두 심장에 물고임 현상이 현저히 줄어들고 인공호흡기를 떼어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은 또 한 그룹은 모두 병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더라고 합니다. 그 연구 끝에 랜돌프 버드박사가 결론 내리기를 ꡒ이제 의사들도 처방전을 쓸 때 ꡒ하루 세 번 기도하세요.ꡓ라는 말을 써 넣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가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 중보의 기도가 이렇게 힘 있게 미치고 영향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나의 생명도 존중하고 너의 생명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건강한 99마리의 양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ꡒ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ꡓ고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중보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생명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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