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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려 하였느냐? (행 5:1-11)

by 【고동엽】 2021. 12. 19.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려 하였느냐? (행 5:1-11)

 

 


오늘 말씀은 예수 믿고 성경을 처음 읽는 분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을 내용입니다.
그동안 초대교회는 은혜 충만, 성령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찬물을 끼얹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큰 헌금을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부부가 다 죽어나간 것입니다. 교회에 이 보다 더 큰 시험이 있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헌금하는 날 그 자리에서 부부 둘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땅을 판 돈 일부를 감추고 다 바쳤다고 거짓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큰 충격입니다. 어느 교회도 이런 이야기는 역사 기록에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이 실제 사실을 기록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읽고 가슴에 어떤 형태로든 충격이 오셨을텐데 어떤 것 때문에 충격이 왔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한 것 때문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 하나님 앞에 헌금하면서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다 하더라도 땅 판 값을 다 바친 것도 아니면서 다 바쳤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 . 그것이 충격입니까? 아니면 아니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그렇게 죽일 수가 있어!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했다는 것이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소유인 땅을 팔아 일부만 바치고도 다 바친 것이라고 한 것이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죄입니까? 남의 돈을 가지고 바친 것입니까? 교회 돈을 떼먹기나 했습니까? 결국 헌금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이 더 충격이 됩니까? 충격을 받아도 똑같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받는 충격은 아나니아의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의 거짓말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런 거짓말한 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이 충격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도 예배드리고 죽어나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런 죄 때문에 죽어야 된다면 무서워서 예수라도 믿겠어요? 이런 마음이 솔직히 우리의 마음이니까 이 본문으로 설교하기가 참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본문은 이미 설교하도록 주어진 본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흥분으로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설교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본문을 택하라고 했으면 지는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운 분위기에 오히려 찬 물을 끼얹는 것과도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대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11절 말씀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1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 하나님께서 두려워해야 할 일을 두려워하게 하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말은 평소에는 두려워할 일인데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앞으로 더 큰 일을 하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나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험에 빠졌지요? 아니 헌금을 하고 그 자리에서 둘 다 죽었으니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나는 예수 믿을 자신 없어! 그러고 떠나간 사람이 많았다더라. 그 뒤에. 교회 부흥에 찬 물을 끼얹어져서 예루살렘 교회는 곧 문을 닫았더라. 이렇게 나오겠지요?.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주에 또 살펴보겠습니다마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큰 시험에 빠져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부흥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진정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진정한 부흥을 주시려고 이 일을 쓰신 것입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지은 죄, 헌금하고 죽어 나가야 하는 죄, 성찬받고 죽을 수도 있는 죄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한 마디로 성령을 속인 죄 라고 했습니다.
(3절) 네가 성령을 속이고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시기심과 탐심과 거짓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 헌금을 했지만 동기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땅을 팔아 바친 일로 온 교회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자기도 받고 싶었습니다. 나에게도 땅이 있는데 이것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면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칭찬하겠구나. 그러나 막상 땅을 팔아 다 바치려고 하니 돈이 아까왔습니다. 탐심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땅 판 것을 다 바쳤다는 칭찬은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그것이 땅 판 것의 모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지은 죄입니다.
이 죄가 그렇게 심각한 죄입니까? 사실 시기심, 탐심, 거짓말은 우리가 늘 쉽게 넘어지는 죄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큰 죄인가?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죽어나가야 할만큼 큰 죄인가? 그런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예수 믿고도 누구나 그런 죄는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심히 두려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죽었는가? 죽을만한 죄를 지었네. 이렇게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떻게 그런 정도를 가지고서 하나님이 그렇게 무서운 벌을 주실 수 있는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죄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향한 죄였다는 것입니다.
(4절)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렇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큰 헌금을 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헌신해도 우리가 이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보면 분명히 큰 헌금을 했고 교회를 위해서 크게 봉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헌금한 것을 가난한 사람 도와주라고 돈 내는 것 정도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속이려고 들고 또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들고 업신여기는 사람의 죄가 작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있었던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던 때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보았습니다. 성령 받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교제히던 교인들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성령의 체험을 반드시 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고 늘 성령님이 자기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실제로는 안 믿은 것입니다. 믿었다면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성령님을 향하여 하는 것이라고 그가 정말 믿었다면, 아니 진실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거짓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땅을 판 값이 얼마이고 지금 바치는 값이 얼마인지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그 말은 성령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다는 것을 안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성령의 가장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던 때 교인이었음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그는 엄청난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도 성령께서 자기 안에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에 대해서 듣고 성령에 대해서 배워도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구나. 내가 지금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구나. 하는 것을 실제로 안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일을 보면 압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그 자리에서 거두어가셔야만 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마귀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3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이 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가룟유다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그러니까 성령을 속이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소경처럼 되어버리니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다는 말은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 때 되어진 일과 똑같습니다. 사단은 가룟유다에게 처음에는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때 가룟유다가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스스로가 분별할 수 있었는데도 생각이니까 어때. 생각을 누가 알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품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가룟유다 속에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가룟유다는 모든 자기 의지를 잃어버리고 마귀의 종노릇합니다. 그래서 결국 가룟유다는 예수를 은 30에 팔았습니다. 나중에 깨닫고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난 다음에 감당을 못하겠어서 자살을 하고 맙니다. 가룟유다의 비참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똑같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사단이 시기심과 탐심과 거짓말을 할 마음을 심어 넣어주었습니다.
마귀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처음에는 거짓말을 할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생각의 뿌리를 살피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생각이려니 하고 품은 것입니다. 이것을 심각하게 여겼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떨쳐버렸겠지만 그것이 생각이니까 그냥 마음에 품었습니다. 시기심이 일어나고 탐심이 일어나고 그러자니 거짓말을 해야 되고. 그렇게 하자!
4절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
결국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사람에게 거짓말하는지 하나님께 거짓말하는지도 분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단이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영이 어두워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분명히 예수 믿고 성령의 체험도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니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해져서 불신자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고 야단을 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생각의 근원을 살펴야 합니다. 잠언 2장 23절 말씀처럼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것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 품어야 될 생각이 있고 내좇아야 될 생각이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여러분이 정확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면 큰 일 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면 가룟유다 같이 마귀가 들어와 주인 노릇하게 됩니다. 성령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도 못하게 되고 불신자처럼 영적으로 소경이 됩니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교회 안에서 마귀가 주는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알고 품어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보면 마귀가 하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간에 살인죄나 간음죄를 지었다면 지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아실텐데 내가 이런 죄를 짓고도 이렇게 예배 드려도 될까?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용서해주실 수 있을까? 내가 새 삶을 정말 살 수 있을까? 내가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럽고 안타깝고 간절하겠어요? 살인죄 짓고 간음죄 짓고 오늘 예배 드릴 때 졸 사람이 있겠습니까? 졸음이 안 오지요.
그러면 탐심과 시기심과 거짓말은 어떻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그런 죄를 짓고 예배 시간에 졸 수도 있습니다.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아니 시기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돈 좋아하지 않는 사림이 누가 있어?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죄를 제대로 죄라고 느끼면 졸음이 옵니까? 고개를 들 수 있습니까? 살인죄나 간음죄와 시기, 탐심, 거짓말하는 죄하고 어떤 것이 더 무섭습니까? 시기, 탐심, 거짓말하는 죄가 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고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도 태연히 예배하고 성찬도 받고 웃고 인사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살인죄나 간음죄를 지으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못 듭니다. 이런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마음으로부터 애통해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정말 구원을 호소합니다. 살인죄 지은 자도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오른편 강도도 천국에 갔습니다. 살인마 고재붕도 천국 갔습니다. 자기가 무서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아니까.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도 되고 어떤 죄를 지은 자도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무런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회개가 없는 죄가 어떻게 용서함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살인죄나 간음죄보다 더 무서운 죄가 시기 질투 탐심 거짓말하는 죄란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꼭 말로만 나는 죄 지었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얼굴 표정에 벌써 나타나지 않아요?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솏이는 죄를 자기도 모르게 짓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 줄 몰랐고 그 당시 교인들도 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다 놀라고 그때서야 비로서 이것이 두려운 것이구나. 이것이 큰 죄구나! 깨달은 것입니다.
성령을 속이는 죄를 짓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에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죄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 가서야 다 드러납니다. 시기하고 탐심을 가지고 거짓말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속이고 산 죄입니다.


살인마 강호순, 인물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이웃사람들이 입을 모아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라 할 만큼 준수한 외모와 선량한 미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서운 살인자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살인마 강호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빠진 자들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성실하고 흠없이 잘 사는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갔더니 드러나는 죄마다 상상할 수 없는 죄가 나오는 것이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정말 두려워해야 될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심을 한번 놓고 봅시다. 여러분, 시기심이 그렇게 큰 죄라고 정말 생각하십니까? 시기심을 작게 여기면 안됩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인 중에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고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곧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증거로 시기와 다툼을 꼽았습니다.
고전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은사가 많고 겉으로는 교회 지도자 같아도 시기와 다툼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자아 중심의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는 어린아이인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이 시기심이 무서운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누구나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시기와 다툼의 죄를 살인과 간음과 같은 죄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하며 십자가를 붙잡아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회개가 안되니 문제인 것입니다.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아십니까?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여러분은 여전히 돈을 사랑하십니까? 돈을 미워하십니까? 대답해 보세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할 거리라고도 생각 안합니다. 내가 무슨 살인죄를 지었나, 간음죄를 지었나. 모든 죄의 뿌리가 돈을 사랑하면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권을 사는 것이 죄냐고 물었습니다. 죄인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편의점에 들어가 복권을 삽니다. 그는 희망에 취해 그것을 지갑에 찔러넣고는 가게를 나섭니다. 자기가 복권에 꼭 당첨되리라는 생각에서가 아닙니다. 단지 공상에 파묻힐 기회를 사는 것입니다. 복권 발표가 될 때까지 그는 새 옷, 새 집, 새 지동차 등 복권 당첨으로 찾아올 삶의 변화를 꿈꿉니다. 후원금을 보낼 자선단체들까지도 상상합니다. 결국 복권 번호가 발표되고 당첨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을 배부르게 하였던 탐심은 다음번 복권을 손에 쥘 때까지 시들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뭐가 나쁜가? 한낱 게임일 뿐이지 않는가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공상하며 보내는 그 시간들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 기회를 다 놓칩니다. 그런 공상을 하는 자는 기도도 안되고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격은 파괴되어갑니다. 하나님의 기회도 사라지게 됩니다. 자기현실에 대한 불만만 커지게 되고, 마귀가 그 영혼을 사로잡게 됩니다. 이렇게 가정 불화, 범죄, 전쟁이 일어나고 노예제도, 공산주의, 지금의 경제위기가 다 탐심 때문에 일어난 것들입니다.

여러분 속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살인죄 지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며 회개하는 역사가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우리에게 깨우치시려는 것입니다.

거짓말,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거짓말에 익숙해 있습니다. 거짓말은 죄로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마귀에서부터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할 때마다 여러분 입을 틀어막아야 됩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이 술술 나옵니까?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교회에서 거짓말하고도 전혀 가책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도 없는 것이고 회개가 없으니 씻음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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