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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영원히 살 수 있을까? / 전도서3:11, 로마서6:23

by 【고동엽】 2021. 12. 24.
나는 과연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전도서3:11, 로마서6:23

한 몇 년 되었는데 에~제가 미국 가다가 비행기 안에서 뉴스위크지를 읽었습니다. 아~그기 한 칼럼니스트가 기고한 짤막한 엣세이가 매우 감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글을 읽게 된 동기는 그 글의 제목이 아주 인상적이였습니다. 제목이 아~우리 시대의 우상, ‘아이돌스 아바웃트 타임’ 우리 시대의 우상들, 이런 제목이더라구요. 그래서 굉장히 제목이 매우 철학적이다 생각하고, 글을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에서 이 현대라는 시대정신이 에~존경하는 인물, 존경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쭉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 시대에서 우상처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네 가지의 자격이 있어야 된다, 네가지. 첫째는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둘째는 자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Concentration할 수 있는,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네번째는 오늘을 즐길 수 있는, 엔죠이할 수 있는 능력, 이 네가지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우리시대의 우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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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늘 누가복음 12장에 나타나는 성경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더불어 할려고 합니다. 그기에 한 부자 농부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만히 여름을 지나면서 보니까, 그 해 가을에 굉장히 서출이 많을 것 같은, 풍년이 될 것 같은, 수확이 풍성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부지런히 아, 금년에는 현재 가지고 있는 곳간에다가 이 수학을 다 채울 수 없겠다, 넘치도록 많은 수학이 있겠다 그래서 곳간을 넓히는, 곳간 개조작업을 착수 했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넓혀놓은 곡간 곡간마다 곡식을 가득이 가득이 쌓아두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추수가 다 끝나고, 곡간마다 곡식을 가득 쌓아놓고 그날 밤에, 부자는 자기영혼을 향해서 일종의 모노로그처럼, 독백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너는 여러 해 쓸 물건을 이렇게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이제는 즐기자, 이렇게 이 부자농부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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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 성경에 나타난 부자농부가 아~오늘 우리시대를 살고있는 사람이였다면 우리시대는 농사보다도 다른 장사하는 사업이 더 인기가 있으니까 우리시대에 살고있는 비지니스 맨에다가 이 사람을 비유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적인 사람이였다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것 입니다. 조금 아까 저가 처음에, 서두에 화두에 말씀 드렸던 뉴스위크지가 말한 우리시대의 영웅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대한 소출을 기대이상으로 수학을 거두어드리지 않았습니까?
> 그러니까 첫째 그 기대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든 사람이구요. 그 다음에 두 번째로 그는 남들이 다 잠들어있는 밤에도 땀을 흘리면서 자기 농사일에 몰두했습니다. 남들이 잠든 저녁시간까지도 그는 밭농사, 논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그는 두 번째로 자기의 일에 정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였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니 두 번째 자격도 통과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 벌써 가만히 내다보면서 밭을 내다보면서 아, 이번 가을은 굉장히 기대이상으로 많은 그런 소출을 거두어 드리겠다. 그래서 곡간을 넓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세 번째 자격,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죠.
> 거기다가 자, 추수가 끝난 시각에 그는 아주 넉넉한 마음으로 자기의 영혼을 향해서 ‘야! 너는 성공한 사람이야 이제부터는 먹고 마시고 즐겨야 해’ 그는 라이프를, 우리 인생을 좀 즐길 줄도 아는, 엔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아까 말한 오늘을 즐길 줄 아는 네 번째 능력도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죠. 이 사람은 당연히 우리 시대의 영웅이 되어야 마땅하고 또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지혜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시면 이 부자 농부에게 그 수확을 다 거두어 드리고 자기 영혼을 향해서 이런 가슴 뿌듯한 독백을 하던 그 밤에 하나님이 이 부자에게 나타나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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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오늘 이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이 부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어리석은 자여! 아니 어리석다니 이 사람이 왜 어리석어요? 우리 시대 우상으로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어리석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 그런데 하나님이 말하면 그것은 마지막 이에요. 하나님의 선언은 파이널 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선언 입니다. 그는 창조자 일뿐만 아니라 근 심판자 이시거든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너 어리석은 자야, 너 인생을 어리석게 살았어! 그러면 끝나는 것 입니다. 자,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졌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인생을 결산하면서 그의 인생은 어리석었다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성공한 것 같았으나 어리석은 인생으로 추락한 이유, 그 이유를 오늘 밤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그것은 “꺼꾸로 우리가 어리석지 않기 위하여, 참으로 지혜로운 인생, 나는 과연 지혜로운 삶을 살수 있을까?”라는 물음입니다. 첫날밤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과연 변화 될수가 있을까?”이런 물음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는 “나는 과연 천국에 갈 수가 있을까?” 그런데 오늘 밤은 조금 시선을 천국이 아니라 현재로 돌이켜서 “나는 과연 인생을 사는 동안에 지혜로운 삶을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주관으로는, 내 생각으로는, 내 판단으로는 열심히 살았고 성공했고 힛트 했고 인기를 얻었고 사람들 앞에 박수 갈채를 받았고 이만하면 나는 괜찮은 인생이라고 살았는데, 나의 하나님! 나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나를 섭리하시다가 내 인생을 결산하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내 인생의 벼랑 끝에서 마지막에 너는 어리석었어! 이 선언을 듣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우리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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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우리는 그가 어리석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이유는 그는 물질을 획득하고 또 물질을 사용하는 목적이 없었어요. 물질,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물질을 그가 얻는, 추구하는, 그리고 물질을 사용하는 어떤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선언을 하신 것 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요, 성경은 물질 그 자체를 결코 나쁘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돈은 악이다! 돈은 죄다! 뭐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말씀은 나와요.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악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돈이 악은 아니에요. 돈, 얼마나 좋습니까? 돈 싫어하시는 분 있어요? 녜? 또 너무 좋아하시면 돈 좋아하다가 돈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경은 돈 그 자체를 결코 정죄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증권에 투자했다고 그래서, 보험에 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돈 그 자체는 매우 중립적인 가치입니다. 또 성경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기독교는 이물질의 필요를, 물질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필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산상 수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셔요. 우리의 의,식,주, 우리의 필요를 얘기하면서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아신다 너희가 돈이 필요한 것, 너희가 물질이 필요한 것, 의식주가 필요한 것, 하나님도 아신다. 그러니까 물질의 필요, Need 소위 필요 그 자체를 기독교가 부정하지는 않아요 성경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 또 이 물질을 우리가 얻기 위해서, 물질을 획득하기 위한 우리의 정당한 노력, 그 노력 자체를 성경은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격려를 해요. 너희는 개미에게로 가서, 잠언에 보시면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배우라, 개미가 얼마나 열심히 모으고 있는가, 닦쳐올 겨울을 위해서 개미가 얼마나 열심히 모으고 있는지, 개미에게 차라리 지혜를 배워라. 그러니 물질을 모으려는 정당한 노력, 물론 부당한 노력은 성경에 안 된다고 그럽니다.부당한 노력, 소매치기 같을 노력, 녜, 소매치기가 얼마나 머니(Money)를 좋아합니까? 한때 그런 유행어가 있었던 것이 생각나죠? 소매치기가 money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데 세가지 머니를 좋아하죠? 아주머니, 호주머니, 슬그머니, 하하~
> 이런 부당한 노력, 이런 부당한 노력에 대해서는 성경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당한 노력, 물질을 우리가 획득하고 얻기 위해서 아주 정당하게 노력하는 것, 그 노력을 결코 성경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물질을 즐기는 것, 즐기는 그 자체도 성경은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바울 서신에 보면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이런 표현이 나와요. “후이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한번 따라서 하실까요 “후이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녜, 우리가 누린다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이 아니에요. 녜, 후이 주시고 또한 누리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그러니까 물질 그 자체를 엔죠이 하는것, 그 자체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이 주셨을 때 왜 주셨는지 우리가 그 목적을 알아야 돼요. 네,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허락하시는,돈을 허용하시는, 허락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그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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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자인 요한 칼빈은 죤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을 때 그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주 재미나게 설명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았을 때 한 사람은 거울 앞에 선다. 한 사람은 거울 앞에 선다. 그런데 또 한가지 종류의 사람은 창문 앞에 선다. 재미있죠? 나만 재미있나? 녜?하하~
>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을 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종류의 사람은 거울앞에 선다. 또 하나의 종류의 사람은 창문 앞에 선다. 여러분, 거울 앞에 서면 뭐가 보입니까? 내가 보이죠, 내가 보여요. 내가 보여요. 그런데 물질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또 내 물질을 추구할 때 항상 그걸 가지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 나,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떻게 써?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할까? 이것을 내가 어떻게 저금할까? 자기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물질은 전혀 자기 것이고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또 한 종류의 사람은 물질이 주어졌을 때 창 앞에 선다. 윈도우 ,창문 앞에 선다. 여러분 창 앞에서면 뭐가 보입니까?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창 건너편이 보입니다. 창 건너편, 우리는 창 건너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두 가지를 보아야 돼요. 우리는 창 건너편에서 물질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가 있어요. 이 물질은 내가 그냥 땀 흘려서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건강, 능력, 상황, 환경,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우리는 저 창 건너, 물질의 창 건너편에서 물질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창 밖을 보니까 우리의 이웃들이 왔다 갔다 해요. 우리는 이 창 건너편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을 나눌 수 있는, 물질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을 발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우리는 물질의 창 건너편에서 두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뭘 보아야 될까요? 하나님과 이웃을 볼 수가 있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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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예수님이 성경에서 가르친 가장 크다란 계명, 어느날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 앞에 찾아가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 음에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우리의 물질관도, 그러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적용될 수가 있어야 되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을 때 그 물질을 가지고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 뭘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또 물질을 주셨을 때 이 물질을 가지고 내 주변에 이웃들과 더불어 어떻게 나누며 살 수 있을까? 이게 물질을 주신 목적이에요. 인생의 목적 입니다. 이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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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청년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아마 어떤 캠프 가는데 무척 배가 고팠든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냥 아~ 음식도 다 떨어져 있었고, 그런데 한 학생이, 한 젊은이가 혼자서 그냥, 옆에 친구가 있는데도 친구는 모른 척하고 자기 혼자 계속 호도과자를 혼자서만 야금야금 먹으니까 얼마나 얄미워요. 야! 넌 성경도 모르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 이런 말씀도 몰라? 그래 이 친구가 먹다 말고 쳐다보며, 야! 너 진짜 성경 모르니?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너 이런 말씀 몰라? 하하~ 뭐 그랬다고 그러는데 하하~ 녜,
> 그런데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목적, 그것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이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이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은 목적을 가진 사람, 물질에 대한 진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
>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이 부자의 독백을 읽어보시면 누가복음 12장에서, 제가 한번 읽어 볼께요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무슨 얘기가 많이 나오나, 누가복음 12장16절 이하에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제가 여러분이 알아듣지 못할까봐 일부러 어떤 단어에 악센트를 주면서 제가 읽었습니다. 무슨 단어가 강조 되었습니까? 나, 나란 단어, 내 물건, 내 곡식, 내 물건 내 곡식, 내가, 내 모든 곡식, 내가, 내 영혼에게, 내 영혼에게, 내 곡간 내 물건 내 곡식, 내 저금통장, 내 집, 심지어는 내 영혼, 내 영혼, 내 목숨, 마이 솔, 내 영혼 내 영혼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 다 내꺼라고,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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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 본문의 이야기의 아주 클라이맥스 정점에 도달하면, 하나님이 부자를 인생에서 부르시던 마지막 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게 아주 재미있는 다이알로그 에요 아주 흥미있는 대화인데요 자, 조금 아까 이 부자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내 곡식, 내 물건, 내 영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부자를 부르시면서 그래? 네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네 영혼을 내가 가지고 가리니, 그러면 네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하~
> 우리가 이것을 가리켜서 소유권의 논쟁, 소위 오너쉽, 오너쉽이라고 그러죠? 소유권이 어디에 있느냐? 이 말이죠. 소유권,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너 그냥 그만 살고 와! 그러면 목숨 포기하고 그냥 버리고 가야 되는 거에요. 우리가 내 꺼라고 착각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내 것이라고 손해 볼까봐 우리가 이기적인 욕심 속에서 인생을 살고 그러죠. 그러니까 하나님 꺼라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 혼자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고 살라고, 얼마나 하나님 생각하는지, 우리가 이웃을 생각하는지, 가장 잘못된 물질관, 그것은 모으기 위해서 모으는 사람, 모으기만 위해서 모으는 사람, 또 그것을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즐기는 것, 즐기는 자체는 잘못이 아닌데 즐기기 위해서만 즐긴다. 더 높은 삶의 목적을 위해서, 다음에 올 진지한 인생의 어떤 목표를 위해서 오늘의 믿음과 오늘의 휴지부를 위해서 내가 삶을 즐긴다. 그것은 아름다운 휴식입니다. 아름다운 즐거움, 아름다운 바캉스, 베케이션, 그러나 즐기기 위해서 즐기고 모으기 위해서 모은다, 그것은 잘못된 물질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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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아주 흥미있는 그 부자 한사람이 있었는데 ‘윌리암 할스트’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본래 신문 발행인이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독특한 취미가운데 하나는 미술 아, 작품들을 콜렉팅 하는 그런 사람이였다고 합니다. 윌리암 헐스트, 알 헐스트라는 사람이였는데요.그래서 이 사람은 전 세계에서 유명한 미술작품들을 모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정말 갖고 싶었던 작품 하나가 유럽 어디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작품을 사들이기 위해서 계속 추적을 합니다. 사람을 풀고 정보원을 보내고, 뭐 지금은 다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만 그때만 해도 아마 그런 게 없었으니까 친히 자기가 비행기를 타고 날라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유럽의 구석 구석을 뒤지면서 자기가 정말 손에 넣기를 원했던 그 작품이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했는데 못 찾는 거에요. 드디어 알게 된 소식이 뭐냐하면 유럽에서 다시 언젠가 미국으로 팔려 갔다는 거죠. 이제 다시, 자기의 고향인 미국으로 와서 다시 미국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한 오년 만에 추적한 끝에 자기가 그렇게도 벼르고 추적했던 작품을 찾아냈습니다. 자기의 창고에서 찾아냈어요. 하하~ 자기 창고에서, 자기 창고에 놓아두고 찾으러 돌아다닌 거에요. 그렇게, 자기 창고에 놓아두고,
> 이 모으기 위해서 모으는 것, 모으기 위해서 모으는 것, 벌기 위해서 버는 것, 그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사람의 인생들을 향해서 성공한 것 같지만 대단한 것 같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그를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해요 너 어리석은 자여, 보아라 네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이야. 왜 이 사람이 어리석은 자가 되었을까요? 하나님 앞에 어리석다라는 결론을, 판단을 받았을까요? 두 번째는 이 사람은 물질로 자기의 영혼의 행복을 살 것으로 착각한 때문입니다. 물질로 영혼의 행복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때문입니다.
> 여러분 물질이 넉넉하면 인생이 편리하죠? 그런데 인생이 편리하다는 것은 인생이 뭐가 편리합니까? 육체가, 육신이 편리하죠? 우리 육체가 안락합니다. 좋은 집에서 살면 우리육체가 얼마나 안락합니까?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우리 육체가 훨씬 더 편리하고 안락하죠. 좋은 음식 먹을 가 있구요. 분위기 있는 좋은 식당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고,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영혼까지 우리의 속사람까지 행복할 수는 없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에요.성경은 우리에게 속사람이 있고 겉사람이 있다고 가르칩니다.우리의 속사람은 영혼이고 겉사람은 육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물질로 또 물질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조건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속사람 까지는 행복할 수가 없다 겉사람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속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물질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살 수가 없는 거에요. 물질로 삶의 의미를 살 수가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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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벳째르부르크, 피틀스북, 레닌그라드라고 한참 그랬죠? 녜. 벳째르부르크에 러시아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노인 한 사람, ‘아깍기에비치’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 참 재미있어요. 거죠? 녜, 아깍기에비치라는 노인네가 하나 있었는데 이 노인의 평생소원이 뭐냐? 누가 자기 인생의 목적이 뭐냐 그러면 이 노인은 한마디도 주저 아니하고 대답하기를 내 인생의 목적은 아주 고급외투를 갖는 것이라고, 고급외투,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밍크코트 하나 갖는 것, 인생의 목적, 아니 인생의 목적을 뭐 밍크코트 외투 하나 갖는 것에, 우리가 갖는가? 이렇게 따질 분이 여러분 가운데 계실지 몰라요.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돈 벌어서 좀 좋은 아파트에 한번 들어가는 것, 그것 하나밖에는 다른 생각 아무것도 없는 사람 있잖아요. 못 보았어요 여러분? 그런 사람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에 뭐 아주 좋은 자동차 하나 사는 것 ,혹은 인생에 어떤 자리하나 차지하는 것, 이 사회의 높은 자리,
> 제가 늘 저희 교회에서 설교할 때 자주 그 얘기를 합니다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조상 자랑할 때 우리 조상이 뭐 원님을 지냈다, 무슨 참판을 지냈다,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분이 그 자리에 있 는동안에 무슨 일을 했느냐? 어떤 기여를 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 자리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에요. 그냥 자리 차지하는 것, 좋은 집 갖는 것,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 노인네 목적은 고급 외투 하나 갖는 것, 고급외투 하나 갖는 것, 그래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동을 합니다. 드디어 80루불의 돈을 저축하고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드디어 그가 샀습니다. 외투를 왜 샀느냐 하면 외투 사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외투 입고 한번 고급사교파티에 등장하는 것, 드디어 그 돈으로 그 고급 외투를 사가지고 이 사람이 이제 파티에 참석해서 재는 거죠.
> 성공한 날이에요 인생의 목적을 이룬 날이죠. 녜, 그리고 너무 흥분해 가지고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외투를 뺏기죠. 이 사람이 강탈을 당합니다. 그런데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그는 성공을 강탈당하고 행복을 강탈당한 것입니다. 너무 너무 속상하니까 이 노인이 시름 시름 시름 계속 앓다가 드디어 죽어버립니다. 그후에 벳째르부르크에 추운 겨울날, 겨울이 되면 이 거리에 이 노인의 망령인 고스트가 나타나서 비명처럼 지르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고 그래요. 뭐냐하면, 내 외투! 내 위투! 하~ , 이 고걸리 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에~그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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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에서 삶의 어떤 현장에서나 우리가 늘 볼 수가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죠.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 소유 속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 행복은 나라는 존재에 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계속 속고 살고 있는 것 입니다.
> 성경에 창세기에 보시면, 맨 처음 책에 보시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두 가지를 가지고 만드셨어요.흙하고 하나님의 숨결 생기, 자,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하나님이 지어 만드셨어요,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지어 만드시고 하나님의 숨결, 숨을 불어 넣으셨다.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그랬더니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 성경이 가르칩니다. 이 흙이란 것은 물질이죠. 또 하나님의 숨결, 생기는 비물질입니다. 이 물질과 비물질이 합한 것 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물질과 비물질, 그래서 우리 육체란 것은 물질인데 물질은 물질의 양식이 필요해요. 육체는 육체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먹어야 살고, 오늘 저녁 우리도 먹고 왔습니다. 안먹고 와서 버티고 있는 분도 계시지만, 녜, 우리 육체는 육체의 양식을 필요로 해요 그런데 우리는 물질만이 아니라는 거에요.물질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기, 숨결로 우리 안에 불어 넣으신 영혼이라는 비물질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라는 이 비물질은 결코 물질의 양식으로 만족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뭐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말이 실감이 않나요.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떻게 떡으로만 살아? 밥 먹어야 살지, 여기선 떡이 밥이라는 뜻이에요. 떡이 밥이라는 뜻입니다. 밥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육체는 떡을 요구하고 밥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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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 우리 간증한 강형제가 성경말씀을 읽다가 거기서 하나님 만났다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 책을 읽으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까요?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을 만나요. 하나님을 만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요. 그리고 하나님으로 배불러집니다, 하나님으로.
>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보다 훨씬 더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더 필요한 거에요. 이건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것도 필요한 것이지만 더 필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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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내일은 탕자 얘기를 좀 설교때 할려고 그러는데요 탕자이야기 둘째 아들의 이야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주시는 것, 아버지가 나누어 주시는 재산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미리 땡겨 가지고, 아버지가 주시는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어요.그런데 나중에 가서 깨달은 것이 뭐냐하면 이 둘째 아들의 절실한 깨달음이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 내게는 아버지가 더 필요하다. 그걸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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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저는 그것을 잘 이해해요 저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제가 아들이 둘이 있기 때문에 잘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가 밖에 나갔다 오게 되면 언제나 조그만 무슨 선물 같은 것을 꼭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버릇이 되니까 꼭 뭐 선물 사달라고 아이들에게 요청을 받기도 하고,
> 한번은 제가 꽤 오래되었는데요. 영국을 가게 되었어요. 집회 때문에, 그런데 우리 아들이 한 이틀 전부터 제가 떠나기 전부터 조르더라구요. 아빠, 이번에 영국가면 영국 병정 사다줘, 그러더라구요 영국 병정, 그래서 영국 병정이 뭐니? 그러니까 까만 모자에다가 빨간 제복 딱 입고 서있는 영국병정 말이야!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의 체면을 세우느라고 오케이,알았다고 내가 사줄게, 그냥 쉽게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이제 아~비행기 타고 런던에 내렸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 했을까요? 녜? 아들하고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할 것 아니에요?.제가 괜찮은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아 며칠 전에 그냥 ‘가시고기’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김형준 목사님 읽어보라고 하나 갖다주었고, 괜히 읽어가지고 그냥 속상해 가지고, 왜 저도 그러니까 아이들한테 그래, 내가 영국병정 사다줄께 약속을 했으니까 딱 내리는 순간 영국병정 생각나는거에요. 영국 병정 어디서 사나? 어떻게 사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 입니다. 그런데 목사체면에 제가 집회 인도하러 와서 부흥회 인도하러 와서 영국 병정 파는데 있어요?하하~ 뭐 이런 말 하기가 너무 너무 그 좀 챙피하고, 그러니까 혼자서 살짝 살짝 기회 있을 때 마다 보는 거에요. 호텔 안에 가게에 가서 여기 있나 보니까 없어요. 지나가는 가게 혹시 있으면 잠깐이라도 들어가 볼려고 눈여겨봐도 없어요. 시간은 흘러가요. 한 나흘, 집회가 다 끝나고 그런데도 계속 찾지를 못하고 있었어요.그러니까 뭐에요 심지어는 설교하러 와 앉으면서도 영국병정 생각이 나더라구요 나중에는, 나중에는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영국병정, 녜, 환상만 이렇게 가득했습니다. 계속 영국병정 생각이 나서, 아이구 집에 갈 시간이, 우리아들 만날 시간이 초조하게 가까워지는데 얼마나 속상해요 녜, 드디어 마지막 기회, 내가 저 런던 히드로 공항에 가서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보자, 그래서 공항에 가자마자 가방 같이 오신 분한테 맡겨놓고 저 화장실 좀 갖다올께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단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재빨리 나와 가지고 가게로 딱 들어가서 영국병정 있느냐고 설명을 한참 하니까 고개를 끄떡 끄떡하더니 없데요. 그게 얼마나 절망이에요.아이 그래 정말 없습니까? 그러니까 아, 가게가 또 하나 있대요 공항 안에, 그런데 거기가면 그 스토아에 있을지도 모른데요. 그래서 또 다시 저를 마중 나온 사람들의 그 눈초리를 피해서, 하하~ 다른 끝에 가 있는 스토아를 찾아내었습니다. 거기 들어가서 영국병정이라니까, 있어요! 할렐루야! 하하하~ 녜, 드디어 영국병정을 샀습니다. 녜 몇 개 되는 것을 딱 사가지고 집에 왔어요. 그래서 초인종을 아주 힘있게 탁 눌리니까 제 아들이 둘인데, 항상 둘 기르면 둘째가 먼저 튀어나오죠?.녜,그 둘째가 오바엑션을 합니다. 첫째 자리를 빼앗긴, 그것을 보상할려는 그런 심리 때문에 이 둘째 아들에게는 항상, 소위 제가 말하는 야곱 신드롬이 있습니다. 제이콥 신드롬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둘째가 탁 튀어나오더라구요. 그러더니 그냥 아빠!하고 그러고는 안기더라구요. 아이구, 너무 좋은 것 있죠? 그럴때마다 아, 아빠가 된 것 행복하다. 장가들기를 잘했군, 잘했어, 확인하는,아주 그런 행복한 순간이였어요. 그런데 딱 안고, 아빠! 그러자마자 그 다음에 아니나 다를까 제가 예측은 했는데 시선이 45도로, 탁 가방을 째려보는 거에요. 그러더니 아빠! 영국병정, 그러더라구요. 제가 어떻게 한 것 같아요?그래, 꺼내 가지고 여기 있다! 영국병정, 그리고 안겨다 주었어요. 그러니까 뭐 제가 이제 미국에서 살 때니까 ‘땡스’ 그러더니 제방으로 탁 들어가더니 문 탁 닫고 두 번도 다시 저를 쳐다보지 않더라구요. 여러분 그때 제가 느낀 그 고독들 이해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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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놈의 자식이 기다린 게 아빠를 기다린 게 아니라 그 영국병정, 아빠가 사주는 선물만 기다렸구나, 제가 그 에피소드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 하나님이 주시는 명예, 하나님이 주시는 그 무엇을 항상 구하고 살지만,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사실은 하나님만 있으면 부요한 거에요. 그것이 행복이에요. 하나님만 있으면, 이 행복의 비밀을 아는 사람의 고백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구약에 시편 23편에,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어라”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창조하시고 이 만물을 붙들어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길에 목자가 되어 나를 인도하신다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또 시편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하나님을 찾기에, 하나님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만 있으면,아버지만 있으면 다 되는거에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가 필요해요. 아버지가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어거스틴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영혼이 당신에게로 돌아가 당신의 품안에서 쉴 때까지는 나에겐 진정한 쉼은 없습니다”.
>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안에 돌아가 그 하나님 품에 쉴 때 까지는 나에게 진정한 안식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에 나타난 이 어리석은 부자, 물질로 행복을 살 수가 있다구요? 행복은 하나님을 소유하는데 있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만남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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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성경에 나타난 이부자가요 또 어리석은 자라는 하나님 앞에 마지막 선언을 받았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세 번째로 자기 영혼을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이 부자는 자기의 목숨이 언제라도 이세상에서 그칠 수 있다, 여러분 오늘밤이라도 내 생명은 끝날 수가 있다 그걸 아세요? 우리가 자주 잊어버립니다. 내가 지금 건강하니까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지나가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지나가요.
> 저 유명한 솔로몬의 고백,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기서 헛되다는 단어가 본래는 그 겨울에 우리가 밖에 나가서 차가운 공기에서 후~하면 우리 그 숨이,호흡이 포물선을 그리고, 잠시 후에 사라져버립니다. 그런 것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단어예요. 헛되다는 단어가, 그래서 성경에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이것이 인생이거든요.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우리가 잊어버려요.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우리가 착각한 것 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그렇게 떠나간다면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할텐데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안한 것 입니다. 내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준비를 안했어요. 가장 중요한 준비를,
> 사실 성경에 나타난 이 어리석은 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든 사람, 농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현제의 곡간으로 이 곡식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곡간을 넓히는 개조작업에 착수했든 사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든 사람,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었든 사람이에요.
> 그런데 다른 건 다 준비하면서, 우리 자식들 출가시킬 준비, 사업준비, 사업확장준비, 내 인생의 노후의 준비, 다 준비를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준비, 하나님을 만날 준비, 죽음의 강을 건너갈 준비, 내 영혼을 지으시고 창조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설 준비, 그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않았단 말에요.이부자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마지막 어리석은 자라는 이 선언을 들을 수밖에 없었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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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8년 그때 북구라파의 정치도 경제도 매우 혼돈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혼돈의 와중에서 아주 특별한 사업을해서 특별하게 돈을 번 아주 특별한 사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이름이 펄스트 네임이 알프레드 라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어느날 아침에 눈을 딱 떠서 조간신문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냥 그기에 자기 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뭐냐하면 이 알프레드가 죽었다, 자기가 죽었다는 거죠. 자기 사망 신문 기사가 난 거예요. 자기의 사망 기사가. 그런데 사실은 이 사람의 아우가 죽었어요. 이 사람의 아우가 며칠 전에 죽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신문보도란 것이 정확하지 않아 가지고 착각을 일으켜 가지고 이 사람이 죽은 걸로 알려진 거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다아나마이트 제조업자였습니다. ‘죽음의 상인 죽다’ 그렇게 나온 거에요. 죽음의 상인 죽다 그 짧은 몇 줄, 다이나마이트, 폭발 제조업으로 돈을 벌었든 부자 알프레드가 죽다, 자기의 사망의 기사를 본 거죠. 자기의 사망의 기사, 그러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아, 내 인생의 결산이 이런 거구나, 내가 돈 좀 벌었지만 그 다이나마이트 폭발제조업으로 돈을 벌어서 내 인생 살다가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 앞에 이렇게 기억 되겠구나, 이 죽음의 폭발물을 제조해서 돈 번 부자 죽다 끝, 이것이 자기 인생의 결산이란 말이죠. 너무나 충격을 받았어요. 야,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내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결산될 수는 없다, 이렇게 기억될 수는 없다, 그래서 자기 재산 정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재산을 유익하게 써야겠다, 그리고 내가 죽었을 때 인생이 다르게 결산 되어야겠다. 그리고 유언서를 작성합니다. 이사람이 그 사건이후 꼭 8년 후에, 8년 후에 그러니까 1896년에 죽었는데요 그가 죽었을 때 유언을 따라서 그의 전 재산이 기증이 되어서 그게 바로 뭐냐하면 노벨 피스 프라이스,노벨상, 알프레드 노벨, 알프레드 노벨,
>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할까요?녜, 어제,하하~ 발표된 우리 김대중 대통령님의 노벨평화상 수상,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적인, 이 상(賞)을 사모하고 이 상을 받은 것을 온 국가가 떠들석하게 불꽃놀이를 하면서 경축하는 놀라운 상, 인류역사에 문화에 과학에 기여를 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상은 이사람, 최고의 이 노벨, 이 피스프라이즈 만은, 이것은 직접 자기 당국들의 손에서 결정되도록 하는 영광스러운 이 상, 그는 그의 유언을 따라서 드디어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기여한 사람들에게 이상이 제공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노벨을 다르게 기억합니다. 노벨이라는 이름을 다른 인물로 기억합니다. 자기 재산을 참 유익하게 썼든 사람,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정말 기여하는데 썼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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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오늘 성경에 나타난 이 부자에게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만나주시든 그 밤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이 하나님의 물음 앞에 성경에 나타난 부자는 침묵했습니다. 아무런 대답을 못한거죠.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리니,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루 찾아가리니,
> 오늘 밤 만약 하나님께서 여기계신 여러분의 목숨을 거두어 가신다면 오늘 밤에 심장이 멎는다면, 내 육체는 영혼에서 분리됩니다.여러분의 영혼은 어디로 갈까요? 이 준비가 되어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영혼이 구원받은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다. 왜 죽음을 피할 수 없을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 결정된 죽음, 아무도 죽음을 넘어설 수 없고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 성경은 죄가 죽음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 때문입니다. 죄가 죽음을 가져왔어요.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왜요? 이 죄 문제를 해결할려고, 죄 문제, 죄 문제 해결할려고 무슨 뜻입니까? 이미 범한 죄를 죄 안 범한 상태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죄 문제의 해결은 죄를 용서받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저가 범한 그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시고 보배로운 피를 떨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용서해주시기로 하나님이 작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면 우리는 용서 받은 자가 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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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러분,하나님은 우리가 용서 받고 구원 받는 것, 용서 받은 자로서 천국에만 가는것 이것은 구원의 소극적인 목적이에요.그것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용서 받고 가까스로 천국에만 가는 것,하나님은 그 정도를 원하시지 않아요.구원은 소극적으로는 죄사함 받고 용서 받고 천당 가는 것이지마는 구원의 적극적인 사이드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목적은 뭐냐하면 용서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신나게 사는 것,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살면서 보람과 기쁨과 그리고 놀라운 즐거움과 흥분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내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 함이라.” 내가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당만 가는 것을 원하실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풍성한 삶, 풍성한 삶, 넘쳐 흐르는 삶,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평안으로, 감격으로, 의미로, 내 인생의 잔이 넘쳐 흐를 수 있는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셨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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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영향을 지독하게 많이 받았든 인도의 유명한 시성 타고르는 그가 쓴 시 가운데서 이런 주옥 같은 시의 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님에게 생명이 가득찬 그릇을 갖다 올리겠습니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생명이 가득찬 그릇을 내 사랑하는 님에게 갖다 바치겠습니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문을 두드릴 때 나의 창조자 하나님 앞에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또 예수 믿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았든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하나님 앞에 바칠 준비가 되어계십니까?
> 어느날 부자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든 하나님,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의 어느날 반드시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하는 그 순간이 찾아옵니다. ‘오늘밤이야! 너는 이제 내게로 와야돼’ 어때요? 하나님 앞에 서실 준비가 되어계신지요?
>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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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같이 머리 숙여 기도하시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이렇게 결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제가 많이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제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저를 용서해 주시고요.
> 하나님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로가신 예수님, 못 박히신 예수님, 날 대신해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 피흘리신 예수님, 그 거룩한 피로 저희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계신 예수님 제 마음의 문을 엽니다. 제 마음 속에 오시옵소서. 나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주십시요.
> 저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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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이 아름다운 결심을 한 분들을 축복해주시옵소서. 그들이 확실한 신앙을 갖게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마음속의 모든 의심이 사라지게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확정되게 하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로 믿으지게 도와 주옵소서. 내가 이제 예수님을 마음속에 초청했을진데 눈에는 아무것도 뵈지 아니해도 약속을 지키시는 예수님 성령으로 내 마음 속에 찾아오시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 저들의 손을 붙잡아 동행해주시고 함께 해주시옵소서 축복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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