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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마지막의 시작/ 마가복음 13:1-8

by 【고동엽】 2021. 12. 23.

마지막의 시작
마가복음 13:1-8


여러분, 마지막 혹은 말세 이런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 까? 아마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맞 아, 말세야. 너무 심각하게 이것을 받아들인 나머지, 정말 성경 말씀대 로 세상이 곧 끝난다면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든지 직장에 나간다든지 사업을 한다든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것 을 다 집어치우고 주님 재림준비나 하자. 기도하자. 아주 현실도피주의 적인 비관주의적 삶의 자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한사 람들이 역사에 적지 않습니다. 지금 도 기억에 생생한 92년도 인가요? 그때 10월 달인가, 휴거소동이 한참 벌어졌죠? 다미 선교회 사건, 다미 선교회 다미는 다 미친 선교회. 다 베라 선교회, 다 버린 사람들의 선 교회가 주도해서 벌렸던 수년 전의 사건을 우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 억합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 들은 이런 말세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것을 상징적인 구호로 밖에 생각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말세를 안 믿는 교인들도 없지않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말세는 무슨 말세야? 세상은 이렇게 잘 돌아가고 굴러 가 고 있는데. 지금 IMF만나 힘들기는 하지만 세상이 계속되겠지? 이런 사 람들은 2000년, 새로운 천년, 밀레니 움 이런 단어를 들으면 자, 세상이 바뀌니까 주님 오실 때가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보다도 밀레니움 그러면 나도 이런 기회에 밀레니움 베이비나 하나 만들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이런 말 세라는 단어에 대해서 전혀 심각하 게 취한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적 어도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이 오기 전 까지 그랬습니다. 13장 1절로 이 렇게 시작하는데 '예수께서 성전에 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 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 성전에서 나오다가 성전 건물을 보더니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께 이 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이 성전 건물은 영원히 있겠죠?' 그 당시 소 위 제 3의 성전 물론 이것은 The Second Temple 제 2의 성전이라고 불리워지던 것을 다시 개축한 것입 니다마는 그 당시 헤롯, 팔레스타인 을 통치하고 있던 헤롯 대왕은 이 성전을 다시 만드는 일에 개축하는 일에 무려 46년 동안 시간을 드렸습 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시면 46년 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 여러분 46 년동안 한 건물에 투자해 보십시요. 그 건물이 얼마나 굉장한 건물이 겠 습니까?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정말 굉장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 서 이스라엘 민족들의 자부심,프라 이드. 자긍심을 가질만한 그런 대단 하고 견고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 서 이 건축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은 이 예루살렘 성전만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건물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라 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요세프 스라는 학자 유대인학자의 글을 읽 어 보면 그 당시 예루살렘성전을 다 시 개축하고 건축할 때 쓰여진 성전 돌 하나가 어떤 돌들은 길이가 무려 12미터, 또 세로가 6미터, 넓이가 3.6미터, 그리고 높이가 무려 6미터 나 되는 돌 하나가 그런 굉장한 어 마어마한 돌들이 씌여졌습니다. 성 전뜰은 대리석으로 깔았고 문은 구 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결코 이 성전은 무너지지 아니할 성전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예수님은 이런 성전도 한 순간 무너 질 수가 있다 아니 무너질 것이다. 백성들의 죄 때문에 이 성전은 결국 은 무너진다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 니다. 제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이었 을까요? 성전이 무너진다고? 그때 제자들의 생각은 이렇게 또 비약하 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이 무너진다 면 세상도 무너질 수가 있구나 이 세상도. 그래서 오늘 본문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을 취급하고 있는 마태 복음 24장 3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 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라는 질 문을 던졌습니다.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까 요? 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최후와 함께 세상의 최후를 더불어 함께 경 고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무 너지고 그래 세상도 무너진다. 그리 고 그 무너짐의 징조가, 싸인이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 렘 성전의 무너짐을 통해서, 성전의 최후를 통해서 세상의 최후의 본보 기를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은 세상의 최후의 한 본보기가 패러다 임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 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 대로 정확하게 AD 70년 서기 70년 그 당시 로마의 황제인 베스파시아 노스 황제의 아들이었던 티도, 타이 토스 Titus 티도장군이 이끄는 로마 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후 에 이 성전을 예수님 예언하신 그대 로 돌 하나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뜨렸어요. 무려 예루살렘 거리 에서 백만의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성전에서 남은 것이 서 쪽 벽 하나 남았어요. 서쪽 벽, 그 벽이 무슨 벽입니까? 통곡의 벽, 유 명한 통곡의 벽이예요. 지금 그래서 여러분이 예루살렘에 가시면 지금은 서쪽의 벽, 통곡의 벽, Wailing Wall이라고 불리워지는 통곡의 벽 하나 만져 볼 수가 있습니다. 성전 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유대인들 은 그 통곡의 벽에다 기도 제목을 집어 넣고 울면서 지금도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이 주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무너졌다면 세상도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날이 온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준비가 중요 합니다. 어떻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가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그 마 지막을 준비할 수가 있을까요? 자, 오늘 본문은 이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 된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이예요. 두 가지 를 이해할 것을 가르칩니다.

첫째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이 해하라. 두번째는 마지막 때의 비밀 을 이해하라. 징조와 비밀. 자, 우리 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우리는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 에 보시면 여러가지 징조들이 나와 요. 그런데 우리가 읽은 본문까지 즉 8절까지 보면 세 가지 대표적이 고도 보편적인 마지막의 징조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징조들 은 마지막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우 리가 자세히 읽어보면 7절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어요. '난리와 소문 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 이 있어야 하되' 그 다음 뭐라고 그 랬습니까? '끝은 아직은 아니다' 또 8절을 보세요. '민족이 민족을, 나라 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나겠고 처 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 니 이는 재난의 뭐라 그랬습니까? 재난의 시작이다. 끝은 아직 아니고 재난의 시작이다. 다시 말하면 마지 막의 시작.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 목에 마지막의 시작이다.

우선 우리가 이 마지막의 개념을 성경적으로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 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마지막을 생각 합니다마는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지막이 언제 일까요? 히브리서 1 장에 보시면 히브리서라는 책이 열 리면서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구약시대에 여 러 선지자들을 세워서 여러가지 모 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 모 든 날 마지막에 그랬어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세워서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성 경에서 마지막이라는 개념을 예수님 이 오셨을 때가 마지막이 시작된 거 예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러니까 오늘이라는 시점에서만 생각하면 안 되고 역사의 전망 그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지막이 언제 시작되었습니 까?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리고 한 참 흘렀죠? 그러니 지금은 마지막의 마지막 쯤 될거예요. 그래서 우리 선배들이 사용한 독특한 표현 가운 데 末世之末이라는 표현을 썼습니 다. 마지막 중에서도 마지막이다. 예 수님이 마지막이 가까운 징조들을 보여주십니다. 이 징조라는 것은 사 실은 그 때만이 아니라 그러니까 과 거에도 있었어요. 예수님 때에도 있 었고 어느 때나 있을 수 있는 징조 들이예요. 그러나 이 징조들은 점점 예수님이 가까이 올 때가 가까울수 록 그 징조가 빈도가 잦아지고 스케 일이 더 커지다. 그래서 그 클라이 막스가 뭐냐하면 마지막에는 이 지 구상에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창세 이래로 없었던 환란이 다 가온다. 우리가 마가복음 13장을 계 속해서 읽어보시면 19절에 '창세 이 후로 없었던 커다란 환란, 그래서 이것을 대 환란이라고 보통 말하는 데 큰 환란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 계속 읽어보시면 24절 '그 때에 그 이후에 바로 그 이후에 예 수님이 오신다. 26절에 그 때에 인 자가 구름을 타고 드디어 오신다.라 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 다. 다시 말하면 지금 말씀드린 이 징조들은 지금만 일어나는 것은 아 니고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 을 거예요. 이 징조는 어느 시대에 나 있을 수 있는 징조들인데 그 징 조가 빈도수가 잦아지고 그 스케일 이 커진다. 그래서 그것이 미증유의 한 환란을 형성하고 그리고 예수님 은 곧 오실 것이다. 이렇게 성경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유명한 J. F.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White House 의 첫번 째 손님 중 에 한 사람이 빌리그래함목사님이었 습니다. 그 때 케네디는 빌리그래함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 다. '목사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 습니까?'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가 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는 어떤 정 치적 대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 다. 이 때 빌리그래함목사님이 역사 는 예수님의 재림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종교인의 상투적인 대답으로 일축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리그 래함목사님의 대답은 역사의 진실입 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보면 그렇습 니다.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 그 동안에 세 가지 징조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더 크게 더 크레 센토로 더 큰 스케일로 이런 징조가 커질 것이다. 자. 이 세 가지 징조. 첫째는 무슨 징조냐? 종교적 미혹의 증가입니다. 5-6절을 같이 한 번 읽 어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 을 미혹게 하리라' 예수께서 이르시 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종교적 미 혹입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 서 뭐라고 말한다구요? 내가 그다. 내가 메시아다.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단, 이단의 유혹, 종 교의 유혹, 미혹 잘못된 종교의, 거 짓된 종교의 미혹은 어느 시대나 있 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점점 더해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 까울 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 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들이 아 니라 복수가 아니라 'the antichrist' 한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될 것이 다. 이렇게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 다. 나는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 이것이 사단의 사주를 받아서 마귀 의 종노릇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 고 또 세상이 불안하니까 정신착란 으로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도 많아 질 수가 있겠지요. 그래서 이런 휴 머가 있쟎아요. 제가 전에도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어떤 정신병 자가 늘 하는 소리가 정신 병원에 들어와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같은 병원 안에 들어가 있지마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하두 듣기가 싫 어서 어느 날 그러더래요. '야, 나는 너 같은 아들 둔 일이 없다.' 그 사 람이 더 문제지요. 이런 종교적인 미혹은 예수님 당시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이후에 더해집니다.

정확하게 역사를 읽어보면 AD 44년경에 유대땅에 드다라는 사람이 일어나요. 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지 않아요? 드다를 아는 사 람은 평소에 성경을 괜찮게 아주 자 세히 읽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어 요. 사도행전에 보면 그 이름이 나 와요. 사도행전 5장 36절에 나오는 인물인데 AD 44년이면 예수님 돌 아가시고 나서 한 10년 쯤 지나서예 요. 이 사람이 자기가 부활하고 승 천하셨던 예수님의 환생이다. 예수 님이 다시 오신 것,자기가 재림한 메시아라고 주장을 했어요. 아주 확 신있게 주장을 하니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희한하죠? 그 런 소리하면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요. 저는 이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래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생 겼어요. 한동안 유대 땅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드다라는 인물이. 그 런데 그 시대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 런 재미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던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이 이 드다라는 사람에게 가 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 다시 온 메시아라면, 다시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당신의 손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손에 십자가 에 못박혔던 못자국이 있다면 당신 은 진실로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 일 것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의 손을 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망갔다고 그래요. 이런 종교적인 미혹은 점점 더 예수님 재림 때가 가까울수록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수 많은 가짜 메시아가 들어날 것입 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the antichrist 적그리스도 한 사람이 출 현할 것입니다. 마귀의 평생 소원이 뭐냐하면 예수님 카피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쟎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 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마귀도 정말 예수님처럼 육신을 입고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에 세계적 영 향을 끼치는 the antichrist 가 등장 할 것이다. 이렇게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미혹의 증가 이것 이 한 중요한 징조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징조는 사회 적 혼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7 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여러가지 유형의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특별히 전 쟁, 전쟁이 증가된다. 아니 전쟁이 없었던 때가 어디있었어요? 전쟁은 항상 인류역사 속에 있었지요. 우리 가 분명한 기록으로 확인 할 수 있 는 구체적인 역사 지나간 한 5천 5 백 년의 역사를 보면 그 동안에 14,530번의 전쟁이 역사 속에 기록 되고 있습니다. 평균 한 해에 2.6회 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할 수가 있습 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빈도가 잦 아지고 스케일이 자꾸만 커져갑니 다. 파괴력도 커져가죠? 주전 54년 에는 적군 한 사람을 죽이는데 75센 트가 들었어요. 그러나 나폴레옹 시 대에 오면 적군 한 사람을 죽이는데 3천불이 들었습니다. 세계 제1차대 전에는 적군 한 사람을 죽이는데 2 만불이 들었습니다. 세계 제2차대전 때는 적군 한 사람을 죽이는데 소모 되는 비용이 2십만불이었습니다. 미래 학자들은 예측하기를 만약 제 3차 대전이 발발한다면 한 사람의 적을 죽이는 일에 적어도 백만불 이 상이 소모될 것이다. 파괴력이 더한 전쟁을 향한 역사의 흐름을 우리는 지켜 보게 될 것입니다. 1990년 대 에 우리가 진입했을 때 소위 동서 냉전 구도가 해체되었습니다. 공산 주의가 갑자기 무너지고, 공산주의 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성급한 어떤 사회학자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의 유토피아가 도래한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허구였습니다. 성경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동서 냉전구도가 해체된 다음에 지 구 상의 여러 곳에는 더 많은 국지 적 전쟁들이 발발하기 시작했습니 다. 지금 이 순간도, 평안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순간도 유고땅 코소 보지역에는 포탄이 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을 향해 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과 사람의 지혜는 결코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사람의 힘만 으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증가하는 빈도, 파괴력을 더해가는 전쟁의 발발, 이것은 역사 가 바로 그 분이 예언한 대로 그 마 지막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는 구체 적인 증후, 싸인의 하나입니다.

또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자연적 재앙입니다. 8절을 읽어보겠어요.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 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 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자연의 재앙 가운데 특 별히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뭐예요? 지진과 기근입니다. 지진과 기근이 증가된다. 우리가 지진의 역 사를 보면 현대에 올수록 그 지진의 횟수가, 빈도가 증가됩니다. 물론 스 케일도 커지구요. 18세기에는 지진 이 전 세계를 통해서 640회 일어났 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서 2,119번 일어났어요. 그런데 여러분 20세기에 들어와서 지진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알아요? 기록된 보고된 지진의 횟수만 무려 2만 번에 달합 니다. 열 배가 뛰었어요. 우리는 한 반도는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그 동 안 생각했습니다만 더이상 한반도는 지진에서 자유하지 않다. 보도가 나 오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또 하나 성경은 자연의 재앙으로서 기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근. 우리는 바 로 코 앞 문턱에서 한반도의 절반 북녘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근의 참상을 보고 받고 있습니다. 최근 수 년간 북녘 땅에서 3백만명의 사 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먹지 못해서 죽은 사람이 무려 3백 만명. 우리가 편안히 예배를 드리고 졸고 있는 순간에도 북녘 땅 창자를 자기 창자를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접경 지대를 떠돌고 있는 북녘 땅의 어린 소년 소녀 꽃제비들의 모습이 우리의 눈망을 슬프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바람이 불고 번개가 나고 벼락이 치면 우리는 큰 비를 예상해 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해 야 당연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징후들을 우리가 볼 때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마지막이 가까워 오고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과 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때의 징후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싸 인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커다란 두 번째로 우리는 마지막 때의 비밀을 또한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비밀, 이 비밀은 시간과 관련이 있어요. 그 마지막 때가 언제냐? 그게 비밀 이다 이 말이예요. 그 때는 잘 모른 다 이 말이에요. 자, 마가복음 13장 32절 말씀을 같이 한 번 읽어보세 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 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 다미선교회 사건이 92년 도에 일어났을 때 선교회 들어갔던 사람과 제가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제가 이 말씀을 보여 주었어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는데 왜 자꾸 날짜를 예언하고 지정하느냐? 그랬더니 목사님 성경 도 모르십니까? 그 날과 그 때 그러 니까 날짜와 시간은 모르지만 그 년 과 달은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러더라구요. 참 희한해요. 이런 괴변 이 통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 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꼭 그 날과 그 때만 모른다는 것은 아니지요. 그 시간을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신 이유,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모르기로 작정하신 이유,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33절 그 이하의 부분의 내용이 그 이유, 그 비밀의 이유를 전달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절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 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 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 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 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 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어떤 주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종들에게 일감을 맡겼습니 다. 내가 반드시 돌아 온다. 그 때까 지 열심히 내가 맡긴 이 땅을, 내가 맡긴 이 살림을, 이 일을 돌보아 주 시오. 내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 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돌아와서 여러분과 결산하기를 원합니다. 왜 주인이 돌아 올 때를 지정하지 않았 을까요? 지혜로운 주인이예요. 그는 인간이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 다. 인간의 간교함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나도 그랬을 거예요. 주인이 어느 날, 어느 때 온다 딱 얘기하고 갔으면 한동안 땡땡이를 하다가 주 인 올때가 되면 갑자기 긴장해서 왜 냐하면 저는 항상 벼락치기로 공부 했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오실 것을 비밀로 해 두었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합니 다. 그는 오늘밤에 오실 수도 있다. 그는 내일 오실 수도 있다. 자, 이 생각을 함으로써 우리는 날마다 준 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그것이 주인의 의도입 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가리켜서 신학자들은 종말론적 삶의 태도라고 부릅니다. 종말론적인 삶. 종말론적 인 삶이라는 것은 말세가 온다고 해 서 막 공포에 떨어서 집안살림 정리 다 해 갖고 기도원, 산 속으로 사라 지는 것 그게 아니고요. 종말론적 삶의 태도라는 것은 주님은 오늘 밤 오실 수도 있다 그가 언제 오더라도 그 분을 맞이할 수 있는 당당한 삶. 그 분이 언제 오셔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날마다 준비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름을 대면 여러분도 알만 한 여류 문학가 한 사람을 제가 알 고 있는데, 여 집사님이신데 이 분 이 어느 날 암진단을 받습니다. 자 기는 몰랐는데 병원 밖에서 식구들 이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아! 내가 암에 걸렸구나. 알았어요. 6개월 남 았다는 거예요. 6개월, 그런데 그 분 이 그렇게 공포에 떨지 않았다고 그 래요. 믿음의 사람이고, 기도하는 사 람이었기 때문에. 자, 준비하자. 6개 월 밖에 남지 않았다면 준비해야 되 지 않겠는가? 그래서 부지런히 준 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돈 꾼 것 다 갚고 또 만나 볼 사람 만 나 보고, 그 동안 관계가 서먹했던 사람들도 좀 풀고, 그리고 좀 식사 대접할 사람은 대접하고 부지런히 자기 삶의 주변을 준비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런데 병세가 더 나빠지지 않는 거예요. 이상하게.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라고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진 단을 받아 봤더니 오진이래요. 암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 사람들이 억 울하지 않으시냐고, 그 동안 돈도 많이 쓰고 참 손해 보셨는데 억울하 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 분이 그런 대답을 하시드라구요. 아니예요. 목 사님, 저는 지나간 6개월이 제일 행 복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생 중에서 지나간 6개월 처럼 내 인생 을 그렇게 진지하게 살아간 때가 없 었습니다. 나 정말 진지하게 지난 6 개월을 살았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마음을 가지고 나머지 일생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러 더라구요. 나머지도 이런 자세로 살 아 갈 수 있도록. 오늘이 마지막이 라는 심정으로. 오늘 내 일생의 마 지막이온다면 나는 어떻게 내 삶을 준비할 것인가? 로마의 한 황제는, 지혜로운 황제였습니다. 신하들에게 자기를 알현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이런 인사를 하게 했다고 그러죠. 폐하여 죽음을 기억하시오. 그래서 자기의 삶을 그 신하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자기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그 종말 앞에서 삶을 준비하고 싶어 했던 이 지혜로운 한 황제의 고백을 접합니다.

세계 제2차대전 때 맥아더 장군 이 남태평양 필리핀 군도를 떠나면 서 그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 람들에게 이런 유명한 한 마디의 말 을 남겼습니다. 'I shall return.' 나 는 돌아 올 것입니다. 나는 돌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은 약 속을 지켰습니다. 그는 일본의 식민 지 통치에서 신음하고 있었던 아시 아의 민중을 해방하는 해방자로서 당당히 그는 다시 돌아 왔습니다. 한 장군이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있 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 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의 모든 예언이 지금까지 적어도 그 가 예언하신 예언들 가운데 공 예언 이 없었고,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고, 성경을 challenge 하는 그 수 많은 사람들의 그 성경의 challenge가 성경을 능가하지 못하 고 아직도 굳게 서 있는 성경 예언 의 성취의 주인공이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기를 나는 반 드시 돌아 올 것이다. 'I shall return.' 나는 돌아 올 것이다. 약속 하셨다면 그 분은 반드시 돌아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재림을 믿습 니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재림할 것입니다.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분은 오늘 밤 오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 분이 언제 오시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그 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삶을 준비하셨습니까? 어떻게 준비할 수 가 있습니까?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그의 영 이신 성령을 보내서 예수 없이 인생 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갖지 못하 고, 단기간의 오늘 하루하루의 삶에 매달려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불 안해 하는 인생들에게 그는 구원과 희망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문을 열고 구세 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 그 예 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그리고 육체적으로 역사와 시간과 공간 속 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그 분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그 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오늘의 삶을 준비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구체적인 삶의 장에서 하나님의 말 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주께 서 오늘 밤 오셔도 주님 할렐루야 제가 준비되었습니다. 저 주님 따라 가겠습니다. 이 마지막 준비가 되어 계십니까? 기도하십시다. 조용히 머 리 숙여 기도하시면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언제라도 오실 수가 있습니 다. 아니 내가 주님 앞에 언제라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급격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갑 자기 주님은 오시고, 또 우리도 어 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 분 앞 에 갈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이 언제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은 당 당한 삶, 깨끗한 삶, 정갈한 삶을 준 비하고 살아가는 인생, 하나님, 준비 하고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 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 나님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우리 마 음 속에 임하시고 우리의 삶을 준비 시켜 주시사 그 분 앞에 합당한 우 리의 삶이 준비되도록 역사하여 주 시옵소서. 오,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 고 주의 권능으로 함께 하시고 우 리의 삶이 주 앞에 합당한 인생으로 준비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언제 오셔도 부끄럽지 않은 그 삶이 준비되도록 성령으로 역사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은 뛰고 있는 내 심장 그러나 언제라도 한 순간 내 심장은 멎을 것입니다. 그 리고 나는 주님 앞에 서서 내 생애 를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내 인생이 부끄럽지 않은 인생, 예 수 믿고 변화되어 주님 섬기고 주님 증거하다가 살아온 인생 빛나고 아 름답고 그리고 신실되고 거룩한 인 생 예수님 때문에 변화 되었고 예수 님 때문에 행복한 인생 아버지 하나 님 이런 인생의 결산을 우리에게 허 락해 주시옵소서. 그 마지막을 준비 하며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늘이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첫 날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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