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받은 낭비
마가복음 14:1-11
제가 퀴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자 분들 가운데는 이제 중간계층 이 제일 많지만 더러더러 아주 잘 생긴 여자 분이 있고, 아주 안 생긴 여자 분이 있지요? 그런데 아주 잘 생긴 여자나 아주 안 생긴 여자 분 이 화장을 하는 것을 여러분, 경제 적인 용어로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 까? 아주 잘 생긴 여자나 아주 안 생긴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 그걸 경제적인 용어로 '낭비' 라고 말합 니다. 제 말이 깨달아지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워낙 오리지날이 좋으신 분은 화장해서 오히려 구길 수가 있 어요. 그대로가 좋잖아요? 또 어차 피 노력을 해도 개선의 여지가 없 다, 그것 괜히 낭비가 아니예요? 낭 비죠. 그대로 있는 것이 차라리 절 약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아 침 와이프가 자꾸 뭘 하길래 낭비하 지 마십시오. 그랬습니다. 둘 중에 하나예요. 둘 중에 하나.
저는 오늘 낭비와 절약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절약이라는 것은 성서적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성경은 절약의 중요성을 가르 칩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을 일으키셨을 때 그 기적의 현장에 서 예수님께서는 그 버리는 것이 없 도록 잘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래서 열 두 광주리에 차고 넘치도록 잘 거두었다. 바로 이 대목을 주해 하던 유명한 개혁자인 죤 칼빈은, 요한 칼빈은 - 불란서 사람들은 깔 뱅이라고 하더라구요 - 칼빈은 여 기서 바로 절약의 정신, 혹은 저축 의 정신을 찾았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이 잘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은 매 우 성서적이다. 이런 이론을 전개했 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 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 거기 서 끝나요? -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그 열 매 가운데 마지막에 강조된 것이 바 로 뭡니까? 절제입니다. 절제! 성령 이 역사할 때 절제의 삶이 있다. 기 독교 선교기관 가운데 '절제회' 라 는 것이 있지요? 그래서 절제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 한국의 대표적 인 기독교 기관인 YMCA나 YWCA 가 한국근대사 개화기부터 소위 절 약운동에 앞장 서 왔다는 좋은 전통 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존재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외가 없이는 숨쉴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될 수 밖 에 없습니다. 지나치게 원칙중심으 로만 나가다 보면 율법주의화의 경 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일반적 으로 낭비는 미덕이고, 아니 낭비는 죄악이고 절약은 미덕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종종 예외가 있을 수 있습 니다.
저는 오늘 이런 낭비가 미덕일 수 있는 예외적 케이스에 대해서 같 이 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런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일 년 내 내 늘 검소하고 또 근검절약하게 살 아온 부부가 어느 날 자기 아내를 바라보니까 참 고생하며 살아왔던 그 아내가 참 안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자기 아내를 모시고 아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 서 아주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자기 아내를 위해서 대접했다. 여러분 그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세요? 낭비? 저는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 아요. 좀 남자들이 그럴 수 있는 여 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내들 믿습니까? '아멘!' 할 기력 도 없는 이 시대의 여성들..., 한 평 생 근검절약해 오면서 살아 왔던 그 남편이 은퇴를 하면서 자기 삶의 인 생의 여정에서 소중한 아름다운 의 미들을 주었던 그 친구들을 모아놓 고 은퇴연, 축하연을 가졌다고 하십 시다. 좀 근사하게 가졌어요. 그것을 낭비라고 비난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인생에는 축제의 여유가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러한 예외적인 케 이스에 속하는 사건을 우리에게 다 루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사건 이 일어난 시기를 주목해 보십시오. 마가복음 14장 1절, 본문이 시작되 는 구절은 이렇게 시작하죠? '이틀 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 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자, 명절이 가까워 오고 있 습니다. 그런데 이 명절이 가까운 시각에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대 표적인 종교인들 그리고 정치지도자 들은 나사렛 예수를 잡아죽일 음모 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유월 절이면 이스라엘 전역에서 심지어는 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 이 몰려옵니다, 예루살렘으로. 이 백 만 이상 삼 백만의 인파가 예루살렘 주변에 넘치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그 당시에 아주 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 게 삶의 소망이었고 능력이었고 구 원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를 잡아 버 리면, 체포하면 혹시 민란이 일어날 까 두려워 한 나머지 그들은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명 절이 가까운 떠들석한 그러나 예루 살렘 한 구석에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던 그 시각에 본문의 사건은 일 어납니다. 자, 이 사건이 일어난 집 은 어디였다고 기록합니까? 자, 14 장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 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 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 의 머리에 부으니' 이 사건이 일어 난 집은 어떤 사람의 집입니까? '문 둥이 시몬의 집' 그랬습니다. 이 시 몬이 누구일까? 학자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합니다. 정확한 인포메이션 이 부족하기 때문에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추측컨데 그 사람 은 문둥이었다가, 그 당시, 지금도 나병이라는 것이 어려운, 치료가 어 려운 병인데 그 당시 나병은 거의 오늘날의 에이즈에 해당되는 그런 병이겠지요. 그런데 아마도 이 사람 은 예수 만나고 치료를 경험한, 기 적을 경험한 사람. 그래서 자기를 이 죽음에서부터 건져낸 그 예수님 의 은혜가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감 사했겠어요?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 하는 잔치를 아마 벌렸을 것입니다. 그는 치료받았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이 별명이 따라 다닙니다. '문둥이 시몬'. 그런데 이 잔치석상의 기사 를 성경이 묘사할 때 마가복음 14장 과 아주 꼭 같은 내용의 기사가 요 한복음 12장에 기록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그 잔치석상 에 어떤 사람들이 등장합니까? 요한 복음 12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도 등장하고, 또 마르다도 등 장하고, 또 나사로도 등장합니다. 자, 이 세 사람은 무슨 관계가 있습 니까?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어떤 관계예요? 형제들이죠. 다 형제들입 니다. 그런데 그들과 이 시몬이 어 떤 관계에 있을까? 자, 같은 베다니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베다니 마을 에 사는 아마도 다른 두 개의 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같이 예수 만나고 은혜 받고 삶이 변한 가정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런 흥미있는 추측을 합 니다. 아마도 본문에 나타난 시몬은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아버지였 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도 합니다. 저는 그런 추측도 가능한 추측이라 고 생각해요. 자, 어쨌든 잔치가 한 창 벌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 가 예수님 앞으로 다가옵니다. 자, 3 절에는 한 여자가,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한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데 같은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요한 복음 12장을 보면 이 한 여자의 이 름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마리아,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깹니다. 그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 니다. 향유는 마침내 예수님의 발등 까지 이렇게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 다. 이 여인은 자기의 머리털로 예 수님의 발을 씻었다. 바로 이 장면 에 흥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의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어 떤 사람들이 분 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 가' 아니 어째서 이런 고급한 향유 를 이렇게 낭비할 수가 있느냐? 이 것은 낭비다! 이렇게 비난을 했습니 다. 그 다음 절에 보시면 '이 향유 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 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그런데 이 여자를 책망하고 비난하는데 앞장 섰던 대표적인 사람의 이름이 요한 복음 12장에 보면 누구라고 했습니 까?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 비난한 사람이 가룟 유다였습니다. 흥미롭 지요? 자, 유다의 이 말을 피상적으 로 접근하면 이 사람의 말이 옳습니 다. 삼백 데나리온, 이거 굉장한 것 이거든요. 그 당시 노동자가 하루 받는 품삯이 한 데나리온, 그러면 삼백 데나리온이면 며칠 분에 해당 되는 품삯입니까? 삼백날! 거의 얼 마예요? 일 년의 품삯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 엄청난 돈을 가 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줘 봐라, 얼 마나 많이 구제를 하겠느냐? 아주 피상적으로 합리적인 말이고 설득력 있는 옳은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런데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전혀 유다의 편을 들거나 이 사람들 의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분명히 이 여자의 행위는 낭비임에 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여자의 편 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6절,
"예수께서 가 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 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저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였다구요? 좋은 일을 했다. 자, 우리말 번역에는 좋은 일 이라고 그랬어요. 대부분의 영어 번 역에 보면, 희랍 원문에도 영어 번 역이 합당한 것인데요, 좋은 일이라 는 단어를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 랬어요. A beautiful thing, 아름다 운 일! 아름다운 일을 했다. 저가 아름다운 일을 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매우 역설적인 단어를 쓰 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낭비 다. 그리고 칭찬하셨어요. 칭찬하신 아름다운 낭비, 낭비는 분명히 죄악 인데 어째서 이것을 아름답다고 칭 찬하셨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 그것이 본문에서 물어야 할 질 문입니다. 자, 이런 낭비의 죄악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오히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칭찬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그 첫째, 그것에는 아름다운 동 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동기가 있었다. 자, 무엇이 아름다운 동기일까요?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 름의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 산을 초월한 사랑의 동기, 여러분! 사랑하면 계산을 초월합니다. 사랑 을 해 보셨습니까? 사랑에 빠져 보 신 경험이 있으세요? 사랑하면 사랑 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그 시간 을 낭비로 생각하는 연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짜 사랑에 빠져 있다면, 하루 밤을 지새워도 모자라는 시간!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그런 경험 혹시 있어요? 붕 뜬 것처럼 저를 쳐 다 보지 마시고..., 사랑에 빠지면 시 간을 낭비로 생각하지 않아요.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어떤 돈도 그것을 허비로 생각하지 않습 니다. 내가 그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저는 옛날에 제가 좋아했던 여자, 지금 여자가 아닌 데... 이런 바보같은 소리도 해 봤어 요. 결혼만 해 준다면 목사도 그만 두겠습니다. 별 바보같은 소리를 다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맹목이 되면 그렇게 환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져 버리면 사람 이 어떤 블라인드가 되는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에요. 사랑은 상식을 초월한 다, 계산도 초월한다. 유다의 비판은 피상적으로 접근해 보면 그것은 상 당히 옳은 얘기입니다. 자, 이게 보 통 액수냐? 이 옥합 속에 들어있는 향유, 인도산 향유 나드, 그 당시에 가장 고급한 향유였습니다. 자, 얼마 라고 그랬어요? 삼백 데나리온. 자, 그것은 얼마의 품삯에 해당돼요? 거 의 일년 품삯. 여러분의 일 년 월급 을 계산해 보세요. 매달 백만원씩 받으시면 일 년이면? 그것도 계산이 안 되니 월급 제대로, 가정 경영이 되겠습니까? 천 이백 만원, 천 이백 만원을 드린 것입니다.매월 이백 만 원씩 받으시는 분은 이천 사백 만원 을 드린 것입니다. 적지 않은 헌신 이지요. 저는 우리교회 교우들 가운 데는 그 이상의 헌신을 주 앞에 바 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 다. 그러나 어쨌든 얼마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예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가룟 유다라는 사람, 이것을 비판하 고 있던 유다, 요한복음 12장에 보 시면 그가 비판하고 있던 숨겨져 있 는 동기를 주께서 지적하십니다. 요 한복음 12장에 보시면 가룟 유다를 보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 다.'저는 도적이다.' 이렇게 말씀하 십니다. '저는 도둑놈이다.' 겉으로 는 가장 합리적인 단어를 쓰고, 가 장 사회정의에 민감한 것 같지만 사 실은 자기가 딴 생각이 있어서 그렇 다. 흔히 남들의 헌신을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에게도 그 헌 신이 요구될까봐, 자기를 잃어 버리 기 싫어서 숨겨진 이기적인 동기 때 문에 다른 사람의 헌신을 비판합니 다. 그것이 유다의 동기였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 랑하면 이 모든 계산은 초월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서 바울 사도는 사랑을 서술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천사 의 말을 할지라도, 그럴듯한 아름다 운, 상식으로 포장된 말, 모든 사람 에게 감동적인 말을 하고 설득력있 는 소리를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 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모 든 비밀과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 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아무리 설득 할 수 있는 그런 합리적 지식을 갖 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 어 줄지라도 내가 순교를 한다 할지 라도, 내가 수 없이 많은 가난한 사 람들을 구제한다고 해도 사랑의 동 기가 결핍되어 있다면 그것은 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Nothing! 그러나 정말 사랑으로 한 다면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 다. 주님은 이 여인의 마음 속, 그 밑바탕에 숨겨진 동기, 아름다운 동 기, 사랑의 동기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느니라. 아름다운 동기, 그래 서 주님은 그녀의 낭비를 그런 무가 치한 낭비로 일축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름다운 봉사였다, 헌신이 었다. 이렇게 평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께서 이 여인의 헌 신을 아름답다고 평가하신 또 하나 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 운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에 그렇습 니다. 아름다운 기회를 붙잡을 줄 알았던 여인, 어떤 기회였을까요?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 앞에 내 헌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이렇게 이 여인은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그 증거를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예 수님이 그렇게 인정하셨어요. 본문 의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저 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 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 여자가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 사를 내가 죽을 날을 미리 알은 것 이다. 아니! 어떻게 알았을까요? 예 수님이 돌아가실 것을 이 여자가 어 떻게 알았을까? 이 여인의 직관이었 을지 모릅니다. 여성 특유의 직관, 여자에겐 특유의 어떤 직관이 있지 요. 뭘 알아요, 이렇게. 남편이 바람 을 피운 구체적 증거가 없어도 알아 요, 알아. 그러니까 아내를 속일 생 각을 아예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님께선 여성들의 마음 속에 아주 깊 은 어떤 직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직관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령의 인도였을지 모릅 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요한 칼빈은 이 구절을 주해하면서 이렇게 말했 습니다. 그 여인이 옥합을 깨고 향 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삿날을 준비 한 것, 돌아가시기 전에 그 분 앞에 마지막 가슴 가득찬 사랑을 표현하 고 싶어 했던 것, 그것은 성령의 인 도였다. 다만 이 여인은 그 성령의 인도앞에 민감했고, 순종했을 따름 이다. 저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객관적 인 정황적 증거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보시면 예수님이 늘 제자들에게 장차 오실 죽음에 대해 예언하셨지요.
"내가 죽는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라고 예언하시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자 들이 그 말을 심각하게 들은 흔적이 없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아 마 흘렸을거예요. 그러나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왜 그 랬을까? 우리가 재미난 것이 마리와 와 마르다를 비교해 보면 아주 대조 적이지요. 자, 마리아와 마르다가 같 이 있는 현장을 보면 마르다는 항상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항상 서 있 어요. 뭔가 하고 있어요. 항상 분주 하게 뭘 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리 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항상 앉아 있어요, 이 여자는. 예외가 거 의 없어요. 복음서에 나타난 두 여 인이 함께 있는 현장을 보면 마르다 는 항상 뭔가하고 있어요.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니예요. 마리아는 뭘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희망이었습니다. 구원이었습니다. 능 력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근거였 습니다. 그 말씀앞에 모든 것을 걸 고 항상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 던 여인, 그래서 그 말씀을 마음에 두었을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말씀 을 따라서 아! 주님이 예언을 했는 데, 돌아가신다고. 아마 그 때가 가 까운 모양이다. 성령께서 그 마음 속에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어떤 준 비를 주었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 다면 그 분이 떠나가시기 전에 내 사랑을, 내 사랑을 표현하겠다. 다시 없을 기회, 그 분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남편이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 면, 내 아내가 마지막 길을 가고 있 다면, 그가 원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그 분 앞에 마음에 여한이 없이 할 수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낭비예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에요, 저는. 봉 사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헌신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 니예요. 봉사할 수 있을 때 봉사해 야 하고, 헌신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항 상 있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제가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마비가 된 전에 섬기던 교회 교우집 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을 잊을 버릴 수가 없습니 다. '목사님, 다른 소원 없어요, 건 강해서 교회 나가서 한 번 봉사만 하고 세상 떠나갔으면 좋겠어요' 건 강하실 때 좀 하시라 그래도 바쁘다 고 그러더라구요, 그 분이. 그런데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서 한 번만 다 시 일어나 내가 가서 봉사할 수 있 다면...봉사의 기회, 헌신의 기회 항 상 있는 것이 아니예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저는요, 제가 이십 대 처음 교회 나가기 시작할 때 그 때는 부흥회가 한참이었고 그래서 부흥목사님을 따라 다녀 봤는데, 한 목사님이 얘기한 것이 잊어버려지지 않아요. 여러분! 그 분이 그러더라 구요. 여러분! 항상 전도하다 보면 차차 믿겠다고 그러는 사람이 있습 니다. 헌신하라 그러면 차차 헌신하 겠습니다. 봉사하라 그러면 차차 봉 사하지요. 생활형편이 나아지면, 조 금 주변형편이 나아지면 제가 차차 봉사도 하고 차차 헌신도 하겠습니 다. 여러분! 지옥이라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차차 봉사하겠다, 차차 헌신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차 차! 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 러더라구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예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고, 할 수 있을 때 헌신해야 합니다. 옛 날 희랍의 시라큐스라는 거리에는 아주 재미있는 동상 하나가 있었는 데 이 동상은 날개를 어깨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발에도 날개가 달려 있 어요. 앞 머리는 수풀처럼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예요.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 리스퍼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동상의 이름? 기회. 왜 그대는 날개를 발에도 달고 있는가?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날아다니기 위하여. 그대의 앞머리는 왜 이렇게 무성한 가? 내가 올 때 사람들이 쉽게 붙잡 을 수 있도록. 그대의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 을 수 없기 때문에. 기회는 그런 것 입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헌신 할 수 있는 기회,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사랑할 수 있는 기회, 내 마음 을 바칠 수 있는 기회, 그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이 이 여인의 헌 신을, 옥합을 깨뜨린 것을 칭찬하신 이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어 쩌면 여인 특유의 직관을 통해서 주 님이 가시는 마지막 기회, 잃어버려 서는 안 될 그 아름다운 기회를 포 착했습니다. 이것은 정녕 아름다운 헌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녀의 행위를 아름답다고 주께서 칭찬하셨 을까?
세 번째로 저는 그것이 아름다운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동기가 있었고, 아름다운 기회를 붙 잡았고, 아름다운 최선을 바쳤습니 다. 자, 마리아는 내가 어떻게 주님 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 을거예요. 그렇지만 나에게는 cash 가 없는걸.. 뭐 돈으로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이 나는 없는걸...그렇다고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가 말 재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 나에게는 말주변이 없는걸...내가 무 엇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까? 아마 생각을 했을거예요. 그러다가 직관 적으로 생각이 난 것이 뭔가하면 아! 옥합... 내가 고이 장롱 속에 감 추어 둔 옥합, 향유. 아마도 이 옥합 은 그녀의 결혼준비를 위해서 그가 준비해 둔 옥합일 가능성도 있습니 다. 옥합!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지... 그 다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 습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 아 그는 옥합을 들고 예수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옥합을 깹니다. 옥합을 깨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 어요. 옥합을 위의 뚜껑만 살짝 열 수도 있어요. 그렇게 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부어도 그것 은 예수님 가시는 길에 아름다운 메 모리를 남길 수 있는 좋은 헌신이었 을 것입니다. 혹은 그 뚜껑을 열고 다 향유를 쏟아 붓고 그 옥합을 다 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종종 자기가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순간, 그 현장, 그것이 마지막으로 영원한 기회가 되기 위 하여 그 옥합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종종 옥합의 모가지를 깨뜨립니다. 그러면 다시는 옥합으로는 쓸 수가 없어요. 그 분에게만 오직 그 분에 게만 드려지기 위하여 옥합을 깨버 린 것입니다. 오직 이 분에게! 그것 은 전체를 드리는 거예요. 전체!. 모 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마리아의 헌신은 부분적인 헌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 기 전 존재를 드리는 헌신이었습니 다. 자, 8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 라."
자,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 어요? 저가 어떻게요? '힘을 다하여 ' 그것은 전체를 바치는 헌신이었습 니다. '힘을 다하여' 바쳤던 것입니 다. 부분이 아니예요. 물론 우리가 헌금을 드리지요, 주일날. 그러나 그 것도 전체의 상징이어야 합니다. 지 난 시간에도 강조했지요?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 아니다. 십분의 십의 상징으로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거 예요. 내가 전체를 다 드리는데, 그 중의 십분의 일을 드립니다. 상징! 내가 주일날 와서 교회에 봉사를 합 니다. 그것은 주일만 주님의 날이 아니예요, '주일'만 주님의 날이 아 닙니다. 월화수목금토일 다 주님의 날이예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하루 를 드림으로써 내가 이 전체의 시간 의 주인이 주님인 것을 인정하겠습 니다. 우리의 모든 헌신은 전체의 상징으로서 드려질 수 있어야 합니 다. 제가 좋아하는 얘기인데요, 전에 도 한 번 드린 일이 있어요. 데이비 드 리빙스턴의 전기에 나오는 얘기 입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의 어 떤 추장에게 전도해서 추장이 예수 를 믿었어요.그런데 예수 믿고 나니 까 마음에 기쁨이 있거든요? 감격이 생겼어요. 감사한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 추장이 선교사 집을 찾아 왔습니다. 리빙스턴 선교사님의 집 을 찾아 와서 '선교사님, 제가 예수 믿고 나니 너무 좋아요, 그래서 하 나님 앞에 감사하려고 밀가루를 가 져 왔습니다.' 그런데 리빙스턴이 장난을 하고 싶었어요. 교육적인 장 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허허, 하나님 은 밀가루 정도갖고는 그 감사를 받 으실 수 없는데... 하나님은 밀가루 로 만족하지 않으시는데요' 그러니 까 추장이 고민을 하더니 갔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왔어요. '선교사님! 선교사님!' 문을 열어 보니까 백마 를 가지고 온 거예요, 백마를. '저, 하나님 앞에 백마를 드리려고 왔습 니다.' 그랬더니 리빙스턴이 하나님 이 백마 정도로 만족하지 않으십니 다. 그러니까 이 추장이 더 근심이 되어서, 아! 찌그러져서 갔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나타 나더니 '선교사 님! 이거요' 조그만 것 뭐를 보여요. 보니까 머리핀이예 요, 머리핀. 뼈로 된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추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 추장의 명예를 상징하는 것. 이것은 바로 추장인 저에게 있어서 저의 명 예, 저의 권위, 저의 가장 좋은 것을 상징합니다. 쭉 보더니 '아 참 생각 을 잘 하셨소. 그러나 그것 가지고 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추 장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선교 사님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없어 요. 이젠 나밖에 없어요, 나!' 그 때 바로 리빙스턴이 그런 얘기를 했대 요.영어로 유명한 얘기를 했는데 God wants You! 하나님은 당신을 원하십니다. 맞아요. Yes! 하나님은 당신을 원하십니다. 당신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원하십니 다. 당신 자신을! 우리의 헌신은 바 로 우리 자신을 드리는 아름다운 고 백일 수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 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우리의 몸을 하나 님 앞에 살아있는 제사로 드릴 수 있는가? 그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체를 부어 주셨다면...그렇습니다. 주님이 먼저 옥합을 깨셨습니다. 주님이 먼 저 자신의 옥합을 깨고 자신의 생명 을 버려 주시고 피 흘려서 저와 여 러분을 구원해 주셨다면 이제는 저 와 여러분이 우리의 옥합을 깰 차례 입니다. 자, 나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이기적인 시간, 그 옥합을 깨고 내 시간을 구체적으로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해서만 사용되던 내 물질의 옥합을 깨고 하나님과 하나 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 자신을 드리 는 헌신, 그리고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여지던 내 육체, 내 몸, 내 body 바로 이 육체의 옥합을 깨고 내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여 내 입술도 내 마음도 내 찬양도 주 앞에 드리는 삶! 오늘 여러분의 주 앞에 바칠 옥합은 어디에 있습니 까? 여러분이 깨어야만 할, 깨뜨려 야만 할 여러분의 옥합은 도대체 무 엇일까요?
4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5월이 될 것입니다. 5월에는 우리 교회의 감사와 비전의 축제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지나간 5년, 참 감사하지요. 5년동안 우리 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 그 5년을 평가하 고 결산하고 새롭게 주께서 허락하 실 앞으로의 5년, 또 10년을 내다 보면서 우리 가운데 행하실 하나님 의 위대한 꿈을, 비전을 함께 설계 하는 시간... 저는 좀처럼 이것을 이 렇게 강조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늘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의 균형, 직 장생활과 교회생활의 균형을 소중하 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번 5월, 한 주간만은, 5월 한 주간만 은 좀 시간을 내요! 시간 한 번 마 치시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 요일, 주일 닷새동안 죽었다고 셈치 고 닷새동안 새벽에도 나오고, 아침 에도 나오고, 저녁에도 나오고 닷새 동안 주님의 사랑에 푹 빠져서 한 번 내 시간도 드리시고 사랑도 드리 시고, 말씀도 받고 꿈을 꾸고 하나 님의 위대한 비전의 꿈을 꾸면서 우 리 가정을 위한 꿈, 내 개인을 위한 꿈, 우리 교회를 위한 꿈, 민족을 위 한 꿈,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꿈 을 꾸면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시 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시고, 주님 의 위로를 경험하시고, 하나님이 나 를 쓰신다. 이 감격 속에 들어가는 이 계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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