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로 아들을 보내었더니
마가복음 12:1-12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지속되는 한 이 성경이라는 책은 인 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종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도 이 성경이 라는 책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이 면서도 가장 읽혀지지 않는 책은 아 닐까 하는 심각한 의문이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책이면서도 가장 생소 한 책. 그것이 바로 성경일 수 있다 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 요.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 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성경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요? 그 떄 한 꼬마가 손을 번쩍들더니 대답하기를 네. 우리 형 성경 안에는 애인 사진이 들어 있어 요. 이런 대답을 하더랍니다. 성경에 는 뭐가 들어 있을까요? 성경의 메 시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 요? 저는 이 성경이라는 책을 간단 한 단어로 우리가 성경책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면 성경은 관계의 책 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계의 책 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를 다루고 있는 관계의 책이다. 그 래서 우리가 규티를 할 때 아침마다 일어나서 성경보고 묵상할 때, 큐티 를 할 때 우리들의 묵상에 있어서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빼놓아서 안 될 두 가지 주제가 있다면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사람이죠. 이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둘째는 이 본문이 사람에 대해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반드시 두 가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 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가 있다면 하나님, 인간 그리고 또 하나의 중 요한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 고 생각합니다. 이미 저는 여러분들 에게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말씀 드렸 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열어 보면 우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고장 이 생겼다, 문제가 생겼다, 이 성경 이 누누이 강조하는 진리죠. 그것이 바로 죕니다. 죄! 죄는 하나님과 인 간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말았 습니다. 바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하 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시키기 위 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찾아 오 신 화목자요, 중보자로 찾아 오신 분.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 신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 는 그래서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 제,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 초점입니다. 소 위 Ultimate Focus다! 궁극적인 초 점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가 있습니 다. 오늘 이 본문 흔히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라고 불려지던가, 그렇 지 않으면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라 고 일컬어집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린 성경의 주제별 접근이 가능합 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주제 세 가지 뭐라 그랬어요? 첫째는 하나 님, 둘째는 인간, 그리고 세째는 예 수 그리스도. 자, 우리가 본문의 비 유를 이렇게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 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비유는 하 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얘기해 주고 있을까요? 본문의 비유 속에 나타나 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자, 본문이 시작되는 마가복음 12장 1절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2 장 1절 다같이요. 시작!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 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 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네, 여 기에 한 사람이 등장하죠. 한 사람! 이것이 저는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 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 대를 짓고 그리고 농부들에게 이 포 도원을, 아름다운 포도원을 세로 주 고 먼 타국으로 떠났다! 저는 바로 이 한 사람의 역할 행동 속에서 하 나님은 어떠한 일을 하시는 분이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나님의 소위, 속성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첫째로, 이 비유 속에 나타나 신 하나님, 그 분은 아주 관대하신 하나님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주 관대하신 하나님. 자, 여기 포도 원을 만들었어요. 아마 포도원을 만 들기 위해서 이 주인은 여러가지로 애를 썼을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포도원을 잘 아름답게 만든 후에 그 것을 거의 선물로 주었습니다. 물론 여기 세로 주었다고 했습니다만은 2 절에 보면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 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얼마 라는 단어는 본래 희랍어 단어에서 소량 지극히 적은 얼마라는 뜻이예 요. 그래서 이건 꼭 뭐 돈이 필요해 서 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이 포도원 의 주인이 누구냐 소위 ownership 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적인 것이고 이 포도원은 거의 선물로 주 어졌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포도원 은 우리의 삶의 마당, 삶의 조건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온갖 아름다운 삶의 조건 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동의하십 니까? 우리가 야고보서 1장 17절에 보시면 각양 좋은 은사와 그리고 온 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 버지께로 부터 우리에게 내려왔다. 다시 말하면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 으로 부터 선물로 주어졌다. 우리의 생명, 또 아름다운 공기, 하늘, 우리 가 숨쉴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 들, 다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겠습 니까?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 획이였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 읽 어보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 이 온 우주를, 만물을 창조할 때 인 간은 몇째 날 지어졌습니까? 너무 유치한 질문이라 대답할 필요를 느 끼지 않으십니까? 자, 인간은 몇 째 날 지어졌어요? 제 6일 엿새 날 지 어졌습니다. 만약 사람이 둘째 날이 나, 셋째 날이나, 넷째 날쯤 지어졌 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선 거의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 나 생존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것은 매우 불편한 생존이였을 것입 니다. 그러나 사람은 맨 나중에 하 나님이 모든 다른 만물들을 지어 놓 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어 주셨 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고 에덴의 동산에서 일 어났을 때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뭐예 요.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Gift로,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이예요. 그렇 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도원, 우 리 삶에 마당을 준비하고 그것을 선 물로 주신 주인 같으신 하나님, 여 기 관대한 주인 같으신 하나님, 옛 날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실 그 당 시에도 유대인 가운데도 아주 부유 한 상인들 가운데 파이어니어 스리 핏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무역을 위해 진출하고 있었어요.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농장을 거의 무료로 자기가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의뢰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 니다. 마치 그런 사람들 처럼 예수 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를 믿어 주시고, 우리를 믿어 주시고 이 모든 삶의 조건을 선물로 주셨 다. 여러분 믿지 않는다면 맡길 수 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지 않 는 대상에게 어떻게 맡길 수가 있겠 습니까? 종종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가지는 콤플렉스 중에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 하십시요.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나를 믿고 계셔요. 그 증 거가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거예요. 내 목숨도 맡겨 주시 고, 내 재능도 맡겨 주시고, 내 탤런 트도 맡겨 주시고 내 삶의 조건도 맡겨 주셨다, 그만큼 하나님은 나를 신뢰하고 내 인생을 내게 맡겨 주신 하나님, 그토록 관대하신 하나님, 그 래서 이 가스펠송의 찬양의 의미는 옳습니다. God is so good! 하나님 은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찬양하시 길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 관대하 신 하나님,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오늘 본문의 비유속에 나타나 신 하나님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예 요. 인내하시는 하나님. 자, 타국으 로 떠난 이 주인은 때가 이르렀을 때 농부들에게 소출 얼마를, 소량의 소출의 이익을 받고져 종을 보냈습 니다. 자, 그랬더니 자, 이것은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이미 말 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오너쉽의 확 인이다, 소유주가, 주인이 누구인가 를 확인하는 일종의 행위였다고 저 는 생각합니다. 자, 그런데 이 포도 원을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3절 다같이 읽 겠습니다. 3절 다같이 시작!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 거늘 네, 저희가 종을 잡아서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 이럴 수가 있습 니까?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겠어 요? 네, 나 같으면 이 순간에 어떤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절에 보 시면 또 어떻게 했어요, 이 주인은. 다시 4절에,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이번에는 또 다시 그의 머리에 상처 를 내고 능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5절에 보시면 주인은 또 어떻 게 했습니까?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여러분 이 주인의 인내심을 보십시 요. 이 주인의 Patient! 이 주인의 인내, 이 주인의 오래참으심. 이 주 인의 엄청나게 오래참을 수 있는 인 내심. 여기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 습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나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 로 주셨습니다. 이 선물들을 사용해 서 주의 뜻을 이뤄가며 살도록. 그 러나 나는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혹 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또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나의 삶 속 에 이런 하나님의 뜻을 촉구하기 위 해서 보내신 종들의 메시지 앞에 귀 를 막고 때로는 그 종들을 핍박한 우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은 또 다른 종을 보내어 계속적으로 나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바라보도 록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토록 인내 하시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 을 인해서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예요. 그러 나 하나님은 오래 참기만 하시는 하 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는 참아요. 그 는 인내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의 인내는 무한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어느날 그의 인내가 종결에 도달하 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하십니다. 9절의 말씀 9절. 우리 9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 작!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 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6절 이 하에 보면 마지막에는 자기의 아들 마저 보내었지만 그 아들까지 죽여 버린 이 사람들. 9절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포 도원 주인이라면 이럴 땐 어떻게 하 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지 않겠느냐? 진멸의 순간, 진노의 순 간, 마침내 심판의 순간은 도래했습 니다.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시고, 그리고 이 선물을 통해서 복된 삶을 누리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 그러 나 창조주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리 의 역할, 우리의 반응, 우리의 응답 이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고 그리 고 하나님을 향한 반역일 때 우리는 마침내 엄정한 그의 심판 앞에 직면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심판을 준 비하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것 이 본문의 비유 속에 나타난 하나님 의 모습이십니다. 자, 우리가 본문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첫번 째 질 문을 던졌어요. 본문의 비유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자, 이제 두번 째 큰 질문. 본문 의 비유 속에서 사람은 어떤 존잴까 요?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우선 인간은 매우 이기적인, 그리고 너무 나 이기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습 니다. 자, 하나님은 이 포도원을 포 함해서 이 모든 것을 선물로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는 맡은 자에 불과합니다. 맡은 자. 옛날 말 로는 청지기예요. 스튜어드! 요즘 현대적으로 말하면 매니저! 매니저, 우리는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그 얘기는,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 다. 주인은 누구실까요? 주인은 하 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나에게 생명 도 맡겨 주셨고, 남편도 아내도 자 식도 맡겨 주시고, 내 재능도 맡겨 주시고 돈도 맡겨 주시고 시간도 맡 겨 주시고. 나는 맡은 자에 불과합 니다. 그러나 청지기의 탈선, 매니저 의 탈선은 언제부터 시작이 됩니까? 그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 다. 아니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 를 시작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 이 것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나타나 있 는 장면이 바로 7절입니다. 7절 우 리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본문에 7절. 다같이 읽어요. 시작! 저 농부 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거기다 언더라인 해주세요. 우리 것이 되리라 누구꺼? 우리 것.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것 이 우리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끊 임없이 내 것으로 착각하고 싶어하 는 것. 아니 알면서도 그것을 우리 의 것으로 선포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예요. 이기적인 인간 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 는 유명한 가르침, 비유가 바로 저 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고 생각 합니다. 생각나세요? 어리석은 부자 의 비유? 자, 어떤 농부가 부자농부 가 봄에 씨를 뿌렸어요. 열심히 농 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연구에 몰 두했습니다. 그리고 땀을 흘려서 열 심히 일했습니다. 자 가을이 가까워 집니다. 그 해 가을소출이 풍성할 것이 예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농 부는 어떻게 했어요? 야, 현재 가지 고 있는 이 곡간으로는 이 곡식을 다 수용할 수 없겠다. 그래서 곡간 을 넓히는 개조작업을 착수했습니 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드디어 그는 넓혀놓은 곡간마다 곡식을 가 득가득 채워놓은 다음에 자기의 영 혼을 향해서 이런 독백을 시작합니 다. 내가 내 물건을 어디다 쌓아 둘 꼬. 내 곡식을 어떻게 할꼬. 맞다. 내가 넓혀 놓은 곡간마다 내 물건을 가득가득 쌓아두리라. 그리고 나는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내 영혼아 이 제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 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 여 러분, 그 때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 하세요? 이 부자의 독백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부자의 독백가운데 제 일 많이 강조된 단어 하나가 있습니 다. 무슨 단어일까요? 나라는 단어 예요. 1인칭 대명사예요. 혹은 소유 대명사, 내 물건, 내 곡식, 내 곡간, 내 물건을 내 곡식을 어떻게 할꼬. 그리고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my soul !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 기를. 계속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날 밤에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이 부자에게 제 일성이 뭐라 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나 같으면 어리석은 놈아! 그럴텐데 요. 하나님은 참 신사적으로 어리석 은 자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 리석은 자여! 그 다음에 뭐라고 말 씀하셨어요. 오늘 밤에 네가 네 거 라고 주장하는 네 영혼을 내가 가져 가리니 그러면 네 것이 뉘 것이 되 겠느냐? 여러분 이 비유 속에 핵심 은 뭐예요? 비유의 핵심은 뭡니까? 이것은 오너쉽의 문제예요. 오너쉽! 소유권의 문제예요. 누구 거냐. 누구 거냐. 여러분의 목숨 누구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의 남편 아내 누 구 겁니까? 자녀? 여러분 거라고 생각하세요? 재산? 여러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 순간에 날라가 버리 는 수가 있어요. 그만 이 세상 떠나 라 그러면 빈손들고 와야 해요. 하 나도 내 것이 없어요. 우린 내 것이 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종종 이 오너쉽을 소유권을 확인하 기 위해서 당신의 종을 보내서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세를 내라. 그게 뭔 줄 아세요? 세가? 그것이 헌금 이예요. 여러분 교회 강단에서 종종 축복의 메시지가 선포되면 우린 얼 마나 흥분합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을 사랑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여러 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고자 하 십니다. 믿으십니까? 축복 받고 싶 지 않으신가 보네요. 여러분 하나님 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괜찮 아요. 아멘 한다고 하등에 잘못 없 어요. 그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 랍니다. 아멘. 아멘 하는 자는 받아 누릴지어다. 아멘. 그러나 사랑하시 는 여러분 제가 만약 메시지를 바꾸 어서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의 반응 은 어떨까요.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 님이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가 너희의 모든 것을 축복했으니 이 제 네 자신을 나에게 주겠느냐? 헌 신의 문제예요. 헌신! 네 몸뚱아리 내 것이다, 내게 드려라. 네 시간 내 것이다 이젠 나의 일을 위해서 나의 영광을 위해서 좀 드려라. 우리는 헌신까지는 어느정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사실 헌신이라는 것도 심 각한 문제예요. 그러나 이것이 얼마 나 심각한 줄 모르니깐 헌신까지는 별로 괜찮은데 갑자기 목사가 강단 에서 헌금을 말하면 알레르기성 반 응을 보이는 교인이 있어요. 사실 저는 뭐 헌금 설교 별로 않하는 사 람입니다만은 여러분도 들으시다시 피 어쩌다가 한마디 하면 괜히 흥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성경이 헌 금을 강조할까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오너쉽의 문제예 요. 십일조, 십일조에 대한 가장 무 서운 착각은 십분의 일이 주님의 것 이기 때문에 주께 드려야 한다.그것 이 가장 무서운 오해예요. 아닙니다. 십분의 일만 주님의 것 아니예요. 십분의 십 다 주님의 것이예요. 다 주님의 건데 그 중에 십분의 일을 구체적으로 드림으로서 이 모든 것 이 하나님의 것임을 제가 확인하기 를 원합니다.그 고백이예요. 그 고 백.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주일날은 열심히 참석 합니다. 내 피곤한 스케줄 가운데도 주일날 아침와서 한 번 드리는 예배 목사님 얼마나 힘든 건 줄 아십니 까?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헌금도 합니 다. 요새는 십일조도 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목사님 이만큼 하면 됐으니깐 여기까지만 좀. 여기까지 만 봐 주시고 더 이상은 요구하지 마십시요. 이것이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맨탈인지도 몰 라요. 그러나 이 모습 뒤에 숨겨진 우리들의 이기심. 이것이 하나님의 것임에 분명하고도 분명함에도 불구 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 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이기심의 정체를 확인해 보셔 야 합니다. 이기적인 존잽니다. 그러 나 오늘 본문의 비유는 인간이 단순 히 이기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심지 어 더 나아가서 사람이 반역적 존재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반역적 인 존재 자, 적은 소량의 세를 받기 위해서 보내어진 이 종들을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3절 다같이 읽어 보 세요. 3절 다같이 시작! 저희가 종 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 늘 네, 때리고 거저 보내었다. 또 4 절엔 어떻게 했습니까? 4절,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 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여러분 이것 이 반역이 아니예요? 반역. 주인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 까?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 를 죽이더라. 여기서 반역은 극점에 도달합니다. 점점 더해져요. 3절엔 때렸다가 4절엔 상처를 내고 능욕했 다가 점점 더 크레센도 자꾸만 올라 가. 계속. 핍박의 도를 더하고 있는 능욕의 도를 계속하고 있는 이 모습 을 주목해 보십시요.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언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 만물의 창조의 주 님이시요, 구원의 주님이신 그 하나 님을 인생들이 바라보도록 보내주신 메신저를 대하고 있는 이 세상 사람 들의 모습을 보십시요. 그들은 어떻 게 하나님의 종들, 그리고 복음의 메신저를 대접하고 있습니까? 지금 도 전 세계 도처에서는 복음을 전하 기 위해서 애쓰는 선교사들이 순교 를 당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열어 보면 히브리서는 그래서 이런 말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옛 적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 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권고하셨습니 다. 이 수많은 종들을 보내서 우리 에게 돌아올 것을 회개할 것을 촉구 하시고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 그 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반역으 로 대하고 있습니다. 반역의 무서운 음모는 우리 안에도 도사리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반역적인 존재, 이것이 죄를 범한 우리 안에 숨어있 는 죄성의 정체인 것을 아십시요. 하나님을 향해서 반역적인 존재의 모습. 이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그러나 세번 째 중요한 질 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의 비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살펴 보 았습니다. 비유 속에 나타난 사람을 살펴 보았습니다. 세번 째는 뭘까 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본문의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고 있을까요? 네, 저는 본문 의 클라이막스, 절정이라고 생각해 요. 13귀절, 6절입니다. 다같이 읽습 니다. 6절시작!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 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아주 극적인 표현은 이 런 부분이죠. 오늘 말씀의 제목인데 요. 최후로 아들을 보내며 최후로 아들을 보내었다. 한번 따라서 하십 시다. 최후로 아들을 보내었더니. 저 는 이 비유 속에서 예수는 다른 종 들과 구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냥 하나의 종이 아니라 그 분은 아 들이시다.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 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 고 종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도 사실 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종하고 는 구별됩니다. 그는 아들이십니다.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시 라고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30년 동안 개인적인 삶을 지내시다가 공적 생 애를 시작하실 때 그는 요한에게 나 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나 오셨습니다. 그가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이 런 메시지가 선포 되었습니다. 뭐라 구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다. 그 분은 사랑받는 아들이예요. 이슬람 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선지자와 같은 차원에서 또 하나의 선지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종으로 만 보고 있는 거예요. 아니예요. No! 그 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 들이십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 아가서 오늘 비유 속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받는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할 사실이 오늘 예언 돼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되어 있어요? 7절과 8절에 말씀이죠?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7절, 8절 다같이. 저 농 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여러 분 지금 이 얘기 누가 하고 계세요? 예수님. 그리고 이 얘길 하신 시점 은 이제 십자가를 얼마 며칠 앞에 둔 그런 시점이였습니다. 이 말씀을 말씀하시던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세요. 예수님의 심정. 자, 이 비유 를 말하면서 예수님은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잘 들어 보세요. 자, 농 부들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저가 상속자니 저 아들을 죽이자. 그래야만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차지하겠다. 8절, 이에 잡아서 그 아 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버렸느니라. 이 말씀을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이 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심정 은 어떤 심정이였을까요? 틀림없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그는 며칠후에 자기 자신이 포도원 바깥에 성문 밖 저 골고다의 언덕 갈보리에 사람들 이 자신을 버리고 던질 그 광경을 보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자신 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고 난을 모르고 당할 때는 그냥 모르고 어느 정도 경험할 수가 있어요. 정 말 힘든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 은 내가 그 고통을 알고 경험할 때, 내 앞에 닥쳐올 고통의 그 예리한 아픔을 내가 친히 알았을 때, 그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시 고 모욕을 당하시고 조롱을 당하시 고 그리고 슬픔의 길 그 비하톨로사 이의 고통의 길을 그가 쓰러지시고 일어서시고 다시 쓰러지면서 걸어가 야 할 그 분의 모습. 그리고 양 손 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받 으시고 십자가에서 그가 못 박히시 고 신음하실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 이 말씀을 말씀하시던 주님의 심정 은 어떤 심정이셨을까. 그는 이 고 난을 알았습니다. 고난의 무게를 알 았고 고난의 깊이를 알았고 이 고난 의 예리함을 알았고 그 상처의 아픔 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고난 받 으시고 죽음을 당하실 분. 이것이 비유 속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이십 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거기서 끝 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 그 분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분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예언되어 있습니까? 마지막 두 구 절. 10절과 11절. 같이 읽어 볼까요? 10절과 11절 다같이 시작!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 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 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 느냐 하시니라 아멘. 여기 놀라운 예언이 있어요. 놀라운 예언.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누구 가리키는 거예요. 예수님 자신 마치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버림을 당 하실 그 분. 십자가의 버림을 당하 실 그 분. 그러나 그 분은 버려지는 분으로 거절당하는 분으로 그 분의 인생의 드라마는 끝나지 않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이번에는 무슨 돌이 된다구요? 모퉁이 돌이 된다 . 코너스톤, 한 지붕을 한 건물을 견 고 하게 세우는 모퉁이 돌, 역사를 세우고 구원 받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세우는 위대한 기초가 되기 위해서 다시 부활하신 그 분, 새로운 생명 을 주고 사람들을 용서하고 인생을 다시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위대 한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다시 부활 하시고 찾아 오신 놀라우신 예수 그 리스도의 모습을 여기서 보여 줍니 다.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 도, 11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뭐가 기이하겠어요? 죽은 줄 알았던 그 분이 다시 부활해서 사람들을 구원 하는 놀라운 주님으로 나타나실 그 분 이것은 실로 기이하도다. 부활의 놀라움, 부활의 신비, 그 부활의 미 스터리, 부활의 Wonder, 그 놀라움 이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선포되고 있는 이 모습을 보십시요, 이것은 정말 기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예언의 성취일까요? 시편 말씀 의 인용이죠 시편 118편 22절과 23 절의 예언의 성췹니다. 한번 직접 오리지날 말씀을 한번 읽어 보세요. 시편 118편 22절입니다. 시편 118편 22절입니다. 시편 118편 22절 자 찾 으신 분은 찾을 희망이 없는 분들은 그냥 그대로 계시고 시편 118편 22 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 었나니 23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인한 바로다 그 것이 성취되는 순간이예요 지금 근 데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거기서 끝 나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24절 입니다. 그 다음 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예요 다같이 한번 읽어 보겠 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 하고 기뻐하리로다 이 날은 어떤 날일까 요? 부활의 날 Easter Sunday 부활 의 날 그 부활의 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 날에 다시 일어나 시고 부활하시사 우리의 부활 우리 의 구원이 되신 놀라우신 그 분 그 러므로 우리가 이 날에 우리가 즐거 워 하고 기뻐하세 할렐루야 이 위대 한 부활이 이 예언 속에 나타나고 있는 장면을 보십시요. 드디어 오순 절날 주님은 오셨고 그리고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서 사도들은 바로 정확하게 이 말씀을 또 한 번 인용합니다. 우리 한 번만 더 마지 막으로 찾아 보십시요 사도행전 4장 입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을 찾아 보십시요 사도행전 4장 11절 입니 다. 같이 읽을까요 사도행전 4장 11 절 다같이 시작, 이 예수는 너희 건 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자 드디어 사 도들은 여기서 이 건축자의 버린 돌 그리고 모퉁이 돌이 되신 그 분이 누구인가는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 다. 무슨 말로 시작되었어요. 이 예 수는 이 예수가 예수가 버린 돌이셨 으나 이제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아 이 예수가 네 그러면서 그 다음 에 12절에 우리가 잘아는 놀라운 말 씀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12절 다같 이 한 번 읽어봐요 다같이 시작 다 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나 니 천하 인간의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 음이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모퉁이 돌이 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의 구원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분이 살아 나셨으므로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 다. 그의 고난은 바로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 은 우리를 위한 부활이었습니다. 그 가 사셨으므로 우리도 살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새로운 생명을 주 셨으므로 우리는 고난의 골짜기 같 은 인생을 승리롭게 지금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주님을 찬양하십 시다. 그리고 이제 고난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그분을 따라 가보십시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마가복음 12:41-44 (0) | 2021.12.23 |
---|---|
부활의 오해와 이해/마가복음12:18-27 (0) | 2021.12.23 |
무화과 나무의 교훈/마가복음 11:12-14,20-25 (0) | 2021.12.23 |
왕이 오셔야 합니다/마가복음 11:1-10 (0) | 2021.12.23 |
보기를 원하나이다/마가복음 10:46-52 (0) | 2021.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