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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의 교훈/마가복음 11:12-14,20-25

by 【고동엽】 2021. 12. 23.

무화과 나무의 교훈
마가복음 11:12-14,20-25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영 국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버틀란트 러셀이라는 분이 계시죠? 이 분이 쓴 책 가운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Why I'm not a Christian?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그가 마가복음 11장 얘기 를 합니다. 그러면서 무화과나무를 예수께서 저주하신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 사건을 보면 우리는 예 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꼭 상식적이 고 합리적인 분만은 아닐 수도 있 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기 독교 신앙이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그런 최선의 신앙이라고 우리가 말 하기는 어렵다라는 그런 논리를 펼 치고 있습니다. 물론 버틀란트 러셀 은 매우 탁월한 우리 시대의 철학자 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가 매우 무지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는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서 그가 실패한 것을 들어내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첫째는 그가 팔레스 타인의 자연으로서의 무화과 나무의 생태를 이해하는 일에서 그가 무지 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예수 께서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는가? 그 기적의 의미를 그는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면 에 저는 그 분의 성경적 무지, 다른 면은 뛰어나지만 그 면에 대해서는 그 분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 각합니다. 첫째로 이 무화과나무의 생태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 다. 우리가 본문을 피상적으로만 들 여다 보면 러셀의 말이 상당히 일리 가 있는 것으로 생각돼요. 왜냐하면 여기 13절에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 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더니..."
자, 무화과 나무가 있고 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시장했고. 그래서 나무를 향해서 접근해 가 보 셨더니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14절 에 예수께서 나무보고
"이제부터는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런데 13절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무화과 때가 아니었다. 아니 무화과 나무 때도 아닌데 가서 열매를 기대 했다가 열매가 없다고 그래서 이 나 무에서 다시는 열매를 따 먹지 못하 리라고 저주하셨다. 말이나 되느냐? 얼른 피상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렇 지요? 상당히 일리가 있는 얘기처럼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우리는 이 무화과 나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본 격적인 무화과 나무의 추수기는 6월 이나 7월경입니다. 그 때까지 본격 적으로 무화과 나무가 많은 열매를 냅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 나무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봄철에 이른 무 화과 나무 열매를 맺기도 하고 좀 늦은 시기에, 가을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이른 무화과 나무의 열매의 경우에는 3월이나 4월에도 열매를 맺어요. 저는 몇 차례에 걸쳐서 성 지연구의 차원에서 성지순례팀을 제 가 가이드하고 인도했는데 한 번은 3월에 갔습니다. 3월에 가서 아주 맛있는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친히 손수 따서 잡수셨습니다. 3월에도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얼마든지 먹 을 수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한 9 월이나 10월에도 얼마든지 따 먹을 수가 있습니다. 늦은 무화과나무라 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일년에 세 차례씩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것이 무화과 나무의 열매입 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 열매 는 먼저 잎사귀를 냅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나면 열매가 있어요, 거기 에. 다른 나무와 달리 잎사귀가 있 으면 무화과 나무는 이미 열매를 가 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화과 나무 의 아주 독특하면서도 일반적인 성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잎사귀가 있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른 때가 바로 이맘 지금 이 때쯤 되는 시기였을 것이라고 생각돼요. 유월절 직전, 바 로 이 사순절, 예수 그리스도의 수 난절을 바로 앞둔 시기였으니까 바 로 이만한 때 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있으니까,이 때도 무화과 나무 열매가 있으니까 그것 을 기대한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는 상식적인 기대였다고 할 수가 있 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열매가 없었단 말이지요. 이건 정상이 아닙 니다. 무화과 나무의 잎파리가 있으 면 열매가 있는 법인데 열매가 없었 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나무, 이것은 어쩌면 창조주의 기대처럼 그렇게 열매를 맺어주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나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나 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하등의 비 상식적이라고 할 이유가 없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적의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이 나무 를 도대체 왜 저주를 하셨느냐? 어 떤 뜻을 가지고 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을 공부해 보시면 그 기적은 기적 자체에 뜻이 있지 않아요. 그 기적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 시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적을 가리켜서 복음서는 아주 독 특한 표현을 쓰는데 표적이다. 이렇 게 말합니다. 표적, 싸인이다. 그것 은 기적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입 니다. 본래 히브리사람, 이스라엘 사 람들은 때로는 괴퍅하기 조차 하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서도 어떤 메시 지를 전달하려는 그런 습관을 가지 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교훈을 전달하는 민족적인 하나의 교수의 방편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럴 때 그 기괴한 행동은, 행동 자체 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행동을 통해서 저 사람이 무슨 메시 지를 전달하려고 하느냐? 하는 그것 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그런 사례가 성경에는 굉장히 많아 요. 뭐 수 없이 많이 들 수가 있습 니다. 그러나 제가 한 두가지 예를 들자면 열왕기상 11장 29절에 보시 면 아히야라는 선지자가 나타납니 다. 이 선지자가 어느 날 여로보암 이라는 왕 앞에 나타나서 새 옷, 새 의복을 가지고 그 옷을 열 두 조각 으로 찢어요. 찢은 다음에 열 조각 을 여로보암왕에게 가 받칩니다. 이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자, 이것은 이스라엘 왕국은 잠시 후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갈라 진다. 그 다음에 북방 이스라엘 왕 국에는 10지파가 따라갈 것이다. 그 리고 두 지파는 남쪽에 속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메 시지 전달이에요. 그래서 10조각을 북방 여로보암왕에게 10조각을 받칠 때 당신에게는 10지파가 속할 것입 니다. 그 메시지를 지금 전달하고 있는 것예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알 아 듣는 것이 참 중요하지요. 그렇 지요? 우리가 예레미야서 한 번 보 겠습니다. 예레미야서 27장에 보면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워지던 예레 미야! 예레미야 27장 1절과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느 날,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서 이상한 행동을 명 령하십니다.
"예레미야야"
"네 하나 님"
"너 줄과 칭칭 감는 줄과 멍에 를
네 목에다 얹고 - 이게 실감이 안 나면 모가지에 얹고 - 줄과 멍 에를 목에다 두르고 거리를 돌아다 녀라"
이상한 행동이지요? 자, 줄로 칭칭 목을 감고, 멍에를 메고 그리 고 거리를 돌아다녀라. 이것은 메시 지예요. 다시 말하면 목소리로 전달 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메시지를 지 금 예레미야는 전달하고 있는 것입 니다. 여러분! 나는 이렇게 줄을 칭 칭 감은 노예처럼 걷고 있지요? 우 리 민족이 잠시 후에 그렇게 될 것 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게 포로고 끌려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 리 민족은 노예가 될 것입니다. 다 시 말하면 이런 기괴한 상징적 행동 을 통해서 메시지를 지금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어느 날 지나가던 길 가의 무화과 나무를 보고 저주하셨습니다. 도대체 이 사 건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메시지 는 도대체 뭘까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 의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는 뭐냐하 면 예수님이 누구시냐? 예수님이 누 구시냐?를 전달하고자 하신 것입니 다. 자, 도대체 이 행동이 예수님의 무엇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나무보 고 길거리를 지나가다 나무보고 나 무여! 열매를 맺지 못할지어다. 나 무가 말을 들었다는 얘기예요. 도대 체 이 분이 누구예요? 이 분이 한 마디 말하면 나무도 복종하는 이 분, 그리고 나무에 대해서 이 분이 감정이 안 좋았단 말이지요. 정상적 인 나무라면 자, 잎파리를 내고 있 으면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 그런 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너는 이렇 게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앞으로 돼 도 마땅하다,라고 명령하시는 이 분 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바 로 이 나무를 만드신 분, 그리고 나 무를 다스리는 분 그리고 나무가 창 조주의 기대를 저버렸을 때 그 나무 를 심판할 수 있는 분, 메시지가 뭘 까요? 예수는 창조자시다. 예수는 섭리자시다. 그리고 예수는 심판자 이시다. 바로 이것이 메시지예요. 예 수는 창조자요, 섭리자요, 심판자이 시다. 식물만 그랬나요? 여러분, 예 수께서는 배를 타고 가다가 파도가 일어나니까 어떻게 하셨어요? 파도 여, 바다여 잠잠할지어다. 파도도 바 람도 이 분에게 복종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묻잖아요? 도대체 저 분이 누구냐? 저 분이 뉘시기에 바 람과 파도도 복종하는고? 이 바람과 파도를 만드시는 분, 그리고 이것을 다스릴 수 있는 분, 창조의 어떤 뜻 을 가지고 이것을 섭리할 수 있는 분, 그는 창조자, 그는 섭리자. 이것 이 메시지가 아니겠어요? 또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귀신들린 사람보고 서 그 안에 귀신을 향해서 명령합니 다. 나와라! 그러니까 귀신이 나와 요. 그 다음에 돼지떼에 들어가라! 하니까 돼지떼에 들어갔어요. 돼지 떼가 막 귀신이 들어가서, 물 속에 들어가서 몰사하는 그런 장면도 복 음서에 기록되어 있죠? 도대체 영들 을 부리시는 분, 그는 누구일까요? 영들을 지은신 분 그리고 영들을 심 판할 수가 있는 분 그는 창조자, 그 는 심판자. 심지어 동물도 복종합니 다. 식물의 주인, 동물의 주인, 영들 의 주인,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 얼 마나 자주 그 분의 치병의 사건, 병 자를 고치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 니까?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었습니 다.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예수께 서 그 청년을 향해서 이런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까? 청년아 내가 네가 말하노니 일어나라. 시체가 벌떡 일 어났습니다. 시체도 복종하는 이 분,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도 하는 분, 생명을 거둬갈 수도 있는 분, 그리 고 다시 생명을 줄 수가 있는 분, 도대체 이 분은 누구일까요? 그는 창조자요, 그는 섭리자요, 그 뿐 아 니라 그 분은 사람을 다스리고 심판 할 수 있는 심판자 바로 그것이 메 시지입니다. 오늘 이 무화과 나무의 사건을 통해서도, 식물의 사건을 통 해서도 그가 한 번 말을 하면 식물 도 복종합니다. 식물을 만드신 분이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창조자 예요. 그러나 만들고 손 떼는 분이 아니라 여전히 그 만드신 만물을 다 스릴 수 있는 분, 그리고 그 만물이 창조주의 의도를 거스릴 때 그 만물 을 심판할 수 있는 분! 정신차리세 요, 여러분! 우리가 이 만물을 무화 과 나무를 향해서 심판하시던 그 분 이 바로 나도 하나님의 의도대로 창 조된 피조물이라면, 여러분 믿습니 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 고 믿으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창조 물이라면 그런데 내 인생이 하나님 의, 창조주의 의도대로 살지 못한다, 네 그러면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이죠. 그렇지요?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 제가 미국에서 이 지 구촌 교회를, 건물을 지을 때 보니 까 한국보다 건축 규정 코드가 훨씬 더 까다롭고 복잡해요. 그래서 자주 - 우리 한국에서는 마지막 준공검 사만 통과하면 되는데 - 이 검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콘크리트 쳐 놓고 와서 검사하고 그 다음에 벽 세워놓고 와서 또 검사가 나오고... 그런데 이 검사를 받을 때마다 제일 제가 신경을 썼던 것이 뭐냐하면 설 계도를 다 갖고 와서 뭐라고 가끔 말하냐 하면 이게 설계도대로 안 되 었네요. 그럼 다 뜯어 고쳐서 다시 해야 합니다. 뭐, 타협도 없고 뇌물 도 안 통하는 사회니까 그대로 해야 합니다. 창조주의 설계자 의도대로 안 되었네요! 그럼 다 뜯어 고쳐야 해요. 저는 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다 살고 주 님앞에 섰을 때 만약 하나님이 이렇 게 말씀하신다면
"이것 설계대로 안 되었네!"
나를 보시면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계획대로 안 되 었네...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는 나 를 창조하신 자, 나를 다스리고 섭 리하는 자, 그리고 내 인생이 그 분 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나를 심 판할 수 있는 분, 예수는 창조자 심 판자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 로 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거예 요. 두 번째로 오늘 이 무화과 나무 의 저주의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이 전달하려고 하는 둘째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에 대한 심판입 니다. 그 메시지를 계시하는 거예요. 내용없는 형식뿐인 종교에 대한 심 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장면 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은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제일 많이 이스라엘 민족을 비유하는 상 징으로 씌여집니다. 가끔 포도나무 도 나와요. 포도나무와 이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로써 씌여집니다. 자,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가 어떤 나무였어요? 잎 파리가 있었어요? 네, 잎파리가 있 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없었어요? 열매가 없었어요. 잎파리만 무성하 고 열매가 없었던 나무, 그것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민족, 더 정확하 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종교의 상징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 앙의 상태가 바로 껍데기만, 잎파리 만 있었고 내용이 없었다. 이것이 남의 얘기일까요? 어쩌면 오늘 우리 를 보고서 어떻게 말씀하실까? 자, 예배는 드려요. 열심히 예배는 드려 요. 찬양도 곧잘 해요. 자, 설교도 곧잘 들어요. 조는 사람도 있지만. 곧잘 듣습니다. 자, 누가 보아도 우 리는 종교 형식에 어느 정도 잘 적 응하고 있어요. 자, 이것은 형식이예 요. 여기까지는 다 형식입니다. 그러 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배를 드렸다. 이것도 중요해요. 예배를 잘 드린 것도 참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지느냐?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느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지느냐? 자,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참된 예배를 드렸냐 는 것은 예배 시간 가지고는 몰라 요. 예배가 딱 끝나고 나가면서, 나 가면서 저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하 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졌느냐? 은혜 받고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임재 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 하고 나는 이제 하나님이 주신 기쁨 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나님 말씀을 받았으니까 이 말씀 대로 살겠다. 결심하고 돌아가면, 돌 아가면서 좀 변화가 나타나야지요. 주차장에서 옛날보다 좀 더 친절하 고 감사할 줄 알고 그리고 저기 나 가서 이제 신호등 앞에 딱 섰습니 다. 빨간불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요? 빨리 빨리 가야해요? 아닙니다. 서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 생활입니 다.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생활 의 ABC는 거기 있어요. 거기서부터 신앙 생활이 제대로 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에서 남편을 향해서 아내를 향해서 어떤 태도로 대하십니까? 은혜받은 사람 답게 내가 내 아내 사랑해야지, 남 편 사랑해야지, 우리 가정을 진리의 말씀위에 세워야지, 거기서 나타나 십니까? 예배의 결과가? 또 내일 아침 직장에 가십니다. 오늘 주일 날 와서 은혜받았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답게 나는 비전을 얻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 면 직장 생활할 때 태도가 달라져야 지요.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백 성답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 당하고 빛을 드러내고 소금으로 살 아가는 삶의 모습이 직장생활의 현 장에서 나타나야 마땅하지 않겠습니 까? 그것이 내용이예요. 그것이 없 다면 뭡니까? 잎사귀뿐. 잎사귀뿐. 그러면 어떡할까요? 하나님이 보시 면서, 너는 맨날 잎사귀만, 잎사귀만 만드는구나. 내용이 없구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요? '너 인생 끝내라!'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심지어는. 뭐 별로 내 기대대로, 내 뜻대로, 내 의도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 과 나무, 이것이 이스라엘 종교의 모습이예요.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 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 은 오늘 본문이 마가복음 11장 12절 부터 14절까지, 그 다음에 우리가 띄었어요. 쭉 띄어서 20절부터 25절 까지 읽었어요. 무화과 나무의 스토 리만 추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사건 이 하나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그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그 가운데 15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은 뭡니 까? 그것은 소위 성전 청결의 사건 이예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장사터로 만든 사 람들을 다 쫓아내신 사건입니다. 그 러면서 내 성전을 기도하는 집인데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아라. 강 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아라. 어떤 분은 이런 말씀 보고와서 고민이 되 어 저한테 와서 질문을 하더라구요.
"목사님, 우리 교회에 와 보니까 책 방도 있고 커피숍도 있는데 그것 장 사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더라구 요. 여러분, 장사라는 것은, 상행위 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이 전제된 것입니다. 이익이 전제된 거 예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 이런 것 들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 무도 없습니다. 우리 목회자나 사무 행정이나 스탶가운데 아무도 1원 한 푼도 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저희 교회에서는 두 가지의 차원에서 합니다. 하나는 봉사의 차원,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봉사의 차원이고, 또 하나는 사역의 차원입니다, 사역의 차원. 저는 이 책방 사역이라고, 사역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왜냐 하면 여러분, 이 책들. 저는 예수믿 고 나서 저에게 제일 큰 도움이 됐 던 것은 책입니다. 건강한 책, 영적 인 책들이 내 신앙생활에 주는 감동 과 영향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사역의 차원에서 이것을 여 러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테입도 카세트 테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국 같은 데 가면, 우리 한국서도 그렇지요. 사실 이게 뭐 가수들이 노래한다든 지 그러면 테입에 대한 판권은 노래 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카 세트 테입이 그 판권으로 따진다면 그 판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저에 게 판권이 있어요. 지금까지 아마 팔린 테입의 돈을 다 적립했더라면 아마 적지 않아 꽤 됐을 것 같아요.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제가 이 테입을 통해서 지금까지 단 1원도 저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도 받을 계획이 없습니다. 앞으로 도! 네, 이것은 사역입니다. 테입을 통해서 얼마나 사람들이 유익을 얻 어요? 약간의 유익은 다시 선교사역 을 위해서 선교사나 이런 분들에게 는 무상으로 제공이 됩니다. 지난 번에도 보니까, 선교사역 리포트가 들어왔는데 보니까 제로예요. 우리 가 샀지만은 다시 그것이 선교사에 게 투자가 됩니다. 철저한 사역의 차원에서 이 일이 진행됩니다. 여러 분 이대로 변질없이 이런 사역이 진 행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성전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사장 들이 이방인의 뜰에서 제사를 드리 러 오면 제사 제물을 사야 돼요. 제 물을 사는 과정에 있어서 흠없는 제 물을 사도록 권고하면서 거기서 막 대한 이익을 제사장과 상인들이 짜 고서 그 이익을 제사장들이 취하고 있었던 거예요. 또 심지어는 외국에 서 오는 유태인들이 이제 헌금을 드 려야 하는데 외국돈 드리면 않된다. 그래서 돈을 바꿉니다. 그래서 예루 살렘 성전 이방의 뜰에는 환전소가 다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 있 어서 제사장과 상인들이 짜고서 막 대한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입 니다. 그러는 제사장들이 밤낮 그들 이 제사를 집행하지만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요? 돈에 대한 이익 - 그것이 그들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어요. 이런 예루 살렘 성전안에서 소위 신앙의 행태 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머리속에는 이익밖에 없었어 요. 신앙의 본질은 외면되고 그리고 잘못된 것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 었던 것이 바로 예루살렘 종교의 모 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 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우리에 게서 얼마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 질, 예배의 본질 내가 하나님을 만 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결과로 써 내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안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얼 마나 주 앞에 올바른 삶을 살고, 살 수가 있을까요? 저는 저의 가장 커 다란 관심이 우리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삶이 얼마나 변화되는가? 거 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이외에 제 머리속에 만약 다른 생 각이 있다면 저에게 하나님의 저주 가 임하기를 저는 기도합니다. 여러 분의 삶속에 하나님의 변화가, 하나 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 이 임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 시는 삶대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의 유일한 관심이 되기를 기도 하십시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우리 의 삶이 만약 껍데기만 내비치는 다 시 말해서 무화과의 잎파리만 무성 한 삶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저 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본 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 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인 것을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없는 형식 뿐인 종교, 그 종교에 대한 하나님 의 심판이 오늘 이 말씀속에서 사랑 하는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 해서 아픈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의 행태속에서는 어 떨까요? 형식은 있어요. 이미 예배 당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여러분들에 게 형식은 있습니다. 이제부터 중요 한 것은 열매입니다. 얼만큼 우리는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이 겨냥한 세 번째 메시지, 다 시 말하면 무화과 나무 사건을 통해 서 세 번째 메세지는 뭐냐하면 예수 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어 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 입니다. 제자들의 삶속에 있어야 할 열매에 대한 교훈, 그것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주께서 주신 가장 중 요한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이 무 화과 나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별 로 아름다운 나무가 아닙니다. 별로. 또 이것은 무슨 땔감이나 재목용, 건축용으로는 전혀 씌여 질 수가 없 는 것입니다. 또 꽃도 별로예요. 무 화과 나무는 꼭 한 가지 목적을 위 해서만 존재합니다. 무엇일까요? 열 매입니다. 열매. 열매를 위해서만 존 재합니다. 자, 저와 여러분. 크리스 챤들이 존재하는 목적, 하나님의 백 성들이 존재하는 목적, 우리가 살고 있는 목적, 유일한 목적. 꽃을 위해 서가 아니예요. 폼 잡을려고 존재하 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을 뭘까요? 열매입니다. 하나님 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 그 열매 를 통해서 주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고 존재하는 것. 여러분 믿으십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바로 열매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오늘 내 신앙이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교회 나온지 몇 년 되셨습니까? 그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어떻게 열매 를 맺고 있을까요? 신앙생활의 연륜 은 계속되고 있지만 열매맺지 못하 는 사람, 무력한 삶, 가정에서 직장 에서 삶을 사는 내 모습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실패하고 또 넘 어지고 왜 이렇게 무력할까요?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그 가장 중 요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달라 질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열매 를 맺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 다. 자,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께 서 무화과 나무를 일단 저주하셨지 요? 14절에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 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 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 라.."
자, 20절 그 이튿날의 사건입 니다. 2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 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 나 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자,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말랐 어요. 그러니까 뭐예요? 말씀한대로 된 것이겠죠? 그러니까 그 다음절에 21절에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 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 과 나무가 말랐습니다."
이 때 2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 되 이 때 주신 메시지가 뭡니까? 하 나님을 믿으라! 내가 말한대로 되지 않았느냐? 너 말씀을 믿느냐? 묻습 니다. 여러분, 말씀을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생 명이라고 믿으십니까? 능력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 은 이 말씀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네 하나님을 믿으라. 정말 신뢰하라! 이 말이예 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래야 열매를 맺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하면 열매가 없어요. 어떤 성도들이 그럴 것입니다. 목사님, 저 하나님 신뢰해요. 하나님 분명히 믿어요. 그 런데도 열매가 없어요. 그렇다면 여 러분,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 나님을 신뢰하는데 열매가 없다. 그 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여 러분이 하나님을 정말 신뢰한다면 여러분이 신뢰하는 하나님께 여러분 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정말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이 그 다음절의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세 요.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 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 다음 24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 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 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 는데도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기도 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시 는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 면 그 하나님앞에 기도하라 이 말이 에요. 기도하라! 왜 내 삶이 무력해 졌는가? 내 삶의 열매가 없는가? 기쁨이 없는가? 능력이 없는가? 활 력이 없는가? 내 삶이 생동하지 못 하는가?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시 기 바랍니다.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 분이 엎드리는 순간, 진지하게 기도 하는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이 임할 줄 믿습니다. 기도하라 그 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주님은 기도 의 제목을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의 영역을 제한하지도 않으셨습 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진다. 세상에 이것보 다 신바람 나는 것이 어디있어요? 생각해 봐요. 진짜 생각해 봐요. 무 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진다. 눈 이 안 돌아가요? 누가 와서 여러분 에게 무엇이든지 말해보세요. 내가 다 드릴께요. 아니, 이게 졸 문제예 요?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위 대한 사건이예요. 무엇이든지 구하 면 다 이루어진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얻지 못함은, 우 리가 얻지 못함은 왜 그래요? 구하 지 아니함이요. 우리가 정말 진지하 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내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부요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삶이 달라 질 것입니다. 진지하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 려하세요? 왜 불안해 하세요?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요. 목사님! 제가 열심히 기도하는 데도, 기도하는데도.. 제가 열심히 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기도하려 고 그래도 애를 쓰는데도 저는 기도 응답의 경험이 없습니다. 뭐, 기적도 임하지 않고 뭐, 그저 그렇대요. 그 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혔는지도 모릅니다. 기도의 파이프 라인이 막 혔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게 무슨 얘기입니 까? 기도의 파이프 라인이 막고 있 는 것,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관 계의 갈등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내가 어떤 사람과 갈등관계에 있다 면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웃을 향해 서 미움이 있다면, 용서치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그것이 바로 25절의 말 씀이에요.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 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 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 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너희 가 기도해도 만약 어떤 열매가 없다 면 그것은 누군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 들을 용서하라. 그리하면 하늘에 계 신 너의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용서 하여 주시리라. 뭐가 생각나세요? 주기도문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자, 주 기도문의 한 대목이 어떤 대목입 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그 다음에 뭐예 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 가 이웃들을 용서할 때 하나님!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제 가 용서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용 서합니다. 미움을 포기하고 용서하 기 시작하면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가 역사할 것입 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 다.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얘 기하면 여러분이 한 분도 그 분의 이름을 모를 사람이 없을 한국의 고 위 관리가 있는 구치소에 제가 최근 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참 감사 한 것은 그 분이 성경을 읽고 그 옆 에다 어떤 기도제목을 갖고 쭉 이름 을 썼습니다. 뭡니까? 자기가 용서 해야 할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 서하면 하늘의 문이 열려요. 하나님 의 능력이 임하고 우리의 삶이 새로 워지고 생동하기 시작하고 주의 권 능과 능력이 우리의 삶속에 역사하 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 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막혔거든 용 서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 주변을 돌아보세요. 내 이웃들을 돌아보세 요. 용서하지 못한 사람, 내가 품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그를 깨끗이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를 사 랑하세요. 그 순간부터 여러분, 기도 가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내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 여러분! 신앙이 살아있 지 못하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예 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면 끝난 것 아니예요? 살았어도 끝난 인생이예 요 그것은. 제가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얘기를 봤는데, 깊은 동굴에, 아주 깊은 동굴에, 아주 깊은 동굴 에 조그만 호수가 있어요. 그 호수 안에 고기들이 있는데 어떤 동물학 자가 그 고기들을 연구해 보니까 그 고기중에서 소경 고기, 보지 못하는 고기가 그렇게 많더래요. 그래서 왜 그런가 연구해 보니까 깊은 동굴 속 의 어둠속에서 빛을 봐야할 필요가 느끼지 않은 이 고기는 시간이 가면 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장님이 되고 말았다. 소경이 되고 말았다. 보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 다. 그렇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거 예요. 눈이 있어도.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할 필요 가 없는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가 치가 없는 인생. 여러분, 우리 인생 이 얼마나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생 으로 지금 여기서 살고 있습니까? 주 앞에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에게 필요한 인생, 쓰임을 받는 인생, 열 매를 맺는 인생, 여러분! 이런 인생 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 길은 하 나밖에 없어요. 창조주 하나님앞에 나와 굴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도 응 답이 없다구요? 내 삶을 돌아보시고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 가를 살펴보시고 그를 용서하십시 오.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고 주 의 능력이 쏟아질 것입니다. 내 삶 이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만약 내 인생이 열 매를 맺지 못하는 잎파리만 무성한 나무라면 주님은 내 인생의 나무앞 에 오시면서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너는 존재할 필요가 없느니라. 너로부터 영원히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이 저주가 두렵 거든 열매를 맺는 인생을 향해서 새 롭게 태어나십시오. 기도하시기 바 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 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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