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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이/마가복음 10:13-16

by 【고동엽】 2021. 12. 23.

어린아이와 같이
마가복음 10:13-16


작년 겨울이라고 생각되는데 우 리 교회의 어떤 교우님이 이런 이야 기를 하셨습니다. 아마 오늘처럼 따 뜻한 겨울 아침이었다고 생각됩니 다. 추위와 눈보라가 며칠 계속되다 가 모처럼 맑은 아침에 자기가 집에 서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날씨가 너 무 좋아서 무심코 이렇게 말했더래 요. 야, 골프치면 기차게 좋겠다 했 더니 옆에 있던 딸이 그러더래요. 아빠, 오늘 같은 날 꽃들도 춥지 않 겠지. 조금 있으면 꽃이 피겠지 그 러더래요. 그 딸의 얘기를 딱 듣는 순간 자기와 딸의 생각이 얼마나 다 른지. 나는 겨우 골프 칠 생각 했는 데 꽃들이 춥지 않겠다 꽃들이 피어 나겠다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딸 의 마음에 부딪쳤을 때 아! 나는 굉 장히 타락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는 교우의 얘기가 귓전에 새롭습니 다.

시인 월스워즈는 어린이는 어른 들의 아버지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 가지 못하리라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 리가 이 말씀의 참된 뜻을 알기 위 해서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지겠습니 다. 본문이 의미하지 않는 것은 무 엇일까요? 본문이 의미하지 않는 것 첫째는 이 말씀은 어린이들이 무조 건 천국에 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이 자동적으로 세상을 떠 나가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아닙니 다. 어린이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 기독교 신학에서는, 교회 안에서는 오랜 동안 신학자들이 논쟁을 계속 해 왔습니다. 논쟁은 아직도 지속되 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잘 모른다는 얘기 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토론하고 있지만 성경은 명확한 이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계속 됩니다. 가장 보편적인 견해 가운데 하나는 여기서 특별히 어린아이들은 아직 자기 지적 능력이 발달하지 못 해서 어떤 이성적 결정을 할 수 있 는 나이에 도달하기 전에 아이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 말입니다. 그럴 때 보편적인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부모가 예수를 믿으 면 아이들은 천당 간다. 왜냐하면 부모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속에 는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신학적 입장을 가리켜서 보통 언약 신학이다 Covenant Theology 란 말을 씁니 다. 언약 신학이다. 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는 아이들도 포 함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이 들도 천국에 갈 것이다. 이런 견해 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심지어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이것을 유아 세례 근거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까지 나가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인 유추라고 저는 생각합니 다. 왜냐하면 본문의 얘기는 단순히 그 부모들이 아이들이 예수님 축복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수님 앞 에 데리고 나와서 예수님의 안수를 요청한 것이고 예수님은 이 어린 아 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신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세례문제 까지 꺼내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 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의 생각 은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신데, 아 직 결정할 수 있는 나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아이 들은 당연히 천국 가는 것이 마땅하 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다 천국 간다. 이런 어린 아이들에 대한 보 편적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정답은 무얼까요? 제가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답은 잘 모른 다. 이게 정답입니다. 모르는 건 모 른다고 그래야지요. 성경이 명확하 게 이런 문제에 관해서 어떤 시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러나 이런 어린 아이들의 구원문제 에 대해서 건강한 Approach는 무어 냐? 건강한 접근이라는 것은 부모가 예수 믿으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구원된다 이렇게 가정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아이 들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 부모들이 부지런히 기도하고, 그리고 되도록 빨리 아이들이 구원을 경험할 수 있 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 합니다.

몇 살쯤 되면 아이들이 구원 받 을 수가 있느냐? 이것도 잘 몰라요. 종종 하나님이 쓰신 아주 위대한 신 앙적 거인들의 생애의 전기를 읽어 보면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4살에 구원받았다, 5살에 구원받았다, 6살 에 구원을 경험했다는 이런 기록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 리가 이성적 결단 자기가 예수님이 누구인가 깨닫고 나 예수 믿겠다 예 수님을 받아 들이겠다고 결단 할 수 있는 나이가 몇이냐 만 3살이냐 4살 이냐 5살이냐 6살이냐 언제부터 결 정이 가능하냐 그것도 잘 모르죠. 아예 성숙, 그 발전의 단계가 사람 마다 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그것 을 일반화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저는 어린 아이들에게 구원이 가 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라 고 꼭 집어서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만.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 지를 쓸 때에도 네가 어려서부터 성 경을 알았나니 이 성경은 너희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 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어린 아이들도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 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무조건 다 천 당 간다 그랬다가 못 가면 누가 책 임져요? 그러니까 그런 낙관적, 지 나친 낙관주의적 가정을 하는 것보 다도 내가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참 구원 받고 하나님을 알고 어려서부 터 신앙생활 하면 그만큼 그의 일생 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빨리 구원을 경험시키겠다는 부모가 열정을 가지 고 아이들의 신앙 교육에, 또 전도 에 아이들의 전도에 뛰어 든다는 것 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유명한 D.L.무디가 전도자가 되 기 전에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전도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 받고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돌아와서 전도 보고를 하는데 D.L. 무디가 이런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요 오늘 두 사람 반을 전도했습 니다. 두 사람 반이라니, 사회자가 어째서 두 사람 반입니까? 아! 알겠 습니다 어른 두 사람 전도하고 어린 이 한 분 전도하셨군요. 이때 무디 는 말하기를 사회자에게 거꾸로 얘 기하셨습니다. 저는 어린이 두 사람 을 전도했고 어른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인생을 벌써 절반 이상 산 사람이기 때문에 어른은 엄 격하게 말하면 반 사람입니다. 그런 데 어린 아이야 아직 일생을 살지 않았어요 그 앞에 무한한 한 일생이 그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어린이 를 구원한다는 것은 그의 일생을 구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 습니까? 얼마나 진지한 얘기예요!

오늘 본문을 조심성스럽게 들여 다 보면 성경은 어린 아이들이 무조 건 구원받는 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은 접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어린 아이 와 같이 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 라를 받을 수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린이에 대 한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보 증을 약속하신 말씀은 아닌 것입니 다.

또 본문이 의미하지 않는 것 두 번째로는 본문은 어린 아이들의 과 보호나 방임주의적 교육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흔히 교회 당에서 아이들이 막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막 소리 지르고 그러면 안내 하시는 분들이 걱정이 되서 제재를 합니다. 다른 분들의 편안한 예배, 질서 있는 예배를 위해서 아이들 좀 잘 챙기시구요, 좀 이렇게 아이들은 되도록 아이들 반에 집어 넣어 갖고 우리 교육을 받도록 했으면 좋겠습 니다. 하고 안내하는 집사님들이 안 내를 하거든요, 그러면 가끔 이런 분들이 나타나요. 성경도 모르십니 까? 성경에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제자들이 그것 을 막았더니 예수님이 화가 나서 분 히 여기시면서 그들을 꾸짖고 이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라 는 성경도 모르십니까? 라고 대드시 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것 을 가리켜서 아는 것이 병이다 이렇 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이들도 어른과 꼭 마찬가지 인격 체로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어린 아 이들을 접근하는 태도가 우리 교회 안에서 특별히 필요하다고 생각됩니 다. 전 방정환 선생님이 아주 큰 기 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란 낱 말을 방정환 선생님이 만들었다고 그러죠. 네, 그전까지는 어린이란 말 이 없었는데 어리신 분이다 어린이, 어리신 분 어른과 꼭 마찬가지로 어 린이도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되고 소중히 여겨져야 할 가치가 있습니 다. 그런데 그 말이 비약해서 부모 들이 아무렇게나 어린 아이들을 팽 개쳐도 좋다는 이야기예요? 그 이야 기는 아니죠. 이것은 부모의 책임을 면죄부를 줄려고 사용될 수 있는 본 문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상 한국 신세대 부모들에게 뚜 렷이 볼 수 있는 오늘날 교육적 성 향 가운데 하나는 방임주의적 교육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저는 불행한 경 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 어느 나 라 부모들 하고 비교해서 한국 부모 처럼 자기 자녀들을 멋대로 내버려 두는, 교육의 의지가 없는 부모가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인들을 객관 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많은 책들이 외국인들에 의해서 씌여지고 있고 그것들이 책방에 베스트셀러로 올라 있습니다.

최근 영국의 The Times의 기자 로 한국에 와서15년이상 살았던 한 분이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114페이지에 보 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끊임없이 응석을 부린다. 응석을 부린다. 특히 남자 애들은 좋아 하는 일을 참고 미루도록 교육 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서도 모든 것을 즉각 마음대로 하기 를 원한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단기 적인 일에 몰두하고 하는 일이 마음 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곤 한 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의 부모 들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 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자, 요즈음 베스트셀러로 한국의 여러 계층에 회자 되고 있는 그 일 본 사람 이께마라 마모루, 그 분이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 국. 한국인 비판> 이 책에 보시면요 한 장, 한 Chapter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온상 속에서만 자라 는 떡잎. 한국의 어린 아이들이 그 분의 눈에 비쳤을 때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이다 자, 이 Chapter는 이런 말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별라서 꽤 말썽을 피운 축이다. 친구랑 싸움을 하고 집에 들어 가면 어머니는 어김 없이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찾아 갔 다. 그리고 상대방 집에 찾아가 조 건없이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내 입 술이 찢어졌든 터졌든 그것은 아랑 곳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싸우고 오면 상대방을 찾아 가는 것까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 단 찾아 가서는 사과를 하는 게 아 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이 꼴로 만들어 놓 았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그러니 아 이 싸움이 곧잘 어른 싸움으로 번지 곤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 이들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 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설사 내 가 좀 잘 못 했다 해도 내 뒤에는 부모가 버티고 있고 언제 어디선지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행동에 잘잘못 을 판단할 정도로 철이 들었는데도 정작 부모 눈에는 아이의 잘못이 보 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얼마나 진립니까! 민주주 의 교육이 생활화 된 미국에서도 제 가 살아 보니까 교회 와서도 아이들 이 아주 질서 있게 행동을 해요. 그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부모 책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종종 미국 교회 가 보면 한 구석에서 이리 저 리 뛰는 아이들을 정숙하게 야단치 고 행동을 교정하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달라 져야 합니다.

저는 본문의 말씀이 결코 아이들 의 방임주의적 행동을 면죄부 줄 수 있는 본문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이 의미하는 것, 그 러면 본문이 정말 의미하는 내용은 뭐냐? 저는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2 가지 단어 가 있다고 생각합 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 둘째는 어린 아이와 같이 이 2 가지 단어가 본문의 열쇠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들어 보세요. 내가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 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 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 가지 못 하리라 거기서 강조된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한 단어는 하나님 의 나라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뭐 예요? 어린 아이와 같이 자,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 갈 수가 있느 냐? 어린 아이 같아야 들어 간다. 어린 아이가 다 들어 간다는 얘기가 아니예요. 어린 아이와 같아야 들어 간다.

천국에 어떻게 갈 수가 있습니 까? 한 죄인이 하나님 나라 가는 길, 이 문제에 관해서 저는 정상적 인 개신교 교파 정통 교회 안에 소 속해 있다면 신학을 초월해서 대부 분 동의하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습 니다. 회심의, Conversion 회심의 두 가지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 다.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반드 시 서야 할 두 개의 조건이 있습니 다. 그것이 뭐냐하면 하나는 회개고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회개하고 믿 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 갈 수가 없어요. 이것 없이 하나님 나라에,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습니다. 첫째는 회개, 두 번째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누가 회개 할 수 있느냐? 누가 믿을 수 있느냐? 그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 다시 말하면 어린 아이들의 그 삶의 양식 혹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어린 아 이들의 태도에 있어서 회개와 믿음 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마음의 질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른 하고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삶의 조건과 자질 들을 어린 아이들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입니다.

자, 먼저 회개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회개의 경우. 어린 아이들이 잘 회개할까요? 어른들이 잘 회개할까요? 어린 아이들이죠. 자, 어른들이 되면 사고가 경직이 되기 시작합니다. 자, 어떤 경험, 자 기 나름대로 어떤 경험을 통해서 인 생을 보는 시야가 점차 굳어지기 시 작해요. 그래서 어떤 일정한 나이가 지나고 나면 교정이 안 돼요. 자기 식으로 인생을 꽉 살아 버리는 거예 요.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교육이 힘들어요. 불가능한 것은 아 니지만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 시절에 무얼 잘 못 했어요 그 러면 물론 아이에 따라서 아주 고집 이 센 그런 아이들이 없지 않아 있 긴 있지만 그러나 부모가 혹은 선생 님이 가르칩니다, 설득합니다, 깨우 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네, 잘못 했어요 자기 잘못을 인정해요. 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의 바 탕, 그리고 행동을 교정한단 말이죠. 이것이 바로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의 밭입니다.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있 다는 것, 그리고 고칠 수가 있다는 것.그러나 어떤 일정한 사고의 틀이 굳어져 버리고 경직되면 뭐 잘못을 사과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왜 회개 하지 않습니까? 내가 무얼 잘못했 어? 이 정도 잘못 안 하는 사람 어 디 있어? 그러니까 회개하지 않는 거예요. 자, 회개할 수 있는 마음 밭 은 어떤 마음 밭이냐?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자기 행동을 바꿉니 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예요. 삶의 방향이 달라 져요. 이 회개할 수 있 는 가능성이 어린 아이들에게 더 있 다 말이죠.

그래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기사를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읽어 보시면 마태복음 18장3절을 보시면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 지 아니 하면 자, 이 말씀 속에서 어떤 단어가 강조되었습니까? 돌이 켜. 너희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 이와 같이 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 들어 갈 수가 없다 너희가 돌 이켜 이 돌이켜야 한다는 단어가 제 일 먼저 강조된 것입니다. 회개 없 이 하나님의 나라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어린 아이일수록 더 용이하다 더 쉽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일수록 더 잘 믿을 수 있는 거 예요. 그래서 예수 믿는 나이, 그게 어른 되면 힘들어요. 아이 때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간에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만 우리 교회도 참여했 던, 코리아 갤럽에 의뢰해서 조사한 한국인들의 신앙 의식 조사 보고서, 이 보고서에 보면 이런 질문이 있었 습니다. 당신은 언제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영 접한 시기가 언젭니까? 우선 9세 미 만에 예수님을 받아들였다 그게 5.3%예요. 저는 이것 보고 깜짝 놀 랬어요. 미국보다 비교해 보니까 굉 장히 적어요. 미국에는 아주 상당히 높습니다. 그것 보면 한국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복음을 심어 줄려 는 의지가 조금 더 약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어요. 5.3%쯤되니까. 그런 데 10살부터 14살까지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이것이 12%정도. 그런데 15세부터 19세사이 예수님을 영접했 다 이것이 무려 26%나 됩니다. 26%.제가 이걸 보고 생각을 바꾸었 는데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대학 생 전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늘 생 각했는데 이거 보고 아, 이 중고등 부 관심을 써야 겠구나. 많은 사람 들이 26%가 다 15살에서 19살 사이 에 예수 믿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얘깁니다. 우리들의 얘기. 한국 크리 스챤들의 평균치를 따져 보니까 15 살부터 19살 사이에 믿었다는 것이 26%, 그 다음 20세부터 24세 사이 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퍼센테이지 가 13%, 그 다음 25세부터 29세까 지가 10.7%, 그 다음 30세부터 39세 사이가 그 다음으로 많은데 18.3% 예요. 전 이거 왜 그럴까? 굉장히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제가 여 러 분들과 같이, 목사님들과 앉아서 이걸 분석해 본 의견들이 이건 결혼 한 후에 예수 믿는 남편에게, 아내 때문에 끌려서 나온 남자들 때문에 퍼센테이지가 올라가지 않았느냐. 지금 여기 보면 싹 웃으시는 분들 그럴 가능성이 많아요. 그래서 아마 요 나이 때 상당히 많은 것이 그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40세 이상 돌아가실 때까지, 40세 이상에 믿은 사람들이 14.6% 에 불과합니다. 그 얘기는 우리 가 운데 절반은 다 19살 되기 전에 믿 었어요. 우리 가운데 절반은. 그리고 39세까지 믿었다는 사람이 도합 합 해보면 85.3%. 그러니까 40세가 넘 으면 믿기가 너무너무 힘들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 있죠. 40세 이상에 믿은 분 들 한 번 손 들어 보세요. 뭐 이거 부 끄러울 필요 없어요. 40세 이상에 믿었다 한 번 손 들어 보세요 번 쩍. 자, 이 분들은 위대한 기적의 산 물입니다. 박수로 한번 격려 하십시 다. 그거 보면 우리가 확실히 젊었 을 때 보다 어렸을 때 사람들을 그 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사실이 굉 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 이런 강 조를 하면 제가 늘 받는 비판 중에 하나가 젊은이 얘길 많이 하다 보니 까 우리 이 목사님은 그냥 젊은 사 람만 알고 우리 늙은이들은 몰라라 한다 제가 이런 비판을 많이 받아 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나 이 많은 사람도 믿을 수 있구요, 또 실제로 많이 믿잖아요. 또 나이 많 은 사람들도 아주 귀하게 쓰임을 받 을 수 있다고 믿어요. 단 나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손에 붙잡 힘을 받아 아주 귀하게 쓰임을 받을 려면 어떤 나이 많은 사람이냐? 아 이 같은 어른, 아이 같은 늙은이. 어 린 아이 같은 마음. 경직된 사고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잘 못 했을 때는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어른 되어서도 회 개 할 수 있는 사람. 그렇죠? 그리 고 아이 같이 단순하게 주님 앞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 그 단순한 마 음 얼마나 좋아요! 저는 그 대표적 인 사람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아 닌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합니다. 저는 연속극 보고 만날 은혜 받고 울고 그러는데 우리 아내는 결코 우 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여자가 독한지 모르겠어요. 회개할 수 있다 는 것, 어린 아이 같은 마음 안에서 만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 다.

그 다음 두 번째 믿음의 경우, 회개와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 로 인도하는데 믿음의 케이스도 마 찬가지입니다. 누가 잘 믿을 수 있 을까요? 어른이 되면 우리가 나이 가 많아 질수록 사람을 탁 만나고 접근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어떻 게 해요 우리? 탁 믿어져요 만나면. 그냥 믿고 싶고 그래요 사람이? 나 이가 많아 질수록 째려 보고 의심하 고 수상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주지 않아요.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그렇 지 않잖아요. 만나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하 웃고 따라가고 그래 서 유괴도 당하고. 그러나 어린 아 이들의 그 단순성의 특성 가운데 하 나는 쉽게 믿습니다. 잘 받아 들입 니다. 의지합니다. 이게 어린 아이의 특성입니다.

어떤 아빠, 엄마, 딸 하고 셋이서 봄철에 길을 가다가 나비가 날라 오 니까 딸이 아! 나비다 나비 아빠가 오래간만에 아빠 노릇 한다고 너 나 비 어디로 가는 줄 아니? 저 나비가 꿀 찾아 가는 거야. 꿀. 뭐 굉장히 아빠 노릇 한다고 했더니. 딸이 그 러더래요. 아니야, 아빠 저 나비는 엄마 찾아 가는 거야. 딸의 발상과 아버지의 발상이 얼마나 달라요. 늘 부모 생각하고 의지 하고 싶어 하고 어린이 시절에 그렇잖아요. 그런데 왜 이것이 중요하냐 하면 하나님과 의 관계에 있어 독립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독립성입니 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네, 하나님을 향한 Trust 신뢰, 의지함 그것이 없 이는 신앙의 세계에 결코 들어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어린 아 이 같은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매 우 중요합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15절을 다시 읽어 보시면 내가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 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 들지 않는 자는 여기 받들지 않는 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믿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 다. 받들지 않는 다는 것이 무슨 의 미냐? 제가 이 단어를 좀 찾아 보니 까 희랍어에서 댁세타이 라는 단언 데,이 단어를 다른 말로 번역하면 그냥 받아들인다고 번역하면 되요. 그게 더 좋은 단어같애.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저는 믿음은 받아 들이 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믿음을 단순 히 다른 말로 바꾸면 믿음이란 뭡니 까? 받아 들이는 것. 믿음은 하나님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 고 그것이 믿음이예요. 믿음. 믿음은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장12절에 보시면 영 접하는 자 곧 어떻게?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무슨 권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 말 을 바꾸면 그 이름을 믿는 자 곧 영 접하는 자. 내가 예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 이 믿는 것 아니예요. 예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분을 내 구주와 주님으로 인격적으 로 내 마음속에 받아 들이는 것, 이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영접하 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예수 그리스 도 란 한 분을 내 마음의 문을 열어 그 분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분으 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 들인 다. 믿음은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이 받아 들이지 못하면 신앙은 시작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 와 앉아도,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아직도 마음 의 문을 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하고 있다면 이 사람 그리스도인 아 니죠. 받아 들여야 돼요.

제가 처음 미국 유학 갔을 때 학 교 근처에 있는 미국교회에 나갔다 가 연극 하나를 봤습니다. 너무 너 무 감동이 됐습니다. 이 다음에 한 국에서 이런 연극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가 연극에 소질이 있나요 생각만 하 고 못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한 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 연극이 한국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 는 얘기를 듣고 아주 반가왔습니다. 방 있습니까?라는 연극입니다. 연극 의 타이틀이 방 있습니까? 이런 내 용이었어요.

자, 이제 요셉과 베들레헴, 요셉 이 호적조사를 하기 위해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 오게 되죠. 그때 마리아는 임신중 이었습니다. 방을 찾아 다닙니다. 그래서 어떤 여관에 도착해서 방 있습니까?라고 묻는 장 면입니다. 자, 이 장면을 하면서 연 극 배우들을 연극 속에서 보여 주는 데 그 중에 한 여관 주인의 아들이 었습니다. 연극에 따라 조금 다르지 만 제가 본 미국 교회의 연극에서는 여관 주인의 아들에게도 배역을 하 나 맡기는 그런 의논이 벌어졌습니 다. 그런데 여관 주인의 아들이 장 애아였습니다. 장애아. 말을 더듬는 장애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너 무 너무 연극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연극 캐스팅에 배 우 중의 한 사람으로 집어 넣기로 원했는데 말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연극을 하겠어요. 그래서 제일 그 중에서 쉬운 파트, 역할이 뭐냐? 그 여관 주인, 여관 주인을 보조하는 아들 역할을 맡기자. 한 마디 말만 하면 돼. 사람들이 와서 여관문을 두드리면서 방 있습니까?라고 물으 면 방 없습니다 한 마디 말만 딱 하 면 돼. 그리고 사라지면 돼요. 간단 한 거니까 이 장애 아이도 이 역할 만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것을 맡긴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을 시킵니다. 짐이라는 아이였 는데 그 아이에게 열심히 연습을 시 켜요. 바바 바 방 없습니다 그 말을 시키는 겁니다. 방 없습니다 방 없 습니다 자꾸 연습을 시키니까 한 마 디 말은 어느 정도 하게 됐습니다. 방 없어요 한 마디 말만 연습을 시 켰어요. 자, 연극이 진행됩니다. 드 디어 요셉이 왔습니다. 문을 두드립 니다. 방 있습니까? 짐이 튀어 나갑 니다. 연습한대로 한 마디 말을 합 니다.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바 방 없어요그런데 요셉이 가지 않고 한 번 더 말을 했습니다. 뭐라고 말했 냐면은 내 아내가 마리아가 임신 중 입니다. 너무 아프고 아기를 낳을 형편인데 어디 조그만 구석이라고 어떻게 구할 수 없을 까요? 이 불쌍 한 장면을 본 짐이 전혀 대사에 없 는 얘기를 갑자기 했어요. 뭐라고 했느냐하면 그 그 그러면 내 방에 오세요. 내 방에 오세요. 대사에 없 는 얘기예요. 연극은 깨지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에는 진한 감동이 스며 듭니다. 지난 밤도 순진한 아이의 세계에서 도저히 이 분을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아 들이는 장면 내 방에 오세요. 내 방에 오세요 아무도 그 리스도를 받아 들이지 않던 그 세태 속에서 이 장애 어린 아이 짐이 보 여 주었던 그 단순한 마음 속에서의 그 초청 내 방에 오세요

내가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 삶은 좌절이 었고 방황이었습니다. 이런 내 삶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것이 나의 죄 요 내 허물 때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저 죄인이예요. 저 잘못 됐 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마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 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 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하나님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라 단순한 복음에 대해서 단순한 마음으로 응답하고 예수님 제 마음 속에 오세요. 볼찌어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 에게로 들어 가리라. 주께서 내 마 음의 문을 노크하고 계시는 그 음성 을 듣고 내가 네 마음문에서 두드리 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 가리라. 내 삶의 자리에 다가 오시사 내 마 음의 문을 노크하시는 예수 그리스 도의 초청을 기쁨으로 수락하고 예 수님 오세요. 내 마음 속에 오세요. 나의 구세주가 되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의 주인이 되어 주 세요. 이것이 구원이 아닙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 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와 주님으로 믿는 것. 구원 받는 순 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약속입니 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구원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간 사람들도 살다 보면 구원은 잃어 버리지 않지 만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려요. 그 래서 신앙 생활이 더 이상 활력을 갖지 못하고 내가 의기소침해서 영 적인 침체 속에 빠질 때가 있습니 다. 찬송의 샘이 메말랐습니다. 내 삶의 발걸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내 삶 속에 성령의 충만함이 떠났고 나는 무료하게 하루 하루를 버티고 살고 있습니다. 뭐가 필요할까요? 여러분, 이럴 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 회복하는 것도 구원 받는 것 하고 똑 같아요. 내가 회개 와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와서 하나 님의 자녀가 되듯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원할 때도 하나 님은 똑 같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회개하셔야 돼요. 회개.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아 왔던 것 , 내가 하 나님을 내 삶의 첫째 자리에 두지 못했던 것, 내가 내 마음대로 내 고 집대로 내 철학대로 살기를 고집했 더니 그것이 내 방황의 원인이었습 니다. 하나님 나 잘못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 백하고 그리고 하나님 다시 한 번 신뢰합니다. 더 이상 나를 의존하지 않습니다. 내 지혜, 내 잘난 꾀를 의 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합 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서 삶 의 기쁨을 잃어 버리고 내 삶이 흔 들리는 원인이 어디 있어요? 회개하 지 못 하기 때문이예요. 왜 회개하 지 못 합니까? 어린 아이 같지 못 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 같지 못 하 기 때문에. 그 어린 아이들의 단순 함, 내가 아이들을 붙들고 설득하고 가르쳤을 때에 처음에는 버티던 아 이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어 잘못 했어요, 아빠 그럴 때 그 아이 들을 안아 주고 싶잖아요. 내가 주 앞에 그 잘못을 회개하고 자백하는 그 순간,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한 신뢰함으로 주 앞에 서는 순간 나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 내 속에 하나 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입니다. 주께 서 나를 통치하십니다. 주께서 나를 다스리십니다. 내게 기쁨의 샘물이 터집니다. 환희의 찬양이 내 속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너희가 어린 아이 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 라에 들어 갈 수가 없느니라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이 구원을, 그리 고 구원의 기쁨의 회복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주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에 들어 갈 수 없 느니라
기도하십시다.

최근에 내 생활 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리고 있는 분들은 계 시지 않습니까? 나 예수 믿지만, 하 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지만, 내 삶 이 흔들리고 잃어 버리고 있다면 어 떻게 회복할 수 있어요? 회개와 믿 음이예요. 회개하세요. 내가 주 앞에 잘못 살아 왔던 삶의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여러분에게 지적하십니까? 하나님 맞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이 회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 회개, 이 단순성. 솔직함 속에 일어 날 수 있는 이 회 개, 하나님 제가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를 의지합니다. 하나님 내가 순간 적이나마 나를 의지하고 내 꾀를 의 지하고 내 지혜를 의존했을 때 하나 님 그것이 보기 좋게 나를 패배시켰 고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주 님을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 지하겠습니다. 기도로 주를 의지하 며 다시 살겠사오니 주여 내 속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옵소 서. 나를 정결하게 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 나를 멀 리 멀리 쫓아 내지 마시고 내 안에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 서.

여러분 가운데 교회는 왔다 갔다 하지만 아직도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신 분, 지금 죽으면 내가 어디 로 가는지 확실히 알지 못 하시는 분, 천국 갈 수 있어요? 아직도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셨습 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하나님 앞 에 나오십시오. 회개하십시오. 회개 란 내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 니다. 내가 삶의 주인 되어 살던 자 리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게 본질적인 회개예요. 하나님 내 마음대로 살아 왔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살아 봤지만 그것이 방황이었고 그것이 내 인생의 흔들림의 원인이었습니 다. 제가 회개합니다. 나를 허물과 죄 속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 주 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 도, 나의 허물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린 바 로 그 분,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 하시사 나의 생명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나의 구세주로 초청합니다. 주님 제 마음 속에 오세요. 나의 구 주가 되어 주세요. 나의 주님이 되 어 주세요. 내 평생에 이 기도 못 해 보신 분 계십니까? 내 마음의 방 속에 오세요. 나에게 오세요. 내 인 생에 이런 중요한 결단을 해 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이 그 결단의 날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나 의 구주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십시 오.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그러면 기꺼이 주께서는 성령으로 내 마음 속에 찾아 오시고 오늘부터 나를 다 스리십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내 인생은 새로워 질 것입니다. 오 성령님 내 안에 오시사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십시다. 다 같이 기도하시 겠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 리가 이 시간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우리에게 구 원의 기쁨을,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 시고 나와 주님 사이의 교제가 새로 워 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내 속 에 정결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 내 더럽혀 졌던 마음들을 그 리스도의 피로 씻어 주시고 어린 아 이같은 단순함, 솔직함, 투명함으로 주 앞에 서서 주님 받아 들이고 주 님 사랑하며 주를 따라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 소서.

기도하는 이 시간에 아직도 내 마음이 여전히 어둡고 무거우신 분 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못할 때 내 마음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 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고 내 마음에 방황이 계속되는 분이 있다 면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어 보세 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정말 저를 회복시켜 주십시 오. 주 앞에 잘못 된 부분들을 솔직 하게 투명하게 내 놓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주의 보혈로 나를 씻 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정말로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나이다. 하나 님 내 마음대로 살아 봤지만 내 결 단이, 내 결정이 나를 방황케 만들 었습니다. 하나님 그런 답답함 속에 서 이 시간 손을 얹고 주의 도우심 을 구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의 보 혈로 저들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씻어 주시옵소서. 저들을 무겁게 억 누르고 있는 사단과 악령들의 역사 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임하여 주시 옵소서. 하늘의 능력으로 저들을 채 워 주시옵소서. 기쁨을 회복시켜 주 시옵소서. 찬송의 샘이 터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자유를 얻을지어다. 성 령의 능력으로 나에게 회복의 역사 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찬양하고 감 사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다시 우리 주님 견고하게 붙 들고 주와 더불어 동행하게 도와 주 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하심과 성령의 평화를 주심, 오늘 주를 예배하고 다시 삶 의 장으로 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에 게 성령의 권능으로 자유와 찬양과 그리고 저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의 삶으로 저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축 복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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