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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에 힘써야 합니다/마가복음 9:14-24

by 【고동엽】 2021. 12. 23.

환경 보호에 힘써야 합니다

 

마가복음 9:14-24


먼저 창세기 1장 28절 말씀 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2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창세기1장28절 다같이 시작!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장에서 한 절 더 읽겠습니다. 창세기2장 15절 말씀입니다. 2장 1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네 저는 이 밝아온 새로운 천년에 우리 새 시대를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에 대한 아주 중요한 topic 들을 가지고 이 새 초에 좀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환경보호에 대해서 좀 같이 성경공부를 해 보려고 합니다. ‘환경보호’ 그런 제목으로 성경공부를 해 보신 일이 있는 사람 한 번 손을 들어보세요 ‘환경보호’ 에 놀라운 사실입니다. 한 사람도 없네 하 하 하 흠 그 뒤에 있어요? 어 미래학자인 탐 싸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은 21세기에 그리고 새로운 천년에 크리스챤들이 직면해야 할 최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환경문제가 될 것이다. 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전 세계 흩어진 침례교들의 연합 기관인 침례교 세계연맹이라는 기관 이 있습니다. ‘BWA’ 라고 그러는데요 Baptist world An Alliance라고 그러는데 이 기구의 사무총장으로 계시는 덴튼 로츠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도 저하고 아주 친한 그런 분 이신데 그분의 쓰신 글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어요 ‘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함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함께 자연을 구원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들의 새로운 시대의 소명 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 받은 영혼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마 영혼구원에 대한 우리가 메시지는 많이 들었지만 뭐 자연구원 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생소한 그런 topic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댄튼 로츠 박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진정한 복음전도자는 진정한 생태회복 운동가 이어야 만 한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태계’ 혹은 ‘생태학’ 이라는 단어를 요즈음 우리가 뉴스 미디아 아 매스 미디아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그 단어를 우리가 접근하게 됩니다. 생태학 ecology 라고 부르는데 여기선 생물과 살아 있는 생물과 환경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을 가리켜서 우리가 ‘생태학’이다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의 복음주의적 선교 학자들은 복음전도의 명령과 함께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령은 전도 명령이죠 우리가 지상 명령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족속들 가운데 증거하여 예수를 모르고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일,이 전도 명령 이것은 크리스챤들의 물론 양보 될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첫 번 째 사명 가장 중요한 사명 소위 priority 우선 순위적 명령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전도 명령과 함께 우리는 새롭게 문화명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문화명령’ 이 전도의 명령과 함께 우리에게는 문화적 명령이 주어져 있다 이게 오늘 생각 하려고 하는 제목과 관련이 있는데 이 문화 명령 가운데서도 새 천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환경보호 혹은 자연보호의 과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계 일각에서 특별히 어 복음전도자 이면서 기독교 사회학자인 토니 컴폴로 라는 분이 있는데 이 토니 컴폴로 박사는 새 천년의 그리스도인의 상을 말하면서 새 천년의 그리스도인 들은 마땅히 그린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 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Green Christian’ 그런 소리 들어 보셨어요? ‘Green Christian’ ‘녹색 그리스도인’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그린 크리스챤 이 환경을 아낄 줄 아는 그리스도인 들이 되어야 한다 는 얘기죠 그럼 오늘 우리는 왜 우리가 환경보호가 필요하냐? 또 자연보호 운동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또 어떻게 우리는 환경보호를 할 수가 있는가? 우리가 이러한 질문으로 오늘 성경의 말씀을 한껏 접근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왜? 이 환경보호의 혹은 자연보호에 힘써야 할까요? 왜?
그 대답은 첫째로 이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창세기 1장 28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처음사람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이 말씀을 인간에게만 주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중심으로 사람 마음대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그런 명령으로 이 말씀을 받아드릴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 말씀은 문맥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창세기 1장28절의 말씀을 제대로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 전체의 그 맥락 속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읽어야 하고 또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창세기1장 11절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어요 창세기 1장11절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창세기 1장11절 말씀 다같이 시작!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매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더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창조하시며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하나가 “ 땅이여 땅은 풀과 씨를 맺는 채소를 내라!” 이게 하나님 명령이에요 땅을 향해서 명령하신 것이에요 땅은 씨를 맺는 채소를 내라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뜻인데 땅이 채소를 잘 못 내면 어떻게 되요? 땅이 채소를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또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되겠죠. 또 20절 말씀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20절 같이 읽겠습니다. 창세기 1장20절 시작!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의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아라” 하나님이 물들은 물 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물 속에는, 물 속에는 생물들이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입니까? 뜻이에요, 아니에요? 그거 대답하기 어려워요? 그냥 예 하기만 하면 그것이 정답이에요 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물 하천가운데 에 시내 가운데 강 들 가운데 생물이 번성케 하라 근데 강 속에서 시내 속에서 생물들이 번성하지 못하고 고기들이 죽어간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니죠 자 여기 또 보면 같은 20절 말씀에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공간 이 space 이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나님은 이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싶어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시면서 이 궁창가운데 아름다운 새 들이 각종 각양의 다양한 새 들이 날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대 새 들이 날아갈 수 없는 하늘 새들이 자꾸만 이 대기오염 때문에 한국의 하늘에서 쫓겨가고 자꾸 만 어디론가 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뜻 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죠 자 이런 맥락 속에서 28절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28절에 이제 도달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은 인간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을 만드시고 사람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근데 이게 사람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란 말이에요 생육하고 번성 하라가 이미 보는 것 처럼 어디에도 적용 됐어요? 자연들에게도 자연들에게 22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물고기 새 짐승에게도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의 물에 충만하라 새 들도 땅에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 하라가 인간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게 그러니까 그것만 딱 띄어 놓고 보면 사람에게만 주신 말씀같애요 그러니까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 아무때나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다 잡아 먹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뜻 일까요? 아닐까요? 아니에요 생물도 번성해야 되요 생물이 번성해야 요 하늘에는 새가 나르고 바다 속에는 아름다운 고기 떼들이 헤엄을 치는 세계를 하나님은 창조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에요 creation mandate 하나님의창조 명령이에요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뭐냐하면
이러한 모든 자연이 사람과 더불어 이런 모든 자연들이 혹은 사람이 모든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이런 자연과 더불어 이 우주 가운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하니님의 뜻이에요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노아의 홍수사건 때도 보면 노아의 홍수 심판 때 자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기 없었어요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있고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면서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방주를 만드셨을 때에 방주 속에 사람 만 들어가게 하셨습니까? 아니죠 네 방주 속에 뭘 들어 가게 하셨습니까? 혈육 있는 모든 생물 그 생명 있는 생물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 수를 함께 방주 안에 보존케 하신 것 여기 하나님의 어떤 기대가 있었겠어요 하나님이 자연을 보호하기를 원 하신 다는 것이죠 인간과 더불어 인간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서 이런 아름다운 생물들이 생명 있는 자연 들이 만물 들이 함께 보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 들이 지금까지 자연운동에 상당히 무관심 해 왔습니다. 오히려 과거에 역사적 기독교는 환경파괴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그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소위 서구 문명의 발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이 상당히 컸는데 저는 이 그러한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매우 오해한 말씀 중의 하나가 단어 하나 때문에 그래요 오늘 이 1장 28절에 보시면 여기 땅에 충만 하라 그 다음에 땅을 뭐라고 했어요? ‘정복하라’ 이 정복하라 는 단어를 잘 못 이해해서 그래요 그래서 마구잡이로 땅을 개간하고 정복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인간 중심으로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것 이라도 희생 될 수 있다. 짐승도 자연도 마음대로 희생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정복주의에 이걸 ‘정복 주의’ 라고 말합니다. 이 정복주의 적 윤리를 가지고 계속 세계와 만물을 착취 하는 일에 기독교인 들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편승했던 책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복하라는 뜻이 뭐냐 땅을 정복하라는 의미가 뭐냐 땅을 마음대로 파 헤쳐도 좋다는 의미 일까? 그게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정복이라는 단어에서 부터 영어의 culture 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문화, 문화 이 잘 개발 한다는 뜻이에요 가꾸고 돌 본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이것을 창세기2장에 보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죠? 자 아까 우리가 읽었던 창세기 2장 15절 을 다시 보시면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처음사람 아담을 이끌어서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다음에 그것을 에덴 동산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스리며 여기도 다스리다 라는 말이 나와요 그 다음에 첨부 된 중요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다스리며? 그 다음에 뭐에요?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처음 사람 아담으로 하여금 잘 다스려 지키게 하시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정복하라는 말이 뭐 파괴 해도 좋다는 그런 의미에 말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잘 다스릴 청지기적 책임을 강조한 단어라 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 단어를 잘 못 이해 했던 것 입니다. 그러므로 자연보호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인 것 입니다. 자 하나님이 이런 자연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창조 하셨을 때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사역은 완성 됩니다. 그런데 그 사역의 한 단계 단계마다, 한 단계 단계마다 하루 이틀이 지날 때 마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 보시면 어떤 하나님의 소감이 붙어 있습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참 좋다! 좋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러분 얼마나 좋아요? 뜨는 해 새 천 년의 밝아 오는 태양 우리는 비록 체육관 안에서 의의 태양 되신 주님을 바라 보았지만 동해안 간 사람들도 별 수 없이 못 봤잖아요 내가 예언한 그대로 네 그러나 사실 떠 오르는 태양 을 바라보는 감격 지는 해 석양을 바라보는 감격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좋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자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자연을 자연 되게 하는 것 이 그리스도인 들의 책임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왜 우리는 크리스챤 들의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뭡니까?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왜 그리스도인들이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자, 창세기 1장28절 말씀, 우리가 읽었던 말씀 다시 돌아가 보시면 이 말씀이 어떤 말로 시작이 됩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처음 창조하셨던 아담과 하와에게 뭐를 주시며 그랬어요? 복을 주시면서. 축복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땅을 잘 다스려라 땅을 잘 관리하라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자연 보호, 자연 관리는 우리의 축복을 위한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축복을 위한 것이다.
자, 그러니까 땅과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죠. 사람이 언제 지음을 받았습니까? 대답이 어렵습니까? 엿새 동안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사람을 몇 째날 지으셨습니까? 그 대답이 어려워요. 엿새 날 네, 마지막 날. 사람이 한 셋 째날 넷 째날 지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지요. 다른 것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어요. 인간이 지어졌을 때 보니까 모든 것을 이미 완벽하게 다 이루어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연은, 만물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선물로 다 주신 거예요.

그러나 내가 받은 선물이니까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까? 이 선물 관리가 중요하죠. 여러분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선물을 받으셨다면 그 선물을 어떻게 할까요? 소중하게 관리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이북을 방문했을 때 나는 가고 싶다고도 그러지 않았는데 묘향산을 가자고 끌고 가더라구요. 그래서 묘향산을 가 보았어요. 왜 끌고 갔나 금강산은 못 보지만 묘향산이라도 보게 되어서 다행이다 가자 그래서 갔어요. 산을 보러 가는 줄 알고 갔더니 산을 보여주려고 끌고 간 게 아니라 묘향산에 김일성이 세계 각국에서 받은 모든 선물을 전시해 놓은 김일성 위대하신 아바이 수령님의 선물 전시관이 있어요. 그거 보여 주려고 그 곳까지 끌고 간 거예요. 이만큼 좋은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거기까지 끌고 갔더라구요.

우리가 소중한 선물을 받으면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이 자연이, 만물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이라면 지금 인류는 소중하게 이 선물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인들은 어떨까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떨까요? 자연을 소중하게 잘 관리하고 있습니까?

날로 심각해 가는 대기 오염 현상, 스모그 현상, 강물 오염, 또 흙 속에 침투되고 있는 케미칼한 여러 화학적인 요소들로 말미암아서 더 이상 생물을 배태할 수 없는 우리의 흙의 오염들. 그리고 강물 산천마다 넘쳐 흐르고 있는 오염된 쓰레기들, 하늘에서는 산성의 비가 내리고 오존층은 파괴되고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날로 촉진되고 누구의 책임입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대답하세요. 나의 책임입니다. 나도 책임 있어요. 인류의 책임이고 우리들의 책임이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 산비탈에 뛰어 놀다 보면 바위옷 이라고 하나 나무 둥지 같은 데 파란 이끼가 낀 것을 많이 볼 수가 있었어요. 그렇죠? 요즈음 없더라구요. 바위가 파란 이끼로 뒤덮혀 있는 모습. 딱딱한 모습들. 그것이 대기가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선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요즈음 볼 수가 없어요. 다 파괴가 된 것입니다. 나쁜 물, 나쁜 공기, 나쁜 음식 모든 것이 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요즈음 와서 호흡기 질환이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합니다. 호흡기 질환이 왜 생겨요? 나쁜 물하고 공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음식을 먹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사, 감기 결코 대기 오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 년 중에 사람이 제일 많이 돌아가시는 달이 어떤 달인지 아세요? 통계적으로 12월과 1월 이랍니다. 왜 그럴까요? 한 해를 보내면서 한 해와 더불어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12월에 돌아가실까요? 왜 1월에 돌아가실까요? 새로운 해를 맞이해서 새 해와 함께 출발하기 위해서 1월에 돌아가실까요? 그렇지 않아요. 12월과 1월이 공기가 제일 나쁘답니다. 일 년 중에 제일 공기가 나쁜 달이 12월과 1월이예요. 그래서 많이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진과 기근 현상, 또 홍수와 가뭄의 현상들, 자연 파괴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의 재앙이 아니예요. 사람이 만들어 낸 인재예요.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예요. 그리고 하늘을 원망하죠. 나무를 다 베어놓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다 파괴해 놓고 홍수난다고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니예요. 하나님 책임 아니예요. 우리 책임이예요. 인적 재앙이예요. 우리가 하나님 주신 축복을 다 거절하고 다 파괴해 놓고 우리는 하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지 못할 때 자연은 우리를 더 이상 보호할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 자연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연 보호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왜 그리스도인들이 자연 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세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목적은 아닐지 몰라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 가운데 포함되어 있어요.

자, 여러분 자연 파괴의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합니까?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집 더 많이 짓기 위해서, 아파트 지어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지금도 막 파괴하고 있잖아요. 사람의 욕심이예요. 욕심의 배후에는 뭐가 있어요? 죄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자연이 저주를 받기 시작한 원인도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의 죄가 아니라면 자연은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어요. 창세기 3장을 찾아 보세요. 창세기 3장이 무슨 장입니까? 창세기 3장을 무슨 장이라고 부릅니까? 타락장. 창세기 3장 첫 부분에서 우리는 처음 사람의 범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17절, 창세기 3장17절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여기 땅이 저주를 받는 다는 말이 처음 나와요. 땅의 저주는 무엇 다음에 온 결과입니까? 사람의 죄 다음에 온 결과입니다. 인간의 범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게 된 것이라 말이죠. 사람의 범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어요.

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자연과 만물이, 땅이 저주를 받았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면 어떤 결과가 또 와야 될까요? 사람의 죄 때문에 자연이 저주를 받았다면 사람들이 구원받고 죄짓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죄를 덜 짓는 세상이 온다면 자연도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회복이 되어야지요. 자연은 자기 책임이 아닌 사람 때문에 괜히 피를 본 것입니다. 자연은 사람 때문에. 혹시 이런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몰라요. 잘 들어 보면 자연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연이 통곡하고 있는 소리가, 자연이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막 지나가다가 막 산을 헐고 있는데 가보면 아파 아파 나는 너무 너무 아프다 울고 있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감동이 안 되시는지 무감각해져 가지고. 죄에 익숙해지면 사람이 무감각해집니다.

자,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의 구속이 완성이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구원의 완성의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 재림의 때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면 사람들의 구원이 완성이 되고 또 이 땅에서 죄가 완전히 심판되고 쫓겨나고 추방되면 마지막 결과를 보여줄 때 로마서 8장20절 한 번 보세요. 로마서 8장20절. 찾아 보세요. 로마서 8장20절입니다. 오늘 이것은 아주 특별 성경공부예요. 나도 사실은 처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20절. 새 천년에 어떤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런 크리스찬들의 윤리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날 오시는 분들은 이런 특별한 것을 공부했다고 절대로 주일날만 나오는 사람들에게 얘기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20절부터 보시면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 자연이 허무한데 굴복한다. 자연도 썩고 병들고 그러죠. 자연 자체의 뜻이 아니다.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절 다같이 읽습니다. 21절 시작.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도달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이 완성될 때, 우리의 몸까지 썩지 않을 부활의 몸을 입고 완성될 때 피조물도 그때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자연도 완전히 자연으로서 회복되고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22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인간이 탄식하고 고통할 때 누구도 고통한다고요? 자연도 고통하면 탄식한다. 자연이 탄식한다는 말이 성경적입니까 아닙니까? 성경적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자연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자연이 울고 있는 소리, 자연이 탄식하는 소리. 우리는 자연의 통곡 소리, 자연의 탄식 소리를 좀 들어야 돼요.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야 돼요. 좀 진지하게. 우리가 성경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이런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 이렇게 완성이 돼요. 저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도 예수님은 이러한 자연을 아파하시면서 이런 자연을 돌보려는 의지를 가지셨다고 생각해요.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산상수훈에 보시면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하늘의 새를 보라. 좀 봐요. 그냥 지나가지 말고 오늘 날씨 좋다 안 좋다 그러지 말고 새를 좀 봐요.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안 하고 돌보아 주는 사람도 없지만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 누가 돌보신다고 했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돌보신다. 그러면 자연은 누가 돌보고 있다는 얘기예요. 하나님 아버지가 자연을 돌보고 있다는 얘기예요. 하나님은 자연에 관심이 계십니까 없습니까? 당신이 만드신 작품인 자연에 왜 관심이 없겠습니까? 사람들이 자연을 너무 파괴하면 야 너희들 안 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은 자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 우리가 만약 정말 그리스도적 삶을 추구하고 주님의 제자로서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이 자연 친화적 삶을 사셨다면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 돼요. 자연을 감사하고 자연을 보호할 줄 알고 이런 삶을 살아야죠.

저는 이런 면에 있어서 대표적인 크리스찬, 역사 속에 살았던 그리스도인 중에 대표적인,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아씨시의 성자인 프란치스코 라는 사람이 아니었는가 생각이 들어요. 캐톨릭이었지만. 굉장히 복음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일생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 번 그가 살고 있던 동네에 가축들이, 양들이 자꾸 죽어 없어져요. 목축지대고 농부들이 많았는데 가축들이 자꾸 죽어 없어지는 것이예요. 알고 보니 늑대가 산에서 내려와서 계속 잡아 먹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안 되겠다 늑대를 죽이자 늑대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산에 있는 늑대들을 완전히 없애자 계획을 세우는데 아씨시의 성자였던 프란치스코가 그것을 반대합니다. 죽이기 전에 나에게 기회를 달라. 나한테 맡겨달라고. 내가 한 번 해볼테니까 안 되면 그때 여러분이 죽이라. 그리고 그가 기도하고나서 산으로 올라갔어요.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며칠 후에 프란치스코가 산에서 내려오는데 보니까 늑대를 데리고 내려와요. 그런데 늑대가 아주 양같이 순해졌어요. 그래서 그때 이래로 늑대를 마치 자기 애완용 동물처럼 프란치스코가 데리고 살았다는, 그리고 늑대를 향해서 내 친구여 내 형제여 부르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또 여러분이 이것을 시험해보려고 나도 한 번 그렇게 해보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은 들어요. 우리가 거의 성화가 완성에 가까우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궁극적인 천국의 광경을 묘사할 때 성경에 보면 이런 묘사가 나오잖아요. 이사야 11장에 보시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궁극적인 천국의 묘사라고 말하지만 뭐 어쨌든 상관없어요. 이것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사야 11장6절부터 보시면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괜찮은 나라, 믿습니까 여러분? 그것이 천국인 것을 믿습니까? 그 천국에 갈 것이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기대가 되세요. 진짜 마지막 천국의 모습을 보세요. 계시록 21장을 한 번 찾아 보세요.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을 한 번 찾아 보세요. 22장 제일 마지막절 1절부터 보시면 새 하늘 새 땅,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묘사하면서 요한계시록의 기자인 사도 요한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1절 이하에 또 저가 수정같은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어떤 나라예요? 오염이 없는 나라, 완벽한 자연이 회복된 나라 그 푸른 강, 그 푸른 나무, 푸른 숲 다시 저주와 병이 없는 그 세계, 그 세계에서 살게 될 희망을 갖습니까?

그러면 그 천국이 이 땅에 오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들이라면 이 땅에 살 동안 완벽하다고 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면 우리에게 환경 보호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어떻게 환경 보호에 우리가 참여할 수가 있는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가 극단적 환경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극단적 환경론자들이 있어요. 크리스찬들이 환경 운동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에서 환경 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뉴 에이지 운동가들이예요. 뉴 에이지 운동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세기 최고의 이단 운동입니다. 그들이 환경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그들은 환경이나 자연을 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연을 신으로 봅니다. 자연 그 자체가 신이라 말입니다. 범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신으로 봅니다. 자연 앞에 기도하고 자연을 숭배하는 거예요. 그리고 땅을 향해서 오 나의 어머니 대지시여 그러면서 기도하고 그럽니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이.
그러나 우리는 자연은 신이 아니예요. 자연은 신의 피조물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자연을 관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자연과 하나 됨을 추구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우리는 잘 돌보고 또 자연을 엔조이할 그런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결정적으로 뉴 에이지 운동가들과 크리스찬 환경 운동가가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등급적 가치를 믿습니다. 피조물의 등급적 가치, 이것이 뭐냐 하면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자연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최고의 가치는 자연이 아니예요. 최고의 가치는 여전히 인간이예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가장 소중해요. 인간보다 조금 못한 것이 동물이예요. 동물보다 조금 못한 것이 식물이예요.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등급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참새 얘기를 하면서 너희가 참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참새보다 귀해요 안 귀해요? 귀해요. 우리가 먹고 살 것이 없으면 참새를 잡아먹을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괜찮아요. 먹고 살 것이 없으면. 그러나 심심풀이로 재미로 참새를 잡는 것, 그것은 죄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독교인들이 사냥을 즐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배고픈 사람들이 참새를 잡아 먹는 것은 괜찮아요. 죽느냐 사느냐 위기에 있는 사람들이 개를 잡아 먹는 것은 괜찮아요. 그러나 취미로 잡아 먹는 것, 저는 안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크리스찬들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크리스찬들이 보신탕을 즐길 수가 있느냐?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한 번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대답을 구해 보세요. 하나님이 괜찮다 실컷 돌아다니면서 잡아 먹어라 그러실까요 안 그러실까요? 요전에도 보니까 어떤 목사가 밀렵을 하다가 붙들렸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돈을 위해서 재미를 위해서 그러면 안 돼요. 저는 등급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아예 채식주의자가 많아요.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등급적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되도록 0悶О?만물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예요. 크리스찬들의 자연에 대한 책임은 한 마디로 말하면 청지기적 책임이예요. 우리는 청지기다. 자연이 주인이 아니예요. 우리는 자연에 대한 청지기예요. 주인은 하나님이세요. 우리는 자연을 맡아서 관리할 청지기에 불과한 것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탈란트의 비유를 자연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먼 나라로 가면서 주인이 달란트를 맡겼어요. 맡긴 것 가운데 자연도 있어요.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무얼 기대할까? 주님 우리가 맡겨주신 자연을 다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이것도 책임을 져야 해요. 주님이 원하시는 건 뭐예요? 주님이 주신 자연을 더 풍성하게 가꾸어서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욱 풍성한 자연을 가꾸고 우리의 후손에게 다음 세대에게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찬의 책임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몇 가지 제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첫 째로 우리는 환경친화적 과학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극단적 환경론자 가운데는 과학 자체를 배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과학은 굉장히 중립적 가치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잘못된 과학은, 기술은 자연을 파괴합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과학자가 필요합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기술을 발달시키는 과학자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환경 친화적 환경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저는 장차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자연 보호 목장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교회 small group가운데 자연 보호 목장. 그래서 자연 보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자연 보호에 대해서 캠페인을 벌이고 또 이런 것 도와 달라고 그러면 저희 교회 재정의 일정한 부분들을 이런 운동에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그 일도 해야 되기 때문에. 그 운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운동을 한다는데 대해서는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 앞으로 5월달이면 선거할텐데 저 사람 보니까 인상이 나쁘다 그래서 찍고 이런 유치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나하고 고향이 같으니까 찍어주자 언제까지 이런 유치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까? 우리가 선거가 가까와서 투표를 할 때도 정책을 보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정책이 환경 친화적 정책을 갖고 있는가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개인의 삶 속에서 환경적 친화적 삶을 우리 개개인이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쓰레기를 덜 방출하고 음식 조금 덜 먹고. 식당에 가서 음식 타 올 때도 먹지 않으면서 괜히 왕창 타 갖고 왕창 남겨서 쓰레기를 발생하는 것, 하나님 기뻐하실까요 안 기뻐하실까요? 매우 안 좋아하실 것입니다. 아주 안 좋아하세요. 하나님이. 인상을 쓰시면서 여러분이 밥을 탈 뚫어지게 나를 꿰뚫어 지켜보고 계시는 불꽃같은 안목을 지니신 하나님. 밥 조금만 가져 와요. 먹을 수 있을 만큼 조금만 가져와요. 깨끗이 없애요. 쓰레기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느끼는 것인데 되도록이면 자동차도 작은 것을 타고 걸어올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니고 교회 버스 타고 올 수 있으면 자기 차 가져오지 말고 여럿이서 같이 카풀해서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3월달이 되면 요 앞으로 이사오려고 합니다. 걸어다니려고 합니다. 가장 작은 일에서 부터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고 아끼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 목적이 그 어느 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회복의 영광 속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는 그 날을 위하여.

우리가 마지막 한 구절 보겠습니다. 시편148편 한 번 다 찾아 보세요. 시편 148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이런 환경 보호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들에 가서 억제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운동도 하는 사람들, 크리스찬의 삶이예요. 우리가 전도하는 것만 크리스찬의 삶이 아니예요. 이것도 매우 중요한 크리스찬들의 소명 가운데 하나란 말이죠. 시편 148편은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우리가 교독을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찌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찌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라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 말씀을 좇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하늘과 별과 나무와 땅들과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그날을 위해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와 아름다움 안에서 주님을 지금 이 순간도 찬양할 수 있도록 우리가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보호하고 쓰레기를 줍고 산에서 나무를 꺾지 않고 꽃을 아끼는 마음,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 신앙 생활의 한 모습이고 새로운 천년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첫 번째 스페셜 윤리 시리즈 스타디의 첫 번째로 환경 보호를 할 줄 아는 크리스찬이 되자. 결론은 Green Christian 이 되자.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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