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Άλλα σε προετοιμασία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가복음 8:27-31

by 【고동엽】 2021. 12. 23.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7-31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43세가 되 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이태리의 밀란에 살던 루더빈코라는 공작에게 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려달 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3년간의 작 업 끝에 그는 이 그림의 초벌을 완 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림의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소감을 물었습니다. 이 때 다빈치의 친구는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그 잔 을 가르키면서 이 잔이 너무나 인상 적이고 사실적이다. 마치 살아있는 컵 같다는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 때 다빈치는 갑자기 붓을 들어 그 컵을 지워 버렸다고 합니다. 친구가 당황해하면서 깜짝 놀라 왜 그러느 냐고 그러니까 다빈치는 이런 유명 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네."
이것이 다빈치의 대답이었다고 합니 다. 해마다 이 크리스마스의 시즌이 되면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를 만나게 됩니다. 크리스 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캐롤, 산타 크로스, 동방박사, 목자들, 마리아... 이런 이야기들이 이 계절의 낭만을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계절의 낭만을 즐거워하는 것이 잘 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는 확실히 이런 낭만이 필요하기 때 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 는데 이 계절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 스 계절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 는 사실을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저 는 어려서부터 이 12월을 좋아했습 니다. 커 가면서는 이 12월이 여러 가지로 힘든 느낌을 갖는데 어릴때 는 12월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12월에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제 생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4살인지 5살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제 생일날 이었습니다. 사실은 비밀이지만, 제 생일이 무척 가까이 왔습니다. 음력 이라 해마다 왔다 갔다 합니다. 4살 인지 5살인지 분명하지는 않은데 한 번은 제 생일날 저희 아버님이 많은 손님들을 초청해서 저희 집안에 아 주 시끌벅끌하게 마치 장터처럼 사 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아주 약주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막걸리 파티가 한 쪽에서 벌어지고 노래소 리, 고함소리,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 어요. 그런데 저는 뒷방에서 혼자 있으면서 제가 조숙했는지 이런 생 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오늘 내 생일인데 왜 아무도 나에게 관심 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있 습니다. 혹시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 에 예수님이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 을까? 이런 느낌을 갖습니다. 이 시 즌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구별되는 그 독특성 가운데 하나는 다른 종교는 그 교주 의 가르침만 가지고 성립합니다. 기 독교에서는 예수의 가르침보다도 예 수님이 더 중요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 는 것이 멸망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 예수 그리 스도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성 경은 가르칩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 는 것이니이다라고 성경은 가르칩니 다. 우리가 인생에서 물을 수 있는 질문 가운데 이보다 더 심각하고 이 보다 더 중요하고 이보다 더 본질적 인 질문이 없는데 그 질문은 예수님 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어느 정도 시간 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생애의 목표를 향해서 걸어가 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셨을 때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 십니다. 헬몬산으로 가는 도상이었 을 것입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의 타 운에 도달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 을 돌이켜 보시면서 이 두 가지 중 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는 사 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두 번째 질문으로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첫째 질문은 사 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를 예수께서 물어 보신 것 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 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물
으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 가지로 주님을 향한 답 변을 올렸습니다.
첫째로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침 례 요한이라고 부릅디다. 아마도 이 대답의 배경속에는 요한이라는 사람 이 그 당시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 습니다.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 들은 광야까지 몰려왔습니다.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 며 요단강에 가서 침례를 받았습니 다. 이 위대한 영향력이 있었던 스 승, 설교자 요한, 예수님을 그 요한 의 재탕쯤 되는 분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상가, 그는 위대한 지성, 그는 위대한 스승, 그는 위대한 정 신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되고 있습니 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나쁜 사고는 아니지만 이것이 예수 그리 스도를 이해하는 정답은 결코 아닙 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능력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에 보면 엘리야가 한 번 기도하니까 하늘문이 열려요, 하늘은 비를 쏟기도 하고 비를 쏟기 도 했습니다. 위대한 능력의 사람 엘리야를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한 번 기도하니까 소경이 눈의 열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타 치하니까 귀머거리가 듣기 시작합니 다. 아,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는가? 엘리야의 재판인가? 이런 생각을 하 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 다. 그는 분명히 능력을 가진 사람 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특별한 능 력을 가진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 다. 예수님을 수퍼 스타라고 생각합 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초능 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요즈음 한국 TV에는 기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예수님 은 특별한 기를 받아서 어떤 특별한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 람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예수님을 외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 다. 뉴에이지에서 선포하는 예수가 그런 이미지를 갖고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특 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것 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 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합디다. 이 것은 두 가지 견해보다는 훨씬 더 정답에 가까운 것입니다. 선지자-하 나님이 보내신 자, 그리고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고 있는 사람, 이것은 확실히 정답에 근접해 있는 것은 사 실이지만 이것이 또한 예수님에 대 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충분한 대답 은 아직도 아닙니다. 여러분, 요한복 음 4장에 보시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대화를 하고 계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처음에 예수님 을 이해할 때 그 예수님이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라고 생각 을 했어요. 당신은 가만히 보니까 유대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사람인데 어째서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 여자 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유대인 남자,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었습니다. 나하고는 관계없는 당신, 이렇게 생각했던 여자가 예수님과 대화가 진행되다가 점차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생각이 바뀌어가기 시 작합니다. 그러면서 아, 예수님을 통해서 뭔가를 얻을 수가 있다. 내 목마름도 채워질 수가 있다.
"선생 님, 나에게 물을 주십시오."
이렇게 요구할 만큼 예수님이 무엇을 줄 수 가 있는 분으로 생각이 발전해 갔습 니다. 그러다가 얘기가 더 진행되던 대화속에서 예수님이 이 여인의 과 거까지 들추어 내십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충격적인 자기의 과거를 지적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놀라운 영적인 통찰력을 지닌 분으 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 니다.
"당신은 분명히 선지자이신군 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듣 고도 대화를 거기서 마무리 하지 않 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아직도 충분 한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 수님은 이 여인의 입술에서 고백되 는 마지막 정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 이 제자들의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 한 견해를 들으신 다음에 이번에는 질문의 대상, 대답해야 될 대상을 바꾸어서 물으십니다. 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교회 바깥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스 승, 위대한 휴메니테리안, 존경할 만 한 스승,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 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과 거속에 있었던 위대한 스승!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제자 들의 사람들에 대한 예수에 대한 견해를 들으신 다음에 이번에는 질 문의 대상, 대답해야할 대상을 바꾸 어서 물으십니다. 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교회 바깥 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 위대한 휴메니테리안,존경할 만한 스승,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 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과거 속 에 있었던 위대한 스승 이렇게 말 한다고 하자.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것은 사람들의 견해고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 냐? 여기서 강조된 말은 '너희는' 이라는 이 단어가 강조가 되어 있 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 냐?
이제 2년이 지났습니다. 예수 님은 제자들과 피부를 맞대고 대화 를 나누어 왔습니다. 지나간 2 년간 피부를 맞대고 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나 를 지켜 보았던 너희는 나를 누구 라고 하느냐? 오병이어의 기적, 칠 병이어의 기적 이 기적을 베풀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너희들, 갈릴리의 풍랑을 잠잠케 할 때 그 현장에서 그 능력을 지켜 보았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지니간 여러 세월 교회당 안에서 찬송을 듣고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단어에 익숙해 왔 던 여러분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를 누구라고 이해하고 계십니까? 이 것이 오늘 예수님의 질문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 앞에 본문에서 보는대로 예수 님의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인 베드 로가 제일 먼저 나와서 단순한 대답 을 했습니다. 그것은 직설적인 대답 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정답 이었습니다. '주는 곧 그리스도시니 이다.' 다 같이 '주는 곧 그리스도시 니이다.' 사실 우리말 성경에 그렇 게 번역된 단어 앞에 중요하게 강 조된 정관사 하나가 빠져있기는 합 니다. 주는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바로 그 그리스도,우리가 기 다려왔던.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 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독 교의 모든 메시지가 사실은 이 고 백 안에 들어 있어요. 예수는 그리 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 의 뜻은 메시아라는 말하고 같은 뜻 입니다. 그것은 본래 기름부음을 받 으신 자다. 이런 뜻입니다. 'the Anointed one' 기름부음을 받으신 자. 구약 성경에 보면 선지자가 될 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런데 선 지자 말고 그 직위에 취임하기 위해 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할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이고, 또 하나는 왕이었습니 다. 제사장과 왕, 제사장이 되려면 반드시 양 뿔에기 름을 채워 놓고 기름부음을 머리에 받고 그 다음에 제사장의 자리에 취임합니다. 이스 라엘 역사 속에서 제사장은 매우 중 요한 역할은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은 참된 제사장을 기다려 왔습 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름을 부어주 셔서 완전한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떤 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예 요. 제사장의 책임은 물론 제사드리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제사입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 에 그대로 접근 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해결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속죄의 제물을 준비 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 노를 풀어 드리고 하나님과 화목하 게 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 아 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던 자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당신이 그 그리스도 바로 그 제사장이십니다. 이 제사 장이라는 말을 오늘 우리가 익숙한 다른 단어로 바꾸어 보면 이런 말입 니다. 예수님 당신이 구주이십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분, 그래서 나 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분, 바로 구주이십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제사장일 뿐만 아니 라 이 그리스도라는 고백 속에는 또 하나의 다른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 어 있습니다. 예수는 왕이십니다. 믿 습니까? 예수는 왕이십니다. 왕의 기능은 통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은 제사장일뿐만 아니라 제사장으 로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인간이 죄를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 아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다 나아가서 예수 는 왕이십니다. 예수는 나를 다스리 고 나를 통치하고 내 운명을 주장하 고 날마다의 삶을 인도할 수가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는 왕이라 는 말을 우리가 익숙한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이런 말입니다. 주님 이십니다. 나의 주인, 내 삶을 통치 하고 다스 리는 나의 주인,예수님은 구주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 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이야 말 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고백입니 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사람, 우리 는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교회 나왔다고 그리스도 인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집사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해서 그리스도인 이 아니예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 도로 믿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 인 것입니다. 믿습니다까? 이 중 요한 고백.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 십니다. 자, 이 고백을 받자 예수님 은 비로소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공 개하지 않았던 놀라운 비밀 하나를 제자들에게 밝혀주십니다. 그 비밀 의 내용이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 다. 본문의 31절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가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 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 치시되' 여기서 참 중요한 단어는 비로소라는 단어예요. 31절 하반부 에 보시면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 셨다. 비로서 뭘 가르치셨다고요? 예수님이 얼마 안있으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 활해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다. 그 전에 제자들에게 이것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에게서 주님 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받으시고 나서 이제 제자들이 이 위대한 진리 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고 판 단하신 주님은 이때에 비로소 기독 교의 엄청난 진리의 극점,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제자들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죽어야 한다. 그리고 사흘만에 살아야한다. 왜 이것을 이때 밝히셨을 까요? 자, 주 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 속에는 두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다고 그랬어요. 첫째는 예수는 구주이시 고, 둘째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다 른 말로 말하면 예수는 제사장이시 고 예수는 왕이십니다.
첫 째로 예수님이 참된 제사자 이 되시기 위해서는 그는 반드시 죽 으셔야 하십니다. 제사장의 중요한 책임은 제물을 준비하는 것이예요. 속죄의 제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그 가 준비한 속죄의 제물은 뭘까요? 자신의 몸입니다. 그는 죄때문에 하 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여러분 과 저를 위해서 그가 대신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채찍을 맞게 위해 서 주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 물로 드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 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 신 받으시고 거룩한 피를 뿌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 은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그 분은 십자가에 가서 죽으셔야만 했었습니 다. 그는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십 자가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제사장일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이제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기 위해서 그는 살아나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어있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십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살아계시지 못한다 면 우리의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 다. 그리스도의 드라마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는 부활하셨습 니다. 그는 살아계십니다. 믿으십니 까? 살아계시기 때문에 내 기도를 들으세요. 내 인생 속에 간섭하세요. 나를다스리세요. 나와 함께 하세요. 나를 인도하세요. 그분은 바로 우리 의 왕이 되시고, 나의 주님이 되기 위해서 부활의 필요가 있었던 것입 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세요. 이 고백을 받자마자 예수님은 지금 까지 감추어 두었던 아니 제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기독교의 진리의 극점, 이 위대한 진리를 계시하십니 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그는 구주가 되기 위해 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그는 우 리의 왕, 나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 서 그는 부활하셔야만 했던 것입니 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고백을 받고 싶어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사 랑하는 제자들에게 던지신 것입니 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선 생님,당신은 나의 그리스도. 주님은 당신은 나의 구주, 그리고 주님이 되십니다. 오늘 주님은 이 고백을 이 계절에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주 님은 나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하나가 있어 요.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을 수가 있을까 요?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정말 그 리스도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 님으로 믿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 가 본문의 기사를 마태복음과 비교 해 보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베드 로가 고백을 했을 때 주님이 칭찬하 신 대목이 마태복음에는 밝혀져 있 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시면 주님이 이 고백을 들으시고 너무 기 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바요나 시몬 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 게 한 것은 네 혈육이 아니야 이 말 은 무슨 말이냐 하면 네가 인간적으 로, 이성적으로 이 진리를 깨달아 안것이 아니야.하나님 아버지가 네 게 알게한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 도라고 발견하게 된것, 예수를 그리 스도라고 믿을 수가 있었던것 이것 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도와 주신 것이다 라고 예수께서 말씀하 시며 칭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 러분,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성경 공부 안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 이 똑같은 성경 공부 안에서 똑같은 교사에게 성경을 배울 수가 있습니 다. 새생명반에 들어가서 말씀을 배 울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 정한 과정이 끝나고 예수를 그리스 도로 발견하고 믿고 삶이 바뀌는 사 람이 있어요. 근데 성경 공부하고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공부하 는 자세가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깨달음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이유 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복음 을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가? 성경 공부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가?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것 은 여러 세월 동안 목회자인 저를 괴롭혀 왔던 질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교회 생활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 이 단순한 복음을 깨닫지 못 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못할 까? 거기에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 요. 이성적인 추구가 빈약하기 때문 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지 않고는 이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제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 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플러스 알파가 있어요. 기독교는 인간의 이 성을 결코 없신 여기거나 ,혹은 이 성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 반 이성 적인 종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 교는 또한 이성에만 매달리고, 이 성에게 모든 해석을 의탁하는 이성 주의적 종교도 아닙니다. 때로 기독 교는 이성을 넘어섭니다. 이성으로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더하기 알파가 있어 요. 이 부분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 니다. 이 부분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계시 종교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깨 우쳐 주셔야 깨달아 알 수 있는 가 장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예수 가 그리스도라는 진리예요.
저는 이 성탄의 계절에 아직도 신앙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교회 주 변에서 맴도는 분이 있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깨달아 아는 성령의 역 사가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 다. 어떻게 이 깨달음이 일어날 수 가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이 런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계절 좀 조용 한 시간을 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 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을 드립니 다. 그 기도제목은 이런 것이예요. 이 제목을 붙들고 기도해 보세요. ' 하나님, 저에게 예수님을 깨달아 알 게 도와주세요. 이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기도보다도 그 기 도하세요. 제일 중요한 기도예요. 이것은 자식을 위한 기도보다도 더 중요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누구 이신지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은 멸 망인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도 멸망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예수님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 래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 나님 도와주세요. 예수가 누구인가 를 깨닫게 도와 주세요'. 그런데 어 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목사님, 제 가 그 기도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 데 깨달아 지기 않습니다.' 그렇다 면 제가 기도 제목을 한가지 더 드 리겠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하 나님 제가 죄인됨을 깨달아 알게 해 주세요'.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동시에 함께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함께 기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신데 그는 어디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십 니까? 죄로 부터 구원하십니다. 예 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되었을 때 천사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 탄 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 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즉 예 수가 백성을 어디에서 죄에서 구원 할 자이심이라' 그랬어요. 죄에서 구원할 자, 죄로부터 구원할 자. 이 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구 원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깨닫지 못하고는 구원 을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연관성이 있 습니다. 내 죄에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는 이 죄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냈다는 이 사실을 알 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죄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나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 를 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스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초 래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의 최선도, 나의 윤리적 결단도 죄문제를 해결 하기에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에 하 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 리스도를 준비하시고 그가 나의 죄, 우리의 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그 피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놀라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깨달아 지지 않고, 구 원이 깨달아 지지 않거든 주 앞에 엎드려 이렇게 이 계절 기도해 보 십시오. '하나님, 나의 죄인됨을 깨 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 내 죄 의 심각성 앞에 벌벌 떨리거든, 바 로 이 죄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이것이 Good News 고,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인 것이 여러분에게 밝혀 질줄로 믿습니다.
수년 전에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이 12월 달에 구 소련에 속 해 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무려 5만 5천명이 죽 었어요. 굉장한 참사였어요. 그때 9 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철근과 콘크리트 밑에 한 모녀가 , 한 엄 마와 딸이 가까스로 삼각형 틈새 속 에서 목숨을 구출하고 유지하고 있 었습니다. 삼풍사건을 경험했던 우 리에게는 낯선 광경은 아닐 것입니 다. 그때 스쟌나라는 어머니는 네살 먹은 딸 가이아니이라는 딸과 함께 그 틈새 속에서 살아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갑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흘 러갑니다. 네살먹은 딸 가아아니는 그 엄마 옆에 누워서 비명을 지르 며 한 가지 음성을 계속 토해 놓습 니다. 그것은 뭔가하면 '엄마, 목말 라. 엄마, 목말라' 그러나 가까스로 몸을 눕힌 채 운신할 수 없었던 어 머니에게는 딸을 도와 줄 방법이 생 각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 스쟌나 엄마의 머리 속에 테레 비에서 보았던 어떤 광경 하나가 생 각 났데요.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 을 것, 마실 것 없었을 때에 피를 나누어 마시던 광경이 생각이 났다 고 합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엄 마는 손을 더듬었습니다. 더듬다가 갑자기 깨어진 유리 하나가 손에 붙 잡혔습니다. 지체없이 엄마는 그 유리 조각을 들어서 그 엄마의 팔 둑을 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고 가아아니 딸 더 옆으로 와. 옆으 로 .그리고 자기의 그 팔뚝에서 흐 르는 피를 자기가 사랑하는 딸 가이 아니의 입술에 떨구어 주었습니다. ' 엄마, 나 목 말라요' 이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 마다 엄마는 유리 조 각으로 더 힘껏, 더 힘껏 그어서 피 를 사랑 하는 딸에게 목에 흘려 넣 었습니다. 그렇게 두 주일이 지났습 니다.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되었습 니다. 이 딸 가이아니는 엄마의 희 생, 그리고 엄마의 피흘림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가이아니 딸에게 있어서 엄마의 피 는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유일한 대답이었습니다.
2천년 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 습니다. 달리는 살길이 없고, 달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었던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 다. 그는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뿌렸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피 흘 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 스도의 피흘리심. 그것이 저와 여러 분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새로 운 삶의 출발점이 된것을 감사하시 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그리고 성 탄절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 리스도의 오심의 이유를 샏각해야 할 계절입니다. 단순한 탄생만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이 탄생은 죽음 의 사건을 통해서만 그가 왜 이 땅 에 오셨는지가 이해될 수 있는 사건 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상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단 한번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 라는 말이 없어요. 그렇다고 성탄 축하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 닙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라든지 축하하라는 말이 없어요. 그대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내 가 너희를 위해 죽은 것을 기억하라 고 말합니다. 피 흘린 것을 기억하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십자가 사건을 떠나 서는 이해 될 수가 없는 사건이예 요. 그는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 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 우리는 구유 저 건너편에서 십자가를 볼 수 가 있어야 합니다. 베들레헴 땅이 아니라 우리는 베들레헴 저 위에 있 는 갈보리의 언덕을 바라 볼 때에 주께서 2천년 전 베들레헴의 아기로 오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 흘림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그를 구주 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양 심을 죄에서 해방하고 용서함을 베 풀고,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 부르면 서 내가 부를수 있는 새 노래,내가 걸어 갈 수 있는 새 인생을 준비하 신 사건,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메시 지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성탄의 계절, 단 순한 낭만의 계절 이상의 의미가 필 요합니다. 이 날 주께서 오신 것, 십 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신 사건. 엄마의 피로 살아난 가이아니는 평 생을 두고 엄마의 피를 잊어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 엄마가 피 흘려서 내가 살았지. 그것이 그리스 도인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피 그 피로 죄사함받고 다시 산 나.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 고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내 일생 을 드려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 도 그 분은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전부, 내 삶의 이유가 되셔야 합니 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따르겠 습니다. 주님,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님, 나의 사랑 ,나의 경배 받아 주 시옵소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 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다시 우리가 성탄의 의미를 주의 말씀을 통해 묵상해 봅 니다. 주님이 내게 오심이 없었더 라면 영원히 방황했을 나를 위해 오 시고, 성령 보내주시고, 피 흘려 주 신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찬양, 나의 감사 받아주시고, 내 전 생애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 한 응답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 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 원 받고 죄 용서함 받고 새로운 사 람이 되었다면, 이 찬양은 우리 일 생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 나니 그런즉,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살 아계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려주신 예수 위해 살기를 원합니 다.> 이 고백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다. 다 기립하셔서 찬양하시 겠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은혜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 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나로 예수 를 그리스도로 깨닫고, 발견하고, 믿고, 따르게 하신 성령님의 은혜가 이 계절,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이 새삼스레 감격과 감사로 다가오는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성령의 평안으로 감격으로 헌신으로 결단으 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 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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